(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07-18 이강록
제목: 저개발국의 정치체제와 경제 발전의 인과성
서론
국가의 존립과 지속적인 성장에 있어 정치체제는 필수적인 기반이다. 특히 식민지 경험과 전쟁을 겪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저개발국에게 있어서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탈출하는것과 급속한 경제 발전은 국가의 생존이 걸린 필수적인 과업이었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 그리고 제도적 기반이 없다시피한 척박한 상황에 직면해있는 저개발국이 어떻게 효율적인 성장을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논쟁이 되어왔다. 이러한 물음표를 가진 질문에서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달성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인 이른바 ‘동아시아의 기적’은 권위주의 체제의 효율성을 옹호하는 강력한 경험적 근거로 인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학계와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초기 경제 성장 단계에서는 민주주의가 수반하는 절차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제쳐놓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리더십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국가 주도로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성장의 필수 조건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름하여 개발독재라고 불리는 이 모델은 민주주의를 성장의 결과물로 미루고 권위주의를 성장의 도구로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하였다. 이러한 관념은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나 남미,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저개발국에서 독재 정권이 자신이 입맛대로하는 통치를 정당화하는 핵심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치는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건전한 성장 잠재력을 저해시키고 미래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매우 위험한 도박과도 같은 행위이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하거나 비판하는 연구들이 대립해 왔다. List-Jensen(2008)은 한국의 사례를 심층 분석하면서 권위주의 정부가 가지고있는 ‘국가 자율성’과 자본 규율 능력이 당시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음을 자세하게 논증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금융 시스템을 국가가 장악하여 기업의 성과를 강제하였고, 노동 조합을 억압하면서 임금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식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형 권위주의 모델’을 일반화하여서 권위주의가 경제 성장에 내재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심각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Amartya Sen(1999)은 일찍이 권위주의가 경제 성장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한국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극소수적인 예외적 성공 사례에만 기반한 선별적인 사실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이를 입증할 일반적인 통계적인 근거는 부족하다고 비판하였다. Sen은 발전의 본질을 단순한 GDP의 증가가 아닌 ‘자유의 확장’으로 규정하면서 권위주의적 체제하에서의 성장은 민주주의의 도구적 가치와 기근이나 위기를 막는 안전장치로서의 기능을 간과한 불안정한 상태임을 지적하였다. 정리하자면 Sen은 권위주의적 성장은 언제든 붕괴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임을 경고하였다
이러한 학술적인 연구와 관련하여 따라서 본 글에서는 List-Jensen 등이 제시한 성공 사례가 특수한 역사적, 지정학적 조건 하의 예외임을 전제하며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저개발국의 경제 발전에 있어서 권위주의 정부는 성장의 촉진제가 아니고 장기적으로 성장을 저해하는 ‘구조적 위험 요인’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본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증을 전개할 것이다. [1] 첫째, 국가 내부적 차원에서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인 ‘혁신’을 필연적으로 억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검토한다. Acemoglu et al.(2005)이 제시한 ‘정치적 패배자 효과’와 ‘헌신 문제’를 이론적 틀로 삼아서 권위주의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착취적 제도를 고착화하는 메커니즘을 연역적으로 논증한다. [2] 둘째, 이러한 내부적 경직성이 국가 외부적 차원에서 어떻게 위기 대응 실패로 이어지는지 분석한다. Rodrik(1999)의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갈등 조정 기제가 부재한 권위주의 체제가 외부 충격 시 사회적 분열을 막지 못해 급격한 성장 붕괴를 초래하는 인과관계를 밝힌다. [3] 셋째, 권위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우위를 살펴본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투명성과 책임성, 그리고 갈등 관리 능력이 어떻게 혁신 유인과 위기 회복력을 동시에 제공하는지 규명함으로써 권위주의의 열등성을 증명한다. [4] 넷째, 예상되는 반론인 ‘초기 권위주의 효율성’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권위주의가 지속될수록 인적 자본을 훼손하고 경제 성장에 해가 됨을 입증하는 시계열적 연구를 통해 재반박함으로써 논증을 강화한다. [5] 마지막으로, 저개발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은 자비로운 독재자가 아닌 민주적 제도의 확립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본론
권위주의의 내부적 모순: 혁신의 차단과 제도의 실패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 성장을 견인한다는 인식은 독재자가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지않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즉, 이른바 ‘자비로운 독재자’ 가설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 가설은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이기심을 간과한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Acemoglu, Johnson, & Robinson(2005)은 제도가 사회적 효율성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선택된다는 ‘사회적 갈등 관점’을 통해 이 가설을 반박한다. 권위주의 정부는 본래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정권의 생존과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두면서 결과로 필연적으로 장기 성장의 핵심인 기술 혁신 가능성을 저해하게 된다.
정치적 패배자 효과(The Political Losers Effect)와 혁신의 억제
현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은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Joseph Schumpeter(1942)가 주장한 것 처럼 기술 혁신은 낡은 산업과 기술을 자연스럽게 도태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과정을 같이 겪는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 자원의 재배분을 넘어서서 정치적 권력을 재편시키는 위험한 과정이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부유층과 엘리트 집단을 만들어내고 산업화와 도시화는 노동자 계급을 조직화시키고 의식 수준 향상을 촉진시키면서 기존 지배층의 권력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Acemoglu 등(2005)은 권위주의 엘리트들이 경제 성장이 가져다주는 국가의 부의 증대보다는, 성장이 가져올 자신의 정치적 권력 상실을 더 경계한다고 분석하였다. 이를 ‘정치적 패배자 효과(Political Losers Effect)’라 한다. 엘리트들은 “경제적 변화가 엘리트의 정치적 힘을 잠식할 경우, 그들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지대가 줄어들 것을 알기에 성장을 촉진하는 제도 변화를 막는다”고 주장한다(Acemoglu et al., 2005, p. 432). 이를 설명하자면 독재자는 자신이 정치적 패배자가 되어 권력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차라리 국가를 빈곤하고 통제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두어서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시를 통해서 단순한 이론적으로 생각한 추론이 아님을 확인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19세기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례가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당시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1세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산업화와 철도 건설이 가져올 사회적 유동성 증가와 잠재적인 반대 세력의 결집을 두려워했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는 철도 건설 계획을 승인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서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며 단호히 거부했다(Acemoglu et al., 2005, p. 433). 이것은 국가 경제가 경쟁국인 영국이나 프랑스에 뒤처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의도적으로 산업화를 차단한 것이었다. 따라서 권위주의 체제는 ‘정권 안보’라는 특수한 이익을 위해서 ‘혁신’이라는 잠재적인 성장 동력을 저해시키는 것을 감수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헌신 문제와 약탈적 제도의 고착화
권위주의 정부의 또 다른 문제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 그 자체에서 야기되어지는 불확실성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가와 개인이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여 현재의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스스로 노력하여 창출한 부가 권력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몰수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한 재산권 보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는 이러한 재산권을 보장해서 시장 참여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약속을 주는 데 어려움이 있다.
Acemoglu 등(2005)은 이를 ‘정치적 헌신 문제(Commitment Problem)’로 설명한다. 독재자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유재산을 철저히 보호하겠다”고 약속해도 이를 강제할 제3의 독립된 권력 기관(독립된 사법부나 의회)이 존재하지 않아 그 약속은 신뢰할 수 없다(Acemoglu et al., 2005, p. 429-430)라고 설명한다. 독재자는 언제든 자신의 정치적 필요나 재정적 위기에 따라 약속을 자의적으로 바꾸고 기업의 자산을 몰수하거나 과도한 세금을 부과할 수 있어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권위주의 하에서의 경제 주체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수탈 위험 때문에 회수 기간이 긴 대규모 설비 투자나 불확실성이 큰 혁신적인 연구 개발을 피하게 된다. 대신 권력자와 결탁하여서 독점권을 얻거나 이권을 챙기는 이익 추구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Arsel 등(2021)이 지적하는것처럼 현대의 권위주의적 개발주의는 종종 신자유주의적인 탈을 쓰면서 공공 자원을 사유화하여 소수 측근에게 이권을 몰아주는 약탈적인 도구로 행위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권위주의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의 주체가 아니라 약탈적 제도를 고착화하여 경제의 뿌리부터 악화시키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권위주의의 외부적 취약성: 위기 관리 실패와 성장 붕괴
앞서 살펴본 바 처럼 권위주의는 국가 내부적으로 혁신을 억제하고 제도를 왜곡한다. 이러한 혁신을 막는 내부 구조는 필연적으로 급변하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Rodrik(1999)의 연구는 권위주의의 강력한 통제력이 평상시에는 효율적으로 보여도 외부 위기 시에는 오히려 급격한 성장 붕괴를 초래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외부 충격과 사회적 갈등의 증폭
글로벌해진 경제체제 하에서 모든 국가는 교역 조건이 악화되거나 원자재 가격 변동 그리고 금융 위기 등 예측 불가능한 ‘외부 충격(External Shocks)’에 필연적으로 노출된다. Rodrik(1999)은 성장의 지속 여부를 만드는 것은 충격 그 자체의 크기보다는 그 충격에 대응하는 국가의 내부적 역량에 달려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분석 모형에 따르면 성장 감소의 폭은 외부 충격의 크기에 비례하고 사회 내 잠재적 갈등의 깊이에 비례하며 이를 조정할 갈등 관리 제도의 역량에 반비례한다(Rodrik, 1999, p. 2)라고 설명한다.
외부 충격으로 국가 전체의 소득이 줄어들면 “누가 이 손실을 감내할 것인가”를 두고 사회 내에 분배에 관한 갈등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서 수입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 기업은 가격을 올려 원자재 가격에 대한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하고 노동자는 실질 임금 하락을 막기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저항한다. 이때 권위주의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달리 다양한 이익 집단의 요구를 모을 의회와 공정성을 담보할 사법 시스템 그리고 외부 충격으로 인한 손해분을 분담할 사회적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위주의 체제의 제도적 공백은 외부의 경제적인 충격을 내부의 사회적인 갈등의 유발을 더 증폭시킨다.
조정 실패와 경제 붕괴의 메커니즘
합리적인 갈등 관리 방법이 없는 없는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두 가지 파괴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첫째, 지배층이 경제적 손실을 피지배층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려 하면서 이에 반발한 국민이 파업, 폭동, 반정부 투쟁 등으로 맞서 사회적 갈등이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둘째, 정권은 지지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 서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제 조정(긴축이나 구조조정 등)을 미루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포퓰리즘적 재정 지출을 늘리는 근시안적인 정책을 펼친다(Rodrik, 1999, pp. 2-3).
Rodrik은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의 터키와 브라질의 사례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이들 국가는 사회적 갈등을 제도적으로 수습하지 못하고 재정 긴축이나 환율 조정과 같은 필요한 거시경제적인 조치를 제때 취하지 못하였다(Rodrik, 1999, pp. 7-8). 그 결과로서 터키는 1970년대 후반 심각한 외환 위기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침체되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물가 연동제와 같은 미봉책에 의존하다가 초인플레이션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다. 다시 말해서 권위주의는 평상시에는 강력해 보여도 외부 충격 앞에서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마치 유리처럼 깨져버리는 취약한 체제임이 나타난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우위와 장기 성장
권위주의가 내부적으로는 혁신 억제와 외부적으로는 위기에 취약하다는 한계를 갖는다면 민주주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제도적으로 우위를 갖고있다. 이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보다는 경제 성장을 위한 효율적인 체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있는 공약과 장기 투자 유인
내부적으로 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제도적 제약(Constraints on the Executive)’을 통해 권위주의의 헌신 문제를 해결한다. Acemoglu 등(2005)은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을 근대 경제 성장의 시발점이 된 결정적인 사례로 설명한다. 명예혁명 이전의 영국 왕권은 자의적으로 채무를 불이행하거나 상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경제적 불확실성을 키웠다. 그러나 명예혁명 이후 의회가 왕권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면서 왕이 자의적으로 세금을 걷거나 재산을 침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 제도의 변화는 재산권 보호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공약을 만들어내었고 상인들과 기업가들이 안심하고 장기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면서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Acemoglu et al., 2005, pp. 393-394, 456-457). 이는 저개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 가능성과 독립된 사법부 그리고 권력 분립과 같은 장치는 독재자가 영구히 권력을 독점하며 자원을 약탈하는 것을 막는다. 이는 권위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했던 ‘예측 가능한 경제 환경’을 조성하여 혁신과 투자를 조성하는 차이점이 된다.
참여적 제도를 통한 위기 관리와 회복 탄력성
외부적으로 민주주의는 갈등 관리 기구로서 기능한다. Rodrik(1999)의 실증적인 분석에 따르면 민주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일수록 그리고 법치와 관료제의 질이 높은 국가일수록 1970년대의 외부 충격 이후 성장의 하락폭이 작고 회복 속도가 빨랐다(Rodrik, 1999, pp. 16-17, 26).
민주주의는 공개적인 토론과 선거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통해 경제 위기의 손해를 사회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배한다. 절차적인 정당성이 확보된 정책은 국민의 순응을 확보하기 쉬우며 이는 정책 집행 비용을 낮추고 불확실성을 제거한다. Rodrik은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제도는 외부 난기류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을 높이는 전략의 핵심 구성요소”라고 결론짓는다(Rodrik, 1999, p. 28). 결국 민주주의는 권위주의가 갖지 못한 ‘사회적 회복 탄력성’을 제공함으로써 위기 상황에서 경제가 붕괴하지 않고 지속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예상반론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개발국의 초기 자본 축적 단계에서는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이다”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비판자들은 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도로, 항만 등 인프라 구축과 자본 집약이 시급할 때에 민주주의의 복잡한 절차와 다원적인 갈등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List-Jensen(2008)이 분석한 한국이나 싱가포르, 대만과 같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사례를 들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원을 전략 산업에 집중시킬 수 있는 권위주의가 초기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필요악’이라고 주장한다.
재반박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권위주의의 ‘초기 효율성’이 가지는 착시 효과에 불과하며 장기적인 폐해를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나 대만의 성공을 권위주의 그 자체의 성과로 생각하는 오류를 만들고 있다.
첫째, Carden과 James(2007)의 연구는 권위주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하여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보낸 시간의 누적’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한 국가가 권위주의 통치 하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 성과와 소득 수준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하락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Carden & James, 2007). 만약에 권위주의가 초기 성장에 효율적이라면 독재가 지속될수록 통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경제 성과가 유지되거나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는 권위주의가 초기 단계에서 일시적인 자원 동원으로 성장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착취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혁신 유인이 사라지면서 결국 경제 활력이 떨어지게 됨을 나타낸다.
둘째, 동아시아의 성공 사례는 권위주의 때문이 아니라, 냉전 체제 하에서의 미국의 전폭적인 경제 원조, 개방적인 무역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능력 있는 관료제’라는 특수한 요인들이 결합된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많은 권위주의 국가들이(예: 자이르, 짐바브웨 등) 경제 파탄에 이른 것을 알아본다면 권위주의는 성공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셋째, Khan 등(2016)은 92개국의 데이터를 통해 권위주의가 인간개발지수(HDI)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규명하였다. 권위주의 정부는 정권 안보를 위해 공공 자원을 군사비나 억압 기구 확장에 우선적으로 배분하면서 장기적인 성장의 토대가 되는 교육이나 보건 서비스 투자는 소홀히 한다(Khan et al., 2016). 정리하자면 이것은 초기 단계에서 일부 권위주의 국가가 보여준 성장은 인적 자본과 미래의 잠재력을 희생시킨 대가로 얻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며 권위주의 정부는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이 될 수 없다.
결론
본글은 “저개발국의 경제 발전에 있어 권위주의 정부는 필요조건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권위주의 체제가 가진 모순을 규명하였다. 본론의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부적으로 권위주의는 ‘정치적 패배자 효과’로 인해 혁신을 억제하고, 약탈적 제도를 고착화하여 경제의 내생적 성장 동력을 훼손한다. 둘째, 이러한 내부적인 경직성은 외부적으로 ‘갈등 관리 기제의 부재’로 이어져 외부 충격 시 사회적 분열과 급격한 성장 붕괴를 초래한다. 셋째, 반면 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제약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공약을 제공하고 참여적 절차를 통해 위기 회복력을 높임으로써 권위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제도적 대안임이 나타났다.
본 논의는 한국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소수의 예외적 성공 사례에 가려져 있던 권위주의적 성장 모델의 한계를 이론적, 실증적으로 비판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기존의 개발 독재론이 강력한 리더십을 성장의 핵심 변수로 보았던 것과 달리 본글은 제도적 유인과 위기 대응 능력이 성장의 본질임을 밝혔다. 특히 민주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이상으로 보는게 아니라 불확실성을 줄이고 외부 충격을 흡수하며 장기 성장을 확신하는 효율적인 경제 제도로 재해석함으로써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 상충한다는 기존의 잘못된 이분법적 인식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본 글은 주로 거시적인 제도적 변수에 집중하여 각국의 미시적인 문화적 요인이나 역사적 경로 의존성, 그리고 지정학적 특수성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저개발국이 빈곤을 넘어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훌륭한 통치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 보다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좋은 제도의 구축이다. 권력자의 자의적 수탈을 방지하는 법치, 사회적 갈등을 포용하는 민주적 절차, 그리고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만이 혁신을 유도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경제 발전은 결국 통치자보다는 사회가 합의한 시스템의 건전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Acemoglu, D., Johnson, S., & Robinson, J. A. (2005). “Institutions as a Fundamental Cause of Long-Run Growth.” In P. Aghion & S. N. Durlauf (Eds.), Handbook of Economic Growth, Vol. 1A, pp. 385-472. Amsterdam: Elsevier.
Arsel, M., Adaman, F., & Saad-Filho, A. (2021). “Authoritarian developmentalism: The latest stage of neoliberalism?” Geoforum, 124, 261–266.
Carden, A., & James, H. S. (2007). “Time Under Authoritarian Rule and Economic Growth.” Contemporary Economic Policy, Working Paper.
Khan, K., Batool, S., & Shah, A. (2016). “Authoritarian regimes and economic development: an empirical reflection.” The Pakistan Development Review, 55(4), 657-673.
List-Jensen, A. S. (2008). Economic Development and Authoritarianism: A Case Study on the Korean Developmental State. Aalborg: Aalborg University.
Rodrik, D. (1999). “Where Did All the Growth Go? External Shocks, Social Conflict, and Growth Collapses.” Journal of Economic Growth, 4(4), 385-412.
Sen, A. (1999). Development as Freedom. New York: Alfred A. Knop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