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07-17 노준영

제목: 공공기관에서의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 전시 - 박물관을 중심으로

서론

박물관은 더 이상 고립된 공간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박물관은 연 5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수용하는 곳도 다섯 군데 이상 있을 만큼 많은 이들이 문화를 누리는 공간이 되었다. 박물관은 이제 어떠한 작품을 전시할 것인지도 깊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예술가의 도덕적 타락과 작품의 미적 가치 사이의 논쟁도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의 여성 혐오, 에곤 실레의 성폭행 전과, 폴 고갱의 문란한 생활 등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작가 중 도덕적 타락을 한 예술가들도 많이 있다. 이들의 작품을 누리는 것에 관하여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의 인식은 변화됐다. 과거에는 이들 예술가의 천재성을 인정받아 계속해서 예술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면, 최근에는 윤리적인 문제를 더 크게 보아 더 이상 가해를 정당화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먼저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관하여 학자들은 주목하였다. Archer and Matheson(2019)는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제시하며 반대한다. 이렇게 전시하는 행위는 예술가들의 비도덕적 행동을 묵인하거나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그들에게 명예가 부여되어 곧 부당한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로 전락할 수 있으며,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Archer and Matheson 2019, pp. 248-257). 이들의 관점으로는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을 박물관에 전시하는 행위는 옳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Matthes(2022)는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을 아예 배제하는 캔슬 컬쳐(Cancel Culture)의 한계를 지적하며 비판적으로 참여하며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작품을 전시하는 행위(Displaying)와 명예를 부여하는 행위(Honoring)는 구별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소비자의 도덕적 행위 주체성(Moral Agency)을 보존하며 비판적 맥락화(Contextualization)를 통해 맥락을 제공하며 작품에 관하여 비판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Matthes 2022, ch. 3). 이 글은 Archer and Matheson(2019)의 입장을 따르되, 박물관의 공공성과 책임을 중점적으로 연역적 논증을 전개하며, Matthes(2022)의 논리를 예상 반론에 활용하여 비판적 맥락화의 한계를 지적할 예정이다.

이 글의 핵심 목표는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을 공공기관, 특히 박물관에 전시하는 행위는 옳지 않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연역적 논증 방식을 활용하여 박물관이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첫 번째 전제와 박물관에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이 전시되는 행위는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는 행위라는 두 번째 전제를 통해 박물관은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1] 첫째로 박물관은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보인다. 박물관의 장소성을 근거로 박물관이 공공기관임을 증명한 뒤에, 공공기관이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논제를 통하여 박물관이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지 않아야 할 책임을 연역적으로 논증한다. [2] 다음으로 박물관에 의한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 전시 행위는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는 행위임을 보인다. 비도덕적 행위를 한 행위자와 그 작가의 작품 간의 도덕적 비난을 연결할 수 있음을 증명한 뒤에, 그러한 작품을 전시하는 행위가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는 행위임을 증명한다. [3] 그러므로 박물관이 그러한 작품을 전시하는 행위는 박물관의 책임을 지키지 못한 행위이므로 박물관이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연역적으로 논증한다. [4] 한편 두 번째 전제에 대한 예상 반론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옹호 행위에 해당하는지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Matthes(2022)가 주장한 비판적 맥락화 개념을 더하여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작품을 비판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왜 그 작품의 작가를 옹호하는 행위인지 주장한다. [5] 그러나 박물관은 적극적으로 비옹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중립성을 깨야 한다는 학자들의 논의를 덧붙여서 박물관의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될 책임을 더욱 강조하면 위와 같은 예상 반론은 해소된다.

본론

­­박물관은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다

박물관의 공공성

박물관은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지 않아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물관의 공공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먼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d’Harnoncourt et al.(1991)은 박물관의 구분으로부터 이 논의를 출발한다. Paul DiMaggio는 박물관이 후원자 중심, 마케팅 중심, 사회적 도구의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특히 사회적 박물관은 소외 계층에게 교육적,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인다 (d’Harnoncourt et al. 1991, pp. 45-47). 박물관은 수익 창출이라는 목표뿐만 아니라 대중 교육과 공익을 위하는 공공성을 지닌 기관의 목표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Marilyn Perry는 박물관의 대형 기획전(blockbuster)이 예술을 엔터테인먼트 상품화 시켜서 관람객을 단순한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국립미술관 개관 연설을 하며 예술 작품의 사적 소유에서 공공 사용(public use)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듯이, 박물관의 공공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d’Harnoncourt et al. 1991, pp. 51-53). Anne d’Harnoncourt는 박물관이 후원자를 위한 기관을 따로 만들어 전시를 진행하는 것은 박물관의 궁극적인 임무인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예술 작품을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을 제공하는 임무를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d’Harnoncourt et al. 1991, p. 37). 이렇듯 박물관은 단순한 상업 시설이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교육적 경험과 예술적 향유를 제공하는 사회적이고 교육적인 공공기관의 기능을 갖는 것이 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공공기관은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은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될 책임이 있다. 이는 공공기관이 사적 기관과 차별화되는 근본적인 이유이며, Balfour et al.(2019)가 주장한 행정악(Administrative Evil) 이론을 통해 이를 논증하고자 한다.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행동한다고 믿으며 악행에 가담할 수도 있다. 이들은 도덕적 전도(Moral Inversion)가 일어나면 악행이 좋은 것으로 재정의되어 그 사람들은 자신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악행을 계속 해나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행정악이라고 한다. 이때 공공기관과 종사자들은 행정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하여 이러한 행위들이 악행임을 인지하고 저항해야 할 적극적인 책임을 갖는다. 공공기관이 악행을 옹호하지 않기 위하여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태도를 길러야 하며, 공범(Accomplice)으로서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공범 거부의 윤리를 지녀야 한다 (Balfour et al. 2019, ch. 1).

비도덕적 행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악행이며, 기술적 합리성이 더해진다면 윤리적 판단보다 절차와 효율성이 앞세워져 행정악의 가면에 노출되기 쉬운 악행이다. 기술적 합리성(Technical Rationality)은 과학적, 분석적 사고와 기술적 진보를 강조하는 것으로 행정악을 가능하게 만드는 문화를 형성하는 요인이다 (Balfour et al. 2019, p. 24). 그러므로 공공기관은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될 적극적인 책임을 지녀야 한다. 앞서 증명하였듯이 박물관은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정체성을 가지므로, 박물관 역시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될 책임을 지니고 있다.

박물관에 의한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 전시 행위는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는 행위이다.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과 작가의 도덕적 비난 연결

비도덕적 행위자인 작가가 만들어 낸 작품과 그 작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Harold(2020)에 따르면 작품이 도덕적으로 오염(Mortally Tainted)되는 것은 작품 자체가 창작자의 부도덕한 기원에 의해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Harold 2020, p. 53). 우선 그는 예술가로서의 비도덕적 행위에 관한 기준을 명시하였다. 예술가 대부분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기에 기준이 없으면 모든 작품이 다 오염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실수나 경범죄가 아니라, 행동이 패턴을 이루고 있을 때, 타인에게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해를 입힐 때, 권력을 남용하여 폭력 행위를 저질렀을 때의 세 가지 비도덕적 행위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Harold 2020, p. 55). 그는 심리학에서 활용되는 마술적 전염(Magical Contagion) 개념과 철학적 근거(Expanded Ethicism)를 활용하여 이 논리를 전개한다. 마술적 전염은 히틀러와 같은 사악한 인물이 소유했던 물건을 가지기 꺼리듯이 악한 사람의 물건이 그 악에 의해 감염되었다는 개념이다. 이를 예술 작품에 적용하면 그 작품이 창작자의 도덕적 본질에 의해 오염되었다고 관람객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Harold 2020, pp. 57-58). 여기에 더해 Bartel은 Berys Gaut의 윤리주의(Ethicism) 개념을 확장한 확장된 윤리주의를 추가 근거로 제시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사회, 역사적 맥락과 작가의 가치관이 투영된 관점(point of view)을 가지기에, 작품의 관점과 작가가 의도한 태도를 관람객이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전기적 정보인 사생활을 참고할 수밖에 없게 된다. (Bartel 2019, pp. 5-6; Harold 2020, p.59).

또한 Carroll(1996)의 온건 도덕주의(Moderate Moralism)에 따르면, 작가의 도덕적 결함은 곧 작품의 미적(Aesthetic) 결함으로 귀결될 수 있다. 서사(Narrative) 예술에서 작가는 관람객이 자신의 도덕적 이해와 감정을 동원하여 작품의 생략된 부분을 능동적으로 채워 넣을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작가가 비도덕적인 행위자여서 도덕적인 관점을 요구할 경우, 관람객은 작품이 의도한 반응을 수용하는 데 실패한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Carroll은 시한폭탄(time-bombs)과 같다고 비유한다. 즉, 작품에 투영된 비도덕적인 시각은 관객의 몰입을 저해하고 미적 경험을 훼손시키므로, 이는 단순한 도덕적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미적 결함이 된다 (Carroll 1996, pp. 227-234). 결론적으로 여러 학자의 의견을 종합하면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은 작가와 작품 간의 연결성을 가지고 있어서 창작자의 비도덕성으로 인해 작품도 비도덕적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비도덕적 작품 전시 행위의 책임 여부

박물관에서의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 전시가 박물관의 책임인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게 된다. 앞서 말하였듯이 박물관은 공공기관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으므로, 박물관에서의 전시는 관람객에게 공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작가나 박물관이 따로 의도하지 않아도 관람객은 작품을 공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Archer and Matheson(2019)는 박물관에서 이러한 작품을 전시하는 행위가 세 가지 측면에서 작품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선 관람객이 작품을 바라볼 때 비도덕적인 결과로 나와야 할 분노의 감정 대신에,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감탄이 우선시될 수 있다 (Archer and Matheson 2019, p. 251). 감정의 우선순위가 뒤바뀐다면, 작품을 바라보는 왜곡이 생길 것이고, 비도덕적 행위를 묵인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그 행위를 옹호하는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사회적 맥락을 통한 행위의 정당화가 이뤄질 수 있다. 전시가 관람객에게 공적 의미(Public Meaning)를 전달하는 과정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Archer and Matheson 2019, pp. 251-252). 이렇게 공적 의미화 된다면, 재능이 뛰어나면 비도덕적 행위가 용인될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고, 더 확장되면 범죄를 재능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당화가 발생하게 된다. 세 번째로, 전시는 본보기가 된다. 이들은 만약에 박물관에서의 전시가 예술가의 예술적 성취만을 기리려고 노력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비도덕적 예술가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Archer and Matheson 2019, pp. 253-255). 이러한 이유로 박물관이라는 공공기관에서의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행위는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박물관의 책임을 행하지 못하는 결과이다.

박물관의 전시 행위와 옹호 책임에 관한 반론

박물관에서의 전시 행위 중 비판적 맥락화 또한 비도덕적 예술가를 옹호하는 행위인가라는 반론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반론은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명예를 부여하는 행위는 별개의 행위이며, 비도덕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비판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전시는 박물관이 비도덕적 예술가를 옹호하는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Matthes(2022)는 작품의 철거 대신 예술가의 행동에 대한 설명이나 토론을 함께 명시함으로써, 관람객이 그 복잡성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 맥락화를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고갱의 작품 옆에 생전 고갱이 저지른 성적 착취 사실을 명시하는 방식이다 (Matthes 2022, p. 93). 이러한 전시 행위는 박물관이 비도덕적 예술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공공성의 책임 행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박물관의 적극적 비옹호적 태도

위와 같은 비판적 맥락화의 사례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지 않는 행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는 행위이다. 우선 박물관에 전시되었다는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박물관에 걸리는 전시는 거대한 공공기관의 전시에 걸렸다는 의미가 부여되며, 아무리 캡션으로 비도덕성을 비판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비도덕한 예술가가 얻게 된다. 또한 Matthes는 엘리트 포획(Elite Capture)의 개념에 따르면 박물관은 자신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도덕적 비판을 수용하고자 한다 (Matthes 2022, p.99). 이는 박물관의 공공성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박물관이 실질적인 손실을 감수하기보다는 그저 작품과 작가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하는 부분에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사적인 박물관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비판적 맥락화의 사례는 박물관의 공공성을 해치게 되고, 더 나아가 비도덕적 행위자를 옹호하는 행위에 포함된다.

본 논리를 더 확장하면 박물관은 중립적인 관찰자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옹호하지 않아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특히 박물관은 역사적으로도 중립적이었던 적이 없다고 반박하는 학자들이 있다. Evans et al.(2020)에 따르면 초기 박물관이었던 호기심의 방(Wunderkammern)과 같은 곳들에는 서구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었다. 이렇듯 박물관에서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전시하는 행위에는 기관의 의도와 가치관이 개입되어 있다. 또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은 그저 중립을 가장하는 것이고 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박물관의 중립성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고 한다 (Evans et al. 2020, pp. 19-21). Rathjen(2020)은 더 나아가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박물관의 활동주의(Activism)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활동주의적 박물관은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문제들에 관하여 답을 제시하고 행동을 요구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Rathjen 2020, pp. 8-9).

앞서 언급하였던 박물관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중립성을 깨는 것은 가능하다. 박물관의 공공성 중 일반 대중들에게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중립성을 지니게 된다면 이러한 교육적 기능을 훼손하게 된다. 또한 소외 계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도구의 측면에서 박물관은 비도덕적 예술가가 아니라 피해자의 편에서 비도덕적 행위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를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그러한 행위를 한 작가에게 고통받은 피해자나 소수자 집단을 박물관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박물관은 기득권 예술가의 명성보다 피해자의 안전과 존엄을 우선시하여 전시를 적극적으로 거부할 의무가 있다.

박물관은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앞서 논의된 박물관의 공공성과 전시 행위의 사회적 함의라는 두 가지 전제를 종합할 때, 박물관은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적 결론에 연역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박물관은 단순한 예술 향유의 공간을 넘어 사회적 공익과 윤리를 수호해야 하는 공공기관으로서 비도덕적 행위를 옹호하거나 관조해서는 안 될 엄중한 책임을 진다. 여기에 더해, 작가와 작품 간의 도덕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작품을 공적 공간에 전시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작가에게 명예를 부여하고 그들의 비도덕적 과거를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즉, 박물관이 비도덕적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비도덕적 행위의 옹호를 범하는 행위이다. 아무리 박물관이 비판적 맥락을 덧붙여도 결국 작가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그들의 악행을 엘리트의 특권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박물관이 행정악의 공범이 되지 않고 자신의 공공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을 전시 공간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들이 필수적으로 행해야 할 일이다.

결론

본론에서는 박물관의 공공적 책임을 보이고, 작품을 전시하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속성을 보이면서, 박물관이 비도덕적 행위자의 작품을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구체적으로 Balfour et al.(2019)의 행정악 이론을 통해 박물관이 기술적 합리성 뒤에 숨어서 악을 방조해서는 안 될 적극적 의무를 지닌 공공기관임을 규명하였고, Archer and Matheson(2019)의 논의를 통해 전시 행위가 필연적으로 작가를 옹호하고 승인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박물관이 취할 수 있는 절충적 대안인 Matthes(2022)의 비판적 맥락화 조차 작가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엘리트 포획의 일환인 중립에 불과함을 논증하였다. 결과적으로 박물관이 공공기관으로서 행정악의 공범이 되지 않고 피해자의 존엄과 공공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작품의 물리적 전시 자체를 배제하고 중립성을 깨서 적극적인 비옹호를 보이는 방법만이 유일하고 타당한 윤리적 해법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에 자주 등장하는 예술의 표현의 자유와 윤리적 판단 사이의 딜레마를 다뤄온 기존 학계의 흐름과 같이 이어지면서도, 해결책의 층위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Harold(2020)나 Matthes(2022) 등 기존 연구자들은 작품과 작가의 도덕적 연결성을 인정하면서도 관람객이 스스로 해석하는 개입이나 캡션을 활용하는 전시 기법의 ‘수정’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딜레마를 완화하려고 하였다. 반면, 이 글은 이를 완벽하지 않은 대처 방법으로 규정하고, 공공행정학의 개념인 행정악 개념을 박물관에 접목하여 논의의 차원을 개인의 감상 영역에서 박물관이라는 기관의 윤리적 실행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박물관이 더 이상 가치 중립적으로 행동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를 위해 피해자의 편에 서는 활동가적 기관으로 거듭나야 함을 시사한다.

다만, 이 글의 전시 배제 주장이 비도덕적 행위자의 모든 흔적은 지우거나 물리적으로 삭제해야 하는 기록 말살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의 함축적 범위는 박물관이 수행하는 기능 중 대중을 향한 전시가 갖는 공공성을 통한 명예 부여의 권력을 박탈하는 데에 한정된다. 따라서 연구와 보존을 위한 저장의 영역과 대중에게 전시되는 영역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공공기관이 가해자의 명성을 유지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예술적 검열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이라는 공적 공간이 비도덕적 행위의 옹호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윤리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도적 선언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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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arnoncourt, A., DiMaggio, P. J., Perry, M., & Wood, J. N. (1991). The museum and the public. In The economics of art museums (pp. 35-6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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