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국가의 경제보복 행위가 갖는 정당성 논의: 보복의 특수성과 정당화 요건을 중심으로
서론
현대 국제 질서에서 경제보복은 국가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논쟁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경제보복이 단지 규범 준수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 수단인지, 상대국의 잘못에 상응하는 고통을 부과하는 응보적 처벌인지에 따라 그 정당화 구조와 허용 범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처럼 경제보복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응보와 규범집행, 위법성과 조건부 합법성, 비례성과 남용 가능성 사이의 딜레마를 동반한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학술적 논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는다. Alland, Chatham House, Palmeter & Alexandrov, Pauwelyn, Mitchell 등은 보복행위를 countermeasures의 관점에서 본래는 위법이지만 일정한 요건 충족 시 위법성이 면제되는 규범집행 수단, 혹은 조약상 사전에 승인된 구제로 이해한다. 이들 논의에서 경제보복은 원칙적으로 (i) 상대국의 위법행위를 중지시키고, (ii) 원상회복·배상을 유도하며, (iii) 장기적으로 규범 준수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계된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비무력적이고 비-응보적인 조치일 것, 그리고 비례성을 충족할 것이라는 요건을 강조하며 경제보복을 규범 준수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구조로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법학자와 실무가들은, 적절한 비례성 요건을 만족하는 범위에서 상당수 경제보복이 규범적으로 합법하며, 국제규범의 집행에 기여한다고 평가한다. 반대로 Hathaway, Cannizzaro, Nossal, Altiparmak 등은 특정 유형의 경제보복, 특히 자산 몰수나 고강도 제재가 갖는 징벌적 성격을 전면에 배치한다. 이들은 경제보복이 위법행위의 중지라는 최소 목표를 넘어, 상대국에게 고통을 부과하고 잘못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는 경향에 주목한다. Hathaway는 전쟁배상과 관련된 자산 동결·몰수 논쟁에서, 되돌릴 수 없는 몰수 조치가 더 이상 규범 준수 유도 수단이라기보다 응보적 박탈에 가깝다고 비판하며, 이와 같은 조치가 비례성 요건을 잠식한다고 주장한다. Nossal과 Altiparmak은 경제보복의 담론과 실제 관행 속에서 응분의 조치, 정의의 구현이라는 언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 과정에서 제3국과 민간에게 전가되는 비용은 종종 간과된다고 지적한다. 이 축의 논의는 경제보복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극단적 결론까지 나아가기보다는, 경제보복이 정당화 조건을 충족하기 매우 어려운 수단임을 강조하며 국가들이 그 남용 가능성을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 두 학술적 흐름은 결국 하나의 공통된 딜레마를 공유한다. 경제보복을 규범집행 수단으로 보는 입장은, countermeasures가 엄격한 비례성·필요성 요건 아래 설계되고 집행될 것이라는 규범적 가정을 전제한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경제보복은 종종 응보, 상징정치, 국내 여론·이익집단의 만족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지향한다. 그렇다면 응보적 욕구와 정치적 계산이 지배하는 수단이, 과연 비례성 원칙에 의해 안정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반대로 경제보복을 응보적 처벌로만 규정하면, 국제법상 countermeasures에 부여된 조건부 합법성의 근거가 붕괴될 뿐만 아니라, 규범 위반에 대한 현실적인 억제·집행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즉, 경제보복이 규범집행 수단이라면 현실의 응보적 동학을 설명할 수 없으며 경제보복이 응보적 수단이라면 조건부 합법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문제 사이에서 기존 논의는 설득력 있는 연역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부분적 설명에 머물러 있다.
본 논문이 다루는 핵심 논제는 다음과 같다. 국가의 보복행위, 특히 경제보복은 비례성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부당하며, 보복행위가 본래적으로 지니는 응보적 성격 때문에 이러한 비례성 위반이 구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필자가 옹호하는 입장은 경제보복은 언제나 부당하다는 전면적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국제법이 설정한 정당화 요건을 그대로 수용하되, 그러한 요건이 현실의 응보적 동학 속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보복행위가 규범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지에 대한 보다 정교한 기준을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경제보복이 조건부로 합법화될 수 있다는 도그마적 전제를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그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가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이며, 특히 응보적 목적이 전면에 등장하는 상황에서는 비례성 원칙이 쉽게 붕괴된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세 개의 상호 연역적인 전제에 기초한 논증 구조를 채택한다. 첫째 전제는 경제보복의 동기에 관한 분석이다. 여기서 필자는 경제제재 전반과 구별되는 보복행위의 특수성을, 상대국의 위법행위에 대한 앙갚음을 목적으로 한다는 응보적 성격에서 찾는다. 일반적인 제재(sanction)는 상대국의 위법행위 가능성, 피해의 잠재성, 혹은 광범위한 정책 목표에 의해 정당화되며, 그 목적 역시 위법행위 중지·배상 유도, 정책 변화 압박 등으로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다. 반면 보복(retaliation)은 이미 발생한 위법행위를 필요조건으로 하며, 그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피해를 부과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한다는 효과를 근본적인 정당화 근거로 삼는다. Nossal과 Altiparmak이 지적하듯, 실제 보복 담론은 응분의 조치, 잘못에 대한 대응이라는 언어를 통해 처벌의 의미를 강조하며, Hathaway와 Cannizzaro는 자산 몰수나 고강도 제재와 같이 위법행위 중지를 넘어선 박탈·고통 부과 자체가 목적인 사례들을 응보적 조치로 분석한다. 물론 Alland나 Chatham House 보고서, Palmeter·Alexandrov와 같이 보복을 규범 준수 유도 수단으로 이해하는 반대 논의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응보·처벌의 언어가 실제 관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첫 번째 전제는 바로 이 대립 구도 속에서, 경제보복이 일반 제재와 구별되는 응보적 목적의 우위를 갖고 있다는 점을 논쟁적으로 정식화한다. 둘째 전제는 보복행위의 합법화 구조, 특히 비례성 원칙의 역할을 규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보복행위가 원칙적으로 위법한 행위인지, 아니면 사전에 합의된 절차에 따라 허용되는 구제 조치인지라는 딜레마로 나타난다. Alland를 비롯한 전통적 국제책임법 논의는 countermeasures를 본래 위법하지만 비례성 요건을 충족할 때 예외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조치로 이해한다. Hathaway 역시 전쟁배상과 관련된 자산 동결·몰수 논쟁에서, 비례성과 가역성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보복은 더 이상 정통 countermeasure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WTO 맥락을 분석한 Palmeter·Alexandrov, Pauwelyn, Mitchell 등은 양허정지로서의 보복을 조약이 사전에 승인한 조치로 보며, 이를 예외적 면책 조치로 해석하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비례성 그 자체가 손해의 등가성 정도를 요구하는 제한 규범인지, 아니면 목적·필요성·적합성을 동시에 통제하는 종합 원리인지를 둘러싼 해석도 분분하다. 둘째 전제는 이 대립 속에서, 보복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되, 비례성 요건이 충족될 때에 한해 조건부로 합법성을 취득하는 행위라는 규범 구조를 옹호한다. 여기서 비례성은 단순한 손해의 등가성에 그치지 않고, 보복의 강도와 상대국 위법행위의 중대성, 그리고 보복의 목적과 실제 효과 사이의 관계를 함께 평가하는 다층적 기준으로 이해된다. 첫 번째 전제와 두 번째 전제는 연역 구조에서 개념적 선후 관계를 형성한다. 보복행위의 정당화 여부는 어떠한 행위가 실제로 선택·집행되는가에 따라 사후적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그 선택·집행 과정은 필연적으로 보복행위의 동기에 의해 구조화된다. 다시 말해, 보복을 위법행위 중지를 위한 규범집행 수단으로 이해하느냐,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고통을 부과하는 응보적 처벌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비례성 요건의 작동 방식과 그 충족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복행위가 어떤 동기를 중심으로 작동하는지(전제 1)를 먼저 분석하지 않은 채, 보복행위가 어떤 조건에서 합법성이 인정되는지(전제 2)를 평가하는 것은, 현실의 정치·규범적 동학을 공백 상태로 둔 채 형식적 법리를 적용하는 것에 그칠 위험이 크다. 본 논문에서 전제 1이 전제 2에 대해 선행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동기 구조 분석 없이는 비례성 원칙의 실제 의미와 한계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전제는 앞선 두 전제를 결합하여 응보적 목적을 가진 보복행위가 비례성 원칙을 만족시키기 어렵고, 그 결과 남용·부당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높다는 실천적 결론을 도출한다. Alland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보복에는 권리실현 기능, 즉 자국이 입은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강한 동기가 내재해 있으며, 이는 조치의 강도를 위법행위의 중대성보다 자국이 느끼는 피해나 정치적으로 기대되는 보복 수준에 맞추도록 유인한다. Pauwelyn과 Mitchell은 특히 강대국이 허용된 범위를 넘어 과도한 보복을 행사하거나, 손해의 등가성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으로 응보적 처벌을 가하는 경향을 우려한다. Cannizzaro는 비례성 기준을 손해의 등가성으로만 이해할 경우, 국가는 보복의 목적을 쉽게 punitive aim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비례성 원칙 자체를 공허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Altiparmak이 논의하는 고강도·장기 제재 사례들 역시, 실질적 정책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적·상징적 효과를 위해 제재가 유지되는 경우로, 보복의 목적과 효과 사이의 비례성이 무너진 전형적인 예다. 이 세 전제가 모두 참이라고 가정할 때, 경제보복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응보적 동기가 비례성 원칙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며, 그러한 경우는 현실에서 매우 제한적이라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서술 순서는 다음과 같다. [1]경제제재와 경제적 보복행위를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보복행위가 위법행위에 대한 앙갚음을 목적으로 하는 응보적 조치라는 점을 논증한다. [2]보복행위가 원칙적으로 위법하지만 비례성 요건을 충족할 때에 한해 조건부로 합법성이 인정된다는 규범 구조를 옹호하고, 이에 맞선 조약상 사전 승인된 이해와 비례성만으로는 합법성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비판에 대응한다. [3]Nzelibe의 견해에 기초하여 제기될 수 있는, 보복행위가 응보적 성격을 갖는다는 가정이 비례성원칙의 훼손으로 항상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예상반론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한다. [4]응보적 목적에 의해 발생하는 효과가 어떻게 보복행위의 비례성 판단을 왜곡하고, 그 결과로 과도한 보복과 부당성이 발생하는지를 논증한다.
본론
경제제재와 다른 보복행위의 동기: 보복 대상국에 대한 처벌을 목표로 하는 응보적 목적
국가는 일반적인 경제제재와 달리, 보복행위를 할 때 보복 대상국에 대한 처벌을 목표로 하는 응보적 목적에서 행동하는 경향이 크다. 이 전제가 논쟁적인 이유는, 국제법의 표준적 서술은 제재·보복을 규범 준수 유도 수단으로 파악하는 반면 제재 연구와 일부 국제정치 이론은 그것을 국가 간 처벌(punishment)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보복은 미래지향적 인센티브 제공 장치와 응보성을 갖는 처벌의 성격 모두로 분석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실제 관행에서 국가들이 보복행위를 수행할 때 응보적 동기를 강하게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본 전제에서는 세 가지 세부전제를 통해 이 딜레마를 해소하고, 보복행위가 일반 제재에 비해 구조적으로 응보적 목적을 강화하는 제도라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경제제재의 필요조건
상대국의 행위가 자국 또는 국제공동체에 실질적·잠재적 피해를 입혔거나 입힐 위험이 있는 상황을 필요조건으로 하지만, 그 목적은 배상·행태변경·억지·신호·국내 정치 등으로 다원적이며, 응보에 한정되지 않는다. 고전적 경험연구에서 경제제재의 목적은 (a) 정책 변경 강요, (b) 제3국·국제사회에 대한 규범·의지 신호, (c) 향후 유사 행위 억지, (d) 국내 여론을 향한 강경 대응 과시, (e) 도덕적 분노의 표출과 공공의 보복심리 충족 등으로 분류하며, 이들이 하나의 제재 속에 뒤섞여 작동한다고 본다. 이러한 분석은, 피해 유발 가능성이라는 조건이 제재의 정당화에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곧 형벌을 부과하려는 목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달리 말해, 일반 경제제재는 응보적 요소를 포함할 수 있으나, 그것이 제재 개념의 본질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 대비는 이후 보복행위를 단순히 강도가 센 제재가 아니라, 다른 목적 구조를 가진 별개의 유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논리적 발판이 된다.
보복행위의 필요조건
보복행위는 일반적 경제제재와 달리, (i) 자국에게 피해를 입힌 선행 국제위법행위의 존재, (ii) 그 위법행위에 대한 앙갚음·처벌을 주요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형식적으로 보복행위는 위법 중지와 배상 유도라는 유도적 목적을 전면에 내세우는 구조지만, Alland가 지적하듯 보복은 피해국만이 행사할 수 있는 특권적 수단이며, 피해국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는 사적 정의(private justice)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Nossal은 경제제재·보복을 국제적 형벌로 분석하면서, 그 핵심 기능을 위법국가에게 물질적·상징적 고통을 가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는 것에서 찾는다. 즉 보복은 위법행위에 따른 고통 부과를 통한 정의 실현이라는 국내 형벌의 기본 도식을 제도적으로 내장한다. 선행 위법행위의 존재, 피해국만의 결정 권한, 위법국에 대한 의도된 고통 부과가 결합되면서, 보복행위는 피해자–가해자·응보의 구조를 일반 제재보다 훨씬 강하게 각인시키는 제도가 된다.
응보적 성격의 정의: 처벌의 의도 내포
응보적 성격이란 위법행위의 중지라는 기능을 넘어서, 그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고통·박탈을 부과하려는 처벌 의도를 내포하며, 실제 보복 담론에서 이러한 의도가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Hathaway는 국제법상 제재·보복이 국가에게 제공하는 여러 보상(payoffs) 중 하나로 payback(앙갚음) 기능을 들며, 정책변화 가능성이 낮더라도 ‘가해자가 대가를 치르도록(make them pay)’ 해야 한다는 요구가 고강도 조치를 정당화하는 동인이 된다고 분석한다. Cannizzaro는 비례성 원칙을 논의하면서, 국가가 보복조치를 punitive aims(처벌적 목적)으로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비례성 판단이 객관적 통제 규범이 아니라 얼마나 상대를 고통스럽게 했는가라는 주관적 기준으로 전락할 위험을 경고한다. Alland 역시 보복을 공동체 전체의 규범 질서를 회복하는 공적 재판이 아니라, 피해국이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는 주관적 권리 행사로 보며, 피해국이 입은 피해에 상응하는 대가를 되돌려주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Altiparmak 등은 테러·안보를 이유로 부과된 일부 제재·보안조치가 실질적 정책변화 가능성이 낮고 인권 침해 위험이 크다는 비판에도, 응분의 조치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과 도덕적 분노에 기대어 장기간 유지된 사례들을 분석한다. 이는 국가가 보복행위를 설계할 때 기대효과·효용보다 처벌해야 한다는 감정적·응보적 동기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세 세부전제를 종합하면, 일반 경제제재가 다목적·유도적 수단이라면, 보복행위는 선행 위법행위–피해국의 특권적 지위–고통 부과를 통한 정의 실현이라는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응보적 목적을 강화하는 제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따라서 국가는 보복행위를 할 때 일반적인 경제제재보다 상대국을 처벌하려는 응보적 목적에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전제 1은 정당화된다.
보복행위의 조건부 합법성 취득요건: 비례성 요건 충족
보복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지만, 비례성 요건을 만족시키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합법성이 인정된다는 주장이다. 이 전제가 논쟁적인 이유는, 일부 학자들이 WTO형 보복을 포함한 현대적 보복조치를 애초에 조약상 허용된 규제수단으로 이해하며, 따라서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를 논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Pauwelyn). 반대로 House와 Palmeter는 WTO 분쟁해결제도 하에서의 양허정지나 경제보복조치가 본래라면 의무위반에 해당하지만,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때에만 정당화되는 ‘countermeasures’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후자의 입장, 즉 보복행위를 원칙적으로 위법한 행위로 본 뒤, 비례성 요건을 통해 조건부 합법성을 부여하는 틀이 보복행위의 통제를 위해 더 적합하다고 본다.
보복행위의 원칙적 위법성
보복행위가 상대국의 선행 위법행위에 대한 대응조치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국제의무의 위반에 해당한다. ARSIWA 체계에서 countermeasures는 다른 국가에 대한 국제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이되,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으로 개념화된다. House와 Palmeter 역시 WTO 분쟁에서의 양허정지를, 무역자유화 의무의 일시적 불이행이라는 점에서 본래 위법하지만 일정한 절차와 한계 내에서 허용되는 예외적 조치로 해석한다. 만약 Pauwelyn의 견해처럼, 보복조치가 조약이 미리 승인한 ‘합법적 규제’라면, 그 조치는 더 이상 국제위법행위를 전제로 하지 않는 통상적 집행행위가 되고, 위법성 조각의 논리는 불필요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순간, 보복조치는 국제법상 일반적 규범 구조 밖에서 별도의 자율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고, 이후 비례성 심사를 통해 위법성을 통제할 여지가 좁아진다. 반대로 필자의 입장처럼 보복행위를 원칙적으로 위법한 행위로 규정하면, 그 자체가 항상 정당화의 부담을 지는 행위가 되며, 이는 비례성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사후심사를 가능하게 한다.
보복행위의 위법성에 대한 예외적 조각 요건: 비례성
보복행위의 위법성은 비례성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조각된다는 주장이다. Alland는 countermeasures를 사적 정의(private justice)의 위험을 내포한 제도적 예외로 보면서, 이러한 예외가 허용될 수 있는 논거는 오로지 비례성의 엄격한 통제에 있다고 본다. Hathaway 역시 경제제재와 보복이 처벌적 성격을 띨 위험을 지적하며, 이 때문에라도 보복조치와 선행 위법행위 사이의 비례성에 관한 엄격한 심사가 없으면, 보복은 쉽게 권력정치의 도구로 전락한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보복조치는 원칙적 위법 – 예외적 합법성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때 예외를 여는 핵심 열쇠가 바로 비례성이다. 비례성을 충족하면 위법성이 조각되고, 충족하지 못하면 보복행위는 다시 원칙적 위법의 지위로 돌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보복의 합법성은 본질적으로 조건부(conditional)이며, 비례성은 그 조건을 판단하는 심사 기준이다.
비례성의 내용적 의미
비례성 요건이란 단순히 조치의 강도를 비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위의 목적·수단·효과를 포괄적으로 통제하는 원리이다. Cannizzaro는 비례성을 선행 위법행위의 성격과 중대성, 피해의 범위에 비례하는 수준의 조치일 것이라는 손해의 등가성(equivalence of injury) 기준으로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조치가 목표로 하는 합법적 목적(위법행위의 중지, 협상 복원, 배상의 촉구 등)과 수단 사이에 합리적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Mitchell에 의하면 비례성은 논의한 비례성 역시, (1) 조치의 강도가 위법행위로 인한 경제적 손해를 초과하지 않을 것, (2) 목표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과도한 부수 피해를 야기하지 않을 것, (3) 보다 완화된 대안적 수단이 있는데도 굳이 더 강한 조치를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필요성·적합성·최소침해성의 요소를 포함한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보복행위가 비례성을 충족한다는 것은 보복의 강도에 대한 판단을 넘어 보복의 목적 자체가 응보를 넘어 위법행위 시정을 향하고 있는지, 선택된 수단이 그 목적에 비추어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지까지 함께 검증된다는 의미다.
보복행위의 응보적 목적과 비례성 원칙의 잠식
보복행위가 응보적 목적을 갖는다면 실행적으로는 비례성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남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제 1·2에서 얻은 결론에 대한 실천적 귀결이다. 다시 말해, 응보적 동기가 강한 맥락에서는 법이 요구하는 비례성 판단보다 상대에게 높은 강도의 고통을 가했는지에 기초하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되며, 그 결과 보복이 위법해져 부당해질 위험이 체계적으로 높아짐을 논증하고자 한다.
보복행위의 권리실현 기능 작용
제 관행에서 보복의 권리실현 기능은 국가로 하여금 동등한 피해 회복을 넘어 사적인 정의(private justice)를 추구하게 만든다. Alland는 국가책임법상 대항조치(countermeasures)를, 중앙집중적 집행이 부재한 국제질서 속에서 피해국이 스스로 권리를 집행하는 일종의 사적 정의 메커니즘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보복 가해국은 단지 위법행위를 중지시키거나 원상회복을 촉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국이 입은 손해에 상응하는 응분의 고통을 상대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심리·정치적 압력을 받는다. Alland가 말하는 사적 정의는 제3의 중립적 재판자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가 직접 수위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과잉 대응의 유인을 내포한다. 손해의 객관적 등가를 산출하기 어렵고, 피해 인식 자체가 지나치게 주관화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권리실현이라는 명목 아래 보복의 강도와 범위가 상대국의 원래 위법행위를 초과하는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응보적 성격의 효과: 비례성 원칙의 내용 무력화
응보적 목적은 비례성 원칙의 내용을 무력화시키는데, 이는 보복 가해국이 비례성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주관화하거나 규범적 원칙 대신 다른 내용을 우선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Cannizzaro는 비례성을 단순한 양적 등가성이 아니라, 수단과 목적, 필요성, 적합성을 함께 통제하는 종합 원리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면서도, 실제 국가 관행에서는 처벌적 목표(punitive aim)가 허용되는 순간 비례성 심사가 쉽게 무력화된다고 지적한다. 보복 가해국이 상대의 중대한 불법에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면, 거의 모든 고강도 경제제재를 ‘정치적으로 필요한 응분의 조치’로 재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Pauwelyn과 다른 연구자들이 제기해온 over-retaliation 우려 역시, 이론상 균형 회복을 위한 제한적 보복이 실제로는 교역 상대국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응징 수단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강대국일수록 상대국에 비해 훨씬 큰 제재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응보적 동기가 결합되면 실질적 균형 회복보다 힘을 과시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비례성 판단을 대체하기 쉽다. Hathaway가 지적하듯, 상대국 자산의 광범위한 동결·몰수 조치가 원상회복이나 향후 준수 유도와 느슨하게만 연결될 경우, 이는 더 이상 규범 집행이 아니라 사실상 처벌적 행위로 평가된다.
응보적 성격의 결과: 보복 가해국의 보복행위 오용 가능성
응보적 성격은 보복 가해국이 비례성보다 정치적 효과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Nossal은 경제제재가 실제 정책 변화를 유도하기보다는, 국내 여론과 국제사회에 상대국을 응징했다는 상징적 효과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향을 분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복의 수위는 규범 위반의 정도가 아니라 어떠한 강도와 기간으로 상대국에게 피해를 입혔는가로 평가된다. Altiparmak이 예로 드는 장기·고강도 보복의 경우, 가해국 스스로도 정책 변화 가능성이 낮음을 인식하면서도, 보복을 중단할 경우 발생하는 정치적 비용 때문에 비례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보복행위를를 지속한다. 이때 비례성 원칙이 요구하는 두 축―(1) 위법행위의 내용·강도에 상응하는 수단 선택, (2) 보복의 목적과 실제 효과 간의 합리적 연결―은 모두 무시된다. 보복이 더 이상 위법행위 중지나 협상 복귀와 같은 합법적 목적과 연결되지 못하는 순간, 보복은 조치는 체계적으로 허용된 범위를 넘어선 순수한 처벌행위가 되어 부당한 조치로 전락한다.
이 지점에서 Nzelibe(2008)의 견해에 의하면, 설령 보복에 응보적 성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비례성 원칙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오히려 정치적·상징적 효과를 중시하는 응보적 동기가, 장기적으로 상대국의 규범 준수 유인과 결합되어 규범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필자의 견해를 효과적으로 지적하지 못한다. 이 견해는 경제보복이 본질적으로 ‘자기집행적 규범 집행 수단’으로서 응보적 성격이 준수 유인으로 전환된다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1) 보복 가해국이 실제 의사결정에서 먼저 고려하는 것은 정치적 효과, 즉 응징의 상징성이고 (2) 그 정치적 효과를 법적 비례성 요건이 요구하는 목적·효과의 합리적 연결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논증한다. Nzelibe식 반론은 응징의 정치적 효과가 규범 준수라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곧바로 응징을 추구하는 것이 곧 비례성 요건을 만족시킨다는 주장으로 비약시키고 있으며, 그 사이에 필요한 규범적 논증을 결여하기에 효과적인 반론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응보적 목적이 지배하는 한, 국가는 비례성보다는 상대에게 얼마만큼 응분의 고통을 가했는가라는 정치적 효과를 우선하게 되고, 비례성 원칙은 이 효과에 잠식된다. 이때 비례성을 만족시키지 못한 보복행위는 국제법상 위법해지며 따라서 부당하다.
결론
본 논문은 국가의 보복행위는 비례성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부당하다는 논제를, 세 개의 전제를 연역적으로 논증하는 방식으로 옹호하였다. 첫째, 보복행위는 일반적인 경제제재와 달리 선행 위법행위의 존재와 그에 대한 앙갚음을 필요조건으로 하며, 그 동기 구조에서 응보적·감정적 목적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논증했다. 둘째, 보복행위는 국제법상 원칙적으로 위법한 조치이며, 다만 비례성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점을 검토하였다. 셋째, 이러한 응보적 목적을 가진 보복행위는 실제 관행에서 비례성 판단보다 권리실현과 정치적 효과를 우선하게 만들고, 그 결과로 과도한 보복과 남용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음을 사례와 문헌을 통해 논증하였다. 이로써, 응보적 성격을 띤 경제보복은 구조적으로 비례성 원칙을 만족시키기 어렵고, 그만큼 부당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결론이 갖는 함축은, 경제보복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단순히 비례성 기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보복은 그 자체가 punishment에 해당하는 특수한 성격을 갖기 때문에, 가해국이 스스로 설정하는 목적과 국내정치적 이해관계가 비례성 판단의 준거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경제보복은 단순한 규범 준수 유도 수단이 아니라, 응분의 대가를 부과하려는 처벌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다른 경제제재와 구별되며, 바로 이 특수성이 보복 가해국의 선택 구조를 제약하여 정당성 획득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본 논문의 핵심 함의이다.
기존 연구와의 관계에서 보면, 많은 논의는 보복의 동기를 규범 준수·협상 결과 이행의 유도라는 점에 두면서도, 실제 관행에서 그 조치들이 비례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거나, 오히려 현실 관행에 맞추어 비례성 기준을 조정할 것을 제안해 왔다. 반면 본 논문은, 보복을 일반적인 경제제재(sanction)의 한 변형으로 다루지 않고, ‘처벌’ 개념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응보적 동기와 사적 정의로서의 보복을 전제로 할 때, 비례성은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동기에 의해 구조적으로 밀려나기 쉬운 기준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로써 기존 연구가 충분히 조명하지 않았던, 보복의 응보적 성격과 비례성 원칙의 긴장이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된다.
이 논증이 갖는 학문적 의의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국제책임법과 제재 연구에 형벌이론의 통찰을 도입함으로써, 보복을 단순한 규범 집행 메커니즘이 아니라 응보적 실천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시한다. 둘째, 규범적으로는 비례성 요건을 충족한 보복은 합법이라는 선언적 명제를 반복하는 대신, 실제로 그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 난점이 단순한 집행상의 우연이 아니라 보복 개념 자체에 내재해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앞으로 경제보복을 헹하려는 국가의 보복 사용에 대한 규범적 경계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의 결론이 적용되는 범위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여기서의 논의는 응보적 목적에서 수행되는 경제보복에 한정되며, 모든 형태의 경제제재 전반에 대한 일반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둘째, 이 논문은 경제보복이 비례성 원칙을 위반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주장할 뿐, 현행 국제규범이 정교하게 설계되었는지, 혹은 추가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논증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문의 논의를 보다 넓은 범주의 경제제재나 국제규범 해석 일반에 그대로 확장하는 것은 비약이므로, 국가의 경제보복에 대한 정당성 논증으로 범위를 좁혀 둘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Altiparmak, Suleyman Orhun, and Cameron G. Thies. “Sanctioning as a Goal Unto Itself: Retribution and Emotions Behind the Iranian Sanctions.” Cambridge Review of International Affairs (forthcoming, 2025). https://www.tandfonline.com/journals/ccam20\.
Alland, Denis. “The Definition of Countermeasures.” In The Law of International Responsibility, edited by James Crawford, Alain Pellet, and Simon Olles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Cannizzaro, Enzo. “The Role of Proportionality in the Law of International Countermeasures.”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2, no. 5 (2001): 889–916.
Dias, Talita. Countermeasures in International Law and Their Role in Cyberspace. Research Paper, International Law Programme. London: Chatham House, 2024. https://www.chathamhouse.org\.
Hathaway, Oona A., Maggie Mills, and Thomas M. Poston. “War Reparations: The Case for Countermeasures.” Stanford Law Review 76, no. 5 (2024): 971–1050. https://review.law.stanford.edu\.
Mitchell, Andrew D. “Proportionality and Remedies in WTO Disputes.”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7, no. 1 (2006).
Nossal, Kim Richard. “International Sanctions as International Punishment.” International Organization 43, no. 2 (1989): 301–22. https://doi.org/10.1017/S0020818300032926\.
Nzelibe, Jide. “The Case Against Reforming the WTO Enforcement Mechanism.” University of Illinois Law Review 2008, no. 2: 319–88.
Nzelibe, Jide. “The Credibility Imperative: The Political Dynamics of Retaliation in the WTO’s Dispute Resolution Mechanism.” Theoretical Inquiries in Law 6, no. 1 (2005): 215–54.
Palmeter, David, and Stanimir A. Alexandrov. “Inducing Compliance in WTO Dispute Settlement.” 2002.
Pauwelyn, Joost. “Enforcement and Countermeasures in the WTO: Rules Are Rules – Toward a More Collective Approach.”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94, no. 2 (2000): 33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