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07-10 이원재
제목: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에 대한 공식적 찬사 행위, 그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서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는 1972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감독을 맡아 제작한 드라마, 로맨스 영화로, 제4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제3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작품상, 제19회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흥행에 성공한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흥행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2013년 파리의 한 인터뷰에서 버터를 이용한 성폭행 장면이 여배우의 동의 없이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와 상의해 촬영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그는 해당 여배우가 배우가 아닌 여성으로서 반응하고, 수치심을 느끼길 바랐다고 덧붙이기까지 하였다. 그 여배우는 영화의 강간 장면 촬영으로 인해 큰 수치심을 느끼고, 약물 중독, 정신질환 등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러나 베르톨루치 감독은 해당 작품으로 각종 수상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감독상을 수상하였다(손미혜, 2016).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저지른 예술가를 시상식이라는 권위 집단에서 공식적으로 찬사한 것이다.
누군가는 공식적 찬사 행위란 창작 과정의 폭력과는 무관하게 예술가의 예술적/미적 성취를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기에 해당 행위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Anderson & Dean(1998)은 도덕과 미학은 기본적으로 구분되며, 도덕적 결함과 미적 성취가 공존할 수 있음을 귀납적으로 논증하며, Willard(2021)은 대부분의 경우 비도덕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계속 즐기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공식적으로 찬사하는 행위는 폭력을 묵인하는 공적 의미를 함축하기에 해당 행위는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Archer & Matheson(2019)는 예술가의 재능을 존경의 대상으로 기리는 찬사는 단순한 미적 찬양을 넘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회적 메시지를 생산한다고 본다. 본고는 Archer와 Matheson의 입장을 옹호하며,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저지른 예술가를 찬사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위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예술성에 대한 찬사 행위가 도덕적 평가로 이어지는지, 찬사 행위가 묵인이라는 공적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지, 권위 집단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서술해야 한다. 이에 본격적으로 글을 전개하기 전, 본고에서 사용할 개념을 정의하고자 한다. ‘찬사(honoring)’란 인물 혹은 집단을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거나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행위로, 해당 인물 혹은 집단을 모방하거나 시상하는 행위 등이 해당된다. ‘묵인(condone)’은 도덕적으로 옳다고 보진 않지만 용인하거나 수용하는 의사 표시이며, ‘공적 의미’는 행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타인이 정당하게 해석할 수 있는 의미를 말한다. ‘권위 집단’은 오스카와 같이 공적 권위를 가진 제도를 지칭하며, ‘정당화(justify)’는 특정 행동을 옳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주장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행동에 대한 도덕적/규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본고의 핵심 목표는 위의 사례와 같이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창작자에게 권위 집단의 찬사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을 논증하는 데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정당하지 않음을 말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논점을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 [1] 먼저, 권위 집단이 예술가를 찬사하는 행위는 해당 예술가의 행위나 태도에 대해 묵인하는 공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을 예술성에 대한 평가가 인격, 도덕성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찬사 행위가 ‘묵인’의 사회적 정당화 신호를 만들어낸다는 Archer & Matheson(2019)의 주장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2] 다음으로, 권위 집단이 폭력이나 인권침해 행위를 묵인하는 등의 승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박물관 등의 예술 기관과 같은 권위 집단이 지니는 도덕적 의무와 역할에 근거해 논의한다. [3] 한편, 예술가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인격에 대한 평가는 분리될 수 있기에, 찬사 행위가 자동적으로 인격 평가로 이어지지 않고, 결국 권위 집단이 예술가를 찬사하는 행위가 ‘묵인’이라는 공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4] 그러나,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도덕성에 대한 평가의 분리 가능성은 권위 집단의 찬사 행위가 갖는 공적 의미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통해, 이러한 반론이 찬사 행위가 정당화를 뒷받침하지 못함을 논증한다. [5] 마지막으로, 위의 논점들을 종합하여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공식적으로 찬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음을 밝히고, 사례와 함께 찬사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없음을 밝히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서술한다.
본론
‘묵인’을 내포하는 권위 집단의 예술가 찬사 행위
예술성에 대한 찬사 : 인격에 대한 찬사
어떤 한 사람을 대상으로, 그 사람의 한 특성에 있어서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다른 특성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도 이어지게 된다. 후광 효과(Halo effect)는 이러한 현상을 정확히 설명한다. 후광 효과는 어떤 대상의 한 가지 긍정적인(부정적인) 특성이 다른 연관 없는 특성까지 모두 긍정적(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즉 한 대상에 대한 전반적 인상이나 일부 속성이 다른 여러 평가 항목에까지 퍼져 각 범주 간 상관성이 높아지는 심리 현상이다(Cooper, 1981, p.219). 후광 효과에 따르면, 한 예술가의 예술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그 예술가의 도덕성, 인격, 성품 등 다양한 특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결국 한 예술가의 예술성에 대해 찬사하는 행위는, 그의 예술성에 대한 존경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존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한 인물을 어떤 특성 또는 행동으로 인해 찬사할 때, 우리는 스스로 그들을 다른 특성 혹은 행동에 대해 존경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Archer & Matheson, 2019, p.249).
예술가의 폭력 행위 ‘묵인’
후광 효과와 Archer, Matheson(2019)의 논지를 바탕으로, 예술가에 대한 찬사는 그들의 다른 특성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면서, 그들의 폭력 행위에 대해 묵인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찬사가 ‘묵인’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두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서적 우선순위 부여(emotional prioritization)와 모범 동일시(exemplar identification)를 통해 찬사는 예술가의 폭력 행위를 묵인 하는 공적 의미를 가진다(Archer & Matheson, 2019, p.250). 정서적 우선순위 부여를 통해서, 어떤 예술가가 부도덕한 행동을 했을 때, ‘분노’와 ‘존경’ 중 무엇을 우선할지 선택하게 되고, 찬사 행위는 이 중 ‘존경’이 ‘분노’보다 우선한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한다. 또한 찬사 행위는 그 대상을 모범적인 대상, 즉 따라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다른 사람들이 대상을 모방하도록 격려할 가능성을 만들며, 그 대상을 존경 받을 만한 대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찬사 행위는 예술가의 폭력이 사회적으로 승인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폭력보다는 예술적 성취가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해석을 용이하게 만들고, 폭력 행위를 예술적 성취라는 더 큰 가치로 가리며 해당 예술가를 모범적 대상으로 삼는 구조를 형성한다. 결국, 정서적 우선순위 부여와 모범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권위 집단의 찬사 행위는 사회적으로 “이 행위는 묵인될 수 있다”는 공적 의미를 가지고, 단순 미적 평가를 넘어 묵인될 수 있다는 사회적 정당화 신호를 낳는다(Archer & Matheson, 2019, p.253).
권위 집단의 역할과 책임
권위 집단의 사회 담론 형성 역할
권위 집단의 행위는 특정 방식과 힘으로 사회적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예시로 박물관의 경우, 박물관은 제시된 작품을 보는 방식과 이해 방식을 어떻게 조직하는지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Eaton and Gaskell, 2012, p. 242). 박물관이 특정한 관점을 확인, 승인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 다른 부분을 확산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Archer와 Matheson(2019)이 지적했듯이, 명예를 부여함으로써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예술가를 하나의 모범으로 규정하는 것은 박물관의 의도가 예술가가 창작한 작품, 즉 예술성을 존경하는 데에만 있다 할지라도 해당 예술가를 전면적으로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제시할 위험을 낳는다. 위처럼 특정한 관점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박물관의 사례에만 한정되지 않고, 권위 집단 전체에 적용된다. 예시로 오스카와 같은 영화 시상식의 경우, 예술 장에서 권위를 가지고, 시상 행위 등을 통해 박물관의 전시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기에 박물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권위 집단이 특정 예술가를 찬사하는 행위는 단순 미적 판단을 넘어, 사회가 해당 예술가를 어떤 위치에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지 규범적으로 형성한다. 그 결과 권위 집단의 찬사는 사회 담론을 실질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수힝한다. 결국, 권위 집단은 사회 적대적 행동을 묵인하지 않고 사회 담론을 형성해야 할 역할이 있다(Matthes, 2022, p.560).
권위 집단의 책임
사적인 행위와 달리 권위 집단은 공적(public)인 공간에서 행위하기에, 권위 집단은 공공 담론 속에서 예술과 도덕의 경계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태도를 형성하는 책임 있는 행위자로 기능한다(Matthes, 2022, p.565). 만일 권위 집단이 폭력 행위를 행사한 예술가를 칭찬하기 위해 특별히 지목한다면, 집단의 찬사는 해당 예술가의 신뢰도를 높이게 된다(Mattes, 2023, p.771). 권위 집단(e.g. 영화 산업에서의 아카데미)은 찬사 행위에 대한 결정이 정당화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고려할 특별한 도덕적 이유를 가지며, 권위 집단이 비도덕적 행위(폭력 등)를 저지른 예술가를 찬사하는 것은 “정당화의 문화”를 강화한다(Archer & Matheson, 2019, p.253). 결국 권위 집단은 사적 행위자와 달리, 특정 예술가를 찬사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해석과 규범을 만들어내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인물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등 찬사하는 것은 권위 집단이 스스로에게 부여된 사회적 규범 형성의 권한을 경시한 것으로, 책임을 저버리는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권위 집단은 찬사를 통한 폭력이나 인권 침해 행위를 묵인하는 등의 승인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도덕성에 대한 평가 분리 가능성 제기
한편, 예술가의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분리될 수 있기에 권위 집단의 찬사 행위가 곧바로 폭력의 묵인이라는 사회적 신호를 낳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후광 효과를 통해,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심리학적으로 다른 특성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였지만, 이는 한 개인이 의도성을 가지고 한 예술가의 예술성과 폭력을 저지른 행위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후광 효과와 반대로 작용하는 이누엔도 효과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누엔도 효과(Innuendo effct)는 긍정적인 메시지나 특징이 전달될 때, 그 이면에 숨겨진 부정적인 의미나 인상을 추론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한 사람의 예술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여도 그 사람의 폭력 행위까지 용인하는 인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항상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Anderson과 Dean(1998)은 도덕적 결함과 미적 성취는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예술가의 예술적/미학적 성취 높이 평가함과 동시에 폭력을 저지른 행위는 비도덕적이라고 동시에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권위 집단의 찬사 행위는 찬사 대상 예술가에 대한 인격 평가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으며, 폭력을 묵인한다는 공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찬사 행위 주체는 개인이 아닌 ‘권위 집단’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한 개인이 인지적으로 예술성과 도덕성을 분리하여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할지라도 이것이 곧 권위 집단의 찬사 행위가 도덕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개인의 평가는 심리적, 사적 행위이고, 권위 집단의 평가는 사회적, 제도적 차원에서의 행위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권위 집단의 행위는 ‘사회적 규범’을 형성하기에 개인보다 도덕적 책임이 훨씬 크다. Mattehs(2022)는 예술기관이 사회적 규범과 태도를 형성하는 행위자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Archer & Matheson(2019)은 비도덕적 행동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어도, 찬사는 사회적 메시지 효과로 규정되는 행위이기에 그 찬사는 ‘묵인’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개인이 ‘예술가의 예술성은 높이 칭찬할만 하지만, 그 사람의 폭력성은 용인할 수 없다’와 같은 방식으로 찬사 행위를 하는 주체가 예술성과 도덕성을 의도적으로 구분함에도 불구하고, 권위 집단이 누군가를 찬사하는 순간 그 행위의 공적 의미는 통제할 수 없다. 결국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찬사하는 것은 개인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폭력 행위를 묵인한다는 사회적 신호를 만들어 전달한다. 따라서 위에서 말하는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도덕성에 대한 평가의 분리 가능성은 권위 집단의 찬사 행위가 갖는 공적 의미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그들은 단순한 개인 평가자가 아닌, 규범을 형성하는 주체이며 정당화 문화를 강화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공식적으로 찬사하는 것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결론
본론에서는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공식적으로 찬사 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논증하였다. 이를 위해 권위 집단이 특정 예술가를 찬사할 때 그 행위가 예술적 성취에 대한 평가를 넘어 인격적, 도덕적 존경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후광 효과와 Archer & Matheson(2019)의 논증을 바탕으로 밝혔다. 이러한 확장은 결국 예술가의 폭력 행위를 정서적 우선순위 부여와 모범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묵인하는 공적 의미 생산으로 이어지고, 권위 집단의 찬사는 이러한 의미를 통해 사회적 정당화 신호로 기능함을 보였다. 다음으로, 박물관과 같은 권위 집단이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태도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폭력 행위를 행사한 예술가를 지목해 찬사하는 것은 정당화의 문화를 강화할 위험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권위 집단은 사적 행위자와 달리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의무를 가지기에 도덕적 결함을 가진 예술가를 찬사 등의 행위로 모범적 사례로 제시하지 않아야 한다. 한편,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분리될 수 있기에 예술가의 미적 성취 평가와 폭력 행위의 비도덕성 비난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 가능성은 사회적 규범을 생산하는 권위 집단 차원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 권위 집단은 특정 도덕적 책임을 지니며, 찬사 행위는 개인적 의도와 무관하게 공적 의미를 형성하기에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공식적으로 찬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다만 본고는 예술가의 도덕성과 작품의 연결성 논의, 예술작품과 무관하게 예술가가 사생활 측면에서 폭력을 저지른 것, 그리고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저질렀지만 공식적으로 찬사받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창작 과정에서 폭력을 저지른 감독이 직접 상을 받는 등 예술가가 공식적으로 찬사받은 경우만을 다룬다. 작품과 예술가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논하는 것과 도덕주의와 자율주의의 논쟁과는 무관하게, 예술가가 만든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구조적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작품으로 자신이 직접 상을 받을 때 이것이 정당화가 될 수 있는지 다루었다.
예술 작품 창작 과정에서 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경험이 창작자의 권력 아래에서 침묵되기 쉽다는 점에서 찬사 행위 정당성 논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영화 감독이 아역 배우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고, 배우를 겁주기 위해 학대 수준으로 촬영의 강도를 높이거나, 배우가 거부 의사를 표명함에도 촬영에서 노출을 감행시키는 등 예술 작품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비일비재하다. ‘과연 이러한 행위를 사회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예술 창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사례들을 꺼내 사회적 문제를 들춰낼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성추행을 저질러 기소되자, 서울시에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작가의 작품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은 공공미술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시립 시설에 설치된 해당 작가의 작품을 철거하기로 결정하였다(Shin, 2023). 이처럼 예술 작품 창작 과정 속 폭력의 재생산을 막기 위해 권위 집단은 공식적 찬사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폭력 행위를 ‘예술적 성취’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 있는 찬사 행위를 이어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논의는 앞으로의 예술 시상, 전시 등에서 폭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한다.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손미혜. (2016, 12월 4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강간신, 실제 강간이었다. 네이버 엔터테인먼트.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21/0002429608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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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per, W. H. (1981). Ubiquitous halo. Psychological Bulletin, 90(2), 218–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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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M.-H. (2023, August 18). Artist-activist Lim Ok-sang found guilty of sexual assault. Korea JoongAng Daily. https://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2023-08-18/culture/artsDesign/Artistactivist-Lim-Oksang-found-guilty-of-sexual-assault/1849764
Willard, M. B. (2021). Why it’s OK to enjoy the work of immoral artists.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