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07-10 이원재

제목: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할 수 있는가?

I. 서론

현대의 예술장에서는 박물관, 미술관, 페스티벌, SNS 등에서 예술작품을 쉽게 전시하고, 향유하고, 소비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작품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윤리주의와 같이 작가, 작품에 대해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예술작품의 윤리적 결함은 작품 생산 과정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단이나 작업 과정을 동반하는 것, 또는 폭력이나 모방 범죄를 유도하는 것, 예술가의 비도덕성이나 불순한 제작 의도가 반영된 것 등을 지칭한다.(조선우, 2021) 이 글에서는 예술가의 비도덕성에 집중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성범죄를 저지른 가수의 음악을 불매하는 등 예술가의 비도덕성에 예민한 감각을 보인다. 사례로 아동성추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한예찬 작가의 작품들은 주된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감상되는 것이 윤리적 차원에서 옳지 않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서점에서 전량 회수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이 단순한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글은 공적 장에서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와 관련된 이론적 논쟁에서, Archer와 Matheson(2019)는 예술가의 재능을 “존경의 대상으로 기리는 행위(honoring)”는 단순한 미적 찬양을 넘어 도덕적으로 문제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생산한다고 본다. 반면, Willard(2021)은 대부분의 경우 비도덕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계속 즐겨도 윤리적으로 괜찮다고 본다. 이 글은 Archer와 Matheson의 입장을 옹호하며,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공적 장 내에서 소비하는 행위는 사회적 규범과 도덕 질서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1) 성적 비행 작가의 작품 소비 행위가 일탈을 묵인하고, 일탈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2) 가해자의 권위를 강화하여 피해자의 침묵을 낳는 방식을 주장하고, (3) 이에 대한 반론과 그 한계, (4) 최종적으로 공적 장에서 소비자의 소비 행위가 어떠한 도덕적, 사회적인 메시지를 지니며 그에 대한 중요성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할 것이다.

II. 본론

1.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일탈을 묵인하고 또다른 일탈을 재생산한다.

사회의 도덕 규범은 비윤리적 행위가 비난받고 제재될 때 유지된다. 그러나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그 예술가의 행위를 묵인하거나 사소화하는 공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묵인은 도덕적 경계의 약화를 통해 유사한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을 높이며, 사회 전반에 ‘성적 비행을 저질러도 작품을 계속 생산할 수 있다’는 도덕적 허용의 문화를 형성한다. 따라서 성적 비행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그 일탈을 용인하고, 또 다른 일탈을 유도함으로써 사회 규범을 훼손하므로 윤리적으로 부당하다.

2. 소비 행위는 가해자의 권위를 강화하고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만들어낸다.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는 대중의 관심과 소비로 결정된다.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그 작가에게 경제적인 자원과 상징 자본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그의 인식적 권위를 부당하게 높인다. 가해자의 권위가 높아질수록 피해자의 증언은 신뢰를 잃기 쉬우며, 2차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 실제로 19년도 7월 한 연극연출가가 여성 단원에게 성폭력을 행한 사건이 있는데, 당시 피해자는 ‘죄는 죄고 작품은 작품이지. 벌 받고 있으니 그의 공연들은 따로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들으며, 배신자로 낙인 찍혀 무대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경력이 높아지고 더 큰 공연이 가해자의 몫으로 돌아가며 가해자가 행하는 폭력을 믿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구조적으로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만들어내고, 사회적 불의의 재생산에 기여하므로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3. 반론: 소비 행위가 예술가의 행위를 묵인하는 공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알부 학자들은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예술가의 행위를 묵인하거나 사소화하는 공적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Willard(2021)는 소비에는 작품의 감상을 개인의 미적 프로젝트로 보기에 개인이 어떤 작품을 소비했다는 사실만으로 ‘가해 행위를 승인한다’는 공적 의미가 자동적으로 부여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개인의 소비 행위가 특정 공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과잉 추정이라고 본다.

4. 재반박: 공적 의미는 행위자의 의도와 분리되어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공적 의미의 ‘의도 독립성’을 간과한다. Archer와 Matheson에 따르면 공적 의미는 행위자의 의도와 분리되어 작동하게 된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소비한다고 하여도 각종 플랫폼의 지표는 소비 데이터를 쌓아 사회에 반영하게 되고, 사회가 읽는 신호는 개인이 의도한 소비 동기와는 다를 수 있다. 즉, 소비 행위가 특정 공적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잉 추정이 아니라, 비도덕적 예술가의 작품 소비 행위가 사회적으로 ‘묵인’, ‘사소화’로 읽힐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작품 소비 행위를 공적 의미와 연결지어 보는 것은 정당하다.

III. 결론

이 글은 성적 비행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행위는 일탈을 묵인하여 사회 규범을 훼손하고, 가해자의 권위를 강화하여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공적 장 내에서 그러한 소비 행위는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논증하였다. 조선우(2021)에 따르면 작품의 윤리적 평가는 작품 내부만이 아니라 예술가와 사회, 역사적 맥락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비도덕성은 작품을 수용하는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다만 이 주장은 성적 비행을 저지른 모든 예술가를 예술계에서 영원히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전시, 소비, 향유하는 데 있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참고문헌 (APA 7판 스타일)

Archer, A., & Matheson, B. (2019). When artists fall: Honoring and admiring the immoral. Journal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 5(2), 246–265.

Willard, M. B. (2021). Why it’s OK to enjoy the work of immoral artists. Routledge.

조선우. (2021). 예술작품의 윤리적 결함과 예술적 의도. 미학, 87(4), 73–120.

JTBC. (2019, March 14). ‘단톡방’ 성관계 불법 촬영·유포 정준영, 구속영장 신청. JTBC News. https://news.jtbc.co.kr/article/NB11916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