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07-05 박윤형

제목: 경제보복의 질서재편적 성격

서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러 제재, 미·중 기술 제재, 반도체·에너지 공급망 통제 등 경제조치는 이제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상수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제정치·국제법 학계는 기존의 경제제재와 성격이 다른 일방적 경제제재, 즉 경제보복을 정당성과 합법성의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해 왔다. 경제보복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 허용 범위를 설정하는 논쟁의 중심에는 retorsion, countermeasures, coercion이라는 단계적 구분이 있다. retorsion은 국제법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불친절한’ 경제적 대응을, countermeasures는 국제법상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상대방의 위법행위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시적으로 승인되는 행위를, coercion은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으며 강제적 수단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합법성 내지 정당성에 초점을 둔 기존 논의는 주로 이 세 범주 중 retorsion과 countermeasures의 경계에서 어떤 조치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구분하는 데 학계의 주요 관심을 두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논문들이 경제보복을 기존 국제질서의 준수 차원에서 이해하며, 경제보복이 지니는 구조적 위험성과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의 논증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경제보복의 성격에 대한 단일한 접근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coercion으로 설명되는 경제보복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경제보복의 성격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경제보복을 기존 국제질서의 규범적 집행 수단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특정 영역에서 국제질서의 규범과 구조를 부분적으로 재편하는 주요 도구로 볼 것인가가 이 논문의 중심 딜레마이다. 전자는 경제보복을 UN 헌장과 다자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한 국제 규범의 집행 수단으로 이해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경제보복은 국제법과 국제사회가 설정한 틀 안에서 정당성과 합법성을 유지해야 하며, 질서의 안정 유지에 복무해야 한다. Devika Hovell(2019)은 자율 제재가 UN 안보리 제재와 대비될 때 나타나는 법적 근거의 불안정을 지적하면서도, retorsion과 countermeasures의 틀 안에서 자율 제재의 허용 범위를 세밀하게 구분하는 방식으로 그 합법성을 논증하며, 논쟁의 초점을 일관되게 기존 집단적 제재 체계와의 정합성에 둔다. Alexandra Hofer(2017) 역시 일방적 제재가 정당성과 비례성 원칙을 충족할 때 기존 국제질서의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면서, 경제보복을 기본적으로 질서 유지의 도구로 전제한다. 이에 비해 후자는 경제보복을 단순한 규범 집행을 넘어, 국제질서의 규범과 권한 배분 방식을 선택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J. Benton Heath(2024)는 경제제재를 법적 질서 구성(legal ordering)의 행위로 파악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율 제재가 기존 다자체제를 우회하여 새로운 규범과 권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분석하고, 제재가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새로운 규범·제도 형성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Henry Farrell & Abraham L. Newman(2019)은 ‘weaponized interdependence’ 이론을 통해,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의 비대칭 구조를 활용한 강압적 경제보복이 형식적 평등과 다자주의를 약화시키고, 소수 핵심 국가 중심의 새로운 권력 질서를 형성하는 양상을 제시한다.

이러한 두 관점은 단순한 학술적 견해 차이를 넘어, 국가들의 실제 선택에서 구조적 딜레마를 형성한다. 만약 경제보복을 기존 질서의 규범 집행 수단으로만 한정한다면,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다자 규범의 절차적 비실효성 속에서 국가들의 전략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반대로 경제보복을 질서 재편 도구로 인정한다면, 국제법상 불안정한 법적 근거와 장기적 신뢰 손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본고는 이 딜레마에서 국가들은 반복적으로 후자를 선택하게 되며, 그 이유는 다자 규범의 실효성 상실이 보복의 비교 우위를 필연적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라는 점을 논증할 것이다. 이러한 선택의 구조적 논리는 (1) 선택의 실효적 가용성, (2) 새로운 규범 형성, (3) 재편의 지속성이라는 세 단계로 분석하며, 경제보복이 질서 유지 수단을 넘어 국제질서의 규범과 구조를 부분적으로 재편하는 메커니즘임을 입증할 것이다.

본고의 핵심 목표는 경제보복이 국제질서의 규범과 구조를 특정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재편하는 주요 메커니즘 중 하나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앞서 제시한 딜레마—기존 질서 유지(A) vs 질서 재편(B)—를 B 선택의 구조적 논리로 해소하며,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필요조건 3가지를 검토한다.

첫째, 기존 규범의 ‘실효성 상실’ 측면에 주목해서 경제보복은 기존 규범의 혼란 속에서 국가들이 반복적으로 선택할 이유를 제공하는 실효적 가용성을 보인다는 점을 논증한다. 다자 규범의 절차적 비실효성에도 불구하고 경제보복은 신속한 압박과 전략 이익을 제공한다(Chad P. Bown, 2016)는 점이 핵심적인 고려 사항이 될 것이다.

둘째, 경제보복 수단의 ‘법적 불안정’ 측면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보복이 새로운 규범 형성을 촉발함을 논증한다. 경제 보복은 ‘경제강압 수단의 국가 독점’이라는 새로운 법적 원칙을 창출하며(Heath, 2024) 국가들이 규칙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한다. 이는 경제보복을 단순한 규범 위반이 아닌, 국제법 체계 내 선택적 재편 도구로 위치시킨다.

셋째, 경제보복의 ‘장기적 신뢰 손실’ 측면에서 경제보복을 통한 질서 재편의 지속성을 입증하기 위해 경제보복으로 형성된 규범이 국제 사회 내에서 합의를 통해 수용되는 과정을 보인다. 단기적 실효성을 목적으로 한 경제보복이 네트워크 재편과 권한 배분의 새로운 구조를 안정화시키며, 경제 강압이 국제 합의로 안착해 질서를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그 지속성을 확인한다. weaponized interdependence 이론은 네트워크 재편이 새로운 권한 구조를 안정화한다고 제시한다(Farrell & Newman, 2019).

한편, 전제3의 논리적 취약점에 주목해서 경제보복을 통해 형성되는 합의가 관용적 수사에 불과하며 표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검토한다. 그러나 규범적 정당성의 결여로 표준화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insurgent standardization을 통해 효과적으로 재반박할 수 있다. 네트워크 핵심국이 네트워크 우위를 활용해 관용적 수사가 실질적 규범으로 인식되고, 반복 실행으로 법적 관행을 형성하며, 다자 합의로 de jure 표준으로 안착시키는 3단계 인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인과 구조를 통해 전제3에서 설명하는 지속성이 입증된다.

이러한 논증 구조를 통해 경제보복의 질서재편적 성격을 입증하고 정책 함의를 도출한다.

본론

­­경제보복의 실효성

다자 규범의 구조적 한계

다자 규범 체제는 네트워크 비대칭과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심화되며 규범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되고 있어, 경제보복과 같은 대안적 수단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를 소수의 국가들이 장악한 상황에서 다자 규범은 이러한 네트워크 자원을 통제하거나 활용할 수단을 갖추지 못한다. 네트워크 우위 국가가 네트워크 접근을 무기화할 때 다자 규범은 회원국 간 다자합의에 의존하여 대응이 지연되며, 네트워크 우위가 규범 준수를 초월하는 현실을 제어할 매커니즘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수록 회원국 간 합의 과정이 마비되며, 규범 준수의 강제력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는 다자 규범의 규범력이 교착 상태, 상소기구 기능 정지 등으로 정지되는 현상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Bown, 2016). 다자 규범은 실행 불능 상태로 전락하며, 국가들의 즉각적 전략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절차적 지연과 강제력의 결여는 현대 국제정치의 동적 변화 속에서 국가들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있어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 패권 경쟁과 공급망 무기화가 가속화되는 환경에서 다자 규범은 네트워크 비대칭을 활용한 단독 행동을 규율할 규범력을 상실하며, 다자합의 중심 설계가 오히려 대응을 저해하는 역설을 초래한다. 이에 따라 국가들이 다자 규범을 넘어서는 대체 수단을 모색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다자 규범의 구조적 한계는 단순한 실행상의 문제라기보다 체제 자체의 근본적 설계 결함으로 작용하며, 경제보복의 실효적 가용성을 전제하는 논리적 기반을 마련한다.

경제보복의 비교 우위

다자 규범의 약화로 다른 경제적 수단을 통한 규범력 확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그 수단이 경제보복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논증할 필요가 있다. coercion의 일종인 경제보복을 논하기 이전에 countermeasure을 통해 규범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countermeasure는 엄격한 절차적 요건과 제한을 갖고 있어서, 특히 제3국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그 효력이 상당히 감소한다는 점을 먼저 논증한다. 제3국이 countermeasures에 동참하지 않으면 그 효과가 약화되어 상대국에 미치는 제재 수단으로서의 실효성이 현저히 저하된다. 중요한 지점은 다자 규범의 규범력이 무력화되고 의사 결정 과정이 저해되는 상황에서 제3국은 이러한 예외적 조치의 승인에 다자합의의 형태로 참여할 유인이 감소하며, 이는 countermeasures가 불가능한 구조적 문제로 자리잡는다. 또한 countermeasures는 비례성, 일시성, 목적 제한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므로 그 범위와 강도가 제한적이다. 이러한 한계는 여전히 다자적인 협력을 전제로 한 국제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에만 countermeasures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는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주요 경제·금융 인프라가 몇몇 강대국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에서 예외적 조치로서 승인이 필요한 countermeasure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금융 결제망, 무역 네트워크 등을 통제하는 국가들의 동조 없이는 countermeasures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정당성을 위해 제한 조건을 명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힘의 논리에 귀속되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countermeasures는 현실적 한계를 드러내며, 행위 주체로서의 국가들은 이를 보완하고자 보다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경제보복 수단으로 관심을 돌리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countermeasures는 규범 집행 도구로서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냄과 동시에, 경제보복의 선택 이유와 관련되는 중요한 제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에 반해, coercion으로서의 경제보복은 다자 규범의 절차적 제약을 극복하며 즉각적으로 상대국의 경제적 취약성을 공략할 수 있는 신속성, 그리고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의 비대칭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위를 가진다. 특히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이를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경제보복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Farrell & Newman 2019).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특정 국가가 차지하는 지배적 위치를 이용하여 상대국의 외교 정책과 경제적 선택을 제약하는 전략적 구도를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네트워크 비대칭은 전통적인 다자 규범이 효력을 잃는 와중에도 경제보복이 선택받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미중 경제 갈등 상황에서 관세와 경제조치가 단순한 제재를 넘어 무역 균형의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Chachko, 2025). 이 때 경제보복이 국제적으로 지니는 함의는 전략적 구도에 편승한다는 새로운 경제적 유인이 도입되어 공급망 내 주요 국가들이 경제 보복에 참여할 것을 촉진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 WTO와 같은 다자 기구의 규범적 한계를 실제적인 정치·경제적 압박으로 전환한다. 이에 따라 경제보복은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압박 수단으로써 국가 간 경쟁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보복을 통한 새로운 규범력의 형성

새로운 법적 원칙의 생성

이전 파트에서 경제보복이 단기적 실효성에 있어 비교 우위를 지닌다는 것을 논증했다. 하지만 경제보복이 질서를 재편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경제보복의 법적 불안정성이 새로운 법적 원칙을 창출하며 해소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 Heath(2024)는 경제보복이 기존 국제법 틀 밖에서 작동하는 insurgent legal ordering(반란적 법질서 구성)의 전형으로, 비국가 주체의 경제 보이콧이 국가 독점적 경제전쟁 원칙을 창출한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다. 비국가 행위자들이 경제 강압을 통해 법적 규칙·감시·제재 체계를 구축하자, 국가들은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경제수단의 국가 독점이라는 새로운 법적 원칙을 정착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보복은 같은 논리가 국제적인 맥락으로 확장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 도출한 법적 공백 → 반란적 질서 → 국가 독점 원칙 구조에서 경제보복은 기존 규범의 빈틈에서 반복적으로 행사되며 “경제 강압 수단은 소수 핵심국이 독점하고 설계한다”는 새로운 원칙을 제도화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새 원칙은 경제 강압 수단의 통제권과 권한 배분을 재편한다. 핵심 네트워크 국가가 무기화된 상호의존성을 독점하며 제3국 참여를 강제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기존 다자규범의 형식적 평등은 네트워크 중심주의로 대체된다. 이는 경제보복을 법질서의 역사적 재구성(Heath, 2024)으로 규정하며, 경제보복이 단순한 단기 처벌에 그치지 않고 권력 구조의 변화를 유발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경제보복은 다자 규범의 절차적 한계를 넘어, 국제질서의 선택적 재편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으로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경제보복은 법적 불안정성을 오히려 새로운 규범(윈칙)의 창출력으로 전환하며, 질서 재편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기능한다.

규범력 형성의 경향

앞선 문단에서 경제보복의 법적 불안정성이 새로운 법적 원칙의 창출로 해소된다는 점을 논증했다. 이에 대해 실제로 규범 형성이 어떠한 흐름으로 나타나게 되는지 그 실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기적 압박을 목적으로 시작된 경제보복은 제3국들의 전략적 적응을 유발하며, 공급망 재배치와 네트워크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규범적 기대를 형성하는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Farrell & Newman 2019). 핵심국이 네트워크 접근을 무기화하면 제3국들은 단기 경제 손실에도 불구하고 안보 우선의 참여를 선택하게 되며, 이는 “경제 안보 중심 공급망 재설정”이라는 규범을 점진적으로 정착시킨다(Chachko, 2025).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보복은 단순한 일시적 조치가 아니라, 국가들의 행동 양식을 재규정하는 동인으로 기능하며 기존 다자 규범의 형식적 평등을 넘어 네트워크 중심의 실효적 협력 구조를 산출한다.

결국 제3국 참여가 강제되면서 “지정학 리스크 회피를 위한 블록화된 경제 협력”이라는 새로운 규범적 기준이 국제 사회에 노출되고, 단기 보복이 질서 재편으로 전환되는 패턴이 명확해진다. 이 규범력 형성 경향은 경제보복의 법적 불안정성을 넘어 국제 행위자들의 전략 선택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킨다. 따라서 경제보복은 단기 실효성에서 출발해 규범력의 행사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으로서 기능한다.

예를 들어, SWIFT 배제와 같은 경제 보복은 중국에 대한 금융시장의 압박을 목적으로 했으나, 이 과정에서 제3국들이 미국 네트워크 참여 또는 중국 CIPS 대안망 선택을 강요받으며 “네트워크 동맹국에 대한 우선 협력”이라는 원칙이 자리 잡았다. 유럽은 러시아 제재 동참으로 SWIFT 체제에의 의존성을 드러냈고, 이에 맞서 BRICs 국가들은 대안적 경제 금융 시장의 개발에 나서 지정학적 변인에 따라서 국제 사회 행위자들이 블록화를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Farrell & Newman 2019).

경제보복의 지속적 효과

규범력의 형성과 국제 질서 형성의 연속성

앞서 본론2에서 살펴본 것은 경제보복이 제3국의 공급망 재배치·네트워크 선택을 통해 새로운 규범적 기대를 만들어내는 과정, 다른 말로 규범력의 형성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지점은, 이렇게 형성된 규범력이 각 블록의 단기적 대응을 넘어 국가들의 중장기 전략과 제도 설계의 기본 전제로 고착된다는 점이다. 블록화된 경제 협력이 반복되면, 국가들은 더 이상 이를 예외적 대응으로 인식하지 않고 외교·안보·산업 정책을 설계할 때 “동맹 블록 내 협력을 우선시한다”는 전제를 미리 깔고 행동하게 된다.

이때 경제보복은 단지 특정 사안에 대한 압박 수단이 아니라, 어떤 위험에 직면했을 때 “어떤 쪽 블록에 얼마나 깊이 편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장기적 선택 구조를 규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초기에는 제재 회피나 비용 최소화가 목적이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들은 금융·에너지·기술 인프라를 블록별로 분리 구축하고, 상호 의존성을 그 기준에 맞게 재조정하면서 이 구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Lake(2009)의 계층적 국제질서론에 따르면, 핵심국이 경제 강압을 통해 위성국들의 충성도를 제도화하면, 이러한 관계는 단기 순응을 넘어 장기적 계층 구조로 고착된다. 핵심국은 네트워크 접근 제한으로 제3국들의 의사결정 비용을 구조화하며, 위성국들은 블록 내 협력을 합리적 선택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제보복은 계층적 질서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며, 탈퇴 비용이 누적되어 블록화가 되돌리기 어려운 제도적 관행으로 전환된다.

Lake의 프레임워크에서 보면, 반복적 강압은 새로운 권위를 창출하며 국가들의 전략적 계산을 재구성한다. 제3국들은 초기 강제 참여를 넘어 핵심국과의 계층적 관계를 정책 기본 전제로 삼고, 경제적 선택의 기회비용을 고려한다. 결과적으로 경제보복은 갈등에서 출발해 계층화된 국제질서로 안착하는 지속적 동인으로 기능한다.

국가 신뢰과 소프트파워 측면에서의 반론

예상반론

경제보복의 실효성과 지속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보복 행위가 행사국의 국제적 신뢰도와 소프트 파워를 훼손하여 고립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계층적 국제질서에서 제도화가 성립하려면 핵심국이 지속적 규범 리더십을 유지해야 하는데(Lake, 2009), Hofer(2017)의 분석과 같은 기존의 학술 자료에서도 드러나듯이 일방적 보복은 국제법상 형식적 평등·비개입 원칙을 반복적으로 잠식하여, 네트워크 중심국이 스스로 설정한 규범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못하는 행위자로 인식되게 만든다는 점을 근거로 반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핵심국이 주도하는 질서 재편은 장기적으로 국제 질서로 작용한다기보다 특정 국가의 이해에 따라 가변적인 정치적 도구로 받아들여져, 규범에 대한 신뢰와 자발적 준수 기반이 약화된다는 점에서 규범력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본론 논증의 취약성은 이러한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2가지 요소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실효성의 제한적 성격으로, 단기적 압박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경제보복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거시경제 차원의 비효율성을 초래해서 동맹국들의 전략적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경제보복의 비교 우위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핵심국이 국제질서 중심국의 이미지를 보존해야 하나, 경제보복의 반복성은 소프트 파워를 소모시켜 실효성 자체를 약화시킨다. 둘째, 새로운 법적 원칙의 무효화로, 국가 간 신뢰 상실이 지속될 경우 경제보복 수단의 실행이 독점적 원칙의 일부로 행사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법적 불안정이 신뢰 훼손으로 강화되면, 반란적 질서가 안착하기 전에 규범 리더십이 먼저 붕괴되는 위험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취약성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합의 자체가 관용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표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질서는 규범력을 장기적으로 잃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제3국의 참여는 일시적 순응에 불과하며, 네트워크 핵심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는 합의의 산물로 보이지만 규범적 정당성의 결여로 국제 기준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재반박

경제보복이 행사국의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키고 이는 규범력의 구조적 취약점으로 이어져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합의를 형식적 수사에 그치게 만든다는 반론은 논증의 핵심적인 흐름에 대한 반론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이 논증의 인과적 귀결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한다. 재반박은 예상 반론에서 제기한 취약성의 2가지 요소에 대해 각각 반박하고, 반박의 과정에서 형성된 인식을 바탕으로 insurgent standardization 매커니즘을 통해 장기적 국제질서 형성 과정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제시할 것이다.

경제보복의 실효성 비판에 대한 재반박

우선, 예상 반론에서 제시된 실효성 비판의 논리적 구조를 이해해보자. 거시경제 비효율성이 동맹국의 전략적 손실로 이어지며, 이는 경제보복의 실효성을 약화시킨다는 논리는 경제적 편익 분석을 중심으로 경제보복의 선택문제를 이해한다. 하지만 네트워크 핵심국의 경제보복에 협력할 것인지의 여부가 단순한 편익 분석을 넘어 “어떠한 네트워크 블록에 머물러야 하는지”라는 선택으로 구조화된다는 지점이 이 논리를 반박한다. 반론이 지적하듯이 반복적인 경제보복은 분명 비용과 비효율성을 수반하지만, 실효성의 비교 우위는 이 비용이 네트워크에서 배제되었을 때 감수해야 할 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경제보복의 반복적 활용은 이러한 측면에서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3국에게 네트워크에 편승하지 못할 때 감수해야 하는 구조적 비용을 명확히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네트워크 핵심국이 금융 결제망, 반도체·에너지 공급망, 표준·기술 네트워크를 동시에 지배하고 있을 때, 보복에 협력하지 않는 선택은 단기 손실 최소화를 넘어선 장기적 고립의 리스크를 수반한다. 이 상황에서는 형식적 평등·비개입 원칙에 대한 위반 인식보다, 네트워크 배제에 따른 경제·안보 비용이 전략적 계산을 지배하게 된다. 그 결과, 경제보복의 “반복성”은 소프트 파워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심국이 가진 네트워크 우위와 연계된 하드 파워를 가시화하고, 제3국이 이를 기준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소프트 파워는 제3국의 참여를 통해 다시 강화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3국의 행위 양식을 이해하는 것이 경제보복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데에 있어 더 중요한 변인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반론이 말하는 실효성의 제한적 성격은 반복된 보복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환경 변화를 통해 반박된다. 경제보복은 합리성의 기준을 기존 규범 준수에서 네트워크 배제의 회피로 이동시키고, 장기적 실효성의 내재화로 이어진다.

새로운 법적 원칙의 무효화 논변에 대한 재반박

다음으로, 국가 간 신뢰 상실이 지속될 경우 경제보복 수단의 실행이 독점적 원칙의 일부로 행사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고려해보자. 이는 반란적 질서가 안착하기 전에 규범 리더십이 먼저 붕괴되어 새로운 법적 원칙이 무효화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반란적 질서는 애초에 고도의 규범적 정당성이나 다자합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법적 불안정과 규범적 긴장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축적되는 관행이 규범 위반의 인식과 이에 따른 낙인을 수반하지만, Heath의 요지는 바로 이 낙인 자체가 장기적으로 “그 수단은 특정 핵심국만 쓸 수 있다”는 독점의 원칙으로 전화된다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네트워크 중심국이 스스로 설정한 규범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못하는 행위자로 인식된다는 비판은 반란적 질서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반란적 질서 형성이 불가피해지는 증상에 가깝다. 기존 규범 체계가 현실의 권력 비대칭을 규율하지 못할 때, 핵심국은 이를 사실상 무시하고 네트워크 체계를 무기화하며, 국제사회의 행위자들은 이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틀 안에서 행동을 조정한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 제3국은 “어느 결제망·공급망·기술표준에 편승할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강제되며, 이는 국가 독점 원칙에 대한 승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표준화 실패 논변에 대한 재반박

이제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합의 자체가 관용적 수사에 불과하며, 표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질서는 장기적으로 규범력을 잃는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제3국의 참여가 일시적 순응에 불과하며, 네트워크 핵심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가 규범적 정당성 결여로 국제 기준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본론3의 합의화는 규범을 조약·선언 같은 형식적 텍스트로 한정하지 않는다. 핵심은 행동 기대와 전략 전제의 안정적 변화이다. 제3국이 “동맹 블록 내 협력을 우선시한다”는 전제를 미리 깔고 외교·안보·산업 정책을 설계하며, 위기 시 자동으로 핵심국에의 편승을 선택하는 상태라면 이미 규범적 기준점이 이동한 것이다.

Lake(2009)의 계층적 국제질서론은 권위를 서면 합의가 아닌 반복된 복종과 기대 구조로 정의한다. 형식적 언어가 여전히 “예외적 조치”나 “유감스러운 보복”에 머물러 있어도, 실질적 상호 기대가 보편적 원칙으로 인식되는 상태라면 이는 관용적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 표준화의 초기 단계다. 제3국이 네트워크 배제 리스크를 인식하며 블록 내 관행을 제도화하고 그 반대의 경우 대안적인 블록을 구축함으로서 상호 인정의 균형을 이루는 과정은, 규범력이 행동양식과 제도 설계 속에서 형성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관용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평가는 규범을 언어적 정당성에만 묶어두는 분석이며, 경제보복으로 형성된 새로운 국제질서는 제3국들의 중장기 전략 전제로 고착되어 표준화된다. 반론은 형식(de jure)의 표준화만을 기준으로 삼으나, 본론3은 실질(de facto → de jure)적 합의화로 장기적 규범력을 입증한다.

결론

경제보복을 질서 재편의 메커니즘으로 본다는 점은 그대로 유지하되, 이제 본론3과 재반박에서 정교화된 논리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결론에서는 “세 전제 + 반론·재반박 + 이론적·정책적 함의”를 짧게 다시 묶어주면 된다.

결론

본고는 경제보복이 국제질서의 규범과 구조를 특정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재편하는 주요 메커니즘임을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논증하였다. 본론1에서는 다자 규범의 절차 지연과 상소기구 기능 정지 등으로 인한 규범력 약화가 경제보복을 실효적 선택지로 부상시키며, 제3국 비참여를 전제로 한 countermeasures의 구조적 한계가 보복의 비교 우위를 부각시킨다는 점을 제시했다. 본론2에서는 insurgent legal ordering을 통해 경제보복이 법적 공백과 규범적 긴장 속에서 경제강압 수단의 국가 독점이라는 새로운 법적 원칙을 창출하고, ‘weaponized interdependence’를 통해 제3국의 전략적 적응이 새로운 규범적 기대와 블록화된 경제 협력이라는 규범력 형성 경향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본론3에서는 계층적 국제질서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규범이 제3국의 중장기 전략과 제도 설계의 기본 전제로 내재화되어, 블록화 구조화하고 경제보복으로 형성된 규범을 장기적인 국제질서의 기준점으로 고착시키는 insurgent standardization 매커니즘을 제시하였다.

반론 부분에서는 소프트파워 약화와 그로 인한 규범력의 구조적 취약성, 그리고 합의의 표준화 실패 논변을 검토하였다. 이에 대해 재반박에서는 먼저 경제보복의 반복성이 거시경제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제3국에게 네트워크 배제 비용을 각인시켜 “어느 블록에 속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선택을 강제함으로써 실효성을 약화시키기보다 내재화·장기화한다는 점을 보였다. 이어서, 국가 간 신뢰 상실과 규범 위반 낙인이 Heath가 말하는 반란적 질서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 수단은 특정 핵심국만 쓸 수 있다”는 독점 원칙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논증하였다. 마지막으로, 합의가 관용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대해, 규범을 언어가 아닌 행동 기대와 전략 전제의 안정적 변화로 파악할 때, 제3국의 블록 우선 선택과 탈퇴 비용의 내부화가 이미 표준화·계층화를 이루고 있음을 권위 개념을 통해 재구성하였다.

본론과 재반박을 종합하면, 경제보복은 실효성–새로운 법적 원칙–합의화의 연속적 매커니즘을 통해 기존 질서 유지 도구에서 질서 재편 장치로 전환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는 retorsion–countermeasures 중심의 합법성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실효성·규범 창출력·지속성이라는 구조적 필요조건을 기준으로 경제보복의 정당성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함의를 제공한다. 특히 네트워크 비대칭과 계층적 질서가 심화된 현실에서, 경제보복의 정당성 평가 기준은 규범적 형식에의 합치 여부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규범과 권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안정화하는지에 대한 실증적·구조적 분석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이러한 관점 전환을 통해 경제보복을 다자 규범의 예외적 위반이 아니라, 국제법과 국제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질서 형성을 이끄는 핵심 동인으로 재조명하며, 향후 경제보복 정당성 기준의 관점 재구성 등의 논의 방향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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