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07-08 박성준
제목: 치매 환자의 자율적 선택 논의: 치매 발병에 따른 의사 변화와 자율성의 전제를 중심으로
서론
치매란 지능이 후천적으로 뇌의 광범위한 손상에 의해 비가역적으로 저하되는 것으로, 기억 장애 및 사고력, 판단력, 계산력 등의 장애를 동반하는 질병이다.[^치매] 이 과정에서 특히 이성적 판단 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인해 치료 방법 또는 치료 지속 여부 등과 관련된 환자의 의사가 치매 전과 달라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둘 중 어느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환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일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논쟁이 존재한다. 이때,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는 현대 의료윤리에서 자율성 존중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치매 환자의 의사 존중과 관련된 핵심 쟁점이 서로 상반되는 선택이 모두 각각의 이유로 환자의 자율성을 대표한다고 주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 자율성을 왜 중점적 가치로 두어야 하는지와 관련된 논증은 다루지 않고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해결하고자 하는 핵심 쟁점과 관련해 대립하는 주장 모두 공통적으로 자율성 존중의 중요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의 의사 존중과 관련된 딜레마로는 각종 능력 저하 이전의 의사인 선행 의사(precedent autonomy)와 저하 이후의 현행 의사(current autonomy) 중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만약 선행 의사를 우선시한다면 치매 환자의 과거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지만, 현재의 감정과 의식, 욕구 등을 무시하게 된다. 반대로 현행 의사를 우선시하면 환자가 인지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이 과거의 자기결정적 선택을 배반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Dworkin(1993)에서는 개인의 삶이라는 일종의 서사의 작가(author)로서의 본인이 그 서사, 즉 전체 삶의 통합성(integrity)을 고려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자율적인 선택을 보장하는 것이므로 그 삶의 통합성(integrity)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과거의 결정이 치매 이후의 판단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Dworkin 1993, pp. 224-230). 이러한 관점에서는 비교적 유능한 과거의 자신이 삶 전체의 통합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Jaworska(1999)에서와 같이 현행 의사(current autonomy)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치매 환자에게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긍정하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value)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그 사람의 자율적인 선택의 근거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치매 환자의 가치 표현을 통한 자율적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고 보며 그 자율적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Jaworska 1999, p. 109).
그러나 선행 의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과 관련하여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상태에 대한 가정적 판단까지도 통합성을 위한 자율적 판단으로 여기는 것이 옳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한편, 현행 의사를 더 중시하는 입장과 관련하여서는 치매 환자의 판단이 삶의 중대한 가치 판단으로서 유효한 판단의 지위를 지닐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와 같은 기존의 논의들은 자율성과 관련된 다소 포괄적인 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연역적 논증을 통해 자율성의 세부 전제를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현행 의사를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임을 보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임을 논증한 뒤, 현행 의사가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함을 보임으로써 현행 의사를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즉, 본고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전제와 주장은 다음과 같다.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이다. 현행 의사가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다. 따라서 현행 의사를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이다. 끝으로, 기존 치매 환자의 자율성 논의와 관련해 가장 주된 주장이었던 드워킨의 삶의 통일성을 통한 자율성을 주장하는 측에서 제기할 만한 핵심 문제를 해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본론
개인의 가치를 반영하는 판단의 자율성
자율성의 정의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이다.’ 우선, 이때의 자율성이란 단순히 외부의 강제가 없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율성이란 그저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좋은 삶이라 여기는 그 삶의 기준에 부합하는 자기결정을 내리고 그 의사결정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Beauchamp(2019)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현대 의료윤리에서는 자율성을 자기 가치에 비추어 이해한 선택으로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 (Beauchamp 2019, p. 107).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자율적 선택, 또는 자율성이라는 것은 그저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가치: 자율성의 전제
일반적으로 가치란 욕구와 상황 속에서 형성된 판단적 지향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옳고 좋다고 여기는 것이나 그 기준이 되는 것이다. Jaworska(1999)에 따르면 기억이나 이성 외에도 인간이 지닌 감정(feelings), 의지(will), 감수성(sensibilities), 도덕적 주체성(moral being)과 같은 인간의 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지닐 수 있도록 하며, 이는 도덕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자율성의 기반이 된다. 즉, 가치를 느끼고 긍정할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value)의 존재는 자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위한 전제가 된다 (Jaworska 1999, p. 138). 따라서 이는 자율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능력이 치매 환자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위의 문헌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데, 치매 환자가 이성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뒤에도 자율성의 전제와 근거가 되는, 가치를 느끼고 형성할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value)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Jaworska 1999, p. 109). 특히, 이와 같은 능력이 이성적 사고판단 능력이 저해됨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치의 필요조건: 고려 가능성과 현재성
본고에서는 가치라는 것을 큰 틀에서는 위의 개념적 정의를 따르면서 그 범위를 개인의 고려 능력 범주 내로 제한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자율적인 판단에 반영되는 개인의 가치란 단순히 그 사람이 옳다고 여기고 긍정하는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그것들 중 특정한 순간에 본인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것들로 한정된 가치를 의미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을 하는 그 시점에서 고려할 수 없는 요소들은 자율적인 가치판단의 잣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온전히 고려할 수 없는 대상까지 고려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해 내린 판단은 그 개인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고려 불가능한 요인은 후술할 자기 지배로서의 자율성을 담보하는 가치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가치라는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Parfit(1986)에서는 현재의 목표나 소망이 미래에는 유지되지 않을 수 있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가치나 목표, 욕구 측면에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Parfit 1986, p. 300). 즉, 인격의 가치나 관심사와 성격, 그리고 목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한편, Paul(2014)에 따르면 결정적인 경험은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자체를 재구성한다 (Paul 2014, p. 3).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이 겪게 되는 각종 경험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 조금 더 정확히는, 본래 본인이 무엇을 가치있다 여기는지의 기준이나 가치관은 개인이 어떤 경험들을 겪어왔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개인의 가치란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본질적으로 일관되게 유지될 수 없는 가치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특정한 시점에서의 가치가 변화했을 수도 있는 다른 시점에까지 영향을 주고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자율적 선택의 판단 기준이 있는데, 그것이 변화하는 것이라면 각 시점에서의 개별 선택들이 자율적인지를 볼 때에는 해당 시점에서 변화된 판단 기준들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가치라는 것이 자율적 판단의 근거, 또는 기준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을 내리는 시점 별로 변화한 바로 그 순간의 가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말한 개인의 가치가 특정한 시점에 개인이 고려 가능한 요소들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다. 선택을 내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개인의 가치라는 것은 변화되어왔고, 또 앞으로도 바뀌어갈 것이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선택을 내릴 때 과거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과 같이 미래에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현재의 가치를 적용하여 미리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를 진정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사실 본인이 고려할 수 있는 대상들만을 고려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이 어찌 보면 당연하며, 나아가 그에 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본인이 온전히 고려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까지도 규율을 세우고 본인을 강제하는 일들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치매 환자의 사전의료 동의서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미래에 자신이 치료를 지속하거나 중단함으로써 얼만큼의 고통을 받을지, 또는 얼마만큼의 효용 및 가치를 누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전에 짐작하기에 그 당시 자신의 가치 기준에 더 잘 부합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미래 자신의 선택권을 제한 및 박탈하게 된다. 물론, 치매 발병 전과 후 개인의 가치가 변화하지 않았거나, 변화한 가치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는 치매 발병 전의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단순히 비교적 유능했을 때의 선택을 근거로 미래 선택의 가능성을 제한한 경우와는 엄연히 자율성 존중의 측면에서 다른 것이다. 치매 환자가 치매 발병 이전, 혹은 치매 증상이 없을 때의 본인이 지닌 가치 지향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이는 그 시점에서의 고려 대상이 아니며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즉, 과거의 선택과 그 선택을 내릴 때의 본인의 가치 지향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해당 시점에서 내린 선택이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 만약 변화 이전의 선택을 우선시한다면, 과거의 자신의 가치 기준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현재 자신의 자율적 선택을 방해할 수 있다.
개인의 가치와 자율성의 관계
개인이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그 가치들이 자율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지배(self-governance)’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Dworkin(1976)에 따르면 자율적 행위자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행위자로, 자율성은 자기 지배의 한 형태이다.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자율성의 전제로서 자기 지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자율성이란 외부 요인(external forces)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행위 주체의 내적 상태(internal states)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Dworkin 1976, pp. 23-25).1 Frankfurt(1971)에서는 자율성을 외부 강제(external coercion)으로부터 자유롭게 개인의 의지(own will)대로 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Frankfurt 1971, p. 16). 세부적인 기준과 관련해서는 학자 간의 이견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자율성이라는 것이 내적인 것에 그 원천을 두고 있음에 동의하고 있다. 즉, 내적 가치가 자율성의 근거가 되며, ‘자율적이다’ 라는 것은 그 내적 가치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 지배’라는 것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나 지향, 목표에 따라 스스로 행동하는 것으로, 자율성의 핵심 조건이 된다.
내적 원천, 자기 가치를 기준으로 한 자기 지배의 산물인 자율성의 획득은 자율적 행위라는 것이 개인의 가치가 반영된 것임을 의미한다. 즉, 개인의 가치를 반영하고 그 가치를 따르는 결정이 곧 자율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자율성은 자기 지배를 필요조건으로 하며, 이러한 자기 지배는 개인적 가치의 반영을 함의하기 때문에 개인의 가치를 더 잘 반영하는 선택이 자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율성의 지위가 진정한 자기 지배의 실현에서 나온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신의 욕구 및 선호와 같은 개인의 가치를 반영해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자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욕구나 선호와 같은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며 영위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판단으로서의 현행 의사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개인의 가치라는 것은 선택을 내리는 그 시점에 개인이 고려할 수 있는 요소들로 한정된다. 선택을 내리는 그 시점에서 고려 가능한 모든 것들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의사는 현행 의사이다.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치매 환자의 현행 의사가 가치를 포함하고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치매 환자의 ‘가치 형성 능력’: capacity to value
Jaworska(1999)에 따르면 치매 환자도 여전히 자율성의 핵심 조건으로서의 가치를 느끼고 형성할 수 있는 능력, “capacity to value”을 지닌다 (Jaworska 1999, pp. 109-110). 물론 치매 환자는 판단 능력이나 복잡한 계획 능력은 상실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활동이나 관계, 사람에게 기쁨과 애착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은 치매 환자에게서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는 환자 자신에게 있어 무엇이 중요하며, 자신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즉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호와 지향의 표현들을 단순히 순간적 반응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종의 가치 반응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선행 의사의 한계: 과거 가치의 현재 강제 불가능성
선택을 내리는 시점보다 먼저 일어난 선행 의사의 경우 그 결정을 내릴 당시에는 가장 자율적인 선택이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까지 강제력을 지닌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재는 고려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온전히 고려하지 못할 수 있는 요소들이 필수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일부 가치 판단의 대상들에 대해서는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그 상황에 놓였을 때의 본인의 감정 등은 과거와 현재에 동일한 수준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과거의 선택인 선행 의사보다 현행 의사가 그 시점에서의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통합성 기반 자율성 비판 및 보완
Dworkin(1993)과 같이 삶의 서사적 통일성(integrity)을 통해 자율성이 확보된다고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선택이 자율적이라 하더라도, 서사적 통일성을 지닌 삶이 자신이 좋은 삶이라 여기는 그 삶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개인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 진정한 환자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며, 따라서 치매 발병 이전의 선행 의사가 치매 환자의 선택에 우선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매 환자에게는 전체 삶의 모든 서사를 고려해 결정할 인지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전체 삶을 기억하고 있지도 못하며, 통합성의 관점에서 삶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게 된 개인에게 있어 그러한 가치 기준을 들이밀며 과거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으로 그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좋은 삶이라 여기는 그 삶의 기준이 통합성이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자율적인 선택이 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가치 기준을 개인이 인지하고 있을 때로 제한된다. 따라서 단편적으로 자율적인 선택을 위한 통합성이라는 기준을 내세운다면, 선택하는 시점에서만 고려 가능한 선택이 앞서 언급한 ‘자신이 좋은 삶이라 여기는 그 삶’의 기준에 부합하는 자기 결정이 아니게 되고, 즉, 자율적인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상태일 때의 얘기다. 따라서 환자가 현재 과거 자신의 가치 기준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한다 할지라도 환자의 가치 기준이 변화해 과거와 다른 선택을 내리게 된다면 바로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으로 환자로 하여금 자율적인 선택을 내리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론
본 논문은 앞서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전개하였다. 결과적으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현행 의사를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이다. 자기 지배로서의 자율성을 위해서는 개인의 내적 가치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현행 의사가 이 개인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행 의사가 아닌 현행 의사를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인 선택이다. 이때, 선행 의사가 자율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선행 의사를 표현하는 시점에서 개인의 가치가 현재와 동일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선택을 내리는 시점에 고려 가능한 요소들만을 고려해야 하는데, 선행 의사가 내려진 시점에서는 현 시점에서 고려 가능한 요소들을 고려할 수 없었으며 현재 개인의 가치가 과거에 선택을 내린 시점과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에 선행 의사를 표할 그 당시에는 해당 판단과 선택이 자율적이었더라도 그것이 현재 시점에서까지 자율성의 판단 기준으로서 기능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요컨대, 자율성은 자기 지배에 기반하며 자기 지배는 개인의 현재 내적 가치 기준에 의존한다. 이때 개인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치매 환자의 현행 의사는 그 현재 가치의 반영이다. 따라서 현행 의사를 반영하는 판단이 자율적이다.
본고는 단순히 선행 의사로서의 사전의료동의서가 효력이 없음을 보인 것이 아니다. 환자의 자율성 존중을 핵심 잣대로 이 사전의료동의서의 유효성을 따지는 맥락 하에서 그 기준이 되는 ‘자율성’을 더 잘 보장하는 조건에 무엇이 있을지 연역적으로 입증해보였다. 그 과정에서 삶의 통일성과 같은 기존의 논의를 그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직관에 부합하는 자율성의 전제를 세밀화 및 추가함으로써 기존의 딜레마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개인의 가치가 단순히 그 사람의 선호와 지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점에서 고려 가능한 것들만을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근거로 가치나 그 가치의 대상의 범주를 한정한 점과, 전체 삶의 서사적 통일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그 가치를 선택 시점에서까지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충분히 가치있는 시도로 보인다.
물론, 자율성을 논하는 모든 각각의 경우들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원칙을 수립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현격한 인지, 사고 기능의 저하로 의사 표현 능력 자체를 상실한 경우나, 중독 등의 요인으로 온전한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앞서 논의한 바들을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적어도 본고에서 다루고자 한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유효하다는 점, 현행 의사가 존재하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에는 본고의 논리적 추론이 타당하며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성의 전제를 성공적으로 제시하였다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Beauchamp, Tom L., and James F. Childress. Principles of Biomedical Ethics. 8th ed.,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p. 107.
Dworkin, Gerald. “Autonomy and Behavior Control.” The Hastings Center Report, vol. 6, no. 1, 1976, pp. 23–25.
Dworkin, Ronald. Life’s Dominion: An Argument about Abortion, Euthanasia, and Individual Freedom. Alfred A. Knopf, 1993, pp. 224–230.
Frankfurt, Harry G. “Freedom of the Will and the Concept of a Person.” The Journal of Philosophy, vol. 68, no. 1, 1971, pp. 5–20. p. 16.
Jaworska, Agnieszka. “Respecting the Margins of Agency: Alzheimer’s Patients and the Capacity to Value.” Philosophy & Public Affairs, vol. 28, no. 2, 1999, pp. 105–138.
Parfit, Derek. Reasons and Persons. Clarendon Press, 1986. p. 300.
Paul, L. A. Transformative Experience.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p.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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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orkin(1993)의 저자와 다른 저자의 문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