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07-12 한유정
제목: 치매 환자의 의사와 충돌하는 사전의료지시서의 우선성
서론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질병의 말기 환자들의 생명 연장 가능성이 증가하며, 환자의 의사결정권 보장이 의료 윤리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치매와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경우 질병 진행에 따라 환자의 인지 능력이 점진적으로 감퇴하여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된다는 특수성이 있다. 이에 따라 치매에 걸리기 이전이나 인지기능 저하의 진행 정도가 적을 때 작성하는 사전의료지시서 (advance directives)가 환자의 의사결정을 돕는 수단으로 제도화되었으나, 사전의료지시서의 내용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담론이 생산된다. 치매 말기의 환자가 보이는 의사표현이 사전의료지시서와 충돌할 경우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는 단순한 의료적 선택을 넘어 자율성의 본질과 통합적인 삶에 대한 물음을 내포한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치매 질환으로 인해 인지 기능이 저하된 환자가 과거의 결정과 상충되는 선호나 이익을 보일 때 어느 시점에 내린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지는 다양한 학자들에 의하여 논의되어 왔다. 특히 의사를 표현하는 시점의 차이를 다룸에 있어 자율성 (autonomy)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쟁점이 존재한다. Dworkin은 자율성을 ‘진정한 선호, 자아감,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이익을 향유적 이익 (experimental interests)과 비판적 이익 (critical interest)1으로 구분하였다. Dworkin은 치매 환자가 현재 느끼는 즐거움보다 그가 과거에 추구했던 삶의 가치나 품위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환자가 자율성을 상실했다면, 비록 현재의 자아가 생존을 원하거나 즐거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과거의 자율적 자아가 내린 결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Dworkin, 1993, ch. 7) Jaworska는 Dworkin의 견해를 비판하며, 자율성의 핵심은 복잡한 계획을 실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가치를 두는 능력 (capacity to value)’라고 주장한다. (Jaworska, 1999, pp. 105–138.)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특정 이유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여전히 도덕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 본다. Shiffrin은 ‘의지를 행사 (exercise of will)’할 수 있다면 선택을 통해 경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과거의 자율적 결정이 현재의 의지를 압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Shiffrin, 2004, pp. 195–217) 그동안의 논의는 모두 자율성의 층위와 정의를 학자마다 다르게 설정하여 일관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바 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Dworkin의 입장을 채택하되 삶의 통합성 (integrity)에 초점을 맞추어, 말기환자의 의사표현이 치매 이전의 사전의료지지서와 충돌할 경우, 사전의료지시서가 우선되어야한다는 입장을 옹호한다. 이 주장은 두 가지 핵심 전제에 기반한다. 첫째, 개인은 자신의 통합적 서사에 근거한 결정 능력을 내릴 때 더 자율적이다. 둘째, 말기 상태의 치매는 통합적 관점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인 인지적 조건들을 침해한다. 따라서 치매 이후의 의사표현은 사전의료지시서보다 자율적인 결정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러한 논증을 주장하기 위해 연역적 논증 구조를 채택한다. 자율성 개념을 통합성 (integrity)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사람의 다양한 선택들 중 가치관에 근거하여 내리는 선택이 자율적임을 보인다. 말기 치매의 상태는 통합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에 필수적인 요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위의 두 전제가 참일 경우, 사전의료지시서가 치매 이후의 의사보다 더 강한 자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권위를 갖는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한 본론의 서술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자율성은 통합적 삶을 구성하는 능력이기에 살아가는데에 가치 판단에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함을 보인다. (2) 치매 환자는 통합적인 관점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임을 논증하기 위해 통합적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때의 조건들을 검토한다. (3) 통합적 삶을 설계할 수 없는 치매 환자는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이라고 판단되므로 사전 의료지시서보다 선택에 있어 자율성의 규범적 중요성이 낮음이 입증된다. (4) 이후 치매 환자가 가치 인식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Jaworska와 Shiffrin의 반론을 검토하고, 이를 재반박하며 논제를 정당화할 것이다.
본론
자율성과 통합적 삶의 구성 능력
자율성 개념의 일반적 이해와 한계
전통적으로 자율성은 개인이 외부의 강제나 간섭 없이 스스로를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정의만으로는 어떠한 선택이 진정한 자율적인 선택인지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순간적인 충동, 중독에서 비롯된 행동, 강한 감정적 동요 아래의 선택은 오히려 자기 통제와 자기 이해의 결여를 드러낸다. 현재 시점에서 느끼는 단순한 선호를 드러내는 것보다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 믿음 등에 근거한 선택을 내릴 때 더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인식된다. 소설가가 순간의 기분에 따라 문장을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에 근거하여 작품 전체의 완성도와 통일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자율성에 대한 존중은 개인이 자신의 삶 전체의 가치와 성격을 정의하고 완성하는 능력을 발휘할 때 실현 가능하다.
자율성과 통합적인 삶의 연결
인간의 삶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연속성 속에서 삶은 하나의 서사 (narrative)로 구성된다. 갖는다. 개인은 과거의 상황과 그에 따른 반응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특정한 자극이 들어오면 과거의 경험과 직관에 따라 적절한 반응을 내림과 동시에 해당 상황을 또 다른 기억으로 재편하며 미래에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경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판단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순간의 선택을 고립적으로 경험하기 보다 자신의 생애 전체 속에서 의미있는 흐름으로 구성하여 이해한다. 이러한 서사적인 구조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특정한 방향을 지닌 연속체로 이해하게 만든다. 통합적 관점에서 자율성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으로 인생을 서사적으로 완성해나가게 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형성할 때 개인은 자기 창조 (self creation)이 가능하며 자신의 성격 (character), 가치 (values), 헌신 (commitments), 신념 (convictions)에 따라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
자율성이 통합적 삶의 기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자율성을 보호해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삶을 하나의 규범적 질서 속에서 이해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있다. 통합적인 경험의 누적과 이에 따른 가치관 형성은 스스로를 판단 대상으로 삼는 것을 정당화한다. 자기 판단의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단편적인 반응이 아닌 근거를 가진 행위로 이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도덕적인 규율을 제정하고, 그 규율에 복종하는 주체가 되도록 하는 자율성은 도덕적인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Kant, 1785/2019, ch. 1.) 감정, 욕망, 전통, 신의 명령 등 외적인 이유로 인해 주어지는 도덕 법칙은 조건적이고 쉽게 변할 위험이 있다. 특정한 조건이 성립될 때에만 도덕 법칙을 준수할 이유가 생긴다는 점에서 이는 진정한 자율성의 행사라고 보기에 어렵다. 반면 자율적 의지에 의해 제정된 도덕 법칙은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이다. 자율적인 선택들에 근거한 자기규율이 없다면 삶은 일시적인 사건의 집합으로 흩어지고 자신의 행위를 이유를 통해 이해하거나 책임지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스스로를 가치관에 따라 재정립하며 행위자 (agent)로서 성립하도록 할 때 개인은 ‘목적 자체’로서의 존엄을 지닐 수 있다. 개인의 자율성을 수호하고 통합적인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때 삶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나아가 개인의 선택이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본인의 가치, 성향, 일관된 자기 서사와 조화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자율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해력, 추론 능력, 정보 처리 능력 등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지적 역량 (cognitive abilities)이 요구된다. 또한 자신의 욕구, 동기, 가치를 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성찰적 능력 (reflective capacities),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선택할 실질적 가능성 (conditions of freedom)에 대한 고려가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자율성의 행사는 자기 정체성과 동기 구조에 비추어 검토된 결과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DeGrazia, 2005, p. 203-243)
통합적 삶을 구성하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인 말기 치매 환자
통합적 삶의 조건
말기 치매 환자는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내린 선택은 치매 이전의 상태에서 내린 결정보다 규범적으로 우선한다고 보기에 어렵다. 사전의료지시서는 인지 기능 저하가 극심한 상태보다 이전에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통합적인 삶을 더욱 잘 반영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합적인 삶을 구성하기 위해 충족되어야할 전제 조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과거 기억 상실, 2) 일관된 자아 의식 부재, 3) 장기적 계획 유지 불가, 4) 체계적이지 않은 욕구 표현의 상태에서는 통합적인 삶을 계획하고 설계하기에 어렵다. (Dworkin, 1993, ch. 7) 치매 환자의 권리와 이익을 고려할 때 치매 환자는 현재의 상황과 능력을 강조하여 치매 환자로,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치매에 걸린 사람으로 타인과 스스로에게 인식된다. 치매 이전에는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을 이성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으나, 인지 저하가 비가역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치매 이전과 동일한 사고 과정을 거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의 말기 치매 환자는 통합적인 삶을 구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다.
첫째, 말기 치매 환자는 이전의 삶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과거의 경험이 상실됨에 따라 이전에 발생한 일을 회상하지 못하며 과거의 기억에 단편적으로 반응하거나 파편화된 상태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억 상실은 환자가 자신이 살아온 삶 전반에 대해 평가를 내리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둘째, 치매가 진행됨에 따라 응집력 있는 자아에 대한 인식나 시간에 따른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통합적인 삶에 대한 개념 조차 부재한 상태이므로 치매 이전과 이후의 삶 모두를 포괄하여 전체를 평가하거나 염려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치매 환자들은 질환이 진행된 단계에서 기억, 추론, 이해, 판단과 같은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점진적으로 잃게 된다. 치매 이전에 형성했던 선호와 가치를 유지하고 반영하는데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는 이전의 선호에 따라 기억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것으로 간주된다. (Jongsma et al., 2015, p. 7) 셋째, 말기 치매 환자는 연속되지 않은 시간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가 아닌 다른 시점에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 현재 시점에 지니고 있는 선호나 감정에 대해서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므로 미래에 대한 계획 수립과 실천이 어렵다. 통합적인 삶에 대한 인식이 가능한 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의 자신의 내적, 외적 상태에 대한 예상을 할 수 있지만 치매 환자는 장기적인 시간을 인식할 수 없다. (Buford, 2017, p. 3) 넷째, 치매 환자는 자신의 비판적 이익을 위한 욕구를 드러내기 어렵다. (Dworkin, 1993, ch. 8, 1970, Maslow, 1987, pp. 26-39.) 결핍을 느끼고 의식적으로 더 많은 것을 탐하는 욕망과 달리, 욕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심리적 상태이다.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단계의 욕구가 나타나는 순차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고, 하위 욕구는 생존과 안전, 보호를 보장받고 싶어하는 심리적 상태와 관련된다. 이러한 하위 욕구에서 결핍을 느끼지 않는 일관된 상태에 도달한 경우 남들로부터의 존경과 안정, 자아실현을 목표로 성장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된다. 말기 치매 상태의 환자는 욕구를 드러냄에 있어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들의 욕구는 순간적인 자극과 감정에 따라 급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관된 서사적 자기 이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아 실현이나 비판적 이익을 위한 욕구를 드러내기 어려운 상태이므로 통합적인 삶을 구상하고 수립해나가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비판적 이익의 증진
개인의 이익은 향유적 이익(experiential interests)과 비판적 이익(critical interests)으로 재구성된다. (Dworkin, 1993, ch. 7–8) 인간은 단순히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고통 회피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전자는 특정 시점에서 느끼는 편안함, 즐거움과 같이 경험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가리키는 반면, 후자는 ‘어떤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설정하는 장기적 목표, 품위, 관계, 도덕적 신념에 관한 관심을 의미한다. 통합적 삶은 바로 이 비판적 이익을 설계하고 일관되게 추구하는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자신의 생애를 하나의 서사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단지 현재의 경험을 더 편안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어떠한 삶이 잘 설계되고 실천되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지키고자 한다. 통합적 자기 이해는 이러한 비판적 이익을 수립하고, 충돌하는 순간적 욕구들 가운데 어느 것을 제한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규범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율성의 핵심을 이룬다.
말기 치매 상태는 이러한 비판적 이익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인지적 조건들을 근본적으로 침해한다. 치매 환자는 여전히 특정한 음식, 음악, 활동에 즐거움을 느끼거나 누군가의 손길에 위안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향유적 이익의 차원에 머무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심각한 기억 상실, 시간적 연속성의 붕괴, 자아 정체성의 파편화, 장기적 계획 능력의 상실은 환자가 자신의 삶 전체를 평가하고 그 삶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기를 바라는지를 사유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즉, 치매 환자는 현재의 쾌, 불쾌에 대한 선호는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비판적 이익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검토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통합적 삶의 관점에서 자기 삶을 설계하고, 언제 어디까지 치료를 받으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반대로 사전의료지시서는 치매 이전에 비판적 이익을 고려하며 설정한 삶의 계획과 품위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적 삶의 구조를 훨씬 더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지는 치매 환자의 향유적 이익을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거나, 현재의 쾌락과 안위를 전적으로 경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료와 돌봄의 과정에서는 치매 환자가 느끼는 편안함, 정서적 안정, 대인 관계에 대한 욕구를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요구를 강화한다. 다만 연명의료 시행 여부나 인공영양 중단, 공격적 항암치료와 같이 삶 전체의 의미를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에서는 순간적인 향유적 이익보다 비판적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환자의 통합적 자율성을 더 충실하게 반영한다.
치매 환자의 자율성에 대한 학자들의 반박
말기 치매 환자의 선택보다 치매 이전의 선택이 우선시되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 Jaworska와 Shiffrin과 같은 일부 학자들은 치매 환자의 현재 선호가 도덕적으로 존중받아야하며, 사전의료지시서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드러내었다. 인지 기능이 저하된 치매 환자의 선택이 자율성이 있는지에 대한 담론에서 비판적 이익의 본질은 삶의 통일성이 아닌 가치에 있다는 반론을 고려할 수 있다. (Jaworska, 1999, pp. 105–138) 삶에 대한 일관된 서사는 개인이 갖는 가치관과 항상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스스로에게 바람직하고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대상을 선택하는 과정은 자율성이 내재되어있다고 볼 여지가 존재하나, 이러한 선택이 무조건 삶 전체를 일관된 가치 체계에 근거하여 내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첫번째 전제에서 자율성은 통합적 삶을 구상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논의는 비약이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기로 다짐한다면 이는 부모의 가치관에 따른 자율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갖는 시점과 부모의 삶 전체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였을 때, 부모의 선택은 통합적인 삶을 계획한 결과가 아니다. 치매 환자는 본인의 일관된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고 보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 (Shiffrin, 2004, p. 205) 치매로 판정받는 시점부터 치매의 정도가 심해지는 과정 전반에서 특정한 대상에 대한 일관된 선호를 보이고,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통제하고자 하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두번째 전제에 제시된, 치매 환자는 통합적인 삶을 구성하는 조건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는 반박 가능하다.
가치 평가와 통합적인 자율성 행사의 차이점
어떠한 선택이 개인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비판적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에 따른 행동은 깊은 도덕적이거나 합리적인 이유를 고려하는 것과 구별되어야 한다. 표면적으로 가치에 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이유에는 무감각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은 자신의 미래 만족과 정체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재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장기적으로는 더 낮은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개인 가치에 따른 선택이 미래의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비판적 이익을 극대화하지 못한다. 자율적으로 가치를 ‘선택’하여 변경하는 것과, 질병으로 인해 과거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Sergeant, 2025, pp. 381–88, Jongsma, 2020, pp. 90–92) 치매 환자의 가치와 선호 변화는 후자에 해당한다. 치매 환자가 치매 발생을 기점으로 일관되고 뚜렷한 가치를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다른 욕구를 보이는 것은 성찰과 통합적 삶을 고려한 재평가의 결과가 아니라 신경학적으로 손상된 비자발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이는 뇌종양으로 인해 뇌가 물리적으로 손상되어 성격이 변한 사람의 새로운 선호를 그의 진정한 선택으로 보기 어려운 것과 같다. 따라서 치매 환자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는 통합적인 삶을 구상하는 능력이 여전히 결여되어있으며, 그의 선택은 자율적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결론
본 글은 사전의료지시서와 말기 치매 환자의 의사가 대립하는 경우, 어떤 판단이 도덕적으로 우선하는지를 자율성과 통합적 삶의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두 전제를 연역적인 구조로 설정하였다. 첫째, Dworkin의 논의와 자율성의 중요성을 논증한 Kant의 견해를 중심으로 자율성은 단순히 외부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통합적 서사로 구성하고 그 가치와 신념에 근거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보존된다. 둘째, 말기 치매 상태는 이러한 통합적 관점을 유지하기 위한 인지적 조건을 침해하므로 치매 이후의 선택은 삶 전체의 자율적 판단을 반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지 기능이 온전한 시기에 작성된 사전의료지시서가 말기 치매의 현재 선호보다 더 자율적이며 규범적 권위를 지닌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어서 치매 환자도 여전히 도덕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능력을 지닌다는 반론을 고려하였으나, 오히려 치매 이전의 선택을 우선시 하는 것이 환자의 전체적 삶의 일관성과 자기 결정의 연속성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입장은 Dworkin의 입장을 계승하되 그 근거를 통합적 서사 개념과 인지 조건의 분석을 통해 더 체계적으로 다듬음으로써, 기존 논의보다 자율성의 시간적, 서사적 속성을 정밀하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Jaworska나 Shiffrin이 제시하는 현재의 가치 중심 접근과 달리, 본 글은 자율성을 전체적 행위자에 대한 개념으로 재구성하여 말기 치매 상태의 자기 정체성 붕괴가 왜 도덕적 판단의 구조를 바꾸는지 설명한다. 기존 연구가 환자의 현재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윤리적 직관을 강조한 반면, 본 글은 향유적 이익과 비판적 이익의 구분을 다시 조명하여 고도의 인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도덕적 자기 규율이 왜 환자의 전체적 자율성 보존에 더 적합한 기준인지를 제시하였다. 개인의 자율성은 시간적 연속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할 때 더욱 분명해지며, 인지 능력의 상실이 자율성과 통합적 삶의 근본 조건을 붕괴시킬 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규범적 권위 이동은 정당화될 수 있다. 이는 치매 상황뿐 아니라, 의사결정 능력 상실이 발생하는 다양한 질환 혹은 노화의 말기 단계에서 자율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순수한 규범 윤리적 분석에 국한되며, 법적 제도 설계나 사전의료지시서의 구체적 절차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또한 치매 환자의 모든 선호를 도덕적으로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자아의 조건이 상실된 말기 단계에서 생명 연장 여부와 같은 중대한 의료 결정의 규범적 근거가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따라서 이 결론은 치매 환자를 도덕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삶 전체를 통해 구성했던 가치와 자기 서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본 글이 치매 환자의 존엄과 자율성을 가장 깊은 층위에서 수호하기 위한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생명의 지배영역 :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 / 로널드 드워킨 저 ; 박경신, 김지미 [공]역.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의료법연구소, 2008.
Dworkin. 생명의 지배영역 :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 / 로널드 드워킨 저 ; 박경신, 김지미 [공]역.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의료법연구소, 2008.
외국 문헌
Buford, Christopher. “Advance Directives and Knowledge of Future Selves.” Humanities &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vol. 3, no. 1, 2017.
DeGrazia, David, and NetLibrary, Inc. Netlibrary, Inc. Human Identity and Bioethics [Electronic Resour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Dworkin, R. M. Life’s Dominion : An Argument about Abortion, Euthanasia, and Individual Freedom 1st ed.., Knopf, 1993.
Jaworska, Agnieszka. “Respecting the Margins of Agency: Alzheimer’s Patients and the Capacity to Value.” Philosophy & Public Affairs, vol. 28, no. 2, 1999.
Jongsma, Karin Rolanda, and Suzanne van de Vathorst. “Beyond Competence: Advance Directives in Dementia Research.” Monash Bioethics Review, vol. 33, no.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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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t, Immanuel. Groundwork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 Translated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Christopher Bennett, Joe Saunders, and Robert Stern. First edition.., 2019.
Maslow, Abraham H. Motivation and Personality 2nd ed.., Harper & Row, 1970.
Sergeant, Anand. “The Problem of Value Change: Should Advance Directives Hold Moral Authority for Persons Living with Dementia?” Bioethics, vol. 39, no. 4, 2025.
Shiffrin, Seana Valentine, and Justine Burley. “Autonomy, Beneficence, and the Permanently Demented.” Dworkin and His Critics: With Replies by Dworkin, Blackwell Publishing Ltd,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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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orkin의 저서 Life’s Dominion: An Argument about Abortion, Euthanasia, and Individual Freedom 중 제 8절 Life Past Reason에서의 ‘Critical Interest’를 ‘비판적 이익’으로 번역하였다. 혹자는 critical의 의미가 ‘비판적’이라는 의미보다 ‘중대한 이익’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전의료지시서와 같은 문제에서 치매 등으로 인해 현재의 ‘향유적 이익 (experimental interests)’만이 남아있는 환자도 과거에 설정한 이해관계를 존중해야한다고 주장한 점에 주목하여 ‘중요한 이익’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Dworkin이 구분한 이익 중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과 구별됨을 드러내기 위해서와, ‘비판적인’이 disapproving만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비판적인’으로 본 글에 활용하였다. Life’s Dominion: An Argument about Abortion, Euthanasia, and Individual Freedom의 국내 번역본 『생명의 지배영역: 낙태, 안락사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국내 논문 「환자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에 관한 연구 - 로널드 드워킨의 생명 이해를 중심으로」에도 ‘비판적 이익’으로 번역되었으므로 보편적인 활용을 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