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07-02 김준형

[제목]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와 경제 발전 사이 필요조건 관계의 미성립: ‘개발 독재’ 신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서론

국가의 경제 성장에 있어, 강력한 중앙집권적 리더십과 통치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핵심 요소로 여겨져왔다. 특히 20세기 후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의 괄목할만한 성장은 이러한 발전국가모델, 개발 독재 옹호론 등에 강력한 경험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위의 입장에서는 탈중앙적 정치 체제의 다원성이, 초기 경제개발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주장하며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의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제언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등이 주장했던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 등의 담론은 특히 이러한 시각을 대변하며, 서구식의 민주주의가 아시아의 문화적, 경제적 토양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들은 특정한 성공 사례에만 주목하여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더 나아가 필요조건으로 오해한 논리적 비약일 가능성이 있다. 센(Sen 1999)과 같은 학자들은 발전 자체가 자유의 확장을 의미하며, 억압적인 형태의 체제 없이도 경제적 번영이 가능함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배로(Barro 1996)의 연구는 민주주의와 성장의 관계가 단순한 선형이 아니며, 법치의 확립이 성장의 더 본질적인 요소임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이러한 선행 연구들은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성장을 위한 유일하고도 필연적인 경로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점을 남긴다.

이러한 의문에 기반하여, 본 논고의 핵심 목표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는 경제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라는 명제에 대한 논증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본 논증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첫째, 본 논고가 논증하고자 하는 핵심 대상으로써의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정의하기 위해, 정치 체제를 정치 제도와 문화의 측면에서 분류하고,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다. [2] 둘째, 경제 성장의 직접적인 원인은 위와 같이 구분된 형태로써의 정치 체제 그 자체가 아니라, ‘수출주도 산업화’나 ‘사유재산권 보장’과 같은 구체적인 ‘경제 정책’과 ‘제도’에 있음을 밝힌다. 이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그 자체로 성장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 해당 정치 체제 하에서 채택된 특정한 부류의 정책이 성장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을 규명하는 과정이다. [3] 셋째, 성장을 견인하는 이러한 합리적 정책들이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아닌 국가들에서도 충분히, 혹은 더 성공적으로 채택되고 실행되었음을 실증적 사례를 통해 논증한다. 이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입증하는 결정적 반례가 된다. [4] 마지막으로, 해당 국가들에서 나타난 요인들을 ‘실질적 중앙집권성’로 재해석하려는 예상 반론을 검토하고, 이에 대해 민주주의의 제도적 요소라 할 수 있는 경합성과 책임성을 들어 재반박함으로써 논의를 종결하고자 한다.

본론

경제 성장의 직접적 동인: 정치 체제와 경제 정책의 구별

정치 체제에 대한 분류와 이론적 정의

우선 정치 체제와 경제 발전 사이의 필요조건 관계를 엄밀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먼저 독립변인이 되는 ‘정치 체제’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논의들은 주로, 단순히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평면적 이분법으로 나누는 형태로만 분류해왔다. 다만 본고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크게 ‘정치 제도’와 ‘정치 문화’라는 두 가지의 기준을 바탕으로, 각각의 혼합과 교차를 통해 정치 체제를 분류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기준은 ‘정치 제도’의 측면이다. 정치 제도의 측면은 정치 공동체에 대해 명문화된 형태로 헌법/법률이나 제도적 측면에서 규율되어 있는 요인을 종합하여 분류한다. 이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요소로 셰보르스키(Przeworski) 등이 제시한 최소주의적 정의에 따르면, ‘정기적이며 경쟁적인 선거의 존재 여부’, ‘현직자의 안정적 퇴임 가능성’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정치 제도의 측면을 양분하자면, 경쟁적 선거와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민주주의 제도’와,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결여되거나 형해화된 ‘권위주의 제도’로 구분될 수 있다.

두 번째 기준은 ‘정치 문화’ 혹은 ‘실질적 권력 구조’의 측면이다. 정치 문화의 측면은 정치 공동체에 대해 비명문화된 형태로 작용하는, 공동체의 역사나 전통, 사회적 맥락 하에서 행위되는 요인을 종합하여 분류한다. 본고는 이를 의사결정 권한의 집중도에 따라 ‘높은 중앙집권성’과 ‘낮은 중앙집권성’으로 분류한다. 높은 중앙집권성은 행정부 수반이나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일관적인 하향식(Top-Down) 정책 추진이 가능한 상태를, 낮은 중앙집권성은 권력이 입법, 사법, 행정 및 지방 정부로 분산되어 상호 견제가 활발한 상태를 지칭한다.

  높은 중앙집권성 (분립성 낮음) 낮은 중앙집권성 (분립성 높음)
권위주의 제도 (A) 독재 체제 성립 어려움
민주주의 제도 (B) 중앙집권적 민주주의 (C) 분산적 민주주의

위의 분류를 통해, 4가지의 항으로 이루어진 정치 체제 분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이 가운데 각 기준의 본질을 고려해볼 떄, [낮은 중앙집권성 - 권위주의 제도]의 혼합 형태는 성립이 어렵다. 권위주의는 필연적으로 특정 개인 혹은 정당, 정부 기관으로의 권력의 집중을 전제로 하는데, 이는 높은 중앙집권성에 따르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에 대한 이론적 정의

기존의 ‘발전국가모델(Developmental State)’이 옹호하는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은 (A)와 (B)가 공유하고 있는 교집합, 바로 높은 중앙집권성이다. 즉, 제도적인 민주적 절차의 유무와는 별개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자원을 일사불란하게 배분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능력과 정책적 자율성이 경제 발전의 필수 조건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본고의 논증 대상은 (A)와 (B)를 포괄하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 전반이며, 이것이 경제 발전과 필연적인 인과관계, 즉 필요조건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범주화는 논의의 초점을 단순 제도의 차원에서, 중앙집권 대 분산이라는 정치 문화 전반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경제 발전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중앙집권에 기반한 신속하고 일관된 의사결정 그 자체라면, (C)와 같은 ‘분산적 민주주의’ 혹은 낮은 중앙집권성을 가진 체제에서는 고도 경제 성장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중앙집권성이 낮은 체제에서도 성공적인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면, 혹은 중앙집권적 체제가 오히려 경제적 비효율과 실패를 초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면,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는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다”라는 명제는 거짓이 될 것이다. 따라서 본 논고는 권위주의 독재뿐만 아니라 중앙집권적 민주주의까지 포함한 권력 집중형 모델이 경제 성장을 보장하는지, 그리고 반대로 권력 분산형 모델은 성장에 저해가 되는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중앙집권 신화의 비필연성을 밝히고자 한다.

정치 체제 그 자체와 정책 변수의 분리

위에 의해 분류된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라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기제들이 오직 높은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 하에서만 배타적으로 성립되거나 발현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개발 독재’ 옹호론이나 중앙집권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주장들의 가장 큰 논리적 맹점은 독립변인인 정치 체제(Regime type)와 매개변인 혹은 실질적 원인인 경제 정책(Economic policy)을 혼동하는 범주 착오에 있다. 경제학적으로 실질적인 성장을 이끄는 실질적인 동인은 ‘수출주도산업화’(ELI, Export-Led Industrialisation)나 ‘수입대체산업화’(ISI, 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와 같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 비교우위에 입각한 개방적 무역 정책, 인적자본에 대한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투자 등이 그 성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권력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는가에 관한 정치 체제 그 자체에 귀속되는 속성이 아니라, 그 체제 하에서 개별적으로 선택되고 집행되는 정책의 내용 영역에 속한다. 즉, 중앙집권적 체제 자체가 성장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 하의 행위자가 우연적 혹은 전략적으로 선택한 성장 친화적 정책(ELI, ISI 등)이 성장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증적 근거로, 셰보르스키와 리몽기(Przeworski and Limongi, 1993)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권위주의를 포함한 중앙집권적 체제는 민주주의나 분산적 체제에 비해 경제 성장률의 표준편차가 훨씬 크게 나타나낟. 이는 높은 중앙집권성이 경제 성장을 일관되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의적 선택이나 재량권에 따라 결과의 격차가 크게 발생함을 시사한다. 한국(박정희)과 싱가포르(리콴유)와 같이, 중앙집권적 체제 하의 지도자가 수출주도산업화와 같은 효율적 정책을 우연적 혹은 전략적으로 선택했을 경우, 신속한 집행을 통해 높은 성장을 달성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같은 체제 하에서 북한이나 미얀마와 같이 약탈적 경제 정책이나 비합리적 자원 배분이 선택되었을 경우, 이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 하에서의 견제 장치의 부재로 인해 극심한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는 그 자체가 경제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기보다는, 그 아래에서 채택된 정책의 효과를 어떤 방향으로든 증폭시킬 수 있는 가속 페달로서의 기능적 도구에 그친다고 보아야 한다. 성공한 중앙집권적 국가들의 사례와 그 원인은 단순히 그들이 권력을 집중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집중된 권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시장 친화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을 집행하였기 떄문이다. 즉, 경제 성장의 직접적 원인은 권력의 집중 그 자체가 아닌, 합리적 정책에 따른 집행으로 분리되어야 하며, 이는 위에서 언급한 합리적 경제 정책(ELI, ISI 등)을 수행할 수 있는 배경이라면 권력이 분산된 체제 하에서도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이행될 수 있다.

비중앙집권적(분산적) 체제 하에서의 합리적 경제 정책 채택과 성장

분산적 체제 하에서의 합리적 경제 정책 채택 가능성

앞서 논증한 바와 같이, 경제 성장의 직접적인 동인은 ‘중앙집권적 체제’라는 요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우연적 또는 전략적으로 채택된 ‘성장 친화적 정책’이라는 내용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합리적 정책들이 중앙집권적이지 않은 체제, 즉 권력이 분산되고 상호 견제가 작동하는 ‘분산적 민주주의(C)’ 혹은 ‘낮은 중앙집권성’을 지닌 체제 하에서도 성공적으로 채택되고 수행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실증적 사례들은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라는 명제를 논리적으로 기각하는 결정적 근거이자 반례가 될 수 있다.

실증적, 경험적 사례 연구 (1): 보츠와나와 일본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각종 실증적, 경험적 사례들은 높은 중앙집권성이 부재하거나 권위주의적 강압이 배제된 상태에서도 위에서와 같은 효율적인 경제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의 보츠와나(Botswana) 사례나 전후 일본의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아세모글루 등(Acemoglu, Johnson, and Robinson, 2003)의 분석에 따르면, 보츠와나는 주변국들이 중앙집권적 독재와 내전으로 경제 파탄이나 파산을 경험할 때, 독립 직후인 1966년부터 부족 간의 연합에 기초한 분산적 권력 구조와 다당제 민주주의를 장기적 그리고 안정적으로 유지하였다. 보츠와나 정부는 소수 엘리트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법에 기반한 절차적 통치와 의회 내에서의 다원적 토론을 통해 개인의 사유재산이나 소유권을 엄격히 보호하고, 광물 자원 수출을 통해 형성된 수익을 교육과 인프라 구축에 재투자하는 형태로, 수출주도산업화와 유사한 결의 합리적 경제 정책을 채택하였다. 이는 민주적 합의와 견제의 과정이, 오히려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함으로써 장기적 성장을 견인하였음을 시사한다.

전후 일본의 사례 역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비록 자민당(自民黨)의 장기 집권 형태로 정치 질서가 이행되었으나,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당내 파벌 간의 치열한 경쟁과 관료제, 재계, 시민사회의 견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다원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 센(Sen, 1999)은 일본의 경제적 성공이, 단순히 권위적(중앙집권적) 통제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교육 등 공공 부문에 대한 투자를 가능하게 했던 민주적 책임성과 참여적 구조에서 기인했다고 평가했다. 분산된 권력 구조 하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합리적 정책을 도출해내는 제도적 역량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는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과정이 아니며, 분산적 체제 역시 충분히 성장의 경로를 밟을 수 있다.

실증적, 경험적 사례 연구 (2): 북유럽 국가들

이에 더해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분산적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단순한 양립 가능성을 넘어,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분권형 모델이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노동조합, 사용자 단체, 그리고 정부가 수평적 관계에서 경제 정책을 협의하는 민주적 조합주의(Democratic Corporatism, 혹은 신조합주의) 모델을 채택해 왔다. 카젠스타인(Katzenstein, 1985)은 이와 같은 북유럽의 작은 국가들이 개방 경제 체제에서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 중앙집권적 명령이 아닌, 다양한 사회 집단 간의 정치적 타협과 보상이었음을 주장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리더십 없이도, 사회적 집단 사이에서의 대타협을 통해 임금 안정을 유도하고, 고율의 세금을 통해 축적된 자본을 교육이나 복지와 같은 인적 자본과 R&D 연구 개발에 보다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아세모글루와 로빈슨(Acemoglu and Robinson, 2012)에 따르면, 이는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가 아니라, 다수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그 과실을 공유하는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가 장기적인 기술 혁신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기능함을 시사한다. 즉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경제 성장이 중앙의 지시와 통제가 아닌 다원적 집단 간의 자율과 혁신을 통해서도 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의 경제 성장에의 필요조건 작용 가설을 기각하는 또다른 경험적 증거이다.

‘실질적 중앙집권성’이라는 반론과 정치적 책임성에 기반한 재반박

‘실질적 중앙집권성’에 기반한 반론 제기

위와 같은 본고의 주장에 대해,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실질적 중앙집권성에 대한 주장과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전제에서 반례로 제시된 보츠와나나 전후 일본, 혹은 북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형식적으로는 탈중앙의, 분산적 민주주의나 제도를 갖추었을지 모르나, 실질적인 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높은 중앙집권성이 작동했기에 성장이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자민당(自民黨)이나 보츠와나민주당(BDP)은 과거 각각 38년, 58년 간 의회 다수석을 점유하며 사실상의 일당 우위 체제를 구축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본고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러한 국가의 경제 성장이 가능했던 핵심 요인은 제도적 분산성이 아니라, 우위에 위치한 여당이 행정부와 연합하여 사실상 야당의 반대를 무력화하고, 일관된 하향식(Top-Down) 정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중앙집권적 리더십에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즉 위의 사례들이 앞선 표의 분류에서의 (C)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B) 유형인 중앙집권적 민주주의에 해당하며, 결국 경제 발전은 어떤 형태로든 권력의 집중을 필요조건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경합성에 기반한 책임성과 중앙집권적 자의성의 구분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정치적 안정성을 중앙집권적 강압과 혼동한 결과이며, 분산적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작용하는 요소인 ‘경합성’(Contestability)의 기능을 간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된 해당 국가들의 체제는, (A)유형의 독재나, (B)와 같이 견제가 어려운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셰보르스키 등(Przeworski et al., 2000)은 제도의 측면에서 우선 민주주의((B)/(C))와 권위주의(A)를 가르는 핵심 기준으로써 ‘주기적이고 경쟁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이 평화적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가?’의 여부, 즉 경합성을 제시한다. 일본, 보츠와나, 일부 북유럽 국가들에서 결과론적으로 특정한 정당이 장기 집권하며 정책적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경합성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 국가에서는 합법적이고 경쟁적인 야당의 존재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집권세력이나 여당은 언제든 선거에서 패배하여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잠재적 위협 하에 놓여 있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55년 이래 38년 동안 구축되었던 소위 ‘55년 체제’가 1993년 내부 부패 스캔들과 분열 등으로 인하여 막을 내렸고, 실각하기도 하였다. 보츠와나에서도 2024년 총선에서, 경기 침체 등에 대한 국민적 비판 분위기 속에서 보츠와나민주당이 4위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보츠와나의 마시시 대통령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평화적 정권 이양을 진행하며 분산적 민주주의 요소가 실현되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제도화는 집권 세력으로 하여금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거나 약탈적 정책을 펼치는 대신,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공재 공급이나 경제 성장을 이룩하도록 촉구하는 ‘책임성’을 부여한다. 즉, 이들 국가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것은 정책 실패 시에도 책임 부과나 수정의 어려움을 가져오는 ‘권력의 중앙집중화’ 그 자체가 아니라, 정책 실패 시에 정권을 잃을 수 있다는 위협에 기반한 책임성 있는 정치적 안정이었고, 이에 기반한 성과를 통해 지속적인 집권에 성공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즉 궁극적으로 성공한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중앙집권적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적 경합성에 기초한 효과적 정책의 채택이며, 이는 권력 분산형 모델 내에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실질적인 장기 집권이나 운영상의 리더십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곧바로 중앙집권성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중앙집권성은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결론

위의 논증을 통해, 본고는 권위주의적 제도를 포함한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가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라는 일반적 인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논의 과정을 요약하자면, 경제 성장을 이끄는 실질적인 동인은 ‘중앙집권성’이라는 정치 체제의 형식이 아니라, 그 속에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시장의 형성을 조장하는 구체적인 개별적 정책들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보츠와나, 전후 일본, 그리고 북유럽 국가들의 실증적 사례는 위에서의 합리적 정책들이 낮은 중앙집권화와 민주주의 제도의 결합을 통해 형성된 분산적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도 사회적 합의와 제도를 통해 충분히, 혹은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나아가 위 사례들을 실질적 중앙집권성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들에 대해서도, 분산적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인 경합성과 이에 기반한 책임성으로 재반박하였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권력의 집중이 성장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논리적으로 입증하였다.

본 논의는 경제 발전을 위해 분산적, 민주적 절차를 유보하고 권력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담론의 위험성과 비필연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의의를 지닐 것이다. 본고의 분석은 경제 발전의 핵심이 지도자의 자의적 결정을 보장하는 권력의 집중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 실패를 교정하고 합리적 선택을 유도하는 책임성 있는 정부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Acemoglu, D., & Robinson, J. A. (2012). 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 Crown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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