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07-07 신주혁

제목: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서론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를 둘러싼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는 단지 사회적 거부감에 의존하여 설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예술 소비라는 행위 자체의 도덕적 속성에 기초하여 설명되어야 한다. 예술 소비라는 행위가 어떤 이유로 도덕적 판단의 대상에 해당하는지, 될 수 있다면 소비 행위의 윤리성을 판단하는 척도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전제하지 않은 가치 판단은 감정이나 여론에 호소하는 그릇된 논증으로 귀결될 수 있다. 즉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감상을 선택하는 행위는 어떤 종류의 도덕적 행위인가”의 문제에 대한 답변을 생략한 채로 소비 행위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 논증문은 여기에서 제기되는 ‘예술작품 소비 행위의 도덕적 구조’를 규명하고, 이를 근거로 특정 예술 소비는 도덕적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이 문제를 직접 논의하는 두 축의 학술 논쟁은 각자의 맹점으로 인해 소비 행위 자체의 부당성 규명에는 실패하고 있다. 먼저, 예술 소비의 윤리성을 결과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들은, 작품 소비가 창작자에게 경제적인 보상 혹은 사회적, 예술적 평판이라는 유익한 결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비윤리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Strohl, 2022). 이 관점은 소비라는 행위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작품 소비가 결과를 야기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는 맹점을 지닌다. 예를 들어, 이미 예술가가 사망한 경우, 미술품의 재판매 시장, 무료 전시와 같이 소비의 파급력이 미미한 경우 결과주의자들은 예술 소비 자체의 부당성을 논파하는 데에 실패한다. 다시 말해, 이들의 논의는 예술 소비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할 수 있지만, 예술 소비의 도덕적 성격 자체를 규명하는 일에는 적절하지 않다. 한편, 예술 소비의 윤리를 의무론적 관점에서 다루는 논의들은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가 부당하다는 추상적 호소에 그친다. 그러나 예술 작품의 소비가 어째서 존엄의 훼손이 되는지 그 논리적 연결성에 대한 설명이 추상적이고 관념론적으로만 제시되고 있기에, 이 관점 역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의무론적 연구는 작품 소비 행위 자체가 도덕적으로 그르다고 주장하면서도, 상응하는 근거를 존엄, 인격, 의무와 같은 추상적인 언어로 기술할 뿐 ‘예술 분야’의 존재론적 특성-창작자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과 작품 소비라는 행위-숙고를 향한 자발적 선택-의 본성 모두를 포착하지 못한다. 양자의 논증이 한계를 지니는 이유는 ‘예술 소비의 정당성’에 대한 논증이 ‘예술’의 속성, 그리고 ‘소비’의 속성에 대한 고찰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Strohl의 경우, 행위의 사회적 파급 효과에 대해서만 집중할 뿐 예술과 소비 모두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므로, 파급 효과가 없을 경우 비난의 근거를 마련할 수 없게 된다. Barrett의 경우, ‘창작자의 인격의 연장선상’이라는 추상적인 층위에서나마 ‘예술’의 존재론적 성격을 규명하려 한다. 그러나, ‘소비’에 대한 설명이 제공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술(부도덕) -> 소비 -> 부도덕 사이에 논리적 비약이 생긴다. 기존의 학술적 논의에서 벗어나 예술 소비의 도덕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설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로, 예술 작품이 창작자의 의도를 수용자에게 그것을 설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객체라는, 예술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로, (예술) 소비는 창작자에 대한 정보를 알면서도 작품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라는, 소비에 속성에 대한 전제가 필요하다. 두 가지 전제를 결합해야만, 창작자의 부도덕성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자(소비자)는 과오를 범한 것이며, 반대로 창작자의 부도덕성을 모르고 택했거나 자발적으로 택하지 않은 자는 도덕적 잘못이 없다는 직관에 부합하는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본 논증은 기존 연구의 맹점을 보완하여, 예술의 표현적 속성과 소비의 자발적 속성에 대한 논증을 전제로 예술 소비의 도덕성을 평가한다. 언급했듯, 먼저 ‘소비(consumption)’는 ‘창작자의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음을 전제로 감상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이제 논증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후술할 두 문헌의 관점을 채택하여 각각 전제 1과 전제 2를 구성하고, 두 전제를 토대로 범죄 예술가의 작품 소비가 결과와 무관하게 부당한 것임을 연역적으로 도출할 것이다. 첫째, Murdoch-Panizza의 주의의 윤리(The Ethics of Attention) 도덕철학. Panzza(2019)의 개념을 빌려오면, 대상을 적극적으로 수용(accept)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관심(attention)’의 부여, 즉 대상을 도덕적 고려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승인(approve)의 행위에 해당하고, 이는 도덕적으로 그르다. 주의의 윤리적 관점을 채택함으로써 본 논증은 비도덕적 행위나 태도에 대한 승인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대전제(전제1)를 확립한다. 둘째, 본 논증은 Tolhurst(1984)의 미학적 기능론(aesthetic functionalism)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제 2를 구성한다. (2.1) 우선, 본 논문에서는 ‘소비(consumption)를 ‘감상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라고 정의하는데, 정의에 입각하여 범죄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한다고 함은 그의 범죄 사실을 인지한 채로 그의 작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선택한 행위이다. (2.2) 다음으로 Tolhurst(1984)는 예술작품을 단순한 노동 생산물과 구분하여, 그것을 감상자의 미학적 숙고(aesthetic contemplation)를 일으키도록 의도된(by design) 산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예술품은 창작자의 믿음(belief), 욕구(desire), 의도(intention)가 형식 속에 구현된 표현적 매체(expressive object)이다. (2.3) 그러므로 예술작품의 소비는 비예술적 산물을 소비하는 행위와 달리 작품을 매개로 표현된 ‘창작자의 가치나 태도’를 숙고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승인 행위’이다. (2.4) 따라서 범죄를 저지른 창작자의 경우, 작품 속에 체현된 가치, 태도는 ‘부도덕한 인간’의 그것으로 환원되며, 그러한 작품의 소비는 ‘부도덕한 인간의 내면’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승인하는 행위이다. 네 단계의 논증을 결합하면,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은 비도덕적 가치나 태도에 대한 승인이다라는 전제 2가 도출된다. 궁극적으로, 본고는 위 두 전제를 결합하여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은 범죄 예술가의 비도덕적 태도를 승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본고의 서술 순서는 설명한 논리적 흐름에 입각하여 정리된다. 먼저 1장에서는 Panizza의 논의를 토대로 ‘주의(attention)’ 기반의 도덕 이론을 소개하고 승인의 대상이 도덕 판단의 기준이라는 대전제를 확립한다. 2장에서는 ‘감상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라는 ‘소비’의 정의를 소개하고, 이를 Tolhurst(2019)의 논증과 결합하여 전제2를 도출한다. 예술 ‘소비’ 행위는 예술가의 이력을 알았음에도 작품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행위인데, Tolhurst의 논증에 따라 작품은 예술가의 가치나 태도를 표현하는 매개체이고, 따라서 자발적으로 범죄 예술가의 작품을 선택한 행위는 범죄자의 내면세계에 관심을 기울인(approve) 것이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두 전제들에 입각하여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본론

­­전제1. 비도덕적 행위나 태도를 승인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예술작품 소비의 도덕적 성격 규명을 위해선 먼저 “어떤 종류의 행위가 도덕적 비난이 되는가”하는 근본적 기준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윤리 이론은 이를 대비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해 왔다. 먼저, 결과주의는 ‘행위의 결과’를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기 위한 척도로 삼았다. 예컨대 어떠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쾌락을 증진시킨다면 그것은 선한 행위이고, 반대로 경제적 해악을 끼친다면 이는 비도덕적이다. 결과주의에 따르면, 예술 소비가 부도덕한 창작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줌으로써 유해한 파급효과를 야기한다면 이는 비도덕적이다. 대표적으로, Strohl(2022)은 ‘범죄 예술가에게 material and reputational benefit)’을 제공하기 때문에 범죄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물질적, 명예적 이익(benefit-based argurment”라 명명하여 비판한다. Strohl이 지적하듯, 결과주의적 접근은 아무런 실질적 결과를 낳지 못하는 예술 소비, 대표적으로 예술가가 이미 사망한 경우나 재판매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 혹은 무료로 이루어지는 작품 전시의 경우에 범죄 예술가의 작품 향유가 문제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의무론은 ‘타인의 인격과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추상적 규범을 반복하지만, 예술품 소비 행위가 왜 인격의 훼손인지는 구체적인 층위에서 설명하지 못한다. 전형적으로, Barrett(2019)는 칸트적 인격(personhood)과 존엄(dignity)을 전면에 내세워 ‘immoral artist’의 작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논한다. 그러나, 그의 논증은 “창작자의 가치와 태도를 표현한다”는 예술작품 고유의 특성에 대한 분석에 미치지 못하고 ‘예술은 인격의 연장’이라는 추상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데에 그친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의 예술 소비가 어떤 종류의 행위이며 무엇으로 인해 도덕적/비도덕적 행위가 되는지”를 구조적인 분석에 실패하고 있다. 전통적 이론의 두 갈래는 예술이라는 행위의 고유성을 설명하지 못한 채 예술을 둘러싼 행위를 평가하는 데에 매몰되어, 도덕원칙(많은 쾌락을 창출해야 한다,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과 소비 행위에 대한 도덕원칙 적용 간에 공백을 안고 있다.

아울러, ‘객체의 존재론적 성격’을 일반론적 차원에서 규명하는 기존의 연구만으로는 비예술과 구분되는 범주인 ‘예술 작품’의 소비만이 지니는 고유한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가령, Radin(1982)이 재산권의 근거를 규명하는 차원에서 제시한 인격적 소유론을 이 문제에 적용하면, “창작물에 노동이 개입되었을 때 그것은 인격(personhood)의 발현이 되므로 작품 자체가 비도덕적인 것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예술과 비예술(예: 요리, 공산품)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예술 소비의 고유성’에 대한 고찰을 결여한 접근은 “작품에 인격이 투영되었다” 등의 모호한 비유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왜 ‘예술 소비 행위’가 특별한 도덕적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할 수 없다.

전통적인 관점들에 대한 대안으로, 본 논증은 Iris Murdoch-Silvia Panizza가 해석한 주의의 윤리(The Ethics of Attention)를 채택한다. Panizza(2019)는 Murdoch의 사상을 재구성하여, 도덕적 행위의 핵심이 행위의 의지 혹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는가”(the direction of attention)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도덕적 인식은 외부 세계를 관조하는 기술적인 행위가 아니라, 주의의 방향을 통해 “현실 속에서 어떤 것이 중요하고 무엇에 응답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행위이다. ‘주의를 기울임(Attention)’은 외부 대상을 행위자의 도덕적 고려의 장 안으로 들여오고, 그 대상을 ‘숙고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 행위이다. Panizza가 정식화한 ‘주의’는 승인(approval)이라는 용어의 동치이다. 승인이란 곧 ‘주의의 부여’로, 그 대상을 수용하는 데에서 나아가 ‘응답할 무언가가 있다’고 인정하는 행위이다.

주의의 윤리적 관점에서, 행위의 도덕성은 그 행위가 촉발하는 결과가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떠한 대상을 도덕적 고려의 장 내에 포함시키는지, 그 방향성을 기반으로 평가된다. 고로 비도덕적 대상, 가치, 태도에 대해 주의를 부여함은 그 자체로 승인이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원리가 도출된다. 이 관점은 결과주의와 달리 효과에 대한 고려를 요구하지 않으며, 의무론과 달리 승인 개념을 단순한 심리적 태도가 아니라 ‘도덕적 고려의 장에 대상을 포함시키는 행위’라는 구체적 구조로 정식화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예술 소비의 도덕성을 분석하기 위한 대전제로, “비도덕적 행위나 태도에 주의를 기울이고 승인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명제를 채택한다.

전제2.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은 비도덕적 가치나 태도에 대한 승인이다

확립한 대전제는 비도덕적 가치나 대상, 태도에 주의를 부여하는 행위, 즉 승인이 그 자체로 도덕적 잘못임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범죄 예술가의 작품 소비가 승인에 해당하는가”의 질문에 대해 참이라는 답을 내릴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범죄 예술가의 작품 감상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 이러한 두 번째 전제, 즉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 행위가 비도덕에 대한 승인을 내포함을 논증하기 위해서는 (1) 소비 행위는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2) 예술작품이라는 객체는 여타 생산물과 구분되는 어떤 존재론적 성격을 갖는지, (3) 그렇기에 작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창작자의 내면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단계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부논증의 결과 우리는 예술과 소비의 고유한 특징에서 기인하여, ‘예술작품을 선택하는 소비가 예술가 내면의 가치를 도덕적 고려의 범위 내로 허용하는 행위임’을 도출할 수 있고, 결론적으로 범죄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범죄 예술가의 내면에 대한 승인이라는 명제를 얻는다. 아래는 전술한 네 단계의 세부 논증(2.1~2.4)으로 구성된다.

2.1. ‘소비’는 ‘자발적으로 감상을 선택하는 행위’

작품을 ‘소비(consumption)’한다는 개념은 작품을 우연히, 혹은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감상하거나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작품 소비 행위를 비난할 수 있으려면, 그러한 소비가 앎을 전제로 한 의지적이고 선택적인 행위여야 한다. 본고는 소비를 작품 감상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라 정의한다.

이 정의의 핵심적인 전제사항은, 소비는 작품의 창작자의 이력, 적어도 수상이나 범죄 이력과 같이 대중적으로 그를 정의할 만한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는 점이다. 본고의 주제로 한정하면, 범죄 예술가의 작품을 소비한 자를 비난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작품의 창작자가 누구이며 그의 범죄 이력이 무엇인지를 인지한 상태에서 감상 선택을 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전제에 의하면,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소비는 도덕적 잘못은 아니지만, 반대로 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적 차원의 무관심에서 그 창작자의 작품을 선택하는 무사유적인 태도는 도덕적 잘못에 해당한다. 본고의 초점은 서술한 것처럼 예술가의 범죄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구태여 ‘그 예술가의 작품’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소비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의지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작품을 감상하게 된 경우, 가령 나치 독일의 학생들이 사상교육 목적으로 만들어진 나치 부역자의 선전영화를 단체 관람하게 된 경우에 행위자의 의지와 선택은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감상 행위의 과오를 감상자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다. 오늘날 보편화된 OTT 서비스와 알고리즘을 통한 영상 매체의 자동 재생의 경우처럼 행위자와 무관하지 않지만 자발적인 의지로 이뤄지지 않은 감상(혹은 재생) 행위의 경우 역시 이 논증의 초점이 아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예술 행위 도덕성의 핵심은 야기된 결과가 아니라 승인 여부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본고는 적어도 1) 예술가가 범죄자임을 알고 있음에도 2) 특정 작품을 선택하여 ‘자발적으로’ 주의를 부여한 소비자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됨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2.2. 예술작품은 창작자의 태도나 가치가 표현적으로 체현된 산물

그런데, 범죄 예술가의 작품을 선택한 소비자의 경우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주의를 부여한 대상은 창작자가 아니라 작품이다. 이에 소비자는 그가 예술가 혹은 그의 비도덕적 내면이 아니라 단지 객체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해서 승인했을 뿐이라 항변할 수 있다. 왜 창작자의 과오를 근거로 작품 선택 행위를 비난할 수 있는지 논증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이라는 고유한 객체의 존재론적 특성과 이 때문에 ‘예술 선택’이라는 행위가 지니는 함의를 규명해야만 한다. Tolhurst(1984)의 미학적 기능론(aesthetic functionalism)은 예술작품이 “창작자의 내면을 표현하는 매체”라는 존재론적 성격을 보여 준다.

Tolhurst에 따르면, 예술 작품은 일반적인 객체들-단순히 의지와 노동을 투여한 모든 객체들-과는 구분된다. 우리가 특정 객체들을 ‘예술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감상자의 미학적 숙고(aesthetic contemplation)’를 유발하려는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by design)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믿음(belief), 욕구(desire), 의도(intention)가 형식(formal properties) 속에 구조적으로 표현된 표현적 매체(expressive object)이다.

Goldman의 행위 이론을 적용하여, Tolhurst는 창작의 행위가 아래 세 단계에 따라 창작자의 내면을 구현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1] 창작자는 작품이 감상자의 미학적 숙고를 환기할 수 있다고 믿고(belief), [2] 그러한 숙고가 이루어지길 바라며(desire), [3] 이를 위하여 작품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작한다(intention).

따라서 작품은 전적으로 예술가의 인격적 태도의 결과물이며, 이 점에서 일상적인 산물들(요리, 공산품 등)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비예술적 생산물은 의도된 심미적 반응을 유발하려는 목적으로 창작되지도 않으며, 창작자의 가치와 태도가 형식 안에 구조적으로 반영되지도 않는다. 반면 예술품은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며, 따라서 창작자와의 연결성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2.3. 예술작품 소비는 그 작품에 체현된 창작자의 가치나 태도에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승인 행위이다

이제 예술작품이 ‘예술가를 표현하는 매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은 작품이 매개하고 있는 작가의 내면에 대한 관심에 해당함을 도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작품의 소비가 무엇에 대한 주의인가”의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다.

공산품이나 음식은 존재론적으로 창작자의 가치를 체현한 것이 아니고, 이 때문에 그것의 이용이나 향유는 ‘숙고’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반면,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가치나 태도를 구현한 산물이며(2.2), 고로 예술의 이용이나 향유(감상)는 반드시 창작자의 가치에 대해 인식적으로 접속하여 숙고할 것을 요구한다. (2.1)은 ‘예술작품 소비’를 ‘자발적으로 감상하기를 선택하는 행위’에 한정했다. 이제 특정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창작자의 가치나 태도를 표현하는 매개물에 시간과 자원을 할당하겠다는 의지적인 결정, 한마디로 ‘숙고에 대한 선택’이다.

이는 Murdoch-Panizza가 설명한 ‘주의(attention)의 부여’와 정확히 부합한다. 주의란 대상에 대한 단순한 관조가 아니라 그것을 도덕적 고려의 장 안에 들이는 인식적이고 가치가 개입되는 행위이다. 결국 작품 감상은 다음 구조를 갖는다:

[1] 작품은 작품은 창작자의 가치나 태도를 형식 안에 구현한 매체이다. [2] 소비자는 이를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감상한다. [3] 감상은 표현된 ‘예술가의 가치’에 대한 숙고(미학적 반응)를 수행한다. [4] 숙고를 선택한 자발성은 소비 행위를 곧 주의(attention)의 부여, 즉 승인(approve)의 행위로 만든다.

정리하자면, 예술 선택은 특정 예술가의 내면에 대한 숙고(감상)를 자발적, 의지적으로 선택한 행위이기 때문에 그 선택은 곧 예술가의 내면에 대한 승인(approve)이다.

2.4. 따라서 범죄를 저지른 창작자의 작품 소비는 ‘부도덕한 인간’의 가치나 태도에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이다

전제 2의 세부논증은 결국 “창작자가 범죄자라면, 그의 ‘작품’ 소비 행위가 비도덕한 가치나 태도에 대한 승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수렴한다.

(2.1)~(2.3)의 논증에 따라,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다:

  • (2.1)에 따라, 예술작품 소비는 예술가의 이력을 안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내린 선택이다.
  • 그리고 (2.2)에 따라,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믿음, 욕구, 의도를 표현한 매개물이다. 결국 작품 감상 행위는 예술가의 가치나 태도를 숙고하는 행위이다.
  • 그런데 소비는 자발적인 선택이므로, 예술 소비는 예술가의 가치나 태도에 ‘숙고의 장’ 안에서 주의를 부여하는 행위, 곧 예술가에 대한 승인 행위이다.

여기서 예술가가 범죄자일 경우, 그러한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범죄자의 가치나 태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 즉 범죄 예술가에 대한 승인이다. 적어도 범죄 예술가를 부도덕한 예술가라 말할 수 있다면, 그의 작품 소비는 작품에 의해 매개된 부도덕한 인간에 대한 승인이 된다.

(2.1)~(2.4)의 네 단계 논증을 종합하면 연역적으로 다음 전제가 성립한다: 전제 2.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창작자의 비도덕적인 가치, 태도에 대한 승인이다.

전제 3. 범죄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전제 3은 전제1과 전제2를 종합하여 도출된다.

  • 전제 1: 비도덕적 행위나 태도에 대한 승인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 전제 2: 범죄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그 창작자의 비도덕적 태도에 대한 승인이다. 따라서 다음의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전제 3.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옳지 않다.

본고가 도출한 결론은 범죄 예술가 작품의 소비를 창작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거나, 감상자로 하여금 비도덕적 태도에 공감하고 그것을 함양하게 하거나, 어떠한 의무를 위배했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이유는 예술 소비 행위의 내재된 구조 자체가 도덕적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즉, 소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와 무관하게, 작품 소비는 주의의 부여(승인)라는 도덕적 행위 자체를 구성한다는 사실과, 비도덕적 대상에 대한 승인이 필연적으로 비도덕적이라는 주의의 윤리적 명제에 의거하여 우리는 범죄 예술가의 작품 소비를 비난할 수 있다.

결론

본 논증문은 범죄를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 소비가 왜 부당한지에 대해 감정이나 직관이 아니라 ‘예술 소비’ 행위 자체의 구조를 근거로 설명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같은 논제에 대한 결과주의적 논증, 의무론적 논증을 비롯한 인격론적 논증이 근본적인 한계점을 안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결과주의는 무료 전시나 사망한 예술가의 작품 소비처럼 사회적 결과가 사라질 경우 행위의 비도덕성을 설명할 수 없으며, 의무론을 비롯한 인격론은 도덕원칙과 예술 소비 행위 간의 연결성을 해명하지 못한다.

이에 본 논증은 Murdoch-Panizza가 제시한 주의의 윤리와 Tolhurst의 미학적 기능론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도덕성 판단 척도를 제시하였다. Panizza에 따르면, 행위가 창출하는 결과가 아니라 어떤 대상에 주의를 부여하는가, 다시 말해 무엇을 ‘승인’하는지가 도덕 판단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비도덕적 대상, 가치, 태도에 대한 주의는 그 자체로 비도덕적이다(전제1). Tolhurst에 따르면 예술품은 창작자의 가치나 태도가 형식을 매개로 구현된 표현적 매체이기에, 이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소비’는 작품에 체현된 가치, 태도를 숙고하는-주의를 부여하는-승인 행위이다. 창작자가 범죄자라면, 그의 작품 소비는 ‘부도덕한 인간의 가치와 태도’에 대한 승인에 해당한다(전제2). 두 전제를 결합하면, 범죄 예술가의 작품 소비는 도덕적으로 그르다는 결론이 도출된다(전제3).

결론의 핵심적 기여는, 기존 논쟁이 경시해 온 예술 소비의 내재적 구조를 도덕적 평가의 단초로 삼았다는 점이다. 예술작품이라는 객체의 존재론적 고유성을 간과했던 의무론 및 인격적 소유론의 접근과 달리, 본 논문은 ‘미학적 기능론’을 토대로 ‘예술’ 소비가 비예술적 소비와 다른 차원의 도덕적 함의를 지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예술 소비의 고유성’을 논리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비라는 주의-할당 행위가 그 자체로 도덕적 잘못임을 논증하였기 때문에, 본고는 공리주의적 접근과 달리 “결과가 없는 소비”에 대해서도 일관된 평가를 가능케 하였다. 정리하면, 본 논증은 예술이라는 분야의 존재론적 고유성을 설명하고 이에 입각하여 도덕 판단을 제시한 최초의 설명이라는 함의를 지닌다.

다만, (2.1)에서 ‘소비’를 정의하며 논했듯, 본문의 논증은 작가의 범죄 사실을 인지했음을 전제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감상에 한정되며, 무지·강제·교육적 맥락의 감상은 포괄하지 않는다. 또한 본 논증은 도덕적 평가를 내리고 있을 뿐, 작품의 전시 금지 혹은 창작에 대한 법적 규제의 필요성과 같은 제도적 차원의 주장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Radin, M. J. (1982). Property and personhood. Stanford Law Review, 34(5), 957–1015.

Panizza, S. (2020). Moral perception beyond supervenience: Iris Murdoch’s radical perspective. The Journal of Value Inquiry, 54(2), 273-288.

Tolhurst, W. (1984). On what a text is and how it means. British Journal of Aesthetics, 24(3), 227–232.

Matt Strohl (2022) Why It’s OK to Love Bad Movies (Oxford UP), ch. 5 “The Ethics of Separation”

Barrett, J. M. (2019). Moral Rights and Immoral Artists. SS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