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07-04 홍용찬
제목: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강제조치의 권위 결함에 대한 규범적 분석
서론
국제사회에서 경제적·외교적 제재는 군사력에 비해 “평화로운” 강제수단으로 자주 제시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부과된 대규모 경제제재, 북한·이란을 겨냥한 제재, 미·중 갈등 속에서의 관세 보복 등은 모두 국제규범의 위반에 대한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때 사용되는 강제수단들은 법적·제도적 구조에서 서로 중요한 차이를 갖는다. 유엔 헌장 제41조에 근거한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중앙집중적 기관의 결정을 통해 집행되는 반면, 국제법상 대응조치(countermeasures)는 선행 위법행위의 피해국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집행하는 자력구제(self-help)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Crawford 2002).
기존 윤리적 논의는 주로 “제재(sanctions)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Gordon(1999)은 포괄적 경제제재가 민간인에게 비가시적이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Fabre(2018)와 Pattison(2015)은 인권 보호나 침략 억지를 위해 경제제재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이 논의들은 대체로 “어떤 경우에 제재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방향으로 전개되며, 그 전제에는 일정한 제도적 틀 속에서 행사되는 강제, 특히 유엔 제재나 다자 제재가 자리하고 있다.
반면 국제법이 별도의 개념 범주로 규율하는 대응조치, 즉 피해국이 선행 국제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취하는 비무력적 강제조치의 윤리적 정당성은 상대적으로 덜 분석되어 왔다(Ruys 2017; Crawford 2002). 특히 대응조치는 선행 위법성의 존재, 필요성, 비례성, 종료 시점 등 핵심 판단을 모두 피해국 자신의 판단에 맡기는 구조를 갖는다. 다시 말해, 대응조치는 법적으로는 허용되지만 제3자의 승인이나 심사 없이 “분쟁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의 사건에서 판사이자 집행자가 되는” 구조를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한 권위(legitimate authority)의 결여라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다.
이 글의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정당한 제3자 권위를 결여한 채 피해국의 자기판단에 의존하는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ARSIWA가 허용하는 의미에서의 대응조치가 정당한 강제조치로 평가되기 위한 최소한의 권위·절차·책임성 조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1장에서는 대응조치와 제재를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왜 이 글이 제재가 아니라 “대응조치”에 초점을 맞추는지 설명한다. 2장에서는 Raz(1986), Buchanan & Keohane(2006), Lefkowitz(2020), Fabre(2018), Pattison(2015)의 논의를 바탕으로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관한 규범적 틀, 특히 정당한 권위의 필요조건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이 규범적 틀을 ARSIWA의 대응조치 규정에 적용하여, 대응조치가 구조적으로 정당한 권위를 구성할 수 없다는 논증을 전개한다. 4장에서는 피해국 권리론, 분산된 권위 위임론, 비이상 이론적 “차선의 정당화” 논변 등 세 가지 반론을 검토하고 재반박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논의를 정리하며 대응조치를 둘러싼 규범적 언어와 제도 설계에 주는 함의를 제시한다.
이 글의 핵심 논제는 다음과 같다. ARSIWA가 허용하는 의미에서의 대응조치는 본질적으로 강제조치이지만, 그 설계상 정당한 권위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이 논제는 대응조치가 현실의 국제정치에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강제조치의 정당성 기준과 대응조치의 제도적 구조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고, 그 긴장 속에서 대응조치가 갖는 규범적 결함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1. 대응조치와 제재: 개념, 제도적 차이, 딜레마
1.1 국제법상 대응조치의 개념
국제법위원회(ILC)가 2001년에 채택한 국가책임 초안(ARSIWA)에 따르면, 대응조치는 “다른 국가의 국제위법행위로 인한 피해국이 그 국가가 의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로 정의된다(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arts. 22, 49). 평상시 같으면 위법이 되는 행위(예: 조약 의무의 이행 정지)를 상대국의 선행 위법행위에 대한 반응으로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구조이다. Crawford는 이를 “피해국이 취할 수 있는 자력구제의 핵심 형태”로 설명하며, 피해국이 직접 위법국의 이해관계에 손해를 가해 그 행태를 변화시키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강제적(coercive) 성격을 지닌다고 분석한다(Crawford 2002).
ARSIWA는 대응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조건으로 선행 국제위법행위의 존재, 그 위법행위와의 관계성, 필요성과 비례성, 의무 위반의 종료를 지향하는 목적성 등을 제시한다(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arts. 49–54). 그러나 이 조건들의 충족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주체는 제3자가 아니라 피해국 자신이다. 피해국이 “상대국의 행위가 위법인지”, “어느 정도의 조치가 비례적인지”, “언제 종료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구조가 바로 대응조치의 핵심적 특징이다.
1.2 제재(sanctions)의 개념과 유형
반면 “제재(sanctions)”라는 용어는 법적·정치적 담론에서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유엔 헌장 제41조는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 있을 때 안전보장이사회가 무력 행사 이외의 조치, 즉 경제·외교 제재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러한 유엔 제재는 다수 국가가 참여하는 집단적 강제조치이며, 중앙집중적 기관의 결정을 통해 발동된다는 점에서 국제법상 대응조치와 구별된다.
또한 개별 국가나 동맹이 독자적으로 부과하는 다양한 경제제재 역시 모두 국제법상 대응조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선행 위법행위와의 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인권 침해를 명분으로 취해진 정책적 선택에 가까운 조치들은 ARSIWA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대응조치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정치적·경제적 압박 수단으로 분류된다(Ruys 2017). 따라서 “제재”라는 포괄적 범주는 유엔 제재, 자의적 경제제재, 대응조치로서의 제재 등 서로 다른 하위 유형들을 포함한다.
1.3 왜 “제재”가 아니라 “대응조치”에 초점을 맞추는가
윤리적 평가의 관점에서 이 글이 제재 일반이 아니라 대응조치라는 좁은 범주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기존 윤리 논의의 초점이 이미 “제재 일반”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Gordon(1999), Fabre(2018), Pattison(2015) 등은 제재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정당화되는지 논의하면서 주로 유엔 제재나 다자·양자 경제제재를 분석한다. 이들 논의는 강제의 정당성 조건, 민간 피해 문제, 제재의 효과성 등을 풍부하게 다루지만, 피해국의 자기판단에 기반한 대응조치의 제도적 구조 그 자체를 별도의 윤리적 문제로 삼지는 않는다.
둘째, 제재와 달리 대응조치는 정당한 권위의 부재라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제재는 절차적 결함과 정치화를 둘러싼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형식상으로는 제3자 기관의 심의·결정을 통해 부과된다. 반면 대응조치는 “선행 위법행위의 피해국”이 스스로 자신을 권위자로 설정하여 강제를 행사하는 자력구제 구조를 갖는다. 이때 강제의 윤리적 정당화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제3자성, 절차, 책임성은 제도 설계 단계에서 상당 부분 배제된다.
셋째, 대응조치에 대한 윤리적 분석은 제재 논의에도 함의를 갖는다. 제재 논의는 종종 “경제적 강제 일반”을 다루지만, 실제 국제정치에서 행사되는 많은 경제적 강제는 법적으로는 대응조치의 형식을 띤다. 따라서 대응조치의 권위 결함을 분석하는 것은 제재 논의가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정당한 권위”의 조건이 분산된 자력구제 구조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드러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1.4 이 글이 다루는 딜레마
이제 대응조치와 제재의 차이를 바탕으로, 이 글이 다루는 핵심 딜레마를 명확히 정리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다음 두 명제를 동시에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A) 국제규범의 반복적 위반을 방지하기 위해, 피해국이 선행 위법행위에 대해 일정한 자력구제형 강제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범은 위반에 취약해지고, 규범 준수의 유인은 약화된다.
(B) 타국의 자율을 제한하는 강제조치는 정당한 권위를 갖춘 주체에 의해, 적절한 절차와 책임성 하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제는 단순한 힘의 행사로 전락하며, 정당성 없는 coercion이 된다.
문제는 ARSIWA가 허용하는 의미에서의 대응조치가 이 두 명제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대응조치를 허용하지 않으면 (A)가 위협받고, 대응조치를 허용하면 피해국의 자기판단에 기반한 권위 없는 강제를 제도화함으로써 (B)가 훼손된다. 이 글은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대응조치가 어떤 규범적 지위를 갖는지, 그리고 “정당한 강제조치”로 평가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2. 강제조치의 정당한 권위: 규범적 틀
2.1 권위와 복종의 정당화
Raz(1986)는 “서비스 개념(service conception)”을 통해 권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피지배자의 관점에서 그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이유(reason)를 더 잘 따르기 위해서라면, 일정 범위에서 권위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권위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이유를 더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된다.
Buchanan과 Keohane(2006)은 글로벌 거버넌스 제도의 정당성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 최소 도덕적 수용 가능성(minimal moral acceptability), 비교적 이익(comparative benefit), 제도적 완결성(institutional integrity), 책임성과 같은 요소를 제시하면서, 단순한 동의(consent)를 넘어선 제도적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떤 제도가 폭넓은 동의를 받았더라도, 피지배자들에게 최소한의 도덕적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대안 제도에 비해 더 나은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권위는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Lefkowitz(2020) 역시 국제법의 권위를 논의하면서, 국제법 규범이 정당한 강제를 수반하기 위해서는 규범을 집행하는 제도가 일정 수준의 제3자성, 절차적 정당성, 책임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제법이 단지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규칙의 집합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규범의 집행과 해석을 담당하는 제도가 피지배자들의 이유와 이해를 공정하게 고려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의들은 서로 다른 맥락에 위치해 있으나, 공통적으로 타인의 자율을 제한하거나 행동을 강제하는 권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권위가 단순한 힘의 우위가 아니라 제도적·절차적 구조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2.2 제재 윤리 논의에서의 권위·절차 조건
제재 윤리 논의에서도 유사한 기준이 발견된다. Pattison(2015)은 제재의 도덕성을 검토하면서, 제재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주체가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적절한 수단과 절차를 통해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전통적인 정전론(just war theory)의 조건들―정당한 권위, 정당한 이유, 올바른 의도, 비례성과 필요성, 성공 가능성―을 제재 논의에 적용하면서, 특히 “누가 제재를 부과할 권위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놓는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그 설계와 절차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개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제3자성과 책임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재의 정당성에서 일정한 우위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Fabre(2018)는 경제적 강제가 인권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그 정당화는 제재를 부과하는 주체의 권위, 제재의 표적 설정, 피해 분배, 대안 수단의 부재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제재가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무차별적 피해를 야기하거나 제재 대상 집단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면, 그 제재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Gordon(1999)은 포괄적 경제제재가 인도적 피해를 초래하면서도 제재 설계와 집행 과정에서 책임성과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비판한다. 그는 특히 이라크 제재 사례를 분석하면서, 제재 결정 과정에 참여한 국가와 국제기구가 제재의 실제 효과와 피해를 충분히 평가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가 미비했음을 지적한다.
이 논의들을 종합하면 강제조치의 윤리적 정당성은 단지 “좋은 결과”나 “훌륭한 목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강제의 표적이 누구인지, 어떤 절차를 통해 결정되었는지, 그 결정이 오판과 남용을 어떻게 방지하는지,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지가 모두 정당성 판단의 일부를 이룬다.
2.3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관한 규범적 원칙
이 글은 위 논의들을 바탕으로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관한 다음과 같은 규범적 원칙을 전제로 한다. 첫째, 강제조치는 타인의 선택 구조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고 그 자율을 제한하는 수단이다. 둘째, 이러한 강제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강제가 정당한 권위를 갖춘 주체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여기서 정당한 권위는 최소한 다음 세 요소를 포함한다. (1) 제3자성: 강제를 행사하는 주체가 분쟁의 직접 당사자 일방의 이해관계로부터 일정 정도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2) 절차적 정당성: 강제의 대상이 되는 행위자에게 자신의 입장을 제기하고 방어할 수 있는 절차적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3)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 강제가 오판·남용으로 이어질 경우 이를 통제·시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 세 요소가 전혀 충족되지 않은 강제조치는, 설령 우연히 좋은 결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자율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점에서 정당한 권위를 결여한 강제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규범적 전제를 채택한다. 강제조치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권위를 갖춘 주체가 제3자성·절차적 정당성·책임성이라는 최소 조건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강제를 행사해야 한다. 이 전제(이하 전제 2)는 강제조치가 정당화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이해된다.
3. 대응조치의 권위 결함에 대한 논증
이제 2장에서 정식화한 규범적 전제(전제 2)를, 1장에서 설명한 대응조치의 제도 구조와 결합하여, 대응조치의 권위 결함에 관한 논증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세 개의 전제와 하나의 결론을 명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논증 구조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3.1 전제 1: 대응조치는 본질적으로 강제조치이다
전제 1은 대응조치의 개념에 관한 사실 명제이다. ARSIWA와 그 주석은 대응조치를 “국제위법행위를 저지른 국가로 하여금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조치”로 정의한다(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Ruys(2017)는 대응조치를 “상대국의 정책 선택에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행태 변화를 유도하려는 자력구제형 경제·외교 강제”로 규정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대응조치는 단순한 비난이나 항의가 아니라, 상대국의 선택 구조를 의도적으로 변경시키는 강제조치로 분류된다.
따라서 전제 1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대응조치는 타국의 행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경제적·외교적 비용을 부과하는 강제조치이다.
3.2 전제 2: 강제조치의 정당성은 정당한 권위를 필요로 한다
전제 2는 2장에서 도출한 규범적 원칙이다. 강제조치는 타인의 자율에 대한 개입을 수반하기 때문에, 윤리적 정당성은 단순한 동의나 결과의 효용에만 의존할 수 없다. Raz의 권위론, Buchanan과 Keohane의 글로벌 거버넌스 정당성 논의, Lefkowitz의 국제법 권위론, Fabre와 Pattison의 제재 윤리 논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당한 권위와 절차적·제도적 정당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종합하면 강제조치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권위를 갖춘 주체가 제3자성·절차적 정당성·책임성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강제를 행사해야 한다는 규범적 전제를 정식화할 수 있다. 이 전제는 강제조치가 정당화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제시된다. 정당한 권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강제조치는 다른 긍정적 요소들이 있더라도 완전히 정당화된 강제로 보기 어렵다.
3.3 전제 3: 대응조치는 구조적으로 정당한 권위를 구성할 수 없다
전제 3은 ARSIWA상 대응조치의 제도적 구조에 관한 적용 명제이다. ARSIWA는 대응조치를 피해국에만 허용하며, 그 발동·집행·종료에 관한 핵심 판단을 모두 피해국 자신의 판단에 맡긴다(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arts. 49–54). 선행 위법행위의 존재, 필요성과 비례성, 의무 이행 후 조치의 종료 여부 등은 모두 피해국이 스스로 평가한다. 독립된 제3자의 구속적 승인이나 사후 심사 절차는 제도적으로 내장되어 있지 않다. Crawford(2002)와 Ruys(2017)는 이러한 구조를 “제도적 공백(institutional deficit)”으로 규정하면서, 대응조치가 남용되거나 과도한 대응으로 이어질 위험을 지적한다.
이 구조는 앞서 제시한 정당한 권위의 세 요소와 직접 충돌한다. 대응조치의 발동 주체는 분쟁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국이므로 제3자성이 결여되어 있다. 위법국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거나 피해국의 판단을 다툴 수 있는 공정한 절차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 국제사법재판소나 중재를 통한 사후 통제 가능성이 있더라도, 그 절차에 회부할지 여부는 다시 국가들의 정치적 계산에 좌우된다. 오판과 남용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이 확보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전제 3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ARSIWA가 허용하는 의미에서의 대응조치는 피해국의 자기판단과 자력구제에 의존하는 설계 때문에 정당한 권위를 구성하는 제3자성·절차적 정당성·책임성을 구조적으로 충족할 수 없다.
3.4 결론: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전제 1, 전제 2, 전제 3을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1) 대응조치는 타국의 행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경제적·외교적 비용을 부과하는 강제조치이다.
(2) 강제조치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권위를 갖춘 주체가 제3자성·절차적 정당성·책임성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강제를 행사해야 한다.
(3) ARSIWA가 허용하는 의미에서의 대응조치는 이러한 정당한 권위를 구조적으로 구성할 수 없다.
따라서 (C)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주목할 점은 이 논증이 “대응조치는 항상 심각한 피해를 낳는다”거나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대안보다 나을 수 없다”는 경험적·결과주의적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논증은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관한 최소한의 규범적 조건과 대응조치의 제도적 구조만을 비교함으로써, 대응조치가 정당한 강제조치로 평가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Gordon(1999)이 제재의 인도적 피해를 강조하며 제재의 정당성을 의심했다면, 이 글은 피해의 크기와 무관하게 권위의 결여 자체가 대응조치의 윤리적 결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4. 예상 반론과 검토
이 장에서는 앞서 제시된 전제들과 결론을 직접 겨냥하는 세 가지 반론을 검토한다. 첫 번째 반론은 전제 2(강제조치의 정당성에 정당한 권위가 필요하다는 규범적 전제)를 공격하고, 두 번째 반론은 전제 3(대응조치의 구조적 권위 결여)을 공격하며, 세 번째 반론은 결론(C)의 강도를 문제 삼는다.
4.1 피해국 권리론: “피해자는 스스로 강제할 권리가 있다”
첫 번째 반론은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관한 규범적 전제, 즉 “모든 강제조치는 정당한 권위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전제 2)을 문제 삼는다. 이 반론에 따르면 피해국은 일반 행위자가 아니라 선행 위법행위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특별한 권리를 가진다. 개인 간 관계에서 정당방위가 제3자의 승인 없이도 허용되듯이, 국제사회에서도 피해국은 일정 범위 내에서 스스로 위법국에 대응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정당한 제3자 권위의 부재와 무관하게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정당방위와 국가의 대응조치는 상황 구조가 다르다. 정당방위는 제3자의 개입을 기다릴 수 없는 긴급한 위험 상황에서의 즉각적인 방어를 가정하는 반면, 대응조치는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동원해 설계·집행되는 정책적 선택이다. Fabre(2018)와 Pattison(2015)가 강조하듯이 이러한 구조화된 강제조치는 단순한 피해자의 즉각적 방어가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인도적 효과를 수반하는 공적 행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한 정당성 기준을 요구한다.
또한 피해자라는 지위가 자동으로 정당한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피해국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와 권력 추구의 유인을 가진 행위자이며, 선행 위법행위의 정도를 과장하거나 대응조치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피해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제3자성·절차·책임성의 결여를 정당화하는 것은 강제조치가 가지는 구조적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 글의 규범적 전제는 피해국의 권리를 부정하기보다, 그 권리가 타인의 자율과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강제조치로 행사될 때 최소한의 권위·절차·책임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4.2 분산된 권위 위임론: “국가들은 서로에게 권위를 위임했다”
두 번째 반론은 대응조치의 제도적 구조에 관한 전제, 즉 “대응조치는 정당한 권위를 구성할 수 없다”는 주장(전제 3)에 도전한다. 이 반론에 따르면 ARSIWA와 관습국제법은 국가들이 서로에게 일정한 범위의 자력구제 권한을 상호 위임(mutual delegation)한 결과물로 이해될 수 있다. 국가들은 중앙집중적 집행기관이 부재한 상황에서 서로의 위법행위를 통제하기 위해 “피해국이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상호 부여했다. 그렇다면 대응조치는 단순한 자기임명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집단적으로 승인한 분산된 권위의 행사로 볼 수 있고, 이는 정당한 권위의 결여라는 비판을 약화시킨다.
이 해석은 대응조치의 법적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다. 실제로 ARSIWA 채택 과정과 이후 국가 관행은 국가들이 일정한 형태의 대응조치를 서로에게 허용해 왔음을 보여준다(Crawford 2002; Ruys 2017). 그러나 국가 간 합의가 곧바로 도덕적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Buchanan과 Keohane(2006)은 글로벌 거버넌스 제도의 정당성을 평가할 때 단순한 동의나 합의 대신 그 제도가 피지배자에게 공정하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응조치의 경우 국가들이 서로 “각자 알아서 상대를 제재해도 된다”고 합의했다면, 이는 분산된 권위의 부여라기보다 분산된 무권위의 승인에 가깝다. 특히 대응조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추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그 국가의 국민과 제3국의 이해관계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대응조치를 승인하거나 거부할 실질적 권한이 없으며, 대응조치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권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통제할 수 있는 절차적 수단도 거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대응조치는 국가들 사이의 합의를 통해 법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강제조치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규범적 기준, 특히 제3자성·절차·책임성이라는 요소를 충족하는 제도로 보기 어렵다.
4.3 비이상 이론적 반론: “차선의 정당화는 가능하지 않은가?”
세 번째 반론은 이 글의 결론, 즉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 자체가 지나치게 강하다고 비판한다. 현실의 국제질서에서 중앙집중적 집행기관이 부재하고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나 국제재판 절차가 정치적 이유로 마비되어 있을 때, 대응조치는 위법국에 일정한 비용을 부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응조치는 이상적인 의미에서 정당한 강제는 아닐지라도 “다른 현실적 대안에 비해 덜 부당한” 수단으로서 차선의 정당화(second-best justification)를 가질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반론은 이상 이론과 비이상 이론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이 글의 논증은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반면, 현실의 국제정치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제도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건에서 작동한다. 이때 “정당한 권위가 없으니 어떤 강제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위법국의 규범 위반을 방치하라는 의미로 읽힐 위험이 있다.
이에 대해 이 글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재규정될 수 있다. 이 글은 대응조치를 현실에서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정책적 결론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글의 핵심 주장은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관한 개념적·규범적 구분을 분명히 하자는 데 있다. 즉 대응조치는 정당한 권위를 갖춘 제도적 강제, 예를 들어 충분한 절차와 책임성을 갖춘 국제기구 제재와 동일한 수준의 “정당한 강제”로 평가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특정 상황에서의 대응조치가 “불가피하지만 규범적으로 결함이 있는 선택”인지, 혹은 “그마저도 허용되기 어려운 남용”인지를 더 세밀하게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의 결론은 비이상적 현실에서의 “차선의 선택”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그러한 선택이 정당한 권위에 기반한 강제조치와 동일한 의미에서 “정당하다”고 표현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규범적 요구로 이해될 수 있다.
결론
이 글은 “정당한 제3자 권위를 결여한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전개하였다. 먼저 대응조치와 제재를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기존 제재 윤리 논의가 주로 유엔 제재나 다자 제재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어 Raz(1986), Buchanan과 Keohane(2006), Lefkowitz(2020), Fabre(2018), Pattison(2015)의 논의를 바탕으로, 강제조치의 정당성이 정당한 권위, 즉 제3자성·절차적 정당성·책임성을 필요로 한다는 규범적 틀을 제시하였다.
이 규범적 틀을 ARSIWA의 대응조치 규정에 적용한 결과, 대응조치는 (1) 타국의 선택 구조를 변화시키는 강제조치이지만, (2) 그 발동·집행·종료에 관한 핵심 판단을 피해국의 자기판단에 맡기고, (3) 독립된 제3자의 승인이나 심사, 오판·남용에 대한 책임성과 시정 메커니즘을 제도적으로 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따라서 대응조치는 정당한 권위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이 의미에서 “정당한 강제조치”로 평가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국 권리론, 분산된 권위 위임론, 비이상 이론적 “차선의 정당화” 논변을 검토하였다. 피해국 권리론은 대응조치를 정당방위에 비유하지만, 구조화된 정책적 강제조치와 긴급한 개인의 자기방어 사이의 차이를 간과한다. 분산된 위임론은 국가 간 합의를 통해 법적 정당성을 설명하지만, 강제의 대상이 되는 개인과 제3국의 관점에서 제도의 제3자성·절차·책임성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비이상 이론적 논변은 대응조치가 현실에서 “차선의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지만, 그러한 현실적 필요가 대응조치에 “정당한 권위”라는 강한 도덕적 명칭을 부여해 주지는 못한다.
이 글의 결론은 대응조치가 현실의 국제정치에서 전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범명령이라기보다는, 강제조치의 정당성에 관한 개념적 경계선을 분명히 하자는 제안이다. 대응조치는 위법국에 비용을 부과하고 규범 위반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그 제도적 구조는 정당한 권위를 구성하기에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대응조치를 사용할 때에는 그것을 “정당한 강제”로 포장하기보다는 권위 결함을 가진 비이상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가능한 한 제3자성·절차·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 분석은 제재 윤리 논의에도 함의를 갖는다. 제재 일반에 대한 정당성 논의를 전개할 때, 중앙집중적 권위에 기반한 제재와 피해국의 자기판단에 의존하는 대응조치를 동일한 범주로 다루는 것은 규범적으로 문제가 있다. 제재의 정당화 조건을 설정할 때, 그 조건이 어떤 제도 구조를 전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실제 국제법상 기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세밀하게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글은 그 한 사례로서 대응조치라는 특수한 형태의 강제조치가 가지는 권위 결함을 조명하고자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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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wford, James. “The ILC’s Articles on Responsibility of States for Internationally Wrongful Acts: A Retrospect.”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3, no. 5 (2002): 963–991.
Fabre, Cécile. Economic Statecraft: Human Rights, Sanctions, and Conditionalit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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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kowitz, David. Philosophy and International Law: A Critical Introduc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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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z, Joseph. The Morality of Freedo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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