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07-20 임예지

제목: 중증치매 환자의 현재적 선택 우선성: 자율성의 가치 추구 관점을 중심으로

서론

치매 관련 논쟁은 “중증치매 상태에서의 현재적 의사결정과 과거의 사전의료결정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만일 중증치매 환자의 현재적 자율적 선택을 과거의 선택에 앞서 인정할 수 있다면, 환자가 과거에 가졌던 장기적 가치나 정체성이 보호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 반대로, 중증치매 환자의 현재적 선택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면, 과거 환자의 결정을 절대시하게 되어 현재 환자의 의지와 욕구는 사실상 배제되는 문제가 생긴다.

환자의 자율적인 선택과 관련된 딜레마는 결국 자율성이란 무엇이며, 치매 환자는 자율성을 갖는가라는 기초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대표적인 학자 드워킨(1986)은 내재적 자율성(intrinsic autonomy)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자율성이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목표, 즉 비판적 이익(critical interests)1에서 기인한다는 시각이다. 드워킨은 비판적 이익을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가치체계를 설계할 능력”으로 이해하며, 이에 따라 장기적 가치와 서사적 통일성을 보장하는 사전의료결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Dworkin 1995, p. 201). 반면 드레서(1995)는 실제 인간의 삶이 일관된 서사로 유지되지 않으며, 통일성을 보존하기 위해 현재 환자의 욕구를 배제하는 방식은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Dresser 1995, p. 35). 본고는 문제 설정에 있어 드레서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드레서의 논의는 한계를 지닌다. 드레서는 드워킨이 설정한 비판적 이익의 개념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재구성할 이론적 토대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 이에 본고는 자워스카(2005)가 제시한 가치 추구 능력(capacity for value)의 관점을 도입해 비판적 이익의 개념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이 관점은 비판적 이익, 즉 자율성의 핵심이 개인이 스스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본고는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가 가장 자율적이라는 점을 보이고, 중증치매 환자는 가치 추구 능력을 지닌다는 점을 논증하여, 중증치매 환자의 현재적 자율적 선택은 과거의 사전의료결정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할 것이다.

본고는 먼저, [1] 삶 전체의 일관된 가치체계를 갖추지 않더라도,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는 자율적이라는 점을 논증한다. 드워킨의 주장과 달리 자율성은 일관된 가치체계로 환원되지 않으며, 자율성에 있어 가치를 추구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보인다. 다음으로, [2] 중증치매 환자는 가치 추구 능력이 있으므로 자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한다. 실제 사례를 통해 치매 환자의 자율적 선택을 귀납적으로 확인한다. 또한, 삶의 서사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자율성을 검토함으로써, 치매 환자 역시 자율성을 지닌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3] 과거와 현재의 자율적 선택이 충돌할 때, 현재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 추후의 선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연역적으로 논증한다. [4] 한편, 마지막 주장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현재의 가치는 순간적 선호에 그칠 수 있으므로 장기적 가치보다 우선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둘째,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가치 변화는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질병의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현재의 가치를 자율성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는 반론이다. [5]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다음의 두 지점에서 반박될 수 있다. 첫째, 과거와 현재의 가치는 모두 본질적으로 비서사적이며 변화 가능하다는 점이다. 둘째, 자율성의 핵심은 가치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형성되었는가가 아니라, 현재의 주체가 그 가치를 어떻게 내재화하고 실제로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6] 마지막으로, 본고는 가치 추구의 관점에서 환자의 현재적 선택이 우선시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이에 따른 함의를 검토한다.

본론

­가치 추구 능력으로서의 자율성

비판적 이익이 정합적이고 일관된 가치체계, 즉 서사적 삶의 구조를 필요로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어 왔다. 본고는 비판적 이익이 반드시 서사적 구조를 전제하지 않음을 논증하며, 스스로 가치를 형성하고 추구할 수 있는 존재가 가장 자율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비서사적 삶의 구조

대부분의 인간은 자율성이 있지만 자신의 삶을 일관된 가치체계로 인식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생을 살아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삶을 일관된 이야기로 엮으려는 시도보다,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려는 노력이 인간에게 더 흔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Dresser 1995, p.36). 인간은 미리 가치체계를 세워 그에 맞추어 삶을 구성하기보다는 일상의 사건들을 독립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일정한 가치체계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개인은 사회적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 영역을 동시에 가지며 이러한 가치들의 우선순위가 달라서, 하나의 통합된 서사로 선제적으로 환원하기 어렵다 (Dresser 1995, p. 36). 어떤 사람은 지적 탐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저명한 법철학자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를 돌보는 부모로서 가족의 안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개인의 가치들은 서로 이질적이며, 어떠한 가치를 가장 중요시할지에 대해서 우선순위가 절대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과 인간관계의 변화에 따라 가치체계가 꾸준히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비판적 이익의 개념을 일관된 가치체계로 환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비판적 이익의 핵심인 가치 추구 능력

비판적 이익의 핵심, 즉 자율성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각자의 개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개인을 선택으로 이끄는 핵심 동기는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고 바람직한가에 대한 확신(convictions about what is good to have)이기 때문이다 (Jaworska 2005, p. 113). 가치는 단순한 욕구(desire)와는 달리 개인이 따르는 규범적 기준을 제공하기, 개인이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드는 자율성의 조건이다.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단순 욕구를 추구하는 것과는 구분되는 특징들이 있다 (Jaworska 2005, p. 115). 먼저, 가치는 개인의 자기(self)를 구성한다. 성욕,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 등의 욕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지만, 가치가 손상되면 자기의 본질적인 부분을 잃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가치 추구는 자신에 대한 규범적 정향성이다. 또한, 가치 추구에 대해서는 항상 이유(rationale)가 뒤따라, 선택의 순간에서 개인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가치 추구는 자아 존중의 기준으로 기능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 추구 여부와 정도에 따라 선택의 좋고 나쁨을 구분하고, 본인을 칭찬하거나 비판한다. 결국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곧 행동에 대한 기준과 이유를 세우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순위를 매기며, 그 기준을 따라 자신에게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삶 전체를 일관된 가치체계에 따라 설계할 능력”은 필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헌신적인 아버지가 아이들의 행복을 자신의 즐거움보다 중요하게 여겨 이에 따라 자율적 선택을 내리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가치 때문이지, 삶의 총체적 서사나 자기 일관성 때문이 아니다 (Jaworska 2005, p. 116). 가치 추구에서 중요한 것은 해당 가치가 전체 삶의 일관성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가가 아니라, 해당 가치가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확신되는가이다.

이에 따라 삶의 통일성과는 관계 없이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면 개인은 자율성을 가진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중증치매 환자의 가치 추구 능력

가치 추구 능력은 전체 의사결정 능력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의사결정 능력이나 법적 판단 능력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치매 환자의 상황처럼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의사결정 능력이 일부 손상되었더라도, 개인이 가치를 추구하는 능력 자체는 보존될 수 있다 (Sergeant, 2024, p. 384). 실제로 중증치매 환자의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그들이 여전히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귀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중증치매 환자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의사결정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아이의 예시를 통해 환자가 갖는 자율성을 간접적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치매 환자가 보여주는 가치 추구

자워스카(2005)는 실제 치매 환자의 사례들을 통해 환자가 여전히 가치 추구 능력을 지님을 보인다. 예를 들어, 환자 Mrs. D는 시간의 흐름이나 자신의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새로운 기억도 형성할 수 없었지만, 돌봄센터에서 자발적으로 조교로 일하고 보건 실험에 참여하기로 선택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선택이 본인에게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녀는 “사람을 그냥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함께 일할 수 있어요.” “‘안돼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게 저와 제 동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라면 반드시 할거에요.” 등의 참여 동기를 제시하였다 (Jaworska 2005, p. 118).

Mrs. D는 이전 삶의 주요 기억을 잃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에서 기존 삶의 일관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타인을 돕는 것이 그녀가 과거 삶에부터서 일관되게 추구해 온 가치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럼에도, Mrs. D는 현재의 순간에 사람을 돕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가치라는 결론을 내린 후, 자신의 선택을 특정한 이유(rationale)에 근거해 설명하고, 그 선택을 자아 존중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치매 환자가 가치 추구 능력을 바탕으로 내린 자율적 선택의 일환이다.

또한 가치의 내용은 반드시 이타적일 필요는 없다. 또 다른 사례인 Dr. B 역시 날짜와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였지만, 의사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에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Jaworska 2005, p. 118). 그는 “다른 곳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기서는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하며, 사회적 지위 및 자기 이미지와 같은 개인적 가치를 근거로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였다.

주변인의 대우와 가치의 인정

나아가, 치매 환자가 갖는 가치 추구 능력은, 환자와 상태가 유사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보편적인 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어린이는 일관된 인격이나 장기적 삶의 계획을 형성하지 못한 존재이며,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어린이의 선택을 자율적 선택으로 인정하고 이를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존중할 수 없을 때조차 미안함을 느끼거나 이유를 설명하며 정당화를 시도한다 (Shiffrin 2004, p. 205).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몸이 아파도 반드시 등교하겠다”는 선택을 내릴 때, 아이는 “선생님과 이전에 등교하겠다고 한 약속이 가장 최우선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등의 가치를 내재화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이러한 가치가 통합된 인격 구조나 장기적 삶의 계획에서 형성된 것은 아닐지라도, 아이는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한다. 부모는 이러한 가치 추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지금 나가면 더 아플 수 있어”와 같이 아이의 가치를 침해하는 이유를 정당화하며 설명한다. 이는 아이의 판단을 “가치 추구에 근거한 자율적 판단”으로 대우하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다.

이 유추는 중증치매 환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치매 환자 역시 일관된 서사를 구성할 능력이나 인지 기능은 부족하지만, 간병인과 주변 사람들은 환자의 작은 선택과 요구를 가능한 한 존중하려 노력한다. 이는 환자의 선택이 여전히 “본인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가치”를 반영하고 있으며, 주변인 역시 이러한 가치를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추후 선택의 우선성

가치 추구 관점을 토대로 본다면 치매 환자는 자율적 선택을 내릴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의 자율적 선택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 두 가지의 자율적 선택이 충돌할 때는 현재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 추후의 선택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는 [1] 자율적 행위 중에서도 개인이 추구하는 현재 가치를 충실히 반영하는 행위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며, [2] 추후의 선택은 현재의 가치를 더 충실히 반영한다는 두 전제를 통해 연역적으로 논증이 가능하다.

현재 가치를 반영한 자율적 선택의 우선성

자율적 행위에 있어 현재 가치의 우선성은 두 가지 이유를 통해 도출할 수 있다. 먼저, 자율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의 통일성이 아닌 현재의 가치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자율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전체 가치체계의 일관성보다, 어떠한 가치들을 추구하며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가 결정적인 요소임을 논증하였다. 이때, 사람들은 현재 순간에서 어떤 가치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자율적인 결정을 내린다.

또한, 자율적 주체는 시간이 흐르며 추구하는 가치나 이익이 변화할 수 있으며, 과거의 결정과 현재의 결정이 충돌할 때 과거의 결정을 수정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Dresser 1995, p. 35). 현재 가치를 우선하는 것은 가치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주체가 자신의 현재적 기준에 따라 삶을 재정립할 자유를 보존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논지는 특히 치매 환자에게 더욱 중요하게 적용된다. 치매 환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상태에 영구적으로 머물러야 하므로 현재의 가치를 고려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만일 과거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우선한다면, 환자는 더 이상 자신의 의지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가치에 종속된다 (Shiffrin 2004, p. 205).

추후 선택의 현재 가치 반영성

치매 발병 이후의 선택은 현재의 가치를 더 충실히 반영한다. 특히, 치매 환자에는 큰 심리적 변화가 발생하므로 환자의 현재 가치는 이전의 가치와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Shiffin 2004, p. 211). 이러한 변화는 가치가 새롭게 형성되거나 없어지는 경우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들 사이의 상대적 중요도가 재조정되는 경우에도 나타난다 (Sergeant, 2024, p. 383).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에 내려진 선택이 환자의 현재 가치를 예측하거나 반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치매 이전에는 자기계발과 혼자 있는 시간을 중시하던 사람이 치매 발병 이후에는 돌봄 제공자와의 친밀감이나 대인 관계를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여길 수 있다.

자율적 행위 중에서도 개인이 추구하는 현재 가치를 충실히 반영하는 행위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며, 추후의 선택은 현재의 가치를 더 충실히 반영하기 때문에, 치매 발병 후의 선택이 이전의 자율적 선택에 비해 우선시되어야 한다.

현재 가치의 우선성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

자율적 선택 중 현재 가치를 반영하는 선택이 우선시된다는 주장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과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숙고를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가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의 선택은 인지능력이 온전할 때 더 깊은 성찰과 미래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어 있었던 반면, 현재의 가치는 순간적 감정이나 상황 변화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따라서 자율성을 판단할 때 더 연속적이고 일관된 과거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는 비판이다.

둘째,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가치 변화는 자유에 따른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치매 환자의 가치 변화는 치매라는 질병이 원인이므로, 환자는 어떠한 가치를 유지할지, 어떠한 가치를 받아들일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Jongsma 2020, p. 91). 이러한 상황에서 치매로 인해 새로 생기거나 수정된 현재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두 가지 이유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첫째, 과거의 가치가 더 많은 숙고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현재보다 더 우선적이거나 더 분명한 자율성의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일관된 서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한 개인의 가치 역시 고정적이거나 일관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과거의 가치는 당시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순간적 산물일 수 있다. 즉, 삶 자체가 비서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면, 과거 가치가 본질적으로 더 일관적이거나 더 우위에 있다는 주장도 성립하기 어렵다.

둘째, 가치 변화가 치매의 영향 아래 이루어진다는 사실만으로 현재 가치의 우선성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이 갖는 대부분의 가치는 가정환경, 문화, 교육, 사회적 맥락 등 수많은 비선택적 요소들에 의해 형성된다 (Sergeant 2024, p. 385). 그럼에도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를 바탕으로 결정을 바꾸는 자유를 인정한다. 이는 가치가 자율적으로 형성되었느냐보다, 현재의 주체가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즉 해당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하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치매 환자의 현재 가치는 치매라는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중요도가 낮아질 수 없으며, 오히려 현재의 주체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의미를 두는지를 반영하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결론

본고는 치매 환자의 자율성을 가치 추구 능력(capacity for value)의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중증치매 환자의 현재적 자율적 선택이 과거의 사전의료결정보다 우선될 수 있음을 논증하였다. 먼저, 기존의 자율성 논의가 전제하는 일관적 가치체계가 실제 인간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며, 자율성의 핵심은 삶의 통일성이 아니라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달려 있음을 보였다. 다음으로, 실제 치매 환자의 사례와 어린이의 사례에 대한 귀납적, 유추적 검토를 통해, 중증치매 환자 역시 가치를 추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자율적 선택이 충돌할 때는 현재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한 추후의 선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연역적으로 도출하였다.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는 과거 가치의 우선성과 현재 가치의 비우선성의 측면에서 두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 두 반론에 대해, 과거의 가치 역시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가치의 형성이 비선택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 형성 과정보다는 현재 주체가 그 가치를 어떻게 수용하고 추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통해 반박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본고는 가치 추구 능력의 관점에서 중증치매 환자의 현재적 선택을 자율적 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현재적 자율적 결정의 우선성을 논증하여, 환자의 현재적 의사결정이 과거의 사전의료결정을 정당하게 거스를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하였다.

본고는 기존 논쟁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가치 추구 능력을 중심으로 자율성을 재해석함으로써, 드워킨–드레서 간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 새로운 분석 틀을 제공하였다. 전통적인 논의와 달리, 가치가 어떻게 행위의 동기로 기능하는지를 중심으로 자율성을 재구조화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또한 환자의 자율성 논의와 더불어, 환자의 두 가지 자율적 선택 중 어떤 선택에 더욱 무게를 둘 것인지까지 확장하여 논증을 전개했다. 사전의료결정과 실제 환자의 의사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자율성 개념을 보다 넓은 차원에서 적용하였다.

본고의 결론은 치매 환자의 현재적 선택을 법적 혹은 제도적 차원에서 정당화하는 시도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즉, 자율적 선택의 임상적 판별 기준, 법적 책임 구조, 보호자 및 의료진의 판단 권한 등은 본고의 범위에 속하지 않으며, 별도의 정책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본고의 기여는 이러한 후속 논의가 가능하도록 개념적 토대를 재정비하고, 치매 환자의 현재적 선택을 자율성 논의의 정당한 대상으로 복귀시켰다는 점에 있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Dresser, Rebecca. “Dworkin on Dementia: Elegant Theory, Questionable Policy.” The Hastings Center Report 25, no. 6 (November 1995): 32–38. https://doi.org/10.2307/3527839.

Dworkin, Ronald M. Life’s Dominion: An Argument about Abortion, Euthanasia, and Individual Freedom. New York: Alfred A. Knopf, 1986.

Jaworska, Agnieszka. “Respecting the Margins of Agency: Alzheimer’s Patients and the Capacity to Value.” Philosophy & Public Affairs 28, no. 2 (April 1999): 105–38. https://doi.org/10.1111/j.1088-4963.1999.00105.x.

Jongsma, Karin. “Losing Rather than Choosing: A Defense of Advance Directives in the Context of Dementia.” The American Journal of Bioethics 20, no. 8 (August 2, 2020): 90–92. https://doi.org/10.1080/15265161.2020.1781957.

Sergeant, Anand. “The Problem of Value Change: Should Advance Directives Hold Moral Authority for Persons Living with Dementia?” Bioethics 39, no. 4 (December 15, 2024): 381–88. https://doi.org/10.1111/bioe.13386.

Shiffrin, Seana Valentine. “Autonomy, Beneficence, and the Permanently Demented.” Dworkin and His Critics, January 2004, 193–217. https://doi.org/10.1002/9780470996386.ch11.

  1. 국내 문헌에서는 드워킨의 experiential interests를 “향유적 이익”, critical interests를 “비판적 이익”으로 번역해 사용해 왔다. 비판적 이익은 단순한 선호를 넘어 자기 삶의 좋은 이유와 의미를 구성하는 평가적, 성찰적 관심을 지칭하므로, 본고 역시 이러한 관행에 따라 “비판적 이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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