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09 기말과제 최종본 007-04 홍용찬
제목: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ARSIWA형 자력집행의 권위 결함에 대한 규범적 분석
서론
국제사회에서 경제적·외교적 제재는 군사력에 비해 “평화로운” 강제수단으로 자주 제시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부과된 대규모 경제제재, 북한·이란을 겨냥한 제재, 미·중 갈등 속에서의 관세 보복 등은 모두 국제규범의 위반에 대한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때 사용되는 강제수단들은 법적·제도적 구조에서 서로 중요한 차이를 갖는다. 유엔 헌장 제41조에 근거한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중앙집중적 기관의 결정을 통해 집행되는 반면, 국제법상 대응조치(countermeasures)는 선행 위법행위의 피해국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집행하는 자력구제(self-help)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Crawford 2002).
기존 윤리적 논의는 주로 “제재(sanctions)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Gordon(1999)은 포괄적 경제제재가 민간인에게 치명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Fabre(2018)와 Pattison(2015)은 인권 보호나 침략 억지를 위해 경제제재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대체로 중앙집중적 권위 또는 다자적 절차를 전제한 강제(예컨대 유엔 제재나 다자 제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분쟁 당사자가 자신의 사건에서 판단자이자 집행자가 되는” 자력집행형 대응조치의 제도 구조 자체를 핵심 문제로 삼는 분석은 상대적으로 드물다(Ruys 2017; Crawford 2002).
이 논문이 다루는 핵심 딜레마는 다음 두 명제가 충돌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A) 국제규범의 반복적 위반을 억지하기 위해, 중앙집중적 집행기관이 약한 국제사회에서는 피해국이 어떤 형태로든 위법국에 비용을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범은 위반에 취약해지고, 규범 준수의 유인은 약화된다.
(B) 타국의 선택 구조를 의도적으로 변경하는 강제조치는 정당한 권위를 갖춘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제는 단순한 힘의 행사로 전락하며, 정당성 없는 coercion이 된다.
ARSIWA(국가책임 초안)가 허용하는 의미에서의 대응조치는 (A)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작동 방식이 (B)의 요구와 충돌한다. 이 논문은 바로 이 충돌의 핵심에 개입한다. 즉, “대응조치가 현실에서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대응조치가 정당한 강제조치로 윤리적으로 완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곧바로 이어지는지 여부를 묻는다. 여기서 ‘윤리적 정당화’는 단지 어떤 상황에서 “불가피한 차선”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강제조치가 정당한 권위의 요구를 충족하여 ‘정당한 강제’로 평가될 수 있다는 강한 평가를 뜻한다.
본 논문의 핵심 논제는 다음 한 문장으로 고정된다. 현행 ARSIWA가 허용하는 의미의 대응조치는 정당한 강제조치로 ‘완전한 윤리적 정당화’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권위·절차·책임성 조건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므로, 그 의미에서 윤리적으로 완전히 정당화될 수 없다.
논증 전략은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논문에 필요한 범위에서만 대응조치 개념을 초점화하고, 특히 countermeasures와 retorsion(비우호적이지만 원래 합법인 조치)을 구분함으로써 권위 결함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명확히 한다. 2장에서는 강제조치 정당화에서 왜 최소한의 권위·절차·책임성이 핵심 조건으로 요구되는지, 단순 문헌 나열이 아니라 연결 논증의 형태로 정식화한다. 3장에서는 그 조건을 ARSIWA의 대응조치 구조에 적용하여, 왜 현행 설계가 해당 조건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지(제3자성, 절차적 다툼 가능성,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 각각) 단계적으로 논증한다. 4장에서는 가장 강한 반론 두 가지(피해국 권리/자력구제의 정당화, 비이상적 차선 정당화)를 선별하여 전제와 결론을 정밀하게 방어한다. 결론에서는 ‘정당한 강제’와 ‘차선적 허용’의 구분을 유지하면서 제도적 함의를 제한적으로 제시한다.
1. 대응조치: 개념의 초점화와 권위 결함 문제의 위치
1.1 대응조치(countermeasures)의 정의와 핵심 특징
ARSIWA에서 대응조치는 “다른 국가의 국제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피해국이 예외적으로 취할 수 있는 비무력적 조치”로 규율된다(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arts. 22, 49–54). 핵심은 평상시 위법이 되는 행위(예컨대 조약 의무의 이행 정지)가 선행 위법행위에 대한 반응으로서 한시적으로 허용된다는 점이며, 이 허용은 위법행위의 종료와 의무 이행을 유도하는 목적 아래 필요성·비례성·한계 규정에 의해 제한된다.
본 논문이 주목하는 특징은 대응조치가 ‘당사자 자기판단(self-judging)’ 구조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대응조치의 발동 여부와 강도는 (i) 선행 행위의 위법성 판단, (ii) 대응의 필요성과 비례성 판단, (iii) 종료 시점 판단이라는 핵심 판단을 피해국이 사실상 스스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조직된다. ARSIWA가 통지·협의 제안 등 절차적 요구를 포함하더라도(예: art. 52), 그 구조의 중심이 “분쟁 당사자인 피해국의 자기판단”에 놓여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본 논문이 말하는 ‘권위 결함’ 문제의 정확한 위치다.
1.2 retorsion과의 구분: 왜 이 구분이 중요한가
대응조치를 윤리적으로 평가하려면, 원래 합법인 비우호적 조치(retorsion)와 위법성 조각을 전제로 하는 대응조치(countermeasures)를 구분해야 한다. retorsion은 외교 관계 격하, 원조 축소, 선호적 조치 철회 등 원래 합법인 범위에서 불이익을 주는 조치인 반면, countermeasures는 원래라면 국제의무 위반이 될 행위를 선행 위법행위에 대한 대응으로 예외적으로 허용받는 조치다. 본 논문은 후자에만 초점을 둔다. 왜냐하면 위법성 조각은 곧 “누가 어떤 권위로 예외를 선언하는가”라는 권위 문제를 불가피하게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즉, retorsion에서는 주로 정책적 정당성(목적, 비례, 피해 분배 등)이 문제라면, countermeasures에서는 ‘예외를 선언하는 권위’가 문제의 중심으로 전면화된다.
1.3 딜레마의 재정식화: 집행 기능과 권위 조건의 충돌
서론에서 제시한 딜레마를 1장의 개념 구분 위에서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대응조치는 국제규범의 집행 공백을 메우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기능은 당사자 자기판단과 자력집행을 통해 달성된다. 즉, 대응조치는 집행의 필요(규범 위반에 비용을 부과해야 한다는 요구)와 강제의 정당화 조건(권위·절차·책임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요구) 사이의 구조적 충돌 위에 서 있다. 본 논문은 이 충돌을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처방 논문이 아니라, 강제조치 정당화의 최소 조건과 ARSIWA형 자력집행 구조가 어떻게 불일치하는지 규범적으로 진단하는 논문이다.
2. 강제조치 정당화와 최소 권위 조건: 연결 논증
이 장의 목표는 단순 문헌 소개가 아니라, 3장에서 사용할 규범적 전제를 논증 형태로 확립하는 것이다. 출발점은 간단하다. 강제조치는 상대방의 선택 구조에 의도적으로 개입해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 따라서 강제조치는 (i) 오판 위험(위법성·사실관계·비례성 판단 오류)과 (ii) 남용 위험(자기이익을 위한 예외 남발)을 구조적으로 내장한다. ‘정당한 강제’가 되려면, 이 두 위험을 낮추는 방식으로 권위가 구성되어야 한다.
2.1 Raz의 서비스 개념에서 절차·제도의 요구로의 연결
Raz(1986)의 서비스 개념은 권위를 “복종이 피지배자가 자기 이유를 더 잘 따르도록 돕는 장치”로 이해한다. 여기서 핵심은 ‘더 나은 이유 추종’이 우연히 발생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강제적 권위가 정당화되려면, 권위자의 지시가 관련 사실과 규범을 상대적으로 더 신뢰할 만하게 판단하고, 피지배자의 이유를 공정하게 고려하며, 오판 시 수정될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권위에 따르는 것이 더 낫다’는 조건은 체계적으로 충족되지 못하고, 권위는 단순한 힘의 행사로 전락한다.
이 논리에서 절차·제도의 요구는 다음과 같이 도출된다. 권위가 “더 나은 이유 추종”을 제공하려면, 그 권위는 (a) 편향을 완화하고(당사자 이익의 과잉 반영을 줄이고), (b) 오류를 줄이며(사실·규범 판단을 신뢰가능하게 만들고), (c) 오류가 발생할 경우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권위의 정당화가 인격적 덕성이나 선의에 의존하기보다, 제도적 신뢰가능성(신뢰할 만한 판단을 산출하는 구조)에 의존해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서비스 개념은 권위 정당화의 핵심을 “제도 설계”로 이동시키며, 최소한의 절차·책임 장치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2 Buchanan & Keohane 및 Lefkowitz: 국제적 맥락에서 최소 조건의 성격
Buchanan과 Keohane(2006)은 국제 제도의 정당성을 단순 동의가 아니라, 제도가 최소 도덕적 수용 가능성을 충족하고 비교 우위를 갖추며 제도적 완결성과 책임성을 갖는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강제의 정당성은 “누가 동의했는가”보다 “오판·남용을 줄이고 이해관계자에게 정당화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Lefkowitz(2020)의 국제법 권위 논의도 같은 방향을 강화한다. 국제법이 강제를 수반하며 권위로 기능하려면, 규범의 해석·집행이 당사자 일방의 편의가 아니라 공정한 고려와 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요컨대 국제 맥락에서 ‘정당한 권위’는 동의의 사실만으로 확보되지 않으며, 당사자 편향을 줄이고 오판을 수정하는 통제 가능성에 의해 구성된다.
2.3 제재 윤리 논의의 보조적 역할: “최소 조건”을 구체화하는 방식
Pattison(2015)은 제재를 정전론의 틀로 논의하면서, 정당한 목적·비례성뿐 아니라 누가 어떤 권위로 제재를 부과하는지(정당한 권위)가 핵심임을 강조한다. Fabre(2018)는 경제적 강제가 인권 보호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더라도, 그 정당화는 권위, 표적 설정, 피해 분배, 대안 수단의 부재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Gordon(1999)은 포괄적 제재에서 책임성과 투명성이 결여될 때 인도적 피해가 확대되며, “누가 그 피해에 대해 책임지는가”가 제도적으로 불분명해진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 논의들의 핵심은 하나의 정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조치 정당화에서 (i) 편향 통제(권위의 독립성), (ii) 다툼의 절차(정당한 심리/반론 기회), (iii) 책임 귀속과 시정(오판·남용 통제)이 왜 반복적으로 요구되는지를 구체적 논점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재 윤리 논의는 본 논문에서 “최소 조건”을 실질적 요소로 구성하는 보조적 근거로 기능한다.
2.4 본 논문의 규범적 전제(전제 2)의 재정식화
이제 전제 2를 학술적으로 방어 가능한 형태로 정식화한다. 본 논문은 “정당한 권위가 전혀 없으면 모든 강제는 언제나 금지” 같은 전면적 금지 명제를 채택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을 주장한다.
전제 2(수정): 타국에 대한 강제조치가 정당한 강제로서 완전한 윤리적 정당화(fully justified)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1) 제3자성(당사자 편향을 구조적으로 완화할 장치), (2) 절차적 다툼 가능성(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고 반론할 기회), (3)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오판·남용을 통제·수정할 경로)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이 조건들이 결여된 강제는 특정 상황에서 불가피하거나 차선일 수는 있어도, 정당한 강제라는 강한 도덕적 지위를 안정적으로 획득하기 어렵다.
이 전제는 3장에서 ‘대응조치가 현실에서 사용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이 곧바로 정당한 강제로의 승격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구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3. ARSIWA형 대응조치에 대한 적용: 왜 최소 조건이 체계적으로 취약한가
이 장은 본 논문의 핵심 논증을 논문의 골격으로 제시하고, 각 전제를 순서대로 방어한다. 핵심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대응조치(countermeasures)는 타국의 선택 구조에 비용을 부과하여 행태 변화를 유도하는 강제조치의 한 형태다(윤리 평가의 대상 규정).
(2) 강제조치가 정당한 강제로서 완전한 윤리적 정당화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제3자성·절차적 다툼 가능성·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전제 2).
(3) 현행 ARSIWA가 제도화한 대응조치 구조는 위 최소 조건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그 취약성은 우연적 결함이 아니라 설계상 특징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전제 3).
따라서 (C) 현행 ARSIWA형 대응조치는 정당한 강제로서 완전한 윤리적 정당화를 얻기 어렵다.
3.1 전제 1(축약): 정의가 아니라 “윤리 평가의 대상”을 확정하는 분류 명제
전제 1은 단순한 사전적 정의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 논문이 윤리적으로 평가하는 대상이 ‘단순 비난’이나 ‘외교적 불쾌감 표출’이 아니라, 상대의 선택 구조를 비용으로 재설계하는 강제(coercion)임을 확정하기 위한 분류 명제다. ARSIWA는 대응조치를 위법행위의 종료와 의무 이행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 규율하며(International Law Commission 2001), 그 작동 방식은 비용 부과를 통한 행태 변화 유도라는 점에서 강제조치의 핵심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이후 논의에서 강제조치 정당화 조건(권위·절차·책임)이 대응조치에 적용되는 범위가 확보된다.
3.2 전제 2(재요약): ‘완전한 정당화’의 기준으로서 최소 조건
2장에서 논증했듯이, 강제조치가 정당한 강제로 평가되려면 오판·남용 위험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권위 조건이 요구된다. 본 논문은 이를 (1) 제3자성, (2) 절차적 다툼 가능성, (3)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이라는 최소 조건으로 정식화한다. 이 조건들은 “이 조건이 없으면 언제나 절대 금지”가 아니라, 정당한 강제라는 강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데 필요한 최소 기반을 뜻한다. 따라서 3.3의 쟁점은 대응조치가 현실에서 사용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이 최소 기반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느냐이다.
3.3 전제 3(정교화): ARSIWA형 대응조치가 최소 조건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
전제 3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충족 불가능”이라는 형이상학적 불가능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을 주장한다. 현행 ARSIWA가 전형적으로 제도화한 방식만으로는 제3자성·절차·책임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그 취약성은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경향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를 요소별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가) 제3자성의 취약: 당사자 자기판단 구조
대응조치의 발동 여부와 강도는 피해국의 판단을 출발점으로 한다. 선행 위법행위의 위법성 판단, 필요성·비례성 판단, 종료 판단 모두에서 당사자 편향이 개입할 수 있으며, 이를 제3자가 사전에 구속적으로 차단하는 장치가 ARSIWA에 내장되어 있지 않다. 통지·협의 제안 등의 절차가 있더라도(예: art. 52), 그것은 당사자 간 교섭의 틀일 뿐, 당사자 편향을 구조적으로 제거하는 제3자 판단의 틀은 아니다. 이 점에서 대응조치는 최소 조건 중 제3자성을 제도적으로 박아 넣기보다, 당사자 편향을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나) 절차적 다툼 가능성의 취약: ‘협의’는 있어도 ‘심리/판정’이 없다
ARSIWA는 상대국에 대한 통지와 협의 제안을 요구하지만, 위법국이 자신의 입장을 공정한 포럼에서 다투고 판정을 받을 권리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라”는 얇은 요구는 존재하나, 그 다툼이 독립적 판단으로 수렴되도록 하는 절차(중립적 심리, 증거 평가, 구속적 판단)는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절차적 정당성은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강제 정당화에 필요한 수준으로 제도화되어 있느냐의 문제인데, ARSIWA형 대응조치는 그 수준에 안정적으로 도달하기 어렵다.
(다)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의 취약: 사후 통제의 불확실성과 힘의 비대칭
오판·남용을 사후적으로 통제하려면 분쟁이 효과적으로 회부되고 판단이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제재판 관할 수락, 회부의 정치적 비용, 집행의 한계 등으로 인해 사후 통제는 자동적·일반적 메커니즘이라기보다 ‘가능할 수도 있는 선택지’에 가깝다. 이 불확실성은 강대국/약소국 간 힘의 비대칭 속에서 더욱 증폭된다. 결과적으로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은 제도적 안전장치라기보다 상황 의존적 변수로 남기 쉽다. ARSIWA가 일정 범주의 의무 침해를 금지하는 한계를 두더라도(예: art. 50), 핵심은 오판·남용이 발생했을 때 이를 누가 어떤 절차로 통제하고 시정하는지인데, 그 지점에서 제도적 공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ARSIWA형 대응조치는 얇은 절차적 제약을 갖고 있음에도, 최소 조건(제3자성·절차적 다툼 가능성·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을 정당한 강제의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하기에는 설계상 체계적으로 취약하다.
3.4 결론(C): ‘정당한 강제’로서의 완전한 정당화는 어렵다
따라서 (C) 현행 ARSIWA형 대응조치는 정당한 강제로서 완전한 윤리적 정당화(최소 권위·절차·책임성 조건 충족)를 얻기 어렵다. 이 결론은 대응조치가 언제나 무의미하거나 언제나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경험적 주장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강제조치의 정당화가 요구하는 최소 조건과, 대응조치의 자력집행적 설계 사이의 불일치를 통해 도출되는 규범적 결론이다.
4. 핵심 반론 두 가지와 재반박
이 장은 반론을 ‘입장 나열’이 아니라, 전제 2·3과 결론(C)을 직접 공격하는 형태로 정밀화한다. 반론은 모두 다루지 않고, 논증에 가장 위협적인 두 가지를 선별한다.
4.1 피해국 권리/자력구제 반론(전제 2 공격): 권위 조건이 과도하게 엄격한가?
반론은 다음과 같다. 피해국은 선행 위법행위의 피해자이므로, 제3자 권위가 없더라도 스스로 강제할 권리가 있다. 개인 관계에서 정당방위가 제3자의 승인 없이도 허용되듯이, 국제사회에서도 피해국은 일정 범위 내에서 스스로 위법국에 대응할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전제 2가 요구하는 최소 조건은 과도하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론은 ‘피해자 지위’가 무엇을 정당화하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피해자 지위가 도덕적으로 기초할 수 있는 것은 항의, 방어적 조치, 혹은 특정한 범위의 불이익 부과에 대한 제한적 권원일 수 있다. 하지만 본 논문의 쟁점은 “어떤 행위가 허용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정당한 강제로서 완전한 정당화를 얻느냐이다. 피해자 지위는 자기판단 편향 위험과 남용 유인을 제거하지 못하며, 오히려 분쟁 당사자라는 이유로 그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러므로 피해국 권리론은 전제 2를 무효화하기보다, 왜 권위 조건이 필요한지를 더욱 분명히 한다. 결론적으로 전제 2는 “피해국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가 아니라, “피해국의 강제가 정당한 강제라는 강한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조건이 필요하다”는 구분을 유지한다.
4.2 비이상적 차선 정당화 반론(결론 C 공격): 정당한 강제가 아니어도 정당화는 가능한가?
두 번째 반론은 현실을 근거로 결론(C)이 너무 강하다고 비판한다. 중앙집중적 집행기관이 부재하거나 정치적 이유로 마비되어 있을 때, 대응조치는 위법국에 비용을 부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응조치는 이상적 의미의 정당한 강제는 아닐지라도 “다른 현실적 대안에 비해 덜 부당한” 수단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반론이 지적하는 현실적 곤란은 중요하다. 그러나 ‘불가피함’과 ‘정당한 강제로서의 완전한 정당화’는 다른 평가다. 본 논문은 처음부터 “차선적 허용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차선의 허용은 통상 결함 있는 정당화(불완전 정당화)의 형태를 가지며, 그 자체가 최소 조건의 결여를 상쇄하여 강제에 정당한 권위의 지위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결론(C)은 “대응조치를 언제나 금지”가 아니라, “대응조치를 정당한 강제와 동일한 도덕적 지위로 포장하는 언어를 경계”하는 결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구분을 유지할 때에만, 비이상적 조건에서 어떤 추가 장치(제3자 심사 강화, 사후 책임 메커니즘 등)가 결함을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정확한 좌표 위에서 가능해진다.
결론
본 논문은 “정당한 제3자 권위를 결여한 대응조치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ARSIWA형 대응조치가 정당한 강제로서 완전한 윤리적 정당화를 얻기 위한 최소 조건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지 못한다는 논제를 방어했다. 이를 위해 먼저 대응조치 개념을 본 논문 목적에 맞게 초점화하고, 특히 retorsion과 countermeasures를 구분함으로써 권위 결함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분명히 했다. 다음으로 강제조치 정당화의 핵심을 오판·남용 위험의 통제 문제로 설정하고, Raz(1986)의 권위론에서 제도적 신뢰가능성 요구가 도출되는 경로를 제시한 뒤, Buchanan & Keohane(2006) 및 Lefkowitz(2020)의 논의를 통해 국제적 맥락에서 정당성의 핵심이 ‘동의’가 아니라 ‘통제 가능성’에 놓인다는 점을 보강했다. 그 결과 본 논문은 정당한 강제로서의 완전한 정당화를 위해 최소한 제3자성, 절차적 다툼 가능성,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전제(수정된 전제 2)를 정식화했다.
이 전제를 ARSIWA형 대응조치 구조에 적용한 결과, 대응조치는 얇은 절차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1) 당사자 자기판단 구조로 인해 제3자성이 취약하고, (2) 협의는 있어도 독립적 심리·구속적 판정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 절차적 다툼 가능성이 약하며, (3) 사후 통제가 자동적·일반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상황 의존적 변수로 남기 쉬워 책임성과 시정 가능성이 체계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논증했다. 따라서 현행 ARSIWA형 대응조치는 정당한 강제로서 완전한 윤리적 정당화를 얻기 어렵다는 결론(C)이 도출된다.
본 논문은 또한 가장 강한 반론 두 가지를 선별해 검토했다. 피해국 권리론은 피해자 지위가 최소 권위 조건을 면제한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지위는 오히려 자기판단 편향과 남용 위험을 상쇄하지 못하므로 ‘정당한 강제’라는 강한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조건을 제거하지 못한다. 비이상적 차선 정당화는 대응조치의 현실적 불가피성을 강조하지만, 불가피함은 완전한 정당화와 동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결함을 결함으로 인식할 때에만 제도적 보완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이 제시하는 함의는 제한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제재 일반에 대한 직접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다만 국제정치에서 경제적 강제가 논의될 때, 그것이 중앙집중적 권위에 의해 집행되는 조치인지, 당사자 자기판단에 의해 집행되는 대응조치인지에 따라 정당화의 부담(권위·절차·책임성 요구)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한다. 이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제도 구조에 동일한 정당화 언어를 적용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대응조치는 규범 위반 억지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현행 설계는 정당한 강제를 구성하기에 체계적으로 취약하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대응조치를 사용할 때에는 그것을 정당한 강제로 포장하기보다, 결함을 가진 비이상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가능한 한 제3자성·절차·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제도적 보완을 모색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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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chanan, Allen, and Robert O. Keohane. “The Legitimacy of Global Governance Institutions.” Ethics & International Affairs 20, no. 4 (2006): 40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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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wford, James. “The ILC’s Articles on Responsibility of States for Internationally Wrongful Acts: A Retrospect.”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3, no. 5 (2002): 96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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