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07-05 박윤형
제목: 혐오 표현은 규제되어야 하는가?
I. 서론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에서 발생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지속적인 우려가 제기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표현의 성격을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 혐오 표현이 표현의 자유 담론에서 중요한 이유는 혐오 표현의 주체와 대상의 권리가 규제/보호 여부에 따라 상충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이 특정 집단(특히 소수자 집단)을 향하게 되는 경우 집단에 대한 지속적이고 공개적인 공격이 사회적으로 학습되며, 이는 집단 구성원의 평등한 지위를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경우 혐오 표현 주체의 자유를 필연적으로 제한하게 된다. 다시 말해, 평등한 시민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두 상황에서 전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Waldron은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혐오 표현 주체의 평등한 시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반면, Strossen은 표현의 성격에 따라 표현의 보호 여부가 결정된다는 주장은 표현의 자유가 내포하고 있는 비선별적 의미1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혐오 표현 역시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대상이고,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은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킴으로서 활성화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Dworkin 또한 소수자 보호의 관점에서 열린 토론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반론하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긴장 속에서 혐오 표현이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가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의 논변은 혐오 표현이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대상이라는 점과, 시민권의 행사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는 대표적인 두 가지 논증에 토대하고 있다. 이를 보이기 위해 다음 본론에서는, 먼저 혐오 표현이 보호되는 대상이라는 점을 논증하고, 다음으로 Renton의 입장을 참고해서 특정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가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민권의 제한 조건을 근거로 들어 설명할 것이다. 이후 혐오 표현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반론을 고찰하고 이를 재반박함으로써 위 논제를 정당화할 것이다.
II. 본론
1.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대상이다
표현의 자유는 표현의 가치가 선별되지 아니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권력이 어떤 표현을 억압할 수 없도록 보장하고, 개인이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혐오라는 표현의 성격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가 된다면,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상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인종차별적 발언이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이유로 규제되게 된다면, 다른 도덕적으로 악한 표현에 대해서도 규제가 확대될 수 있고, 이에 따라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 의미가 퇴색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는 표현의 성격과 관계없이 표현을 보호하고,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대상으로 볼 수 있다.
2. 시민권의 행사 범위는 시민적 질서의 존속을 전제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또한 시민권의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전제 조건에서 벗어난 경우에 대해서는 규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파시즘적 표현에 대한 규제 가능성이 검토될 수 있다. 다른 혐오 표현과 달리 파시즘적 표현은 단순히 평등한 시민권을 부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폭력을 통해 이를 실질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를 포함하기 때문에 규제되어야 한다. Renton에 따르면, 파시즘2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선동, 물리적 폭력, 정치적 테러를 통해 상대 집단을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평등한 시민권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파시즘적 표현은 단순한 혐오가 아닌, 표현의 자유를 통해 보장되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공론장을 파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시민권의 실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단순히 ‘유대인이 싫다’는 발언은 개인적 편견의 표현에 머무를 수 있지만, 홀로코스트를 옹호하며 ‘유대인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선동하는 발언은 과거의 집단적 폭력을 정당화하고 이를 현재의 정치적 폭력 가능성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파시즘적이다. 이러한 표현은 유대인 집단의 평등한 시민권을 부정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타 집단의 발언권과 존재 자체를 위협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하는 효과를 지닌다. 따라서 시민적 질서의 존속이라는 시민권 행사의 전제를 벗어나는 파시즘적 표현에 관한 규제는 이루어져야하고, 이는 표현의 자유가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 반론: 실질적 파괴 시도 없이도 시민적 질서의 훼손은 가능하다
혐오 표현의 규제를 실질적으로 시민권이 파괴될 수 있는 위협을 포함하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시각에 대해서 반론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Waldron은 혐오 표현이 특정 집단(특히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공개적이고 지속적으로 표출하면서 집단 구성원들이 그 위협을 체감하게 되기 때문에, 발언의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집단 구성원들의 권리 행사를 위축시켜 평등한 시민권의 실현을 저해한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이는 파시즘적 표현이 아닌 일반적 혐오 표현이라도 집단 구성원들이 실제로 위협을 체감한다면 규제가 이루어져야한다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Waldron은 혐오 표현 규제의 기준을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두기보다 시민 간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두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효과적이라고 논증한다. 즉, 시민권의 침해 여부를 혐오 표현 대상자들의 시각에서 파악해야하며, 이는 혐오 표현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4. 재반박: 표현에 대한 규제가 효과적이라고 전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것이 실제로 시민권 위축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왜냐하면 피해 집단이 경험하는 위축은 규제 자체보다 사회적 토론, 교육, 시민적 참여 촉진과 같은 표현과 공론장의 활성화를 통해서 더 효과적으로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규제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축소시키고, 자유민주적 공론장의 건강한 기능을 저해함으로써 시민권 행사의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시민권 위축 문제를 이유로 한 광범위의 규제는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파시즘적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시민권 위축 문제가 규제를 통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권의 실질적 파괴를 목표로 하는 폭력과 선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규제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공론장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시민권 파괴 시도가 아닌 한, 표현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비선별적 의미를 저해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
III. 결론
이 글은 표현의 자유가 시민권이라는 전제 아래 시민이 지니는 권리임을 전제로 하여, 모든 표현은 원칙적으로 보호되지만 시민권의 실질적 파괴를 목표로 하는 파시즘적 표현은 예외적으로 규제될 수 있음을 논증하였다. 파시즘적 표현은 폭력과 선동을 포함하여 시민권의 실현 자체를 위협하므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원칙을 유지하면서 시민권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 조치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일반적 혐오 표현의 경우 시민권 위축 문제는 규제보다는 공적 토론, 교육, 시민적 참여 활성화와 같은 사회적·교육적 대응을 통해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광범위한 규제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공론장의 기능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시민권 보호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은 표현의 성격과 사회적 맥락을 구분하여 판단해야 하며, 규제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본 논의는 이러한 기준 아래,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 보호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제도적·사회적 대응의 설계가 민주적 시민권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강조한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