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28 유혜인
제목: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의 딜레마 논의: 양적 증가 대 완전한 재현 비교를 중심으로
서론
현재 대중매체에서 성소수자를 발견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성소수자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지만, 이러한 증가가 성소수자의 다양한 현실을 편견 없이 생생하게 담아내는 완전한 재현과 양립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과거 영화 산업과 TV 대중매체에서 성소수자는 거의 보이지 않거나 부정적으로만 묘사되어 왔다. 실제로 1990년대 초까지 주류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는 문란한 인물로서 빌런으로 등장하거나,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약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동성애자는 치료되어야 할 환자로 취급되었고, 남성 동성애자는 여성스럽게, 여성 동성애자는 남성적으로 묘사되며 기존의 이성애 규범과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성소수자의 보이지 않음(invisibility)과 왜곡된 재현의 역사는 성소수자들이 대중문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상황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998년 미국 NBC 방송에서 게이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 Will & Grace가 큰 인기를 얻고 다수의 상을 수상하면서, 성소수자 캐릭터는 점차 대중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긍정적 묘사 또한 증가했다. 2003년에는 미국 지상파 프라임타임에 8명의 성소수자 주연 캐릭터가 등장하여 이전 시즌의 5명에 비해 크게 늘어났으며, 이 시기는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에 있어 ‘획기적인 진전’으로 평가되었다(Avila-Saavedra, 2009).
이처럼 성소수자가 대중매체에서 점차 ‘주류’의 일부로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학계와 활동가들은 단순히 캐릭터 수의 증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성소수자가 이전보다 대중에게 더 많이 인식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눈에 보이는 가시성 자체가 곧 편견을 해소하거나 사회적 수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경고한다.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기득권층의 시각과 이익에 따라 제한적으로 재현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Gross는 레즈비언과 게이가 다른 소수자 집단에 비해 대중매체의 영향에 특히 취약하며, 당사자의 목소리가 억압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나 왔다고 지적한다. 이는 인종이나 성 역할과 달리, 성소수자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역할 모델을 찾기 힘들고, 그 결과 미디어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의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Gross, 1991).
따라서 대중매체에서 성소수자가 그려지는 방식은 성소수자의 자기인식과 사회적 수용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에 있어 양적 증가가 중요한가, 아니면 완전한 재현이 중요한가”라는 딜레마가 부각된다. 즉, 성소수자가 미디어에 더 자주 등장하는 것 자체를 우선시해야 할지, 아니면 드물게 등장하더라도 편향이 없고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한 ‘이상적’ 재현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이다.
본 글은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에서는 ‘완전한 재현’보다 양적 증가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입장을 옹호한다. 여기서 ‘완전한 재현’이란, 단순히 명백한 혐오나 병리화를 피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 다양한 성소수자 정체성의 교차성(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인종, 계급 등)을 충분히 반영하고 당사자성이 확보된 이상적 재현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준은 규범적으로 중요하지만, 현실의 미디어 환경에서 즉각적으로 충족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또한, 이 글에서 ‘양적 증가’는 (1) 등장 캐릭터 수의 확대와 (2) 반복 노출 빈도 증가를 포함한다.
본 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완전한 재현을 달성하기 이전 단계로서 성소수자 재현의 양적 확대, 즉 가시성 확보가 사회적 해악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질적 재현으로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논리 구조를 따른다. (1)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은 사회적 인식 변화와 권리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 이 과정에서 비가시성은 가장 심각한 해악을 낳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재현보다 양적 증가가 우선적으로 효과적이다. (3) 나아가 양적 증가는 비판과 경쟁을 통해 장기적으로 질적 재현으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창출한다.
본론
미디어 재현 전략은 해당 집단에 대한 사회적 해악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미디어는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장이자, 특정 집단에 대한 인식의 형성과 유지에 핵심적으로 기능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미디어에서 성소수자가 재현될 때, 해당 집단에 대한 사회적 해악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미디어 재현 전략이 설정되어야 한다. 즉, 미디어 재현 전략을 판단할 때에는 어떤 방식의 재현이 더 큰 해악을 낳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더 많은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 중 하나는 가시성이라고 할 수 있다.
비가시성은 상징적 말살(symbolic annihilation)이며 가장 큰 해악이다
‘상징적 말살’ 개념은 미디어에서의 재현 부재가 곧 해당 집단의 사회적 존재를 삭제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특히 소수자 집단에게 치명적인데, 소수자일수록 일상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고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특정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그들을 ‘없는 존재’로 간주하게 되며, 이들을 사회적으로 포용하기 위한 논의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성소수자를 실질적으로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권리는 우선 존재가 승인되고 인정되어야만 작동한다는 점에서, 비가시성은 정책적 배제와 제도적 무관심을 구조적으로 초래한다.
또한 비가시성은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왜곡과 지연이라는 해악을 가져온다. 사회적 인정은 개인의 정체성 발달에 핵심적인 요소이며(Berger & Luckmann, 1967), 미디어는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역할 모델을 발견하는 주요한 자원 중 하나이다. 그러나 미디어 속에 자신과 유사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을 경우, 성소수자 개인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과 부정적 감정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이러한 영향은 청소년기 성소수자에게 더욱 치명적인데, 실제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비가시성과 고립된 환경 속에서 우울, 자아 혐오, 소속감 결여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Russell et al., 2016). 즉, 미디어 부재는 정체성 형성에 있어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인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는 조건이다.
더 나아가 비가시성은 혐오를 정당화하거나 강화하는 토대로 기능하기도 한다.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접하지 않은 존재를 쉽게 낯선 타자나 위협적인 존재로 상상하며, 이러한 막연한 두려움은 폭력과 배제의 담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보호의 대상이 되기 어렵고, 그 결과 혐오와 차별은 문제시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
미디어 재현에 있어 ‘가시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이익은 크다
미디어에서 성소수자 인물들은 오랫동안 고정관념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성소수자는 미디어를 통해 점차 가시화되었다. 미디어 재현에 있어 ‘가시화’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Gross는 가시성이 정치적 권리의 시작임을 강조하며, 특정 집단이 공적 영역에서 인식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보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Gross, 2001). 비록 재현된 모습이 납작하고 불완전하더라도, 성소수자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가시화는 이후 집단에 대한 논의, 문제 진단, 개선 운동과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다시 말해, 재현된 대상이 존재해야만 비판 역시 가능하다. 특히 미디어는 대중에게 특정 집단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그들의 일상과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가시화의 효과가 집중적으로 작동하는 장이다.
양적 증가는 완전한 재현보다 이익이 크며,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유도한다
양적 증가를 통해 접촉 기회를 늘리고 이는 편견을 감소시킨다
‘준사회적 접촉 가설(Parasocial Contact Hypothesis)’에 따르면, 미디어 속 인물과 시청자 사이에 형성되는 의사친밀감은 실제 대면 접촉이 편견을 감소시키는 효과와 유사한 수준의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시청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와 심리적 관계를 형성하며, 이러한 관계는 직접적인 만남이 없더라도 특정 집단에 대한 친밀감과 이해를 증진시킨다.
이러한 효과는 Allport의 접촉 가설을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 Allport는 편견 감소가 협력적 상황, 동등한 지위, 공통 목표라는 조건에서 가장 잘 일어난다고 보았다(Allport, 1954). 미디어는 이러한 조건을 허구적 서사와 상황을 통해 재현할 수 있으며, 현실에서 성소수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간접적인 접촉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미디어를 통한 접촉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 노출만으로도 긍정적인 수용을 이끌어내며 이는 편견을 감소시킨다
더 나아가 미디어 재현의 양적 증가는 재현의 질과 무관하게, 반복적인 노출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Zajonc은 반복 노출이 대상에 대한 호감 증가로 이어진다는 ‘단순 노출 효과’를 제시했다(Zajonc, 1968). Allport의 접촉 가설이 집단 간 상호작용이 편견 감소로 이어지는 조건을 설명한다면, Zajonc의 반복 노출 효과는 그러한 접촉이 가능해지기 위한 심리적 친숙성의 형성 과정을 설명한다. 즉 반복적인 미디어 노출은 성소수자에 대한 낯섦을 완화하고 정서적 친숙성을 축적함으로써, 준사회적 접촉이 작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이러한 친숙성 위에서 형성되는 감정이입과 동일시는, 실제 대면 접촉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편견 완화 효과를 가능하게 한다. 미디어 서사는 시청자가 특정 캐릭터의 경험을 따라가며 감정적으로 동일시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타자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확장시킨다. 초기에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재현이라 하더라도,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점차 익숙함과 공감이 축적될 수 있다.
왜곡된 재현이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반론
미디어 재현의 양적 증가를 옹호하는 입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왜곡되거나 불완전한 재현이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비판은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이 오랜 기간 ‘타자화’의 방식으로 작동해왔다는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다. Hall이 지적했듯이, 미디어는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수동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특정 집단을 사회적 질서 속에 배치하는 권력의 장이다(Hall, 1997). 성소수자가 희화화되거나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되고, 병리화된 방식으로 재현될 경우, 대중은 이러한 이미지를 현실의 성소수자 집단 전체에 일반화하게 된다(Gross, 2001).
실제로 초창기 미디어에서 성소수자 캐릭터는 비극적 서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AIDS와 같은 질병 서사, 범죄성과 결합된 음지의 인물, 혹은 죽음으로 결말 맺는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재현되었다(Walters, 2001). 이러한 재현은 성소수자를 위협적이거나 불안정하고 비극적인 존재로 규정하며, 정상성의 바깥에 위치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이는 단순한 서사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성소수자를 정치적 타자로 구축하는 상징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 표상은 실제 사회적 폭력과 제도적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미지가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참조점이 될 경우, 교육·복지·안전 영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공적 지원은 사소하거나 불필요한 문제로 치부되기 쉽다. 혐오 표현과 차별적 발언 역시 “미디어에서도 저렇게 묘사된다”는 논리를 통해 정당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부정적 재현은 성소수자 내부에도 심각한 해악을 남긴다. 성소수자는 미디어 재현을 통해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파악하게 되는데, 자신과 닮은 인물이 반복적으로 조롱당하거나 배제되고 죽음으로 귀결되는 방식으로 등장할 경우,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는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형성하기 어렵다(Russell et al., 2016). 이는 심리적 고립과 자기혐오, 우울감 증가로 이어지며, 삶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이처럼 왜곡된 재현이 낳는 해악은 대중 인식, 정책 반응, 당사자 심리라는 세 경로를 통해 누적되고 증폭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연구자들은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에 있어 수의 확장보다 질적 통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Walters, 2001).
완전한 재현은 이상적 목표이지만, 양적 증가 없이는 질적 진전도 불가능하다는 재반박
성소수자 재현의 질적 발전에 있어 양적 증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재현의 해악과 비가시성이 낳는 해악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왜곡된 재현은 분명 문제적이지만, 그것은 보이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해악이라는 점에서 비판과 수정의 가능성을 전제한다. 반면 비가시성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공적 영역에서 삭제함으로써, 문제 제기와 개선의 가능성마저 차단하는 보다 근본적인 해악을 낳는다.
미국 미디어에서 성소수자 재현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소수자는 오랜 기간 등장조차 허용되지 않다가, 고정관념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먼저 가시화된 이후 점차 다양한 장르와 정체성으로 확장되어 왔다. 초기에는 중산층 백인 남성 중심의 재현이 주를 이루었으나, 바로 그 제한적 가시화를 계기로 이후 인종, 계급, 성별 정체성이 교차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즉, 역사적으로 재현의 질적 발전은 언제나 양적 증가 이후에 가능했다.
Silverstone은 사회적 승인에는 일정한 ‘임계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Silverstone, 1999). 소수의 예외적인 등장은 사회적으로 쉽게 무시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반복적 등장은 해당 집단을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논의의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질적 완성도를 요구하는 것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시화된 기반 위에서 비판과 개선이 가능하다
따라서 가시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학술 연구, 정책적 제언, 시민운동 모두 작동하기 어렵다. 불완전한 재현에 대한 비판 역시, 바로 그 불완전한 재현이 만들어낸 공적 공간 안에서만 가능해진다. 성소수자 재현의 양적 증가는 제작자 간 경쟁을 촉발하고, 더 정교한 서사와 다양한 캐릭터를 요구하는 환경을 형성한다. 그 결과 창작자와 배우, 제작진 전반에서 성소수자의 비중이 확대되고, 이는 미디어 재현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론
미디어에서 성소수자의 재현은 단순한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 여부와 존엄을 둘러싼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이다. 상징적 말살 이론이 지적하듯, 미디어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비가시성은 가장 심각한 해악을 낳는다. 보이지 않는 이들은 사회적 승인에서 제외되고, 정체성 형성이 지연되며, 사회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기 어렵다. 이는 성소수자 개인의 정신건강과 공동체 내 신체적·정서적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재현 전략은 무엇보다 해악 최소화를 목적으로 해야 하며, 비가시성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적 과제이다.
물론 초기의 재현은 종종 불완전하며, 스테레오타입이나 주변화된 이미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해서 등장 자체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미디어 재현의 질적 개선은 언제나 일정한 양적 기반이 마련된 이후에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사는 충분한 가시성과 경쟁 속에서 발생하며, 비판적 담론 또한 등장하는 대상이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가시성은 비판의 장을 열고, 비판은 개선의 동력이 된다. 즉, 질적 변화는 양적 확장의 결과로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건너뛰기 어렵다.
또한 미디어에서 성소수자의 등장을 반복적으로 늘리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편견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준사회적 접촉을 통해 시청자는 미디어 속 인물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고,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타자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특히 성소수자와 직접 접촉할 기회가 제한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간접 접촉이 태도 변화의 중요한 경로로 기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디어 재현의 증대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정서적 안녕과 사회적 정체감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디어 속에서 자신과 유사한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때, 성소수자는 고립감이 완화되고 자신의 삶이 사회적으로 ‘가능한 삶’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감각을 형성할 여지를 얻는다. 이는 개인의 자기이해와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효과는 비가시성 상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요컨대 가시성은 대중에게는 이해의 단서를, 당사자에게는 사회적 승인과 안전의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결국, 완전한 재현을 요구하기 이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은 더 많은 등장이다. 성소수자의 미디어 재현은 양적 증가를 통해 상징적 공간을 넓히고, 다양한 서사가 경쟁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비로소 다양성, 진정성, 당사자성에 기반한 질적 발전이 가능해진다. 특히 본론에서 보았듯 왜곡된 재현이 해악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는 타당하지만, 그 해악은 ‘보이는 상태’에서 비판과 수정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애초에 논의의 장 자체를 차단하는 비가시성의 해악과 구별된다. 이러한 점에서 완전한 재현은 양적 확장이 충분히 진행된 이후에 도달 가능한 목표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 전략에서 중요한 방향은 가능한 방식으로 가능한 많은 등장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불완전한 재현을 이유로 등장 자체를 지연시키는 태도는 비가시성을 지속시키고, 성소수자가 사회적 존재로 자리 잡는 데 필요한 공적 논의의 조건을 약화시킬 수 있다. 성소수자 재현의 기준은 이상적 완성도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그 기준은 현재의 해악을 얼마나 줄이고, 미래의 권리와 개선 가능성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는가에 있다. 이 관점에서 성소수자 재현은 완벽을 선결 조건으로 삼기보다, 가시성을 확대하는 단계적 전략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변화의 경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의 학술적 기여는 성소수자 미디어 재현을 둘러싼 기존의 ‘양적 증가 대 질적 완전성’ 논쟁을, 재현의 이상적 완성도를 둘러싼 가치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비가시성과 왜곡된 재현이라는 상이한 해악을 비교 및 평가하는 문제로 재구성했다는 데 있다. 즉 본 논문은 “어떤 재현이 더 바람직한가”라는 추상적 질문을 넘어서, 어떤 조건에서 어떤 해악이 더 크며, 그에 따라 어떤 재현 전략이 우선되어야 하는가라는 규범적·분석적 기준을 제시한다.
특히 왜곡된 재현이 낳는 해악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해악이 ‘보이는 상태’에서 비판과 수정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애초에 논의의 장 자체를 차단하는 비가시성의 해악과는 구별된다는 점을 논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양적 증가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기보다는, 가시성을 질적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위치시키는 단계적 재현 전략을 이론적으로 정식화한다.
물론 본 논의는 주류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반복 노출과 가시성 효과가 비교적 강하게 작동하는 맥락을 전제한다. 플랫폼의 성격, 장르, 국가별 미디어 환경에 따라 양적 증가의 효과와 위험은 달라질 수 있으며, 특정 유형의 왜곡 재현이 예외적으로 심각한 해악을 낳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향후 연구에서는 구체적 텍스트 분석과 경험적 연구를 통해, 양적 증가가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는 조건과 질적 통제가 우선되어야 할 예외적 상황을 보다 정교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이 제시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완전한 재현을 요구하기 이전에, 성소수자가 공적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소수자의 미디어 재현은 가시성의 확대를 통해 상징적 공간을 넓히고, 그 위에서 비판과 수정, 다양화가 가능해지는 토대를 형성한다. 이 점에서 양적 증가는 완전한 재현의 대안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현실적 경로로 이해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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