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1-21 조윤진

제목: 미디어 속 성소수자에 대한 명시적 재현의 필요성: 암시적 재현의 이성애적 규범 강화 경향을 중심으로

서론

성소수자(LGBTQ+) 인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재현은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 질적 형태는 종종 ‘암시적 재현’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암시적 재현은 특정 인물의 성적 지향이나 젠더 정체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애매한 대사, 행동, 관계 설정 등을 통해 시청자가 퀴어적 의미를 임의로 채워 넣도록 유도하는 표현 방식이다. 이러한 암시적 재현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해석은 첨예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암시적 재현이 이성애적 규범을 강화한다고 본다면, 암시적 재현을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검열과 규제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제작자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제한적 표현 전략 혹은 퀴어 가시화 운동의 잠정적 성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반대로 암시적 재현이 이성애적 규범을 강화하지 않는다고 본다면, 암시적 재현의 모호성이 여전히 이성애 중심 서사를 기본값으로 강조하는 매체의 구조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해 버틀러는 ‘수행성(performativity)’ 개념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여기서 수행이란 주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행위나 언어를 의미하며, 젠더는 반복되는 수행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구성물이다. 버틀러는 이러한 규범의 반복이 실패하거나 과잉될 때 전복적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암시적 재현은 이성애적 규범의 반복을 은연중에 행함으로써 기존 규범 반복의 실패 가능성을 억제하고 이성애적 규범을 강화한다고 말한다(Butler, 1990). 또한 버틀러는 이성애적 규범이 지배하는 제도적 구조는 반복적 수행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전복을 무력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에 규범을 완전히 벗어난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보며(Butler, 1993), 이러한 버틀러의 논의를 수용하면 암시적 재현은 규범적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기존 규범의 질서를 보호하는 수동적 재현이다. 반면, 그로츠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이 단순한 반복의 결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몸의 물질성과 예측 불가능한 우발성이 작동하는 과정임을 강조하여 버틀러를 비판한다. 그로츠는 정체성·젠더·성이 허구성을 지닌 구성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나, 그 구성의 장은 ‘몸’이라는 물질적 실재라고 본다. 따라서 몸은 수동적 표면이 아니며, 담론이 완전히 규정할 수 없는 물질적·동역학적 힘을 갖는다고 말한다(Grosz, 1994, chap. 6). 이러한 ‘몸’ 개념을 바탕으로 그로츠는 버틀러가 제시한 수행성이 단순 반복의 과정이 아니며, 실체로서의 몸이 갖는 우발성이 작동하는 창조적 과정이라고 말한다. 규범이 반복된다 해도 그 반복이 반드시 동일성을 재생산하지 않으며, 이때 실재하는 몸은 그 물질성과 우발성을 바탕으로 규범에서 벗어나는 과잉·차이·창발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Grosz, 1994, chap. 8). 이러한 그로츠의 논의를 따를 때, 암시적 재현의 모호성과 시청자의 능동성이 역설적으로 규범에 대한 저항적 해석을 촉발할 잠재력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본고는 이러한 대립 속에서 버틀러의 입장을 옹호하며, 암시적 재현이 갖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미디어에서의 암시적 재현이 주류 이성애 질서의 ‘정상성’을 재확인하고 이성애적 규범을 공고히 함을 논증하고자 한다. 또한 해당 논증을 바탕으로 이성애적 규범의 전복과 성소수자 권리 증진을 위해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미디어에서의 명시적 재현이 필요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1] 암시적 재현의 특성과 그 제도적 배경을 분석하고, [2] 시청자의 인지적 해석 과정에서 이성애 규범이 어떻게 고착화되는지를 버틀러의 수행성 이론과 세즈윅의 호모소셜 욕망 분석을 통해 논증할 것이다. [3] 한편, 후자의 전제에 대해 ‘암시적 재현이 갖는 모호성은 전복적 독해의 가능성을 내포하며 규범 교란의 잠재력을 지닌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 글은 해당 예상 반론에 대해 [4] 미디어를 둘러싼 구조적·제도적 힘이 해석의 자유를 통제하며, 따라서 전복 가능성은 현실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발현된다는 반박 논리를 버틀러와 아흐메드의 논의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5] 성소수자의 권리 증진에 미디어가 진정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규범적 질서를 교란하고 새로운 정상성을 구성할 수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명시적 재현이 미디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밝힐 것이다.

본론

­암시적 재현의 형식적 특성과 제도적 배경

암시적 재현의 정의와 모호성

재현이란 사물의 관념이 구체적인 물질적 양식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재현의 정의에 의거했을 때, 미디어에서의 퀴어에 대한 암시적 재현은 특정 인물의 성적 지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시각화하지 않고, 은유적이고 애매한 말, 행동, 그리고 관계적 긴장을 통해 시청자가 의미를 채워 넣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무엇이 실제로 퀴어인가?”, “지금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동성 간의 깊은 관계는 우정인가, 성애적 욕망인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에 대한 해석의 공백을 만들어낸다. 퀴어 시청자들에게는 이러한 모호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미디어에 대한 해석적 텍스트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미디어 속 성소수자 인물은 그들의 지향성과 정체성을 명시적으로 확립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 시청자들에게는 ‘추측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여 실체 없는 이미지로 전락할 위험성을 지닌다. 이와 같이 암시적 재현은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해당 인물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해 추측하게 만든다.

암시적 재현에 작동하는 제도적 요소

암시적 재현은 미디어의 미학적 선택을 넘어, 대부분 검열, 수용성, 상업성 등 제도적 요인에 의해 선택된 회피 전략으로써 작동한다. 미디어 제작자들은 명시적인 퀴어 재현이 가져올 잠재적 시장 위험을 피하려 하며, 이러한 경향은 성소수자에 대한 보수성이 강한 지역의 미디어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성소수자 인물의 정체성·지향성을 언급하거나, 인물 간 동성애·양성애적 관계가 묘사되는 방식의 명시적 퀴어 재현은 규제 기관의 개입, 보수적인 광고주의 이탈, 그리고 특정 해외 시장에서의 보이콧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암시적 재현은 퀴어적 코드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으면서도 ‘안전한’ 소비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상업적 계산이 작동한 결과물이다. 이는 명시적 퀴어 정체성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이성애 중심의 주류 시청자층을 안심시키고, 동시에 퀴어 시청자에게는 은밀한 코드를 제공하여 충성도를 유지하려는 양면 전략이다. 이처럼 암시적 재현은 그 모호성에 자신을 투영하고 해석하는 퀴어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재현 방식일 수 있으나, 정작 이는 근본적으로 규범적 압력과 시장 논리에 제작자가 순응하고 타협한 결과물이며, 퀴어 정체성을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하는 자본의 논리가 낳은 부산물이다.

인지적 고착화와 기존 규범의 강화

인지적 기본값 가정과 호모소셜 욕망으로의 중화

시청자들은 미디어 속에서 드러나는 모호한 관계를 해석할 때, 자신의 사회적 경험과 교육을 통해 체화된 이성애적 규범을 기본값으로 설정한다. 이성애가 사회적 ‘정상성(normality)’으로 강력하게 전제되고 있는 환경에서, 모호한 동성 간의 친밀성이나 긴장감은 동성애적 욕망의 가능성으로 해석되기 전에 ‘친밀한 우정’이나 ‘브로맨스’와 같은 비성애적 범주로 쉽게 중화되고 재해석된다.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 1985)은 서구 가부장제 문화에서 남성 간의 비성애적 유대이자 사회적 결속인 ‘호모소셜(Homosocial)’ 욕망은 여성에 대한 통제를 매개로 작동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동성애적 긴장(homosexual tension)은 동성애 공포증(homophopia)을 통해 자주 ‘정상적 우정’으로 중화되어 이성애적 질서를 유지한다고 분석하였다. 세즈윅은 남성 간의 비성애적 관계인 호모소셜과 남성 간의 성적 관계인 호모섹슈얼이 문화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연속선상에 놓여있으며, 따라서 그 경계는 유동적이라고 말한다(Sedgwick, 1985, pp. 1-2). 세즈윅은 18-19세기 영국 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며 남성 A와 남성 B의 관계가 여성 C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동하는 삼각 욕망 구조를 제시하여 이를 설명한다. 남성들은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욕망을 표현하는 대신 여성을 매개로 권력과 유대를 교환하며, 이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 간의 정서적 관계를 강화하는 도구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각 구조 내에서 세즈윅은 남성 간의 깊은 친밀감은 언제든 성적 욕망 즉, 호모섹슈얼로 전이될 ‘위험’이 있으며, 이 ‘위험’을 방지하고 호모소셜 유대를 보호하기 위해 동성애 공포증이 강력한 규범 기제로 작동한다고 본다. 동성애 공포증은 남성 간의 친밀한 관계를 ‘안전한’ 우정으로 격리하고 재해석하는 일종의 중화 장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세즈윅은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남성 권력은 남성 간의 유대를 필요로 하며, 이 유대가 동성애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성애 공포증이라는 억압적 성격의 기제를 활용하여 이성애적 질서의 안전성을 보장한다고 말한다(Sedgwick, 1985).

미디어에서의 브로맨스 암시는 세즈윅이 주장한 중화 과정을 현대적으로 반복하는 구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암시적 재현은 동성 간의 성적 욕망을 명시적으로 확정짓지 않고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시청자의 규범적 해석이 미디어에 개입할 여지를 극대화한다. 이는 결국 동성애적 욕망이 이성애 질서의 안전성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우정으로의 재해석’ 과정을 구조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따라서 미디어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암시적 재현은 이성애 규범의 중심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수행성의 구조적 제약과 퀴어의 주변화

암시적 재현이 만들어낸 해석의 여지는 버틀러가 제시한 젠더 수행의 맥락 속에서도 이성애 규범을 더욱 확고히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90)에 따르면, 젠더와 성적 지향은 사회적 규범의 강제적이고 반복적인 인용(citation)을 통해 구성되는 수행성(performativity)의 효과이다. 그리고 이성애적 규범은 이러한 반복적 수행을 통해 자신을 ‘정상적’인 것으로 확립한다. 버틀러는 성(Sex)과 젠더(Gender)를 이분법에 따라 구분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며, 젠더는 생물학적 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젠더 이분법 자체는 담론적 구성물일 뿐이며, 우리에게 실체로 보이는 젠더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Butler, 1990, chap. 1). 이러한 젠더의 환상은 반복적 수행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젠더는 우리가 선택하는 표현이 아니며, 이성애적 규범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규범이 반복적으로 우리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라고 버틀러는 말한다(Butler, 1990, chap. 1 & 3). 젠더의 허구성과 수행성 개념을 바탕으로, 버틀러는 젠더 수행을 강제하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이성애적 규범임을 논증한다. 사회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젠더를 생산하고, 이 젠더들이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도록 배열함으로써 기존의 규범적 질서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젠더의 반복적 수행은 곧 이성애 규범의 반복적 인용이 된다(Butler, 1990, chap. 2). 버틀러는 이와 같이 수행성의 본질이 규범의 반복이라면, 이러한 반복이 ‘실패’하거나 ‘과잉’될 때 전복적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는 곧 기존의 규범을 깨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행이 퀴어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내어 기존의 이분법적 해석을 방지하거나, 드랙(Drag)과 같이 오히려 기존의 젠더와 이성애 규범을 과장하면서도 젠더가 갖는 우연성과 허구성을 풍자적으로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미디어의 암시적 재현은 이성애적 규범의 ‘침묵적 반복’을 통해 그 실패의 가능성을 억제하도록 작동한다(Butler, 1990, chap. 3).

앞서 제시한 것과 같이 〈Gender Trouble(1990)〉에서 버틀러는 명시적 퀴어 정체성의 부재(absence) 자체가 규범의 ‘침묵적 반복’으로 기능하여 결과적으로 기존의 젠더 이분법과 이성애적 규범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버틀러는 〈Bodies That Matter(1993)〉에서 사회가 지니는 제도적·구조적 맥락에 주목하며 현실의 수행성은 규범의 강제성 하에서만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해당 논의를 발전시킨다. 버틀러(1993)는 규범이 무엇을 포함하는지는 “무엇을 배제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분석하며, 배제의 역할과 작동 방식을 조명한다. 〈Gender Trouble〉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규범은 반복적 인용을 통해 자신을 확립하고, 이 과정에서 규범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들은 지속적으로 주요 담론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된다. 이때 배제된 영역은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비정상적인’ 수행들로 여겨진다(Butler, 1993, chaps. 1 & 3). 버틀러는 기존 규범의 전복을 의도하는 수행은 규범적 배제를 위협할 수 있지만, 젠더 이분법과 이성애가 지배하는 제도적 구조는 이러한 수행을 빠르게 흡수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다고 말한다. 규범이 수행의 조건을 설정하므로, 사실상 수행은 규범의 강제성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Butler, 1993, chap. 7). 결과적으로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수행은 사회적 담론과 미디어를 포함한 구조적 맥락(discursive limits)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강력하게 제약된다(Butler, 1993, chaps. 7 & 8).

암시적 재현은 상술했듯 대부분 자본, 검열, 제도적 이해관계 등의 구조적 압력하에서 명시적 재현을 억제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버틀러(1993)의 논의를 적용했을 때 암시적 재현이 갖는 모호성은 규범을 전복하는 ‘실패한 반복’이라고 볼 수 없으며, 규범적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이를 안전하게 회피함으로써 해당 재현이 규범의 질서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반복적 수행의 잠재적 전복 가능성은 미디어 산업의 제도적 이해관계라는 거시적 맥락 속에서 크게 제한되고, 그 결과 모호한 방식의 재현은 규범의 자기복제를 촉진하게 된다. 즉, 실제 미디어 구조에서 기존 ‘정상성’의 압력이 크게 작용함에 따라 미디어에서 드러나는 성소수자의 암시적 재현은 시청자로 하여금 이성애적 관계를 기본값으로 가정하게 만들며, 이성애 규범을 인지적으로 고착화한다.

퀴어 인식에 끼치는 암시적 재현의 해악과 명시적 재현으로의 전환 촉구

암시적 재현이 야기하는 기존 규범의 강화

위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미디어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암시적 재현은 주류 이성애 질서의 ‘정상성’을 재확인하고 이성애적 규범을 강화한다. 미디어 구조에 대한 분석과 시청자들의 인지적 해석의 관점에서 볼 때, 암시적 재현이 대규모 공공 담론에 미치는 영향은 이성애 규범의 강화로 귀결된다. 이는 기존의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암시적 재현이 퀴어에 대한 진정한 포용성 증진과 인식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퀴어 인식 증진을 위한 미디어의 재현 방식: 명시적 재현

결국, 성소수자의 권리 증진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은 ‘우정’이나 ‘친밀성’으로 쉽게 재해석될 수 없는 명시적이고 비규범적인 퀴어 정체성이 공적인 미디어 공간에서 ‘정상성’의 지위를 확보하도록 돕는 데 있다. 암시적 재현은 규범 재강화 기제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와 완벽하게 배치되며, 따라서 미디어에서의 재현은 진정으로 규범적 질서를 교란하고 새로운 정상성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명시적인 가시화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상 반론: 암시적 재현의 물질적 우발성과 그로 인한 규범 교란 잠재력

암시적 재현의 규범 강화 효과에 집중함에 따라, 본 논의는 미디어가 전하는 맥락 내에 존재하는 전복적 잠재력과 수용자의 능동적 해석·판단 행위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다음의 반론은 젠더와 성적 지향의 구성이 규범의 반복적 결과로만 만들어지고 굳어지는 것이 아니며, 암시적 재현의 모호성이 역설적으로 규범의 붕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엘리자베스 그로츠(Elizabeth Grosz, 1994)는 버틀러의 수행성 논의가 지나치게 담론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며, 몸의 물질성(materiality)과 우발성(contingency)을 강조한다. 그로츠는 정체성·젠더·성은 담론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인정하나, 그 구성은 ‘몸’이라는 물질적 실체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따라서 몸은 단순히 문화가 새겨지는 수동적 표면이 아니라, 담론이 완전히 규정할 수 없는 물질적·동역학적 힘을 갖는다고 말한다(Grosz, 1994, chap. 6). 이러한 ‘몸’ 개념을 바탕으로 그로츠는 수행성이 순수한 반복이 아니며, 몸의 우발성이 작동하는 창조적 과정이라고 말한다. 규범이 반복된다 해도 그 반복이 동일성을 재생산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이때 몸의 물질적 힘은 항상 규범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과잉·차이·창발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Grosz, 1994, chap. 8).

그로츠의 논의를 수용할 때, 암시적 재현의 모호성은 바로 이러한 물질적·우발적 힘이 작동할 수 있는 해석의 공백을 제공하며, 동시에 규범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물 간의 강렬한 친밀성이나 긴장감을 보여주는 암시적 재현 방식은 시청자에게 단순히 ‘호모소셜’이 아닌 실제 동성애적 가능성을 인지하게 할 수 있고, 규범적 해석과 비규범적 해석이 갈등하는 지점에서 이성애적 수행성은 일시적으로 교란되거나 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시청자가 이성애를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미디어 속 인물의 관계를 ‘우정’으로만 해석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모호성은 역설적으로 규범에 대한 저항적 해석, 즉 퀴어적 시선을 촉발할 잠재력을 지닌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과 검열의 제도적 힘과 규범적 정위의 압력

이론적으로는 암시적 재현에 해석의 잠재력이 내재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 이러한 잠재력은 미디어를 둘러싼 구조적·제도적 맥락을 고려할 때 극히 제한된다. 따라서 암시적 재현에 대해 퀴어적 성격을 조명하는 사적인 해석이 대규모 주류 시청자들의 규범적 독해와 미디어 산업의 구조적 논리를 근본적으로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와 관련해서 사라 아흐메드(Sara Ahmed, 2006)의 ‘정위(Orientation)’ 개념을 제시할 수 있다. 아흐메드는 ‘정위’란 몸이 세계를 향해 어떻게 방향을 잡는가, 무엇을 ‘앞(front)’으로 삼는가, 어떤 객체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가 어떤 객체에 접근 가능한가 등을 규정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Ahmed, 2006, chap. 1). 즉, 정위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향해 끌리는지를 규정하는 체화된 지향성이라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아흐메드는 성적 지향을 ‘straight’와 ‘queer’의 공간적·물질적 배치의 문제로 설명한다. 이때 ‘straight line’으로 은유된 이성애 규범(heteronormativity)은 사회적 배치 속에서 가장 적은 저항을 받는 경로가 되며, 이에 따라 이성애 규범은 사람들에게 마치 ‘자연적인 방향’인 것처럼 보인다(Ahmed, 2006, chap. 2). 아흐메드는 결국 사람들의 욕망과 정체성은 공간적 배치에 따라 정상적 위치를 확립한 사회적·제도적 규범을 바탕으로 형성되도록 압력을 받는다고 말한다(Ahmed, 2006, chaps. 1 & 2). 이러한 아흐메드의 관점을 적용한다면, 규범적 정위는 시청자의 감정적·인지적 반응을 이성애 규범의 방향으로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이처럼 규범적 정위가 계속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성애나 정체성을 암시할 뿐인 암시적 재현에 대한 퀴어적 해석은 주류 서사의 정위성을 실질적으로 교란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디어 제작자가 검열, 광고주, 상업성을 이유로 암시적 재현을 선택하는 순간, 그 미디어가 전하는 내용은 이미 규범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물이며, 이러한 구조적 산물이 전복적 이해만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뒤집히기는 더욱 어렵다.

결론

본고는 우선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암시적 재현의 특성과 이에 작용하는 제도적 배경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암시적 재현의 모호성이 이성애를 기본값으로 삼는 시청자의 인지적 해석을 유도하여 재현된 인물의 욕망을 호모소셜적인 것으로 중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이성애적 수행성의 침묵적 반복으로 작용하여 이성애 규범을 더욱 확고히 함을 논증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로츠의 물질성·우발성 논의를 바탕으로 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에 대해 현실에서는 규범적 정위와 구조적 압력의 존재가 퀴어적 해석의 잠재력을 억제한다는 반론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미디어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암시적 재현은 주류 이성애 질서의 ‘정상성’을 재확인하는 것이기에 성소수자 인식 개선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미디어는 특정 인물의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등 퀴어적 성향의 인물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명시적이고 비규범적인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 글에서 제시한 암시적 재현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그 제도적 맥락과 구조적 특성에 관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내용이 검열이나 규제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제한된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제작자 개인의 선택이나, 암시적 내용에서 연대를 발견하는 퀴어 시청자의 능동적인 해석 과정 자체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본고의 논지는 이성애 중심의 자본주의적 미디어 시스템이 모호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악용하여 퀴어 가시화를 규범 강화의 도구로 전용하는지에 대한 경고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제시하는 비판이 “미디어상에서의 암시적 퀴어 재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성소수자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논리로 오독되어서는 안 된다.

본고는 성소수자 재현 논의의 초점을 재현의 ‘양’이나 ‘존재 여부’에서 재현의 ‘형식’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다. 또한 본고는 이러한 재현이 기존 규범을 강화하는 방식을 조명하는데, 특히 버틀러의 수행성 이론을 세즈윅의 호모소셜 분석과 아흐메드의 규범적 정위 논의와 결합함으로써, 해석의 자유라는 주관적 영역이 구조적 제약과 자본의 의도에 의해 어떻게 구속되는지에 대한 분석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새로운 사회적 정상성을 확립하려면 ‘우정’으로 쉽게 환원될 수 없는 비규범적인 퀴어 정체성이 공적 미디어 공간에서 ‘정상성’의 지위를 획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디어가 성소수자의 삶을 명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규범을 변혁하는 정치적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밝힌다는 의의를 갖는다.

참고문헌

Ahmed, S. 2006. Queer phenomenology: Orientations, objects, others. Duke University Press.

Butler, J. 1990.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Routledge.

Butler, J. 1993. 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ursive limits of “sex”. Routledge.

Grosz, E. 1994. Volatile bodies: Toward a corporeal feminism. Indiana University Press.

Sedgwick, E. K. 1985. Between Men: English Literature and Male Homosocial Desire. Columbia University Press.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