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1-24 김지훈

제목: 사법심사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 - 사법심사의 결과적,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

서론

Marbury v. Madison (1803) 사건에서 미 연방대법원이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의 적용을 최초로 거부한 이후 200여년이 흘렀음에도, 사법심사1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학계에서 뜨겁게 토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헌법 제101조를 통해 사법심사권을 명시적으로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으나, 사법심사권의 범위와 그 한계를 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는 만큼, 사법심사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그 범위와 한계를 규명하려는 헌법정치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사법심사 제도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찬반 양론이 대립하는 전선은 크게 두 가지 지점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전선은 바로 사법심사의 ‘결과적 정당성’에 관한 논의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사법심사 제도를 옹호하는 Dworkin은 헌법적 권리가 다수의 양심에 맡겨져 있을 때보다 사법심사 제도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 더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사법심사 제도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Dworkin, 1996, p. 34). 한편 가장 강력한 사법심사 반대론자 가운데 한 명인 Waldron은 무엇이 더 ‘올바른(correct)’ 것인지에 대한 사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과중심적 접근보다는, 절차중심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오히려 입법부가 사법부에 비해 권리에 관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기관이므로 사법심사 제도는 결과적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Waldron, 2006, p. 1376-1379). 사법심사 제도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두 번째 전선은 사법심사의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논의이다. 이는 사법심사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인 다수주의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는데, Dworkin은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동등한 지위에 대한 관심’의 측면에서 다수주의적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시민들의 동등한 지위를 제고하는 반다수주의적 절차가 민주주의 원리와 상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Dworkin, 1996, p. 17). 또한 사법심사 옹호론자인 Choper는 사법심사가 반다수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기본권 보호의 측면에서 사법심사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Choper, 1980, p. 20). 이에 반해 Waldron은 절차적 정당성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수주의적 절차는 적어도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조건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전제(tyranny)2를 감소시킨다고 본다. 사법기관 또한 전제적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권리에 관한 불일치가 만연하여 모두가 특정 결정을 전제적이라고 여기는 상황에서는 최소한 모든 구성원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다수주의적 절차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Waldron, 2006, pp. 1395-1397). 따라서 Waldron은 다수의 의사에 따라 입법된 법률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무효화하는 사법심사는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다고 본다.

본고의 핵심 목표는 사법심사 제도는 결과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음을 보임으로써 사법심사 제도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선 사법심사 제도의 결과적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사법부는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권리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사전적이고 일반적인 권리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입법부에 비해 권리에 관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Waldron은 [1] 법원은 구체적인 권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만, 항소법원이나 대법원에서의 논의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권리에 대한 것이 지배적이라는 점, [2] 입법 과정이 오히려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고려를 하는 데 더 개방적이라는 점을 들어 입법부가 사법부에 비해 권리에 관하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1] 법원에서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권리에 대한 논의는 대개 개별적인 사안에서의 권리와 관련되어 제시된다는 점, [2] 입법 과정에서는 잠재적인 권리 침해자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기 어렵지만, 법원에서는 대립적 당사자 구조의 특성상 모든 잠재적 권리 침해자가 자신의 권리 침해를 쟁점화할 수 있음을 간과하였다는 점을 들어 Waldron의 반론을 재반박할 것이다. 다음으로 사법심사 제도의 절차적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1] 다수주의적 절차가 항상 다수결에 의한 결정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이고, [2] 보험 계약과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사법심사 제도가 ‘다수주의적 절차에 의해 형성된 비다수주의적 제도’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상기한 내용을 종합하고, 본고가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논증한 맥락을 강조함으로써 본고의 논의 범위를 명료하게 할 것이다.

본론

­­사법부는 입법부에 비해 권리에 관하여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권리에 관한 한, 과소집행의 오류가 과대집행의 오류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사법부가 입법부에 비해 권리에 관하여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논증하기에 앞서, 권리에 대한 ‘더 나은 판단’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다. 권리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오류는 과소집행의 오류와 과대집행의 오류로 구분할 수 있다. 과소집행의 오류는 권리를 너무 적게 보호하는 것(가령, 국가가 공권력을 통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을 의미하며, 과대집행의 오류는 권리를 너무 과도하게 보호하는 것(가령, 실제로는 권리의 침해가 없는 공권력 작용임에도 불구하고 권리 침해를 우려하여 공권력 행사를 포기하는 상황)을 의미하는데, 이 가운데 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 오류는 권리가 과소집행되는 오류라고 볼 수 있다. (Fallon, 2008, pp. 1705-1706). 권리가 과소집행되는 오류가 권리가 과대집행되는 오류에 비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도덕적 직관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Blackstone의 격언에 동의하는 것과 유사하다. Blackstone의 격언이 많은 동의를 받는 것은 개인에 대하여 압도적인 힘을 가지는 국가의 공권력 작용(형벌권의 행사)에 의해 개인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것의 부당함이, 여러 사람이 누려서는 안 될 수혜를 입는 것의 부당함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권리에 관하여도 국가의 공권력 작용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억울하게 침해되는 상황은, 여러 사람이 권리를 과도하게 누리는 것의 부당함을 압도할 것이다. 따라서 이하에서 권리에 관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체에 관한 논의는 입법부와 사법부 가운데 어느 주체가 권리를 과소집행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낮은지를 논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부에 비해 권리가 과소집행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낮다.

법률은 모든 국민과 국가 기관을 그 수범자로 하기에 일반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권리는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전체로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의 일반성과 권리의 개별성은 잠재적인 긴장 관계에 놓여있게 된다. 가령,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하면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경우 그 부모를 처벌하는 위스콘신 주의 주법(主法)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당 법률은 8학년을 마친 자녀들로 하여금 교단에서 운영하는 농촌 공동체에서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고안된 직업교육을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아미시(Old Order Amish) 종교’의 신도들에게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권력 작용이 될 수 있다.3 이처럼, 입법부가 악의를 가지거나 혹은 중과실에 의해 잘못된 입법을 하는 경우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법률의 일반성과 권리의 개별성 사이의 긴장 관계에 의해 입법부에 의해 권리가 과소집행될 가능성은 항시 존재한다. 입법부가 법률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권리를 과소집행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관념은 대다수 국가의 헌법에서 ‘소극적 권리(negative rights)’를 ‘적극적 권리(positive rights)’에 비해 두텁게 보장한다는 점으로부터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Fallon, 2008, pp. 1705-1706). 자유권과 같은 소극적 권리는 공권력 행사의 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로서 국가 공권력이 행사되지 않을 때 보다 잘 보장되는 권리인 반면, 사회권과 같은 적극적 권리는 국가 공권력의 행사를 전제로 하는 권리이다. 즉, 헌법이 소극적 권리의 보장에 보다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은 입법권의 행사가 입법권의 불행사에 비해 권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법권은 구체적인 사건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된 경우에야 행사되는 권한이므로, (Pfander&Birk, 2015, p. 1359). 사법부는 구체적인 사건의 맥락 하에서 권리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사법부의 대립적 당사자 구조상 공권력에 의해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주장하는 개인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확실하게 얻게 되며, 피고인 국가 기관은 이에 응답할 의무를 진다. 즉, 개인은 법정에서 자신의 권리 침해에 관한 사안을 확실하게 쟁점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사법부는 권리에 대한 배려(solicitude)를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법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Fallon, 2008, p. 1709). 우리는 사법부가 입법부보다 권리가 과소집행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몇몇 법원은 실제로 원고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할 위험이 존재하지만, 앞서 논증한 바와 같이 권리를 과대집행하는 오류는 권리를 과소집행하는 오류에 비해 덜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사법심사의 결과적 정당성을 약화하는 결정적 근거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다.

Waldron의 반론

한편, Waldron은 크게 두 가지 점을 들어 사법부는 구체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권리를 판단하므로 권리에 관하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사법심사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논박한다. Waldron은 우선 사법심사의 여러 사례들에서 사건이 항소법원에 도달할 때쯤이면, 최초의 살아 있는 권리 보유자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며, 그 시점에서의 논증은 해당 권리의 추상적인 쟁점만을 중심으로 순환한다고 보았다. (Waldron, 2006, pp. 1379-1380). 또한 그는 로비나 입법 토론 등의 수단을 통해 입법 과정에서도 개별 사안들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사법심사는 결과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Waldron, 2006, pp. 1379-1380).

Waldron의 반론에 대한 재반박

그러나, Waldron의 첫 번째 반론은 항소법원과 연방 대법원에서의 추상적인 쟁점에 대한 논증이 제기되는 맥락을 간과한 것으로서, 단순히 이들 법원의 판단 과정에서 추상적인 쟁점에 대한 논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구체적인 권리에 무관심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피상적인 인상비평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사법심사 과정에서 일반적인 이익에 관한 법원의 판단이 제시되는 이유는 대개 그 일반적인 이익에 대한 고려가 개별적 이익에 대한 위협이 사법심사를 정당화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Flanagan, 2008, pp. 194-195). 실제로 사법심사에서의 판단 기준으로 비례성의 원칙(혹은 과잉금지 원칙)이 널리 수용되면서 침해되는 사익과 달성되는 공익 간 비교형량은 사법심사 과정을 지배하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강일신, 2021, p. 388). 즉, 법원이 사법심사 과정에서 일반적인 이익에 대한 고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개별적 권리에 대한 논의라는 맥락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Waldron의 두 번째 반론 또한 실제로 입법 과정에서 개별 사안들이 고려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우선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입법 과정에 참여한 주체들이 모두 예상하지 못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여지가 있는 개별적 사안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입법 과정에서 개별 사안들이 고려되기 위해서는 로비나 입법 토론 등에 잠재적 권리 침해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회의 모든 입법이 높은 관심을 받은 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몇몇 잠재적 권리 침해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해할 수도 있는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게다가 잠재적 권리 침해자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잠재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률안이 제정되고 있음을 알고 있더라도, 그러한 잠재적 권리 침해자들이 충분히 조직화되지 못한 경우 이들은 입법 절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령 미국에서는 총기 규제에 관한 찬성 여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연방 차원에서의 총기 규제 시도는 쉽게 좌절되는데, 이는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집단이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라는 강력한 이익집단에 의해 조직화되어 로비 등을 통해 정치인에게 높은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반면,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집단은 이익집단으로 조직화되지 못하여 정치인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Fleming, 2010, p. 184). 이는 충분히 조직화되어 정치인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용이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입법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입법부가 개별 사안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향이 발생할 우려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을 때, 사법부는 구체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권리를 판단하므로 권리에 관하여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Waldron의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사법심사 제도는 다수주의와 상충하지 않으므로 사법심사는 민주주의 원리와 상충하지 않는다.

다수주의적 역설(the majoritarian paradox)

사법심사를 정당화함에 있어 넘어야 할 가장 큰 절차적 장애물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다수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법률을 무효화하는 것이 다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즉 ‘반다수주의적 난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Dworkin을 비록한 많은 사법심사 옹호론자들은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는 전제에 의존하여 사법심사가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수결주의, 특히 단순 다수결 제도는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므로 이는 민주적 사회에서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Sadurski, 2005, p. 32). 따라서 사법심사가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함을 주장하기 위하여는 기존의 논의와 같이 반다수주의적 논제를 우회하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법심사가 다수주의적 원칙에 위배되지 않음을 논증할 필요가 있다.

사법심사를 통해 사법부가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무효로 하는 것은 다수의 의사를 대변하는 입법부의 결정을 번복하는 것으로서, 일견 다수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제도를 수립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최초에는 다수결의 원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더라도, 다수결이 항상 다수주의적 절차와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4 (Scott, 2008, p. 405). 가령 현대 사회에서는 시험을 통해 대다수의 공직자를 선발하며, 대부분의 시민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독일과 한국에서는 직업 공무원 제도를 헌법이 직접 예정하고 있으며, 이를 헌법에 명시하지 않은 대부분의 국가들 또한 법률적 차원에서 직업 공무원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아닌 시험을 통해 공직자를 선발하는 직업 공무원 제도는 이중의 주인-대리인 문제를 발생시켜, 국가의 정책 결정을 더욱 다수의 의사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우려가 존재한다. 이미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1차적으로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대표자가 결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직업 공무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2차적으로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직업 공무원 제도는 ‘다수주의적 절차에 의해 채택된 반다수주의적 제도’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다수주의적 절차에 따라 채택된 제도이므로 다수주의, 그리고 다수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상충한다고 볼 수 없다. (이외에도 법률에 의해 통화정책에 있어 독립성을 보장받는 중앙은행 제도를 다수주의적 절차에 따라 채택된 반다수주의적 제도의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Waldron을 비롯한 사법심사 회의론자들이 다수의 의사에 따라 입법된 법률을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적이 없는 법관이 무효화한다는 점에서 다수주의 및 이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와 상충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Waldron의 논증은 ‘다수가 그렇게 하고자 하더라도 비다수제적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왜 잘못’인지를 보여주는 어떤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사법심사가 절차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데 성공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Scott, 2008, p. 405).

사법심사 제도는 ‘다수주의적 절차에 의해 채택된 반다수주의적 제도’로 볼 수 있다.

앞 단락에서 사법심사 제도를 다수주의에 위배되는 것으로 성급하게 결론짓는 사법심사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보였다면, 본 단락에서는 사법심사 제도를 다수주의적 절차에 따라 채택된 반다수주의적 사례로 볼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입증은 기본적으로 가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많은 국가의 헌법에서 국민들이 사법심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데 합의하였다는 현실의 사례를 통해 사법심사를 정당화하는 것은 순환논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현실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체결하는 보험 계약과 사법심사 제도의 유사성을 통해 사법심사 제도를 다수주의적 절차에 의해 채택된 반다수주의적 제도로 볼 수 있음을(즉, 시민들이 국가의 기본적인 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법심사 제도가 다수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이고자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입법부가 아무리 현명하게 법률을 제정하는 경우에도,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법률이 모든 상황에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런데, 공권력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은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에게 큰 손해를 야기하는 반면, 자신이 다수의 편에 있을 때 그 의지가 관철되지 않는 상황은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만큼의 큰 손해를 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된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추후에도 유사한 권리 침해의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그러한 법률을 무효로 함으로써 다수의 의지가 관철되지 못한 상황은 개별적인 사안에서의 개인의 권리를 고려한 다른 정책적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충분히 시정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을 때, 국가의 기본적인 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시민들은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정도의 극단적인 손해의 상황에 대하여는, 비록 그것이 다수의 의지에 의해 입법된 법률이라고 하더라도 그 법률을 적용할 수 없도록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심사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였을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보험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예외적인 상황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험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의 기댓값이 음수임에도(모든 보험사는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기꺼이 보험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데, 이는 조금의 손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더 큰 손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다수의 편이 있을 때 그 의지의 관철이 좌절되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침해의 상황을 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므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무효로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데 찬성할 것이다. 한편, 앞서 논증한 바와 같이 권리의 과소집행(침해)과 관련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체는 입법부가 아닌 사법부이므로 그러한 권한은 사법부에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을 때 사법심사 제도는 ‘다수주의적 절차에 의해 채택된 반다수주의적 제도’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다수결의 원리와 상충한다고 볼 수 없다.

결론

본고에서는 사법심사의 정당성에 관한 선행 연구들이 주로 1) 사법심사가 결과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2) 사법심사가 절차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사법심사는 결과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음을 보여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논증하였다. 사법부는 구체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권리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므로 모든 국민과 국가기관을 수범자로 하는 법률을 제정함으로서 권리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입법부에 비해 권리의 과소집행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낮다. 이에 대하여 사법심사 회의론자인 Waldron은 1) 법원은 사실 개별적인 권리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2) 입법부 또한 입법 과정에서 개별적인 사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나, 이는 1) 법원이 사법심사 과정에서 일반적인 이익에 관하여 많은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개별적 권리에 대한 논의라는 맥락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2) 입법부에서 개별적인 사안을 고려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한편 사법심사 제도는 반다수주의적 난제에 직면하여 사법심사 회의론자들로부터 그 절차적 정당성이 미약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이는 다수결이 항상 다수주의적 절차와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서, 다수주의 원리에 대한 편협한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본고는 사법심사 제도가 보험 제도와 같이 매우 큰 손실을 입게 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여 약간의 손실을 감수하는, ‘다수주의적 절차에 의해 채택된 반다수주의적 제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보였다.

그러나 본고에서 일관되게 가정하고 있는 상황은 ‘권리의 과소집행’, 즉 권리에 대한 침해가 우려되는 상황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고의 논의는 권리의 침해와 관련된 상황에서 사법부가 입법부에 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권리의 침해 상황을 시정하기 위한 사법심사 제도는 절차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고의 논의는 권리의 침해와 무관한 사안들 - 가령 입법부가 다른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특정 집단의 권리를 증진시키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A 집단과 B 집단의 권리가 충돌하는 제로섬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어느 한 편의 권리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경우 등 - 에서도 사법심사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결론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본고는 권리의 침해가 존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법심사 제도가 정당화될 수 있음을 논증하였을 뿐, 구체적인 사범심사의 범위를 다루는 것은 본고의 논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본고를 시작으로 사법심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후속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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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urski, Wojciech. “Majority Rule, Legitimacy and Political Equality”. Ratio juris 21(1). pp. 39-65.

Noveck, Scott. (2008). “Is Judicial Review Compatible with Democracy?”. Policy & Ethics Journal 6(2). pp. 401-430.

  1. 사법심사(judicial review)라는 용어는 행정 행위가 법률의 위임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를 심사하는 데 지칭되기도 하며(‘약한 의미의 사법심사’),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무효화하는 위헌법률 심사(‘강한 의미의 사법심사’) 지칭하기도 한다. 본고에서의 논의는 주로 그 정당성 여부가 문제되는 강한 의미의 사법심사, 즉 위헌법률 심사 제도의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2. Waldron이 ‘전제(tyranny)’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법심사를 옹호하는 측에서 주로 ‘다수의 전제(tyranny of the majority)’의 사례를 거론하며 다수주의적 절차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3. Wisconsin v. Yoder, 406 U.S. 205 (1972) 

  4. Scott은 다수주의적 절차에 따라 다수주의적이지 않은 절차와 제도가 채택되는 상황을 ‘다수주의의 역설(the majoritarian paradox)’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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