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1-16 정윤서

제목: 외부 조건부성 하에서 내부 수용성을 통한 민주주의 제도 정착

서론

과거 정책 중심의 조건부성에 머물러 있던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은 금융위기 이후 거버넌스 중요성이 확대됨에 따라 국가의 제도 구조 변경을 요구하는 조건부성으로 변화해 오고 있다. 정책의 표면적 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성, 반부패기구 설치와 같은 훨씬 장기적으로 거버넌스를 바꿀 수 있는 제도로 조건부성이 이동하였지만, 이러한 요구는 국제기구의 개입의 성격이 더 정치적이게 되는 딜레마를 내포한다.

기존의 논의는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을 포함한 외부 개입이 민주주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대립되어왔다. Schimmelfennig(2003) 등은 EU 확장 과정에서 나타난 사례를 바탕으로 외부 압력은 거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므로 민주주의 제도 정착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Vreeland(2003)를 포함한 회의론자들은 조건부성은 실질적 제도 개혁이 아니라 형식적 준수만 유발할 뿐, 오히려 정치적 불안정을 증가시키는 역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논의는 경우에 따라 조건부성 결과가 국가 별로 상이하게 나는 간극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Mahoney(2010)를 포함한 일부 학자들은 제도는 외부 압력이 아니라 내부 행위자의 전략적 행동과 해석과 같은 내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을 펼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이어가 외부 개입 중에서도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을 중심으로, 국가 별 간극의 원인을 ‘내부 수용성’ 개념으로 규정하여, 국가 내 내부 수용성이 존재할 때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이 민주주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 목표이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한 본론의 서술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민주주의는 자기결정 원리에 기반하며, 민주주의 제도 정착 과정도 자기결정 원리 바탕에 있음을 보일 것이다. 다음으로 현대 국제기구 조건부성은 정책을 넘어 제도 개입으로 확장된 배경을 바탕으로, [2]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이 자기결정 원리를 침해할 내재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에서 조건부성이 실행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자기결정 원리를 구현하며 조건부성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안으로 내부 수용성을 제시하여, [3] 조건부성 압력 하에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내부 수용성이 필수적임을 보일 것이다. 자기결정의 원리에 관한 논의가 규범적 논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실증적인 차원에서 논의를 다룬다. 결과적으로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은 민주주의의 자기결정 원리가 작동하는 맥락에서만 효과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3]에서 제시하는 ‘내부 수용성’은 단순한 기술적 전제가 아니라, [1]에서 논의한 자기결정 원리의 민주주의적 기반을 제도적 차원에서 구현하는 논증의 결정적 매개임을 분명히 한다.

본론

­자기결정 원리에 기반한 민주주의 체제

민주주의와 자기결정 원리

국가 운영에 있어 모든 국민들이 정치 구축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에 현실적 제약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자들에 의한 정치적 의사결정을 정당하는 것으로 보는데,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주의적 기반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스스로 공동의 규칙을 결정하는 체제이다. 여기서 ‘시민들이 스스로’라 함은 공동체 내 속한 구성원들이, 즉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들이 정치 권위의 구조와 규칙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 권리는 일반적으로 자기결정권으로 이해된다. 전통적으로 자기결정 원리는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국가를 수립할 권리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자기결정은 단순히 외세 간섭을 막는 소극적 권리를 넘어, 정치 권위가 누구에게 정당한가를 내부 구성원 스스로 결정하는 적극적 권리로 재해석할 수 있다. (Stilz 2023) 이를 기반으로 시민들은 동등한 정치적 자격을 부여 받을 수 있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권력을 구성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 체제의 한 종류를 넘어, 자기결정 원리를 가장 잘 실현하는 제도적 형태이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 정착 과정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고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들이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제도는 단순히 도입되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도 하에 있는 시민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여 제도를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고, 반복적으로 작동하여 공고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당연시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선거 규칙, 정당 체계, 권력 분립 등의 제도들 또한 해당 과정을 거쳤다. Mahoney(2010)에 따르면1, 제도는 규칙, 집행, 행위자의 전략이 상호작용하며 나타나는 체계이며, 행위자의 전략적 해석에 따라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조금씩 변화한다. 즉 제도를 수용하는 행위자의 전략에 기반한 제도는 행위자들의 게임의 규칙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행위자들이 제도를 내면화한다는 것은 대규모 사회에서 모든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결정권을 절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제도를 통해 신뢰가 구축되고 정치적으로도 비로소 안정화되는 것이기에 시민들의 자기결정 원리를 기반으로 한 제도는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실현되는데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외부 조건부성에 내재된 자기결정 원리를 제약하는 구조적 위험성

외부 개입과 자기결정

자기결정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된 이유 또한 반식민지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외세에 대한 독립의 요구로 비롯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부 개입과 자기결정 원리는 양립할 수 없다. 설령 민주주의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외부 개입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결정 원리를 침해할 위험을 내포하여 민주주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결과로 환원될 수 있다. Stilz는 ‘영향 받는 모든 사람은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를 의미하는 AAP(All-Affected Principle)의 개념을 비판하며 이에 대한 논지를 구체화한다(Stilz 2023). ‘영향을 받는다’의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기 때문에 영향의 경계가 전세계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가령, 한 국가의 탄소 배출권에 관한 결정은 지구적 차원에서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국가들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만약 전세계 사람들이 AAP에 따라 전 지구적 단일 데모스를 형성하게 된다면, 하나의 정치 공동체를 결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 구성 요소인 시민 정체성, 상호 신뢰, 상호 책임성, 공통 정치문화, 의사소통적 인프라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민주적 공동체를 성립하기 어렵다.2 이에 따라 Stilz는 AAP 대신 공동체의 정당한 구성원인 집단적 자기결정(CSD)이 강조한다.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이 누구인지 결정하고 구성원들의 자기입법으로만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시장 통합과 같은 세계화가 가속되는 상황 속에서 AAP에 기반한 외부 개입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한다.

국제기구의 조건부성

국제기구 조건부성은 국제기구가 수원국에게 대출과 같은 이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수원국에게 정책 또는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은 단순히 정책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 국가 질서에 관한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기구 중에서도 제도 개입과 강제력이 가장 뚜렷한 IMF 조건부성을 사례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IMF 조건부성은 Quantitative Performance Criteria (QPC), Indicative Benchmarks (IB), Structural Benchmarks (SB), Structural Performance Criteria (SPC), Prior Actions (PA)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양적 조건(QPC, IB)은 측정 가능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통화, 부채, 재정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에 대응된다. 한편 구조적 조건(SB, SPC, PA)은 법률 개정, 행정제도 변경과 같은 제도 규칙 자체에 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기에, 양적 조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심도(high-depth) 구조 개입을 포함한다.3 예를 들어, 노동시장에 부과되는 Structural Performance Criteria(SPC)는 노동 규제 변경, 고용 보호 제도 개혁, 노사 관계 법률 개정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는 기업과 노동자 간의 권리를 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단순히 정책이 아니라 노동 시장 제도 자체에 개입한다. 조건 달성 시 대출을 진행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 조건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여 조건 불이행시 대출을 중단할 수 있기에 IMF 조건부성은 국가의 선택이 외생적 기준에 종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기구 중 가장 강제력이 강하다.

조건부성이 실제로 제도 개혁으로 이끈다는 결과는 최근 연구에서도 보여진다. Apeti&Gomado는 IMF로부터 조건부성 지원을 받은 개도국을 대상으로 앞서 언급한 양적 조건과 구조적 조건으로 나누어 실제로 개혁 효과 여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무역, 금융, 상품 시장과 같은 자본과 맞닿아 있는 시장 영역에 부과하는 양적 조건은 수치 목표를 강력하게 부과하기 때문에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노동시장과 같이 정치적 맥락이 강한 분야에서도 SPC 구조적 조건으로 개혁을 불러올 수 있었다(Apeti&Gomado 2025, p.26). 또한 조건이 증가할수록 변화 수준이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조건이 많을수록 외부 설계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자기결정원리를 약화시킨다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Apeti&Gomado 2025, p.31).

IMF 조건부성이 자기결정 원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도, IMF가 조건부성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IMF의 ‘국제 금융 안정’이라는 목표와 ‘외환보유액 부족 국가에 자금 지원 및 경제 정책 조건 제시’ 역할은 조건부성을 필연적 장치로 만든다. 세계 금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경제가 어려운 나라들에게 비상 시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 가장 주된 업무이다. 이 자금은 선진국들의 출자국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IMF는 Principal-Agent 관계속에서 무분별한 자금 사용을 방지할 책임이 있다. 이에 따라 무역 수지와 같은 지표를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개혁 조건을 내세우고 강력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결과적으로 세계 금융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 또한 IMF 자금은 한 국가에게만 쓰이는 것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공공재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에 관한 분배의 문제로 귀착될 수 있다. 따라서 조건부성은 예산 사용의 공정성과 예측가능성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IMF 외의 다른 국제기구도 안정화된 세계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에, 조건부성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본고의 논의를 국제기구의 조건부성 여부가 아닌, 조건부성을 할 수 밖에 없는 제도적 설계 속에서 어떻게 자기결정원리와 충돌하지 않고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는지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내부 수용성 기반 외부 개입의 민주주의 제도 정착

내부 수용성 의미와 효과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자기결정 원리가 선행되어야 함을 전제 1에서 논증하였다. 국제기구 조건부성으로 제도 장착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자기결정 원리가 작동하는 과정을 내부 수용성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내부 수용성은 외부의 개입이 단순히 강제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국내 규칙으로 받아들이는 내면화 과정을 의미한다. 즉, ‘조건부성으로 제시하는 제도를 받아들일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과정을 세분화하여, 정치적 수용성, 제도적 수용성, 사회적 수용성 총 3단계로 나누어 제도가 표면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수용되는지 판단 기준을 제공할 것이다.

정치적 수용성은 국가의 정치적 이념에 부합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국제기구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을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정치적 맥락에 부합하는 제도인지 유의해야 한다. Apeti(2025) 연구에 따르면, IMF 조건의 효과는 수혜국 정부의 이념적 성향(좌파/우파)에 따라 조건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고심도(high-depth)의 노동 시장 개혁과 같은 국내 제도에 크게 관여하는 SPC 조건은 좌파 정부에게만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 좌파는 기본적으로 노동 시장을 보호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이념적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 조합 및 시민 사회를 포함하여 정치적 엘리트들이 국제기구의 조건을 적대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건 수가 많을수록 좌파 정부는 오히려 더 큰 개혁의 폭을 보이는 반면, 우파 정부에서는 구조 개혁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많은 조건은 정치적 반발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오히려 균형 재정 및 시장 개혁을 우선시하는 정치적 성향을 토대로 시장 친화적인 양적 조건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행률과 개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Apeti&Gomado 2025, p.33).

제도적 수용성은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일 역량이 되는지 따져봄으로써 제도의 질이 저하되지 않고 제도가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선진국에 효과적인 제도일지라도 역량 차이로 인해 수혜국에게는 맞지 않는 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혜국 제도 수준과 합치하는 제도로 조건이 구성되어야 한다. 가령 동일한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신흥국과 저소득국 간에 효과 차이가 존재한다. 제도 질이 높은 국가에서는 구조조건(SPC)을 받아들이고 실행할 실질 능력이 있지만, 제도 질이 낮은 국가에서는 행정 역량 및 취약한 경제 기반으로 인해 조건부성에 따른 개혁 효과가 거의 0에 수렴한다(Apeti&Gomado 2025, p.31).

사회적 수용성은 국민들의 반발없이 제도가 정착될 수 있는지 여부로 실질적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정당한 제도로 인식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선 사회적 수용성은 국가 구성원이 느끼는 효용과 관련이 있다. 내부 행위자들의 효용이 증가하는 제도라면 이후 국제기구의 조건 없이도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반대로 IMF 조건이 경제사회적으로 고통을 유발한다고 인식되면 사회적으로 제도가 수용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중장기적 관점 등을 이유로 공공 지출을 삭감한다고 하더라도 실업, 빈곤이 증가하면 시민들의 직접적인 물질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느껴 체감하는 효용이 감소할 것이다. 또한, 단순히 체감하는 개혁 효과만이 아닌 외국 개입에 대한 정서적 반발로 인해 사회적 저항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4 따라서 제도 개혁 내용만이 아닌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정치적으로 정부가 개혁할 의지가 있고, 제도적으로 개혁을 실행할 능력이 뒷받침되고, 사회적으로 구성원들에 의해 개혁이 받아들여져야 외부 조건부성 정착이 민주주의 실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외부에서 조건으로 내세우는 제도일지라도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들 합의 하에 받아들여지는 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3가지 수준의 내부 수용성이 존재해야 자기결정의 원리를 위배하지 않고 국제기구 조건부성은 민주주의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제도로 정착될 수 있다.

내부 수용성과 민주주의 제도 정착 인과 관계 반론

내부 수용성이 있어야 외부 조건부성이 적절히 실행되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논지는 인과적으로 반박이 생길 수 있다. 내부 수용성은 민주주의 제도 정착이 이루어진 후에 나타날 수 있는 결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가 이미 어느정도 정착된 국가에서만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Simmons(2009)는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국제 규범을 비준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맥락에서 국제기구 조건부성은 국제 규범과 합의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것이므로 민주적인 국가일수록 조건부성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정부 측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도 국제 규범을 기반으로 한 조건부성을 정치적 레버리지로 사용하여 국내 정치 압력을 역으로 행사할 수 있다(Simmons 2009, p.126). 반면, 비민주주의적인 국가일수록 국제기구의 모니터링 시스템을 포함한 조건부성을 외부 개입으로 인식할 수 있다. 제도 내재화 과정에서도 민주적인 국가일수록 제도를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어서 효과적으로 조건을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부 수용성의 정도가 높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이미 민주적인 상태라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 수용성은 외부 조건부성을 받아들이는 필요 조건이 될 수 없다. 이는 곧 민주주의 정도가 낮은 국가는 내부 수용성의 정도가 낮으므로 외부 개입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태적 변수로써 내부 수용성

내부 수용성은 고정된 정태적 변수가 아니라 내부 정치 과정에서 학습되어가는 ‘정도(degree)’의 문제, 즉 동태적 변수이다. 초기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이 도입될 때 내부 수용성이 결여되면, 외부 제도를 구성원의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내부 수용성 수준이 낮더라도 자기결정 원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최소 조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민주주의의 결과로만 이해하면 외부 조건부성을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에 놓이게 되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외부 제도를 강제로 적용해도 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핵심은 미성숙한 국가이더라도 초기에 낮았던 내부 수용성이 외부 조건부성과 상호작용하며 증가하는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것이다. Doner et al.(2005)의 ‘Systemic Vulnerability’ 개념은 이를 뒷받침한다.5 한국, 대만, 싱가폴이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개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외부 압력, 내부 연합 압력, 자원 제약이라는 3가지의 시스템적 취약성이 존재할 때 생존 전략으로 제도가 더 정교하게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내부 수용성은 민주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초기에 낮은 수준에서의 내부 수용성이 외부의 조건부성이라는 압력 속에서 강화되고 민주주의 제도 정착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론

본론에서는 민주주의가 자기결정 원리에 기반되어 있음을 보이고, 외부 조건부성이 이를 위반할 구조적 위험성을 내포하므로, 외부 조건부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부 수용성이 필수 조건임을 논증하였다. 특히 민주주의의 자기결정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된 내부 수용성이, 실제로는 민주주의 결과물이라는 반론을 검토하였다. 그러한 반론은 내부 수용성이 동태적 변수임을 보임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외부 조건부성과 내부 수용성이 있을 때 자기결정원리를 지키며 민주주의 제도 정착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였다.

본고는 국제기구의 조건부성 자체의 찬반 여부에 관한 기존의 이분법적 논의 중심에서, 조건부성이 이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 내부 수용성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였다. 이는 조건부성이 외부 개입이라고 할지라도 민주주의의 자기결정 원리(규범 이론)를 국내 제도 내에서 실현시키는 브릿지 역할을 제공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구체적으로 내부 수용성을 정치적, 제도적, 사회적 3단계의 구조적 틀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제도의 효과성을 분석할 때 정당성 평가 기준을 제공하여 실증 IPE 분석을 가능케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자 하였다. 내부 수용성이 있어야 조건부성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논증은 국제기구의 조건부성이 설계될 때 수혜국의 내부 수용성을 먼저 파악하여 조건을 내세워야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다만, 민주주의의 여러 요소들 중에 제도 정착에 초점을 두었기에, 완전한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총체적 이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 조건부성과 내부 수용성에 대한 메커니즘의 부분적 설명임을 분명히 한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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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f, J. (2014). The question of self-determination in international democracy promotion (PRIF Working Paper No. 19). Peace Research Institute Frankfurt.

  1. 민주주의 제도가 무엇인지에 관해 다음을 참조하였다: “institutional change often occurs precisely when problems of rule interpretation and enforcement open up space for actors to implement existing rules in new ways.” (Mahoney, J., & Thelen, K. 2010, p.4). 

  2. 민주주의 작동 전제 조건으로 Habermas가 제시한 civil identity, mutual trust, reciprocal accountability, shared political culture, stable communicative infrastructure를 인용하였다. 

  3. Breczko(2023)은 IMF 구조조정 조건을 개입 정도에 다라, Low-depth, medium-depth, high-depth 3단계로 분류한다. 

  4. Reinsberg et al.(2023)에 따르면, IMF 프로그램 참가 자체는 조건부성의 내용과 무관하게 시위 발생을 평균 10~30% 증가시킨다. 

  5. Doner, Ritchie & Slater(2005)는 개발국가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systemic vulnerability’를 제시하는데, 이는 광범위한 연합 압력(broad coalitional commitments), 자원 제약(scarce resource endowments), 심각한 안보 위협(severe security threats)이 동시에 존재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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