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03 김지현
제목: 사법심사의 필요성: 헌법적 자기 통치를 중심으로
서론
현대 민주주의에서 사법심사는 오랜 기간 난제로 자리 잡고 있다. 사법심사에 대해 어떤 이들은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무효화하는 권한을 갖는 것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구성한 대표기관의 결정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고, 한편에서는 헌법과 기본권을 수호하는 사법심사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장치라고 옹호한다. 이러한 논쟁은 결국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입법부와 사법부 중 누가 더 국민의 자기 통치를 잘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렴된다.
본 논문은 그 질문을 ‘헌법적 자기 통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기존의 학술적 논쟁은 주로 사법심사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 특히 법원이 선출되지 않은 법관을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부의 결정을 무효화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관한 반 다수결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Waldron은 사법심사는 선출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소수 법관이 대의와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위법하게 되며, 법관이 정의에 대한 정답이 있다는 가정하에 행동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 ‘불쾌한 오만’이나 ‘모욕’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Waldron 2006, p. 1406) 이에 Eisgruber는 법관은 선출직 공무원에 의해 임명되므로 민주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법관은 유권자나 당파의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의 가치 또는 올바름에 대한 판단을 더 잘 대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Eisgruber 2002, p.11-15) 그러나 이러한 선행 연구들은 ‘현재 시민의 의사를 누가 더 잘 대변하는가’라는 차원에 머물러 있어 헌법이라는 장기적 약속을 매개로 시민이 스스로를 통치한다는 헌법적 자기 통치의 구조와 연속성을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또한 입법부가 현실 정치에서 겪는 입법 관성과 이익집단 포획의 문제를 포함해 선거, 국민투표, 청원제 등의 장치와 비교했을 때 사법심사가 어떤 면에서 헌법적 자기 통치를 완성하는지에 대해서도 체계적 분석이 부족하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이론적 논쟁을 바탕으로, 사법심사가 헌법적 자기 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논증하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헌법적 자기 통치 개념을 정리하고, 일상적 자아와 헌법적 자아라는 구분을 통해 사법심사가 국민의 장기적 약속인 헌법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인다. 다음으로 동성동본 금혼 제도 등과 같이 입법부가 이익집단의 압력과 표 계산에 포획되어 집단적 자기 통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사례를 통해, 입법부의 한계를 검토할 것이다. 이어서 선거, 국민투표, 청원제, 시민 배심 등 다른 정치적 장치들로는 헌법적 자기 통치를 충분히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논증하고, 사법심사가 어떻게 그 공백을 메우는 제도로 기능할 수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Waldron의 비판에 대해 사법심사가 단지 판사에게 새로운 권위를 부여하는 제도가 아닌, 권력을 분산시키고 시민의 정치 참여의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헌법적 자기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라는 사실을 밝힐 것이다.
본론
헌법적 자기 통치 실현의 필수적 요소로 기능하는 사법심사
헌법적 자기 통치의 정의
헌법적 자기 통치는 현대의 거대한 국가에서 국민이 제도를 통해 스스로를 통치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고대 도시 국가와 달리 현대 국가에서는 국민이 직접 모여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자기 통치는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헌법은 국민이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도록 입법부, 사법부, 선거 등 정교한 제도들을 출범시키고 유지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이를 통해 국민 전체가 통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Eisgruber 2002, p.8-18)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단순히 다수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서로에게 ‘합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는 과정(상호성)에 기초해야 한다. 즉, 어떠한 사안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에게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Hickey 2022, p. 907-909)
사법심사와 헌법적 자기 통치의 관계
헌법적 자기 통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두 가지 자아로 구분해야 한다. 자아는 현재의 욕구와 이익을 추구하는 자아인 일상적 자아와 도덕적 원칙이나 장기적인 약속을 존중하며 살아가려는 자아인 헌법적 자아로 나뉘게 된다. 일상적 자아는 통상적인 정치 과정, 즉 유권자의 즉각적인 선호와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법률을 만드는 입법부를 통해 대변되고 헌법적 자아는 법원을 통해 지켜진다. 이에 사법심사와 헌법적 자기 통치는 국민의 일시적인 욕망(일상적 자아)을 견제함과 동시에 국민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헌법적 자아)에 따라 통치받도록 보장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Fleming 2003, p. 1790) 이처럼 헌법적 자아를 보호하는 것은 국민이 현재의 일시적인 욕망에 갇혀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시간을 초월해 스스로가 부여한 정치적 및 법적 원칙을 지키는 존재가 될 수 있게끔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법심사가 헌법적 자기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작동 원리 세 가지를 살펴보겠다. 먼저 앞서 설명했던 헌법적 자아의 확립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판사는 선거의 압박이나 사사로운 이익에서 분리된 무사 공평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국민이 ‘하고 싶은 것(이익)’에 기반한 단기적인 욕구가 아닌, ‘해야 한다고 믿는’ 도덕적 가치에 집중해 판단함으로써 진정한 자기 통치를 실현하도록 이끌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법심사는 국민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인 헌법적 자아에 따라 통치받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두 번째, 현재성을 극복해야 한다. Rubenfeld는 헌법적 자기 통치가 ‘현재의 말(Speech)’이 아니라 ‘시간을 가로지르는 글(Writing)’의 모델을 따른다고 설명한다. 사법심사가 국민이 과거에 스스로 맺은 약속인 헌법을 현재의 시점에서도 유지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것뿐 아니라 과거의 약속을 해석함으로써 그 약속이 단순한 종잇조각에만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사법심사가 민주주의를 시간적으로 확장된 자기 통치의 과정으로 완성하는 도구라며, 사법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헌법이 단순한 현재의 의지로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Rubenfeld 2001, p. 86-91) 마지막으로는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독립된 사법 기구가 갖춰져야 한다. 헌법적 자아를 보장하고 현재성을 극복하더라도 이를 구현할 기관이 유권자 및 정당에 종속된다면 과거의 약속을 현재의 이해관계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 판사의 임기와 신분 보장,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판결에 대한 공개적인 이유 제시 의무 등은 사법부가 현재의 다수 압력과 무관하게 헌법 규범을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다. 이처럼 제도적 독립성이 확보될 때 사법심사는 입법부가 수행하지 못한 헌법적 자기 통치의 기능을 보완하고, 장기적 약속이 단기적 욕구에 의해 폐기되지 않도록 하는 방파제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헌법적 자기 통치 실현을 위한 유일한 통로, 사법심사
입법부의 한계
입법부는 집단적 합의를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이나 지역적 이익에 포획되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백을 사법심사가 메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Brown v. Board of Education (1954)’ 판결이라고 불리는 캔자스, 사우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델라웨어 등 4개 주에서 흑인 아이들이 인종적인 이유로 인해 백인 학교를 거부당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는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의 물리적 시설이나 교수의 수준이 동일하다면 그 둘을 분리하는 것 자체만으로 평등권을 침해하는지가 쟁점으로 작용했고, 당시 미국 북부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은 인종 분리에 반대했지만 지역적 정서가 남아있던 남부의 경우에는 이를 강력히 지지해 갈등을 빚게 됐다. 이러한 갈등이 의회로 옮겨갔을 때 남부 출신 의원들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인종 차별 철폐 법안에 강력하게 저항했으며 이를 위해 위원회 위원장의 권한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 다수의 뜻이 반영되어야 할 의회 내에서 소수의 지역적 이익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압도하는 과잉 대표 현상이 발생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사법부가 개입해 1896년 Plessy v. Ferguson 판결에서 확립된 ‘별개지만 평등하다’라는 원칙을 만장일치로 거부했음을 알 수 있다. (Lim 2014, p. 34-47)
사법부가 입법부의 실패로 인해 정책 결정에 개입한 양상은 한국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1958년 민법이 제정될 때부터 민법 제809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었던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그 예시이다. 이는 997년 혼인 신고를 거부당한 박흥선, 박미자 부부 등 8쌍의 부부들이 제기한 소송으로부터 논란이 제기되었다. 당시 대다수 국민 여론은 동성동본 금혼 폐지를 지지했지만, 소수의 강력한 유림 세력이 이를 유교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당시 농촌 지역의 정서가 국회 내에서 실제 비율보다 과잉 대표되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선거를 의식해 조직화된 유림들의 표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고 다수의 국민이 원함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안은 번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실제로 다수당이 소수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국회 내 소수의 반대파 의원과 국가보안법 등에 대한 ‘투표 거래’를 통해 동성동본 금혼법 폐지를 저지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국회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1997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는 한국 국회가 국민 다수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고 소수의 로비에 휘둘려 ‘민주주의의 실패’를 겪은 사례라 할 수 있으며, 미국 대법원이 Brown 판결을 통해 의회의 실패를 바로잡았듯이, 한국 헌법재판소도 동성동본 금혼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처럼 입법부는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이익집단의 압력이나 표 계산 때문에 국민 다수의 뜻을 배신하고 정책 결정 과정을 조직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선출직은 유권자의 이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법관은 사사로운 이익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입법부의 자기 통치 능력이 훼손될 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사법부의 개입은 정당화된다. (Lim 2014, p. 32-34)
사법심사 외 다른 제도의 한계
선거, 국민투표, 시민 배심 등의 정치적 장치만으로는 헌법적 자기 통치를 충분히 보장하기 어렵다. 헌법적 자기 통치는 세대 간 지속되는 집단적 자기결정을 핵심으로 하지만, 선거나 국민투표 등은 단기적 다수 의사를 중심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의지’를 대변하는 기관에 헌법 해석 권한을 맡긴다면, 자신의 현재 욕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약속(헌법)을 합리화할 위험이 큰 것이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구조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유권자 집단은 어린이나 투표하지 않는 사람 등을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체 국민의 일부에 불과하며, 선거 결과 또한 국민 전체의 의사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권자를 국민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투표소에서 개인(voter)이 처한 환경은 도덕적 판단보다는 이기적 선택을 유도하게 된다. 그들은 비밀 투표를 통해 익명으로 의사를 표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유를 제시하거나 정당화할 의무가 없으며, 자신의 한 표가 선거 결과를 바꾸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공익이나 도덕적 원칙을 위해 신중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즉각적인 이익이나 선호에 따라 투표할 유인이 크다. 즉, 선거가 국민의 이익을 집계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국민의 깊은 가치나 도덕적 원칙을 대변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Eisgruber 2002, p. 49-50)
또한, Rubenfeld는 국민투표나 시민 배심 제도에 있어 ‘자기 사건의 재판관 문제’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과거에 했던 약속의 의미를 확정하는 것, 즉 헌법 해석을 현재의 다수인 국민 투표나 입법부에 맡긴다면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거의 약속을 재해석하거나 합리화해 버린다는 것이라는 의미다. 약속을 어기고 싶을 때 스스로 “이건 약속 위반이 아니야”라고 판단할 수 있다면 그 약속은 구속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적 약속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적 의지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그 약속을 해석하고 집행해야 한다. Rubenfeld는 이것이 바로 사법심사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하며, 국민이 시간을 가로질러 스스로 정한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즉 자기 통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장치라고 강조한다. (Rubenfeld 2001, p. 172-173)
헌법적 자기 통치를 위한 필요조건: 사법심사
헌법적 자기 통치가 실현되기 위한 필요조건
정리하자면 헌법적 자기 통치가 실현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헌법적 자아의 확립이 가능하게 해야 하고, 현재성을 극복해야 하며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독립된 사법 기구가 갖춰져야 한다. 국민은 자신이 단일한 의사 결정체가 아닌 상충하는 두 가지 자아를 가진 존재라고 인식함과 동시에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인 헌법적 자아에 따라 통치받아야 하며, 이러한 통치는 시간을 초월한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입법부의 한계를 보완함과 동시에 헌법적 자기 통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장치로서 사법심사의 역할이 드러난다. 입법부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의지를 반영하는 데에 강점을 가지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단기적인 이해관계와 조직화된 이익집단의 압력에 취약하며, 현 상황을 유지하려는 입법 관성으로 인해 이미 합의된 헌법적 가치조차 구현하지 못한 채 방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동성동본 금혼 제도나 Brown 판결 사례와 같이 입법부는 때때로 국민 다수의 의사와 헌법적 약속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비용 등으로 인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입법부에만 헌법 해석과 권리 보장의 최종적인 책임 권한을 맡기는 것은 헌법적 자아가 아니라 현재의 이해관계에 매인 일상적 자아에 자기 심판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면 사법부는 선거 경쟁과 직접적인 유권자의 표 계산에서 한 발 떨어져 있고,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인 권리 침해에 대해 다룬다는 점에서 헌법적 약속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포착할 수 있는 우위를 가진다. 또한 판결을 통해 공개적인 이유를 제시할 것을 요구받고, 그 이유는 이후 판례로 축적되며 후세대에서도 반복적으로 검증됨으로써 헌법적 자아가 세대 간에 지속될 수 있도록 현재의 정치적 욕구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결국 헌법적 자기 통치의 세 가지 조건인 헌법적 자아의 확립, 현재성의 극복, 독립된 해석 및 집행 기관을 동시에 충족하는 제도적 장치는 사법심사뿐이며, 이 점에서 사법심사는 입법부가 수행하지 못한 헌법적 자기 통치의 기능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필요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론: 새로운 권위를 창출하는 사법심사
Waldron은 사법심사가 국민이 미리 합의한 헌법에 근거해 이뤄진다는 논리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권리장전이나 헌법 등은 ‘표현의 자유’, ‘적법 절차’, ‘평등’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담고 있을 뿐, 구체적 사안에 대한 합의된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헌법은 해석 논쟁의 장일 뿐, 사전에 확정된 합의를 담은 문서가 아니며 이러한 텍스트를 근거로 사법부에 최종적인 해석권을 부여하는 행위는 과거의 약속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위를 창출해 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부가 법을 무효화한다면 그 약속(헌법)이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국민이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사법부의 개입은 논쟁 중인 두 가지 해석 중 판사들의 해석과 일치하는 하나의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 불과하며 과거의 약속을 확인하는 행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그는 권리의 내용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 불일치를 해결할 최종 권한을 선출되지 않은 법관들에게 주겠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정치적 권위를 창출하는 것이고, 이것이 국민의 자기 지배 원칙과 충돌한다고 설명한다. (Waldron 2006, p. 1393-1394)
재반박: 권위 분산 장치로서 헌법 해석을 위임받은 사법심사
Waldron의 논리 구조는 사법심사에 대해서만 비대칭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그의 논지는 헌법이 해석 논쟁의 대상이기에 헌법에 관한 최종적인 해석권을 법원에 주는 것은 새로운 권위 창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입법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권리에 대한 불일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느 기관이든 최종 결정권을 갖는 순간 그 기관은 필연적으로 규범을 창출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권위를 창출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그 권위를 분산하고 통제하는지로 옮겨가야 한다.
이 점에서 사법심사를 비판하면서 입법부에 사실상의 최종 권한을 맡기자는 입장은 논리적으로 대칭을 이루지 못한다. 사법심사를 폐지하더라도 권리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사라지지 않고, 단지 입법부에 집중될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법심사는 입법부가 독점하고 있던 해석 권위를 헌법과 사법부, 입법부 사이에 분산시키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법원이 수행하는 역할은 우월한 판사가 도덕적 진리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기보다는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입법부가 이익집단 포획과 입법 관성으로 인해 자기 통치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경우 이를 드러내고, 국민의 약속(헌법)을 지키기 위해 법률의 수정 및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능에 가깝다. 이에 따라 Waldron의 비판은 권위 창출 자체보다는 어떠한 제도가 헌법적 자기 통치를 더 잘 보장하는지라는 질문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또한 평등, 자유 등 헌법에 쓰이는 추상적인 용어는 해석의 불가능성을 의미하기보다 해석의 위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시민들은 헌법 제정의 순간에 이 개념들에 대한 모든 세부적 용례에 합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도덕 개념을 사용하였다. 이는 이후 세대의 시민들, 입법부와 사법부 등에 해당 개념을 계속해서 해석해 나갈 권한과 책임을 의도적으로 위탁했다는 신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헌법은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가치가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판단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Eisgruber의 ‘할아버지의 유언’ 비유는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건강한 음식만 먹으라는 유언을 남겼을 때, 그 유언은 할아버지가 생전에 생각했던 건강한 음식의 목록을 떠올려 그것들만을 먹으라는 뜻이 아니라 손자가 속한 시대의 의학적 지식과 상식을 고려해 손자가 판단하기에 진정으로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헌법 제정자들이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 개념의 도덕적 의미를 존중하면서도, 구체적 적용에 대해서는 미래의 해석 공동체가 최선을 다해 판단하라는 위임에 가깝다. (Eisgruber 2002, p. 29)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법원에 부여된 해석 권한은 과거의 합의를 고려하지 않는 자의적 권위 창출이 아닌, 헌법의 언어가 요구하는 도덕적 판단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해당 과정에서 법원이 오판할 위험은 존재하지만 이는 입법부 역시 피할 수 없는 위험이다. 중요한 것은 입법부의 현재성과 입법 관성을 보완하면서도 헌법적 약속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게 만드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Waldron의 비판은 헌법적 자기 통치의 관점에서 사법심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지 못하며, 권력 분산이라는 규범적 목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박할 수 있다.
결론
본론에서는 먼저 헌법적 자기 통치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를 국민이 스스로 정한 헌법적 약속에 따라 장기적으로 자신을 구속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보였다. 이를 통해 현대의 거대 국가에서 자기 통치는 개별 시민이 여러 제도를 통해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르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데에 달려 있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법심사는 국민의 일상적 자아를 견제함과 동시에 헌법적 자아를 충족시킴으로써 스스로를 통치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후 미국의 Brown 판결과 한국의 동성동본 금혼 사건을 통해 입법부는 국민의 자기 통치를 구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입법부 내에서 국민 다수의 선호나 헌법적 평등 원칙에 위배되는 제도가 오랜 기간 유지된 배경에는 특정 지역이나 이익집단의 조직화된 압력, 표 계산에 따른 정치적 이익 관계, 정당 간 투표 거래 등이 작용해 입법부의 자기 정화 기능을 마비시켰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때 사법부는 입법부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헌법적 자기 통치의 공백을 메우는 보완적 장치로 기능함을 알아보았다. 또한 선거나 국민투표, 시민 배심 등의 다른 제도들이 헌법적 자기 통치를 온전히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선거는 유권자의 이해관계를 집계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투표의 익명성과 결과에 대한 개인 책임의 부재로 인해 단기적 이익과 정서에 기댄 선택을 유도하기 쉬우며, 국민투표와 시민 배심 등 역시 헌법이라는 장기적 약속의 의미를 결정하는 과정에 현재의 욕구가 개입하는 ‘자기 사건의 재판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에 위험을 안고 있다. 이에 헌법적 약속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실질적인 구속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적 다수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 기관이 그 약속을 해석 및 집행해야 하며, 사법심사가 바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라는 점을 논증하였다.
물론 Waldron처럼 헌법과 권리장전이 해석 논쟁의 장을 열어준 것뿐이라는 비판도 존재할 수 있지만, 이 글은 오히려 그러한 해석 가능성이 사법심사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는 점을 보이고자 했다. 헌법이 논쟁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어느 한 기관에 의미를 고정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 의미를 둘러싼 분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법심사는 해석권을 법원에 독점적으로 몰아주는 제도가 아닌 시민이 국가 권력 행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국가가 이에 대해 헌법적 언어로 답변하도록 요구하는 절차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해소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당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헌법적 자기 통치는 입법부와 타 제도만으로는 충분히 구현되기 어렵고, 장기적 약속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사법심사는 국민의 일상적 자아를 견제하고 헌법적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입법부의 실패와 다른 참여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한다. 셋째, 사법심사는 판사가 최종적인 도덕적 진리를 선언하는 제도가 아니라 권력을 분산시키고 시민의 정치 참여 과정을 제도화함으로써 헌법적 자기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절차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법심사는 민주주의 외부에서 그것을 제약하는 장치가 아닌, 현대 민주주의가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고 유지되기 위해 요구되는 필요조건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나아가 본 논문은 사법심사를 둘러싼 논의를 단순히 ‘현재의 다수를 누가 더 잘 대표하는가’라는 틀에서 벗어나 헌법적 자아와 시간성을 축으로 한 헌법적 자기 통치의 문제로 재구성함으로써, 논쟁의 초점을 장기적 약속의 설계와 유지라는 차원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향후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Jibong Lim, (2014). “Judicial Intervention in Policy-Making by the Constitutional Court in Korea”. Current issues in Korean Law.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y, 15-48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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