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1-05 고유경
제목: 사법심사의 민주적 정당성 논의: 고정적 다수와 알고리즘의 결합을 중심으로
서론
현대 민주주의는 전례 없는 대표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통적인 민주주의 이론은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서 다수가 새롭게 규정되는 유동적인 다수를 전제로 작동해왔다. 다수와 소수가 고정적이지 않을 때, 다수결주의 절차가 합리성과 정의를 보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영구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고착화된 다수가 출현하였다. 인종이나 종교, 이념의 심각한 분열과 극단적인 양극화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21세기의 기술적인 발전은 양극화와 확증 편향을 촉진했다. 디지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공론장이 파편화되고 토크빌이 경고한 다수의 사회적 폭정이 부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부와 관련한 고전적인 문제제기인 반다수결의 난점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판사가 선출된 다수의 결정을 뒤집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에서, 애초에 다수결의 결정이 민주적 숙의의 결과가 아닌 집단적 혐오나 알고리즘의 산물일 수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분열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사법심사의 역할을 재조명할 실천적인 필요성이 있다.
사법심사에 대한 기존의 학술적 논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심사의 정당성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 먼저 사법심사 비판론자들은 사법심사가 민주주의를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왈드런에 따르면, 사법심사는 의견 불일치를 해결할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다. 임명직인 사법 엘리트가 중대한 사회의 결정을 대신 수행할 권리가 없으며, 최악의 경우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 권리를 박탈하여 사법 통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Waldron 1998, p.10-15). 투시넷은 더욱 급진적인 차원에서 헌법을 법원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Tushnet 1999, p.4-6). 그의 사법적 과잉 이론에 따르면, 강력한 사법심사는 입법부와 시민이 직접 헌법을 해석하고 실현할 기회를 박탈하여 사회의 민주적인 역량을 위축한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는 헌법 해석의 권한이 사법부가 아닌 민중에게 주어지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법심사 옹호론자들은 사법심사가 수행하는 민주주의 유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수적 다수에 의한 통제가 아닌 모든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 존중이라는 헌법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사법심사는 원칙의 포럼으로, 다수의 집합적인 이익이나 사회적 효용을 계산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 집중한다 (Dworkin 1985, p.33). 따라서 사법부는 원칙에 기반해 다수결의 오류를 시정하여 민주주의의 내용적 측면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행 연구들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법심사 비판론자들이 기대하는 시민과 입법부의 자정 능력은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왜곡과 구조적인 균열로 인해 사실상 마비되었다. 반면, 사법심사 옹호론자들은 법관 개개인의 윤리 의식 및 정의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법부 역시 정치적 편향성을 지닐 수 있다는 법현실주의적 비판에 대해 충분히 방어하지 못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본고는 사법심사를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력 투쟁 혹은 민주주의적 정당성에 대한 투쟁으로 보는 이분법을 거부한다. 대신 현대 사회의 기술적인 속성 및 변화로 인해 다수결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을 포착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법심사의 역할이 구조적으로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심각하게 분열되고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된 현대 사회에서, 사법심사는 반민주적 예외가 아닌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는 필수적인 구조적 기제임을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총 세가지 전제를 중심으로 논증을 전개한다. 첫째, 분열된 사회에서 다수결주의는 내재적인 위험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다수결주의의 위험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절연성과 헌법적인 공적 이성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따라 둘째, 사법부는 재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제도적 절연성을 지닌 유일한 기관으로 다수결 정치 과정에서 배제된 소수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행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마지막으로, 선출직이 아닌 사법부는 헌법적 공적 이성에 의존해야 하며 이는 사법부를 원칙의 수호자로 기능하게 만듦을 입증한다. 이러한 세가지 논증에 기반해 본고는 사법심사가 다수의 힘을 헌법적 이성으로 제어하여 건강한 민주주의를 완성함을 논증한다.
본론
분열된 사회와 다수결주의의 내재적 위험성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을 채택하는 정당성은 다수의 유동성에 기반한다. 오늘의 소수에 해당하더라도 내일의 다수가 될 수 있기에 패자는 선거의 결과에 승복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분열로 인해 이러한 전제가 붕괴되었다. 레이파트의 논의에 따르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다수는 고정적으로 고착화되었다 (Liphart 2012, p.30-45). 사회의 균열 양상이 교차 균열에서 중첩된 균열로 전환되며, 다수결주의는 민주주의의 합리적인 도구가 아닌 구조적 소수자를 억압하는 합법적인 폭력의 기제로 전락하였다.
중첩된 균열과 유동적 다수의 소멸
다원주의 이론은 사회 갈등의 구조를 교차 균열과 중첩된 균열의 두가지 양상으로 분류한다. 립셋과 로칸의 전통적 다원주의 이론은 유권자의 정체성이 서로 교차한다고 가정했다 (Lipset&Rokkan 1967, p.1-64). 교차 균열이란 사회 구성원을 나누는 여러 갈등의 기준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엇갈려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특정한 개인이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A집단에 속하지만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A집단에 반하는 B 집단에 속할 수 있다. 교차 균열은 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한다. 특정 시기의 주요한 사회적인 의제에 따라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수적인 노동자나 진보적인 기독교인이 존재할 때, 이슈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유동적 투표가 시행되며 특정 정당이 유권자를 완전히 포섭할 수 없어 다수는 선거 때마다 변동한다.
그러나 레이파트는 깊게 분열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동성이 작동하지 않고, 균열 구조가 중첩된 균열로 재편되었음을 경고한다 (Liphart 2012, p.30-45). 오늘날의 정치 지형은 지역, 계급, 이념이 하나로 일치하는 중첩된 균열의 양상을 보인다. 균열이 중첩될 때 정치는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닌 정체성 전쟁으로 비화한다. 현대의 정당들은 상대 정당을 정치적인 경쟁자를 넘어서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이나 도덕적인 악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정치 환경 아래 유권자가 지지 정당을 바꾸는 행위는 자기 정체성의 배반이 되기 때문에 선거 결과는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따라 경직된다. 이러한 양상은 비숍의 ‘거대한 분류’를 통해 실증되었다. 비숍에 의하면, 미국에서 한 후보가 20%p 이상의 차이로 우위를 점하는 압승 선거구의 비율이 1976년 26%에서 2000년대 이후 50~60% 이상으로 급증하였다 (Bishop 2008, p.5-16). 지역의 고정적인 투표 행태는 다수가 더 이상 유동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실증 자료이다. 다수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단순 다수결은 구조적 소수자가 영원히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강력한 지배의 수단이 된다. 따라서 정치적 결과는 더 이상 내용이나 정책이 아닌 고정된 다수의 투표행태에 따라 결정된다.
알고리즘에 의한 조작된 다수와 사회적 폭정의 심화
21세기에 이르러 중첩된 다수의 구조적 위험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더욱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미국 제헌 시기 토크빌은 다수가 법률적 강제를 넘어 소수의 사상과 발언권마저 억압하는 사회적 폭정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토크빌에 의하면, 세가지 조건 하에 사회적 폭정이 작동한다: 다수의 결정이라는 양적 우위가 정의에 기반한 질적 우위를 압도할 때, 일정한 사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 그리고 상이한 의견을 가진 이를 외부인으로 규정할 때이다 (Tocqueville 2000, p.239-242). 토크빌의 제시한 상황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극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하여 이익을 창출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은 현대인들이 반대 의견에 노출될 기회를 기술적으로 차단하여 반향실 효과를 유발한다. 따라서 다수의 의견은 점차 극단화되고, 소수자들의 발언권을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쇼샤나 주보프는 알고리즘이 온라인 다수 여론을 조작하고 증폭하는 현상을 감시 자본주의로 명명한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여론은 자생적인 민의의 결과가 아닌 알고리즘에 의해 형성된 조작된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댓글이나 좋아요 숫자와 같이 수치화된 데이터는 사용자에게 압도적인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소수의견을 가진 사용자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공포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용기를 잃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입법부나 행정부는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선출직 권력은 재선을 위해 가장 목소리가 큰 집단, 혹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조작된 다수의 압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표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극단화된 여론에 맞서 헌법적 가치를 설득할 유인을 갖지 못한다(Ely 1980, p.101-104). 따라서 알고리즘에 잠식되어 자체적인 자정 능력을 상실한 다수결 민주주의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제도적으로 절연된 외부의 중재자, 즉 사법부의 개입이 논리적으로 요청된다.
제도적 절연성과 대표 보강
앞서 논증한 바와 같이, 현대 사회의 중첩된 균열 구조와 알고리즘에 의해 증폭된 여론 환경은 입법부나 행정부와 같은 선출된 권력이 고정된 소수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할 수 밖에 없도록 한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다수의 선호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고착화된 다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정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선거의 압력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분리된 사법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결함을 치유하고 대표 보강 기능을 수행하는 지 논증한다.
제도적 절연성의 개념
국민의 최종 결정권을 보장하였던 선출직 공직자의 반응성과 책임성은 디지털 포퓰리즘 시대에 치명적인 민주주의의 약점이 되었다. 빅테크 알고리즘에 의해 분노와 혐오가 조직화되는 환경에서 반응성과 책임성은 극단화된 정치 팬덤의 요구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였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병리적 다수의 압력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절연성을 가진 비선출직 권력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먼저 제도적 절연성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페레존에 의하면, 제도적 절연성이란 정치적 책임성으로부터의 의도적인 단절이다 (Ferejohn 1999, p.355-360). 사법부는 종신 혹은 장기 임기를 통해 신분이 보장되고, 선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절연된 기관이다. 사법심사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절연성을 사법부의 결함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사법부가 헌법 수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속성이다. 유권자의 표심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헌법 기관이기에 당장의 지지율이 아닌 장기적인 헌법적 가치에 복무할 수 있는 구조적인 역량을 가진다. 따라서 선거를 앞두고도 여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양심의 자유에 따라 판단할 정치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사법부가 비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여론에 휘둘리는 대의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반동적인 안정장치임을 방증한다.
민주 절차를 수리하는 법원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이 민주주의 내에서 어떻게 기여하는 지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일리는 대표 보강 이론을 통해 사법심사가 고장이 난 정치 시장에 개입하여 소수자의 목소리가 다시 정치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Ely 1980, p.101-104). 즉 사법부는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내용적 판단을 독단적으로 내릴 수 없지만, 민주주의 절차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치과정은 시장과 같이 작동한다.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정치 시장에서는 다양한 집단이 이익을 교환하고 타협한다. 그러나 고착화된 다수가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소수자 집단이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배제된다. 고립된 소수의 지지 없이도 안정적인 이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는 이들과 연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더 나아가, 이들을 차별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얻는다. 입법부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수의 차별을 묵인하거나 법제화하여 건강한 정치적 프로세스가 회복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법부는 제도적 절연성을 활용하여 다수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능은 반다수결의 힘으로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인 모든 시민의 평등한 대표성을 위한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법심사는 민주적 대표성의 결손을 보강하는 민주주의적인 기제이다.
21세기 알고리즘 환경에서 일리의 이론은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알고리즘은 대표성의 문제를 심화시켜, 현대 사회의 고립된 소수는 인구통계학적인 소수를 넘어선다.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 수와 공유 기능에 의해 주류 의견은 과대 대표된다. 반면 자극적이지 않거나 소수 의견을 다루는 콘텐츠는 노출 알고리즘에서 배제되고 과소 대표 된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온라인 여론을 통해서 민심을 파악하고, 일부 선출직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하여 다수를 더욱 공고히 조직하고 동원한다. 따라서 다수의 정서에 편승하는 포퓰리즘 법안을 양산한다. 반면 사법부는 알고리즘과 다수결의 결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선거라는 정치적 압력과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압력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수결이 짓밟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헌법적 공적 이성과 원칙의 포럼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이 정치적 외압을 차단하는 방어적 조건이었다면, 해당 장에서는 사법부가 어떻게 헌법적인 가치를 능동적으로 실현하는 지 살피고자 한다. 사법부는 일시적인 정치적 타협을 항구적인 헌법적 원칙으로 교정하는 이성적 숙의 과정이다. 따라서 사법부는 공적 이성의 담지자로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을 견인한다.
정당성의 유일한 원천
사법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사법에 대한 신뢰와 사법부의 결정을 따르도록 강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물리적 강제력이 없는 사법부가 시민들과 다른 권력 기관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설득이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시민들을 공통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근거는 과거로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아온 헌법의 정의관 뿐이다. 구성원들이 중첩적으로 합의한 영역 안에서 판결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때 패소한 소수자나 반대파도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따라서 법관은 사법부의 결정이 국민들이 합의한 헌법적 가치에 부합함을 논리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정당성을 얻는다. 즉, 사법부의 정당성의 원천은 법원이 사적 신념을 배제하고 공적 이성에 호소하도록 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특징에 따라, 해밀턴은 연방주의자 논고에서 사법부를 ‘가장 덜 위험한 부서’로 규정했다. 행정부는 물리적 강제력을, 입법부는 재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반면, 사법부는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한 채 오직 판단만을 소유한다. 이러한 물리적인 무력함은 역설적으로 사법부가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Hamilton 2003, p.465).
롤스는 이와 같은 제도적 특성으로 사법부를 ‘공적 이성의 모범’이라 칭했다 (Rawls 1993, p.231-240). 사법부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판사 개인의 사적 신념을 철저히 배제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 정치적 정의관인 헌법에 호소할 수 밖에 없다. 반면 입법부는 공적 이성의 제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이질적인 집단들이 정치적 흥정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다수결의 선호와 욕망에 따라 각자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이익을 교환하고 타협한다. 각각의 정당이 서로 다른 도덕관이나 종교관을 대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념적인 차이에 따라 입법부에서는 정당의 특정 종교나 이념에 기반한 법이 만들어진다. 사법부와 입법부의 서로 다른 권력의 원천에 미루어 보았을 때 사법심사는 물리적 권력이 없는 이성이 물리적 권력이 있는 의지를 통제하는 민주적 절차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윤리인 호혜성에 기반하여, 법원은 분열된 사회를 헌법 아래에 법적 논쟁의 장으로 묶어두는 통합 기제이다.
법원의 설명의 의무
사법부가 헌법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적극적 기제는 사법부의 독특한 절차적 의무를 통해서 구체화된다. 사법심사 과정은 시민에게 개방되며, 시민들의 참여가 절차적으로 보장된다.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소수자가 자신의 의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 위해서는 정치적 자본을 동원하거나 다수의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소 대표된 소수자들은 아무리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입법 영역이나 행정 영역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사법부는 원고 적격을 가진 모든 개인의 청구권을 보장한다. 법원에서는 단 한명의 시민이더라도 국가 권력 전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법원은 이를 반드시 판결해야 할 의무를 진다.
사법부는 재판의 과정 및 결과를 판결문 작성을 통해서 설명할 의무를 가진다. 입법부의 입법 과정에서는 지지층의 선호에 따라 법안 통과가 가능하지만, 사법 과정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통용되지 않는다. 판사는 판결문에 반드시 헌법 조항과 법리에 기반한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설명의 의무와 공개 논증은 다수의 편견을 알고리즘에 의해 증폭된 비이성적인 분노를 여과하는 장치가 된다 (Dworkin 1986, p.228-238). 법적인 언어를 통해 작성되고 사회에서 논의되었을 때 입법부가 외면한 헌법적 가치들을 사회에 환기시키고, 공동체의 이성적인 숙의가 촉진된다. 헌법적 명령에 근거해 설명하는 사법부의 역할에 따라 민주주의의 적극성이 담보된다.
판사의 정치적 취약성에 대한 우려
앞선 논의들은 사법부가 제도적 절연성과 공적 이성을 통해 헌법적 가치를 수호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왈드런과 법 현실주의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법 현실주의자의 입장을 검토한 이후, 재반박을 통해 대응하고자 한다. 법 현실주의자들은 판사도 정치적인 결정에 취약함을 주장한다. 헌법 텍스트는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해석의 과정에서 판사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계급적 편향이 개입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왈드런은 사회 구성원들이 담지하는 권리의 내용에 대한 의견이 불일치하는 상황에서, 선출되지 않은 소수 엘리트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의 심각한 훼손이라고 비판한다. 만약 사법부가 통제 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른다면 이는 사법부에 의한 소수의 폭정을 초래할 수 있다 (Waldron 1999, p.184).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정치적 행위와 사법적 행위의 구조적인 차이를 간과한 것이다. 판사가 가치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는 정치적일 수 있지만, 그 판단이 도출되는 과정에서 입법부와 달리 해석적 제약 하에 놓여 있다. 드워킨은 연쇄소설의 은유를 통해서 이를 설명한다. 입법자는 백지에 새로운 소설을 쓰는 작가와 같아서 언제든 장르를 바꾸거나 전작과 모순되는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창조적 자유를 가진다. 반면 판사는 마치 연재소설 작가와 같이 앞선 작가들이 써온 챕터에 이어 다음 챕터를 작성한다. 개개인의 판사는 자신의 정치적 선호대로 결말을 지을 수 없으며 선례와 헌법의 역사를 고려하여 가장 일관성 있으며 정의로운 방향으로 해석할 의무를 진다. 이러한 통합성의 원칙은 판사의 자의적인 재량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판사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더라도 기존의 법체계와 충돌하는 판결은 법적 공동체 내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앞서 논증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제약은 공개 논증의 의무를 통해 절차적으로 담보된다. 사적인 편향이나 당파적인 이익은 헌법 원리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논리적 정합성을 잃고 걸러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사법부는 원칙과 선례라는 족쇄에 묶인 제약된 행위자이기 때문에 사법심사는 정치가 아닌 법치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결론
본고는 분열된 사회의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된 공론장이라는 현대적 조건 하에서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재규명하고자 했다. 본고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전통적인 반다수결의 난점이 전제하고 있는 합리적이고 유동적인 다수가 현대사회에서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세가지 전제를 통하여 사법심사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비민주적 예외가 아니라 다수결 민주주의의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는 필수적 기제임을 입증하였다.
첫째, 현대 사회의 중첩된 균열과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 편향이 결합하여 다수결 원칙이 구조적 소수자를 영구히 배제하는 사회적 폭증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밝혔다. 선거는 더 이상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며, 고착화된 정체성 대결의 장으로 변모하였다. 둘째, 이러한 정치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제도적 절연성이 필수적임을 논증하였다. 재선 압력에 종속된 입법부는 조작된 여론이나 포퓰리즘에 저항할 유인이 없지만, 선거로부터 절연된 사법부는 고립된 소수를 위한 대표성을 보강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사법부의 역량에서 기반한 것이 아닌, 삼권분립 원칙과 제도에 의해 규율된 속성이다. 셋째, 사법부는 절차적 측면 뿐만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 다수의 혐오를 여과하고 이성적 숙의를 가능토록 한다. 물리적 강제력이 없는 사법부는 생존을 위해 오직 헌법적 정당성에 의존해야 하며, 판결문 작성이라는 절차적 의무를 통해 이를 다수 국민에게 공개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사법부는 헌법적 공적 의성과 원칙의 포럼으로 기능한다.
본고는 기존 사법심사 논쟁에 더하여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규범적인 당위에서 구조적 필연성으로 전환하여 학술적으로 기여한다. 기존 사법심사에 대한 비판론은 입법부가 충분한 숙의 기관이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사법심사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는 레이파트의 중첩된 균열과 쥬보프의 감시 자본주의 이론을 결합하여 현대 입법부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실증적으로 진단했다. 사법심사의 필연성은 외생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구조적인 대안이다. 해당 연구는 정치사회학적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실행하는 체제가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일시적인 열정이나 분노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정한 헌법 원칙에 따라 통치되는 체계이다. 오늘날 토크빌이 우려했던 다수의 폭정이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결합해 포퓰리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사법심사는 민주주의가 완전히 침몰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이성의 닻이다. 사법부는 고립된 소수자에게 동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확인시켜주는 호혜성의 공간이며, 다수가 헌법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공간이다. 결론적으로, 사법심사는 21세기 정치 지형 속에서 민주주의의 자기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면역 체계이다.
참고문헌
외국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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