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20 전성훈
제목: 대표성에서 이유제시로: 민주주의 정당성과 사법심사의 재구성
서론
다수결로 인해 선출된 입법부가 만든 법을 사법부가 무효로 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은 대표성과 엘리트의 대결 구도로 여겨진다. Bickel의 반다수결주의적 난제 이후 많은 논쟁은 최종 결정권이 민주적 대표성을 지닌 입법부에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헌법을 수호하는 사법부에 있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진행되어 왔다. Waldron은 권리의 내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법관이 다수결로 선출된 입법부를 제압할 정당성이 있는지를 문제 삼고, Dworkin은 오히려 사법부를 “원칙의 포럼”으로 이해하며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는 민주주의가 자신에게 부과한, 공권력이 기본권을 제한할 때 그 “이유를 제시할 의무”를 어떤 제도가 더 잘 수행하는지를 다루지 못한다. 다수의 표를 가진 입법부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강력하지만 사법심사가 없으면 다수의 결정으로 인해 소수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걱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권력에 의해 권리를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려면 법을 따르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보호받아야 할 소수자에게 공개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러한 딜레마를 대표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유를 제시할 의무’를 누가 잘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단순히 다수결을 통한 절차를 통해 생겨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는 서로를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하고 대우한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는데, 이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왜 다수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가? 라는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요구된다. 사법부는 증거에 따른 심리와 정밀한 구제를 통해 이유를 제시할 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입법부는 대표성이라는 강력한 장점을 지니지만 의제 설정이 편향적이고 선거와 여론의 압력을 받고, 법률 심사를 맡게 되면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 사법부의 최소한의 개입은 정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조건화로, 사법부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좁고 투명하게 개입하면 민주주의의 바닥을 지키고 대화를 통한 입법이 가능해진다.
이 글은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위해서는 이유 제시 의무가 지켜져야 하고 이유 제시 의무를 지킬 수 있는 기관은 법원뿐이라는 규범적 연역을 토대로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구조를 비교하여 대표성을 지닌 입법부가 가지는 강점과 함께 입법부의 한계가 어떻게 이유 제시 의무의 충실한 이행을 가로막는지 분석한다. 이어서 법원이 사건 심리와 판결문을 통해 이유 제시 의무를 상시적으로 강제하고 투명하게 기록하는 제도적 장치임을 보인다. 결론적으로는 최종 결정권의 기준을 대표성 하나에서 대표성과 이유 제시 능력으로 확장할 것을 제안하며, 사법심사는 대표성을 지닌다, 지니지 않는다의 이분법을 넘어 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설정한 이유 제시 의무를 끝까지 집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가지게 됨을 주장한다. 또한 ‘최종 결정권은 대표성을 지닌 입법부에 있어야 한다’, ‘헌법의 의미는 정치에 의해 구성되어야 한다’와 같은 핵심적인 반박들을 검토하고, 사법심사가 정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스스로 설정한 이유제시 의무를 끝까지 집행하도록 정치의 바닥을 규범적으로 조건화하는 장치라는 점을 논증할 것이다.
본론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이유 제시 의무
누가 결정했는지에 대한 절차만으로는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부족하다. 강제력을 가진 공권력이 시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때는 모든 시민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따라 왜 시민이 의무에 따라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제시 의무가 잘 지켜질 경우에만 민주주의는 그 정당성을 가진다. Dworkin은 평등과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의 추상적인 조항들은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도덕적 원리의 명령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Dworkin의 이러한 ‘도덕적 독해(moral reading)’은 이유 제시 의무의 핵심적 출발점이다. 누가 결정권을 행사하는지는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원리의 언어로 제시되어야 결정은 정당성을 가진다.
또한 이유가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의 최소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유는 기록되고 시민에게 공개되어야 하며 접근할 수 있는 공개성을 지녀야 하며, 비판을 통해 수정될 수 있어야 하고 반론과 검증의 절차를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이유는 구체적인 사실의 사건과 그 구제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추상적인 원칙의 선언에 그쳐서는 안되고, 미래의 유사한 사건에도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일반화 가능성을 지녀야 한다. 이처럼 다수의 의사라 할지라도 시민에게 정당한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동등한 존중과 배려의 기준에 따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요건을 갖춘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입법부는 대표성에서 강점을 지니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데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다. 회의록이나 심의보고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권리 제한의 정당화를 검증 가능한 형식으로 의무화하지는 않는다. 다수결에 의한 표결과 타협은 합의의 정치적인 경로를 보여줄 뿐 원리적인 정당성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반면 사법부는 구체적인 이유의 제시를 전제로 작동한다. Dworkin이 말하듯 판사는 추상조항을 도덕적 원리로 읽고 그 원리를 개별 사건의 사실관계에 맞추어 설명한다. 그리고 그 설명은 시민이 왜 이 명령이 정당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된다. 사법부에서 이루어지는 주장, 입증, 반박의 구조, 증거 기록, 구체적 사실인정, 판단 이유의 문서화와 공개 그리고 그 판단을 구제명령으로 연결하는 메커니즘은 모두 제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권리 제한을 다루는 맥락에서는 이유의 강도 또한 달라진다. 헌법이 추상적으로 남겨 둔 가치는 사법절차에서 사건별로 설명 가능한 공적 이유로 변환되고, 그 과정에서 이유의 강약과 범위가 드러난다. 평등·표현·절차와 같은 핵심 영역에서 국가는 단순한 정책 편익이 아니라, 동등한 존중과 비차별에 부합하는 더 강한 이유를 내놓는다. 이런 구조가 실질적 평등과 자유의 최소핵을 지키는 안전장치가 된다.
요약하면, 민주적 정당성의 중심축을 이유제시로 놓을 때, 입법부와 사법부의 비교 기준은 선출, 비선출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정당화의 역량이다. 권리와 헌법 원리에 관한 최종 심사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누가 더 많이 표를 받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일상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입법은 무엇을 할지 정하는 데 유능하고, 사법은 왜 그게 정당한지를 밝히는 데 유능하다. 시민이 동등한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보장은 이유의 공개적 정당화를 통해서만 획득된다. 그리고 이 지점이, 왜 사법부에서 권리 심사의 최종 책임을 원칙적으로 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 글의 후속 논증의 기준선을 이룬다.
‘누가’ 이유제시 의무를 상시 강제할 수 있는가
입법부는 대표성과 여러가지 정책 조정을 한 데 묶는데서 강점을 가진다. 그러나 이유제시의 형식과 이유의 질에 관해서는 구조적 제약이 크다. 심의보고서나 회의록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의무적으로 권리제한이 왜 필요한지, 그 정도는 적당한지,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등을 사건 단위로 검증하고 기록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표결 결과는 이유를 요약하지 않고, 타협은 합의의 경로를 보여줄 뿐 원리적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다수가 만든 규칙의 정당화를 그 다수 스스로가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구조에서는 동등한 존중의 기준이 소수자에게 항상 열려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의회가 이러한 자기 사건성(self-interest)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점은 분할된 권위의 필요를 말하는 Freeman의 논지와 맞닿는다.
사법부는 절차의 구조 자체가 이유제시 의무를 묶도록 설계되어 있다. 당사자의 주장 및 입증 그리고 반박이 전제되고 국가가 제시하는 이유는 바로 논박이 가능하게 드러난다. 판결문은 사실인정, 법규범, 원리 적용의 연속적인 흐름을 공개 기록으로 남긴다. 이는 Dworkin이 말한 헌법의 도덕적 독해를 제도화하며 추상 원리를 구체 사건에 맞추어 설명하는 의무를 지운다. 오늘의 이유는 선례 구속과 판례의 구별 논증을 통해 내일의 유사한 사건에 일관되게 적용된다.
행정부는 빠르게 움직이고 규범을 지침이나 고시로 상세하게 정할 수 있다. 옴부즈만이나 인권위원회 같은 독립기구는 전문성과 접근성에서 유의미하지만 대부분의 권고가 구속력을 갖지 못하며 법적 선례로 일반화되는 경로가 약하다. 행정부에서 제시하는 이유는 주로 정책상의 효율과 자원 배분 논리로 구성되며 권리 침해가 벌어진 사건에서 공적 이유를 문서화하고 강제력 있는 구제로 연결하는 기능은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침해가 발생한 시점에 의무적으로 이유제시를 요구하고 그 이유를 공식적인 문서로 남겨 다른 사건에도 적용되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기는 어렵다.
이유제시가 상시로 강제되기 위해서는 침해 당사자가 바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접근 가능성, 국가의 이유가 공개 문서로 남아있도록 하는 의무적인 기록, 오늘의 이유가 내일에도 통하도록 선례 및 합치 구조가 있어야 하는 일반화 장치 등이 필요하다. 이를 한 기관이 동시에 항상 제공하는 곳은 법원뿐이다. 따라서 권리 충돌이 일어난 순간에 왜 이것이 정당한지를 언제든 묻고 답하게 만들 수 있는 제도적 포맷을 법원이 가장 안정적으로 갖추고 있다. 입법부는 대표성, 행정부는 민첩성, 독립기구는 전문성을 갖지만, 이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입법부와 행정부에는 부분적으로만 존재하지만 사법부에서는 동시에 작동한다. Freeman이 말한 보충적 대표성은 바로 이 절차 구조에서 나온다. 대표 정치가 구조적으로 놓치는 소수의 목소리를 사건 경로로 제도 내에 끌어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는 사법심사를 ‘해도 된다’가 아니라, 권리 심사의 최종 책임을 법원이 ‘맡아야만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정당화의 숙제를 일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엔진이 바로 사법부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대체’가 아니라 ‘정치의 조건화’
사법심사가 정치의 자리를 빼앗고 ‘정치를 대체’할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사법심사가 언제 어떻게 얼마나 개입하는지를 분명하게 정해두어야 한다. 사법부는 정당한 이유제시가 작동하도록 민주주의의 기본 규칙을 복구하고 유지하는 장치이며 입법과정의 결론을 대신 정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사법심사가 ‘정치의 대체’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사법심사가 개입하는 대상을 한정할 필요가 있다. 다수결로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 영역, 예를 들어 예산 범위, 조세 형식, 일반 경제규제 등에 관해서는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억제된 심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표현 집회 결사, 선거의 공정성, 소수의 정치적 기회 접근처럼 민주주의의 작동 조건을 무너뜨리는 규범과 헌법이 설정한 권리의 최소한인 차별 금지의 핵심, 기본적 절차의 최저선 등에 국한해서만 심사한다(Issacharoff, 2019). 법원이 정책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했다고 해서 그 모든 갈등에 뛰어들 수는 없다. 사법심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나눠둠으로써 법원이 무엇을 정치에 되돌려야 하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사법심사는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보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국가가 제시한 이유가 해당 권리의 무게에 맞게 적당한지, 덜 침해적인 대안을 성실히 검토했는지 등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서 권리의 무게에 따른 개입 수위를 정립해야 하는데, 사회경제적 재분배나 기술적 규제 등에는 다소 완화된 심사 기준을 적용하고,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권리에 관한 문제에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유 제시를 요구하면 된다. 한편 재판부는 다음에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사실 및 규범으로부터 어떠한 판단이 나왔는지 그 연결고리를 문서로 남긴다. 또한 후속 입법에서 같은 쟁점이 더 잘 정당화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입법과정에서 영향평가, 대안 비교, 불이익 집단 파악 등의 분석이 누락되었다면 이것 역시 소송 단계에서라도 문서화해두는 것이 좋다.
사법심사가 ‘정치의 대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심사 결과 위헌 판결이 나더라도 그에 대한 처방은 입법부의 결정에 대한 침해를 가능한 한 적게 하도록 원칙으로 정해두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법심사의 판결은 입법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는 지점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지점이 될 수 있고, 사법심사가 ‘정치의 대체’가 아닌 ‘정치의 조건화’라는 성격을 명확히 드러낸다(Issacharoff, 2019). 예를 들면 사법부는 부분위헌 또는 합헌적 해석으로 해석지침을 제시하거나, 효력 발생을 미루도록 해 입법부에 수정할 시간을 주고 이 기간 중에만 잠정적으로 질서를 정해 공백을 막는 등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반론과 응답
먼저 “논쟁적 권리 문제에선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수결로 종결하자. 왜 비선출 사법부가 최종 결정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다. 첫째, 법원이 가지는 최종성은 사건 단위의 종결성이다. 권리 침해를 당한 구체적인 개인과 단체에게는 당장의 권리가 필요하고 이는 재판 및 판결이라는 형식으로만 강제적으로 제공될 수 있다. 사건을 마무리하는 최종성은 법원에, 규범을 계속 고쳐 쓰는 최종성은 정치에 남는다. 입법부는 구조적 수정과 일반 규범을 만들 수 있지만 사건을 종결시키는 권한과 책임은 제도 설계상 법원에 집중되어 있다. 이 분할 없이는 권리구제의 실효성과 민주적 자율성이 동시에 흔들린다. 둘째, 법원의 판단은 헌정 단위에서는 최종 결정이 아니다. 입법부는 위헌 판결에 대해서 법률을 수정 및 재정함으로써 응답할 수 있다. 사법부는 부분위헌, 유예, 합헌적 해석 등의 대화적 처방을 통해 후속 입법을 촉발한다. 필요한 경우 헌법 개정이나 선례 변경으로 다시 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Freeman, 1990; Issacharoff, 2019).
정치헌법주의는 사법심사가 엘리트 지배를 낳는다고 걱정한다(Bellamy, 2007). 그러나 사법심사가 정당성을 가지는 근거는 ‘신분’이 아니라 ‘이유’다. 법원은 공개변론과 의견서로 정보 개방, 엄격한 회피·기피와 선례구속으로 자기절제, 지명·인준에서의 민주적 관여로 간접책임을 강화한다. 모든 불이익 조치에 대해 공개적이고 검증 가능한 이유제시를 요구하고, 판결문, 반대의견, 보충의견은 시민 누구나 비판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공개 자료로 남는다. 또한 그 이유가 권리의 무게에 비례하는지, 덜 침해적 대안을 성실히 검토했는지를 따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원은 보충적 대표성을 수행한다. 결국 “누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슨 이유를 어떻게 제시했는가”가 심판의 통치적 정당성의 핵심 축이다. 선출되지 않았다는 약점은 절차적, 내용적 장치로 보완된다. 선거 경쟁에서 영구적 소수로 밀려난 집단의 권리를 호위하는 역할은 대표성의 결여를 상쇄할 만큼의 공익을 낳는다(Freeman, 1990).
결론
이 글에서는 민주주의에서 ‘최종 결정권을 누가 가지는지’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지’를 핵심으로 다뤘다. 그리고 다수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이유제시 의무를 강제할 필요가 있고 이유제시 의무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사법부라는 점을 보였다. 사법심사의 정당화를 위해서는 먼저 사법심사가 개입하는 범위와 강도 그리고 처방의 최소화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법이 정치를 대체하지 않으면서 정치가 작동하기 위한 바닥 규칙을 유지 및 복구한다(Issacharoff, 2019). 사법심사가 개입하는 대상은 좁게 설정하고 심사의 강도는 권리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두며 처방은 입법부의 결정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설계한다. 개입 대상은 선거의 공정, 표현 집회 결사의 핵심, 구조적 평등 등에 관한 문제로 한정하고 그 외의 영역에 대한 개입은 자제한다. 또한 판결문은 데이터로 만들고 보관하여 누구나 이를 찾아보고 이에 대해 비판하거나 재사용이 가능하게 한다. 이는 정당성의 근거를 ‘신분’에서 ‘이유’로 옮기는 움직임이다. 위헌 결정에 입법을 수정할 기한을 주고 후속 입법이 합헌인지 재검토하는 절차를 미리 정해 정치와의 순환을 강화하면 법원의 판결은 종결이 아니라 후속 입법을 위한 대화를 불러온다.
기존의 논쟁은 다수결 대 반다수결, 대표성 대 엘리트성의 측면에서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다룬 반면, 이 글은 최종성의 기준을 다시 살펴봄으로써 나름의 위치를 가진다. 최종 결정권은 대표성이 있는지 없는지의 이분법뿐만 아니라 결정에 대해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고, 그 이유를 위반했을 때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는지를 기준으로 함께 물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다만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쟁점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위헌심사 기준의 설계, 판사 선발이 편향적일 가능성, 사법부 내의 권력관계나 정치와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지와 같은 문제는 이 글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또한 이 글의 논의는 주로 헌법재판과 위헌법률심사와 같은 영역을 염두에 둔 것이며, 모든 사법적 판단에 그대로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이 글의 기여는 사법심사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누가 더 민주적인가?’라는 경쟁에서 ‘누가 이유를 끝까지 책임지는가?’라는 규범적 기준으로 이동시키려 했다는 점에 있다.
시민이 ‘왜 이 법을 따라야 하지?’ 라고 질문할 때 언제나 충분히 공적으로 답하도록 하는 장치가 사법심사이며, 바로 그 기능 때문에 사법부가 법률심사의 기본 담당 역할로 가장 적당하다. 사법부의 ‘최종성’은 권리구제의 종결성에 국한되며 입법을 대체하는 대체하는 정치적 최종성이 아니므로 비선출 엘리트의 최종성에 대한 우려를 피해 간다. 반대로 의회는 개방적으로 규범을 구성하고 수정하는 비최종성을 가진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최종성을 이렇게 나누면 민주적 자율성과 권리의 실효성이 동시에 확보된다. 사건을 마무리하는 법원의 종결성과 규범을 계속 고쳐 쓰는 의회의 비최종성을 나누고, 엘리트의 신분이 아니라 공개된 이유와 비례성을 정당성의 잣대로 삼으면 사법심사는 정치를 대체하는 권력이 아니라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로 작동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절차를 넘어 민주주의의 규범적 전제인 ‘동등한 존중과 이유 있는 지배’를 살아 있게 만드는 길이다.
참고문헌
Bellamy, Richard. 2007. Political Constitutionalism: A Republican Defence of the Constitutionality of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Dworkin, Ronald. 1996. Freedom’s Law: The Moral Reading of the American Constitu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Freeman, Samuel. 1990. Constitutional Democracy and the Legitimacy of Judicial Review. Law and Philosophy, 9(4), 327–370.
Issacharoff, Samuel. 2019. Judicial Review in Troubled Times: Stabilizing Democracy in a Second-Best World. 98 N.C.L. REV. 1
Waldron, Jeremy. 2006. The Core of the Case Against Judicial Review. Yale Law Journal, 115, 1346–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