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04 김세준
제목: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한 사법 심사의 필요성
서론
최근 사법의 정치화 혹은 정치의 사법화라는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때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말리는 현상을 뜻하고,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기소 및 재판 등의 사법 절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을 뜻한다. 정치학자인 긴즈버그와 셰프터는 이런 현상을 두고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라고 규정하며, 이는 국가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Ginsberg and Shefter 1990, pp. 35-36). 이상의 이중적 문제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전세계적 우려와 맞물리면서 지고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며 사법과 정치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사법부가 무효화하는 사법 심사 제도를 문제 삼곤 한다. 말하자면, 국민의 대표인 선출직 의원들이 만든 법률에 대표성이 없는 비선출직 법관들이 제한을 가함이 부당하다는 지적으로, 사법 심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들의 논지를 상술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들은 국민들이 선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뜻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고, 고로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다. 이미 정치권 내에서도 극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인들이 등장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않은 법관들이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의원들의 입법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침식을 한층 악화시킬 뿐이다. 더욱이, 오늘날 사법의 정치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사법 심사를 가하는 법관들의 판단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하기가 어렵다. 또한 사법 심사는 의회에서의 협의를 통해 제정된 법률을 판결을 통해 무효화시키는 행위로서, 사법 심사를 허용해주면 정당과 정치인을 비롯한 정치적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이들과 타협하고 논의하기보다는, 사법적 수단을 통해 상대 측 입법을 제약하고픈 유인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즉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자당이 주장하는 법률과 배치되는 내용이 입법되었을 때 이를 어떻게든 꼬투리 잡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압박하는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되면 해당 문제 제기가 타당하지 않더라도 사법의 정치화를 겪는 사법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사법 심사의 적용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고, 설사 사법부가 공명정대하게 접근해 사법 심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더라도, 일단 정당이 국회에서의 토론을 우회하고 오직 사법 심사를 위한 국회 밖의 공론화와 여론 몰이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소모적인 작태가 초래되는 것일 테다.
결국 위의 주장은 실질적으로 비선출직 법관들의 사법적 판결 행위보다 선출직 의원들의 논의와 타협에 의한 의회에서의 입법 행위에 우월성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라는 원리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데, 민주주의는 그 주인된 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견제할 방안이 없다면 불완전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위와 같은 사법 심사 반대론자들의 입장에 대해 민주주의는 그 자체만으로는 맹점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그 맹점을 사법 심사를 통해 보완해야 함을 논증하며 사법 심사의 정당성을 옹호함으로써 그 필요성을 입증할 것이다. 그리고 사법부는 선출직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에 다수 국민들의 의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아 민주주의의 맹점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법에 대한 학문적, 실천적 지식을 풍부하게 갖춤으로써 전문성마저 확보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결론적으로 사법 심사는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한 본론의 서술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먼저 민주주의의 맹점을, 즉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다수의 폭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2] 그런 다음,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들은 민주주의에 기대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3] 더욱이 사법부는 그저 민주적 정당성에 의존하지 않는 비선출직이라는 특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법에 대한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수의 폭정으로 제정된 부당한 법률을 제한하기에 적합하다. [4] 마지막으로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입법부의 구성원들보다 소수자에게 더 동정적일 것이라 볼 수 없으며, 만일 소수자에 대한 동정의 정도가 사법부와 입법부 중 어느 한 측이 더 강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다수의 대표들에 의한 토론의 과정을 거친 입법부의 결정이 소수의 법관들에 의한 결정보다 소수자 권리 보호에 더 유리하리라는 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재반박할 것이다. 오늘날의 의회에서는 실질적으로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나아가 그저 당론에 의거한 형식적 찬반 투표만이 남아 있으므로 오히려 소수 법관들의 토론이나 고려가 더 내용적으로 충만하다.
본론
입법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표들은 국민의 의사를 대신해 법률을 제정하며, 이 같은 측면에서 입법부는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관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의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다수에 의한 폭정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다수의 폭정이란, 다수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치학자 로장발롱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저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될 때의 모습을 지칭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Rosanvallon 2021, pp. 21-26). 결국 포퓰리즘이란 대중에 소구하는 인기영합주의적 정치를 일컫는 용어일 텐데, 사실 대중에게 호소하여 그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 권력을 획득하는 방식이 민주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입법부의 법률 제정 과정은 물론 의회 내의 논의를 경유하긴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다수결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다수의 의사가 관철되게 마련이며, 소수의 의사는 묵살될 여지가 크다. 나아가 의원들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이 대표성을 기반으로 한 의정 수행 역량을 평가받아 차기 선거에서의 당락이 결정된다. 재선을 바라는 의원들은 유권자를 만족시켜 지지를 늘리고자 하므로 자기 지역구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의 실천에 있어서, 이러한 과정으로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되는 방식은 일찍이 경제학자 슘페터가 분석해 낸 바 있다 (Schumpeter 1992, p. 287). 말하자면,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관을 정치에 적용한 것으로서, 민주정의 정치인은 국가 발전과 국민 생활 증진 따위의 고상한 목표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고, 오직 재선을 위해 그러한 목표에 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 따르자면, 모든 국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고, 그들을 대표하는 의원들은 이러한 의사를 의회에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구 내 소수의 이익을 희생해 다수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안이 있다면, 득표수를 늘려야 하는 지역구 의원은 해당 방안을 입법화하고자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국가 전체의 차원에 있어서도, 소수 지역구의 이익을 희생해 다수 지역구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안이 있다면, 의회 내에서 다수의 의원이 해당 방안의 법제화를 지지할 것이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소수 의원들은 표결에서 패배할 것이다. 이처럼 입법부는 그 구성원의 선출에 있어서도, 또 입법을 위한 표결에 있어서도 대의민주적 정당성과 다수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다수에 의한 폭정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입법부의 다수에 의한 폭정을 막을 수 있는 대책으로 흔히 제시되곤 하는 것이 바로 사법 심사이다. 사법 심사란,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사법부가 무효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로크나 몽테스키외에게서 발견되는 고전적인 권력 분립 주장에 대한 일종의 실제 제도화로서, 사법부의 입법부를 향한 견제 수단인 것이다. 이때 입법부와는 달리 사법부의 경우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시될 수 있다. 즉, 사법부를 구성하고 있는 법관들은 국민에 의해 뽑히지 않는, 말하자면 비선출직으로서 그들에게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의민주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오히려 그 때문에 사법부가 입법부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법관들은 임기를 보장받으며, 재선을 노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해야 할 필요가 없다. 즉, 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대신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관들은 다수 국민의 의지로부터 자유롭다. 물론 이는 사법부가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리라는 적극적 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나,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다수의 의사에 휘둘리는 입법부와 다수의 의사로부터 자유로운 사법부 중 후자가 소수의 권리 보호에 더 유리하리라는 사실은 납득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사법 심사를 공격하는 측에서는 사법부가 선출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그들의 비민주적 특성을 지적하지만, 오히려 그 비민주성이 사법부로 하여금 독립적인 판결을 가능케 하여 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게끔 기능한다고 하겠다. 또한 사법의 정치화로 인해 법관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릴까 우려된다면, 애초에 정치인들은 그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가 걱정되어 사법부의 사법 심사를 폐지하고 입법 행위를 오직 입법부의 ‘정치’에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로장발롱 또한 비선출직으로 구성된 독립된 사법부의 견제가 다수의 폭정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안전 장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Rosanvallon 2018, p. 121).
뿐만 아니라 사법부는 위에서 짚은 독립성과 더불어 법에 대한 전문성도 지니고 있다. 사법부의 법관들은 법 자체에 대해 충분한 학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보장된 임기 덕에 수많은 판결을 통해 법률에 대한 실천적 지식 역시 숙달한다. 때문에 출신 구성이 다양해 선출 이전엔 법과 무관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고, 선출된 후에도 4년의 임기만을 보장받는 입법부의 의원들과 비교했을 때, 사법부의 법관들은 법에 대한 전문성이 더 높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으며,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식견을 바탕으로 어떤 법이 제정되었을 때 발생 가능한 부작용들의 예측도 더욱 용이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법관들은 법에 대해 상대적으로 미숙한 의원들이 제정 당시에 감안하지 못한 부작용들마저 내다봄으로써 헤아리지 못한 이유로 인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를 사후에라도 방지할 수 있다. 실제로 법학자 랭포드 역시 사법 심사의 옹호 논거로 법관들은 법의 해석에 있어서 ‘인식론적으로 더 신뢰할 만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말인즉슨 결국 법에 대한 검토를 두고 입법부의 의원들과 사법부의 법관들 중 누가 더 진실된, 혹은 올바른 답에 근접할 수 있는지가 사법 심사의 정당성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일 텐데, 이때 후자가 근접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Langford 2015, pp. 44-45). 이렇듯 사법부는 독립성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사법 심사는 그 필요성을 입증받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입법부의 입법 과정에 비해 사법부의 사법 심사는 상대적으로 논의를 결여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말하자면, 의회에서는 다수의 의원들이 서로 논변을 주고 받으며 입법에 대해 토론하고, 그 결과 다듬어지고 합의된 법안이 최종적으로 제정된다. 반면 사법부의 사법 심사는 비교적 소수의 법관들이 그들의 법률적 지식에 의존한 채 판단을 내리기에, 집단 지성에 의한 의논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입법부의 결론이 더 타당하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법 심사 옹호론자들을 향한 이 같은 반론은 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대변하기에도 다수가 주장을 주고받는 입법부가 더 유리하다는 근거로도 뒷받침되곤 한다. 예컨대 법학자 월드론의 경우에도, 낙태법의 자유화 및 동의에 의한 성인 간 동성애 행위의 비범죄화 등의 소수자 보호 법안이 모두 의회에서의 공적 논의(public deliberation)를 통해 제정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Waldron 2006, p.1349). 이상의 반론은 의회주의의 요체가 다원주의와 협의의 정신에 기초함을 고려했을 때 적잖이 온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의회주의가 적절히 작동했을 때의 이상적 모습만을 가지고 반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위기로 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에서, 자율적 판단이 제한되는 의원들은 그저 정당의 거수기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그 정당의 소위 ‘당론’을 결정짓는 것은 당원이나 지역구민 등의 유권자들이다. 즉, 다수의 폭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정치학자 어비나티는 이런 식으로 국민의 의사가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정치에 반영되는 방식의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국민투표적 민주주의(plebiscitarian democarcy)’라고 칭했다 (Urbinati 2014, pp. 171-173). 말하자면, 오늘날 정치의 모습은 국민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맞지만, 의원들의 협의라는 매개 없이 그저 국민의 뜻이 그대로 정치에 투과된다는 점에서 의회가 그저 국민투표 집계 장치나 다름없는 역할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3권 분립을 이루고 있는 국가의 경우에는 행정부 또한 법률안 거부권을 통해 입법부의 부당한 법 제정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법률안 거부권을 통한 소수자 권리 보호 역시 오늘날의 상황에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다수 국민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다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학자 포군트케와 웹은 오늘날은 행정부의 수반이 여론조사 등에 의지해 다수 국민의 의사를 그대로 정치에 반영하려는 모습이 빈번히 발견된다고 지적하며 이런 현상을 두고 ‘정치의 대통령화(presidentialization of politics)’라고 칭했다 (Poguntke and Webb 2005, pp. 354-355). 때문에 사법 심사 외에도 행정부의 법률안 거부권을 통해 입법부의 견제가 가능하다는 반론 또한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어비나티와 포군트케 및 웹이 지적하는 폐단들은 민주주의의 그 대의(代議)적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으로, 과도한 민주성의 추구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병폐를 가져오는 역설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처럼 민주주의가 오히려 협의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법안 자체에 대한 내용적 심의는 입법부보다 오히려 사법부에서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비록 사법부 법관들은 입법부의 의원들보다 소수에 그치지만, 그들은 각자의 의견을 좌우할 ‘당론’도 없고, 임기 연장을 위해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어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결론
본론에서는 민주적 정당성에 기대는 입법부의 입법 행위는 다수의 폭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이며, 사법부의 경우에는 민주적 정당성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독립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음을 논증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법부는 이러한 독립성과 더불어 법에 대한 전문성까지 지니고 있으므로 제정된 법률의 맹점을 지적하기 적합한 기관이고, 따라서 사법 심사의 주체로서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입법부와 달리 사법부는 다수의 논의를 거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오늘날 의회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의원들이 소위 ‘거수기’로 전락해 버렸다는 점을 짚으며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 다수의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비록 논의의 주체가 소수에 그칠지언정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사법부 법관들이 법의 제정과 관련해 더 깊이 있는 고려가 가능할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논증을 방어하였다. 이상의 논증을 통해 우리는 사법 심사가 입법부의 입법 행위가 지닌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로서, 그 필요성이 결코 작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결론은, 사법 심사의 정당성과 관련된 오늘날의 첨예한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요사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주된 원인으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정치, 즉 ‘포퓰리즘’이 지적되고 있는 만큼, 다수의 횡포를 막는 것은 시급한 당면 과제라고 하겠다. 이때 사법 심사는 입법부의 입법 행위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제도로서, 다수 대중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됨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다. 때문에 사법의 정치화나 정치의 사법화를 막기 위해 사법 심사를 폐지하여 입법부의 정치 영역과 사법부의 사법 영역을 완전히 떼어 놓아야 한다는 시각은 그야말로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하는 일일 것이다. 사법 심사를 폐지한다면, 입법부에서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안이 제정되었을 때 이를 어떻게 제한한단 말인가? 물론 사법부가 견제의 역할을 해 낸다고 해서 그 권한을 한없이 강화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법의 정치화를 방지하려면 사법 심사는 분명 신중하게 행해져야만 할 것이다. 사법부의 역할은 법을 적용하는 것이지, 법을 만들고 없애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의 정치화가 우려된다고 해서 사법 심사를 폐지한다면, 이는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라고 할 수 없다. 정치의 사법화 및 사법의 정치화 문제는 그것대로 풀어야 하는 것이고, 다수결제 대의민주주의의 병폐를 방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서의 사법 심사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제도인 것이다. 본고의 논의가 사법 심사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했기를 바라며, 바람직한 사법 심사가 다수의 폭정을 방지하여 보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Ginsberg, Benjamin, and Martin Shefter. Politics by Other Means. New York: Basic Books, 1990.
Langford, Malcolm. “Why Judicial Review?” Oslo Law Review 1 (2015): 36-85.
Poguntke, Thomas, and Paul Webb. The Presidentialization of Politic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Rosanvallon, Pierre. Good Government.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18.
Rosanvallon, Pierre. The Populist Century. Cambridge: Polity, 2021.
Schumpeter, Joseph A.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London: Routledge, 1992.
Urbinati, Nadia. Democracy Disfigured.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14.
Waldron, Jeremy. “The Core of the Case against Judicial Review.” The Yale Law Journal 115(6) (2006): 1346-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