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1-18 조현서
제목: 일방향적 미디어에서의 암시적인 성소수자 재현 방식의 변혁 필요성
서론
최근 국내·국외를 불문하고 광고, 드라마, 영화 등 일방향적 미디어1에서 성소수자의 등장 빈도가 점점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표상의 증가는 성소수자가 아니고, 사회 문제에도 크게 관심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성소수자의 존재가 알려지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호모포비아들을 만드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 제작자들과 기업들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성소수자를 모호하게 묘사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데, 특히 gay window advertising, 브로맨스 코드, 퀴어베이팅 등 성소수자를 “보일 듯 말 듯하게 암시하는 재현”이 상업 미디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임수연, 2024). 제작 측은 이를 ‘시장 상황상 가장 현실적인 포용 방식’, ‘점진적 가시화’ 같은 이유를 들며 정당화하고 있지만, 이는 성소수자 당사자 입장에서의 재현이 정체성 형성과 자기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관점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성소수자의 정체성 형성과 자기 이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성소수자를 다루는 미디어가 단순히 ‘얼마나 자주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표상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떠나, 소수자의 미디어 표상을 통한 소수자 당사자의 “적절한” 정체성 형성과 “올바른” 자기 이해는 곧 비 소수자 집단에서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어떤 표상이 소수자 당사자들의 자기 인식에 도움이 되는지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우선 ‘양적 가시화’의 입장에서는 소수자의 재현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은 그 전까지 재현되지 않던 존재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일단 화면에 나오는 것 자체가 소수자에 대한 편견 감소와 관용 증대에 기여하는 변화로 간주한다. 그러나 ‘질적 표상’의 입장은 등장 빈도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나 어떤 서사로 등장하는지가 핵심임을 주장하며, ‘고정관념에 부합하는/부합하지 않는 소수자’와 동화주의적 이미지, 상품화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양적 가시화 입장은 비가시성의 폭력을 문제 삼는 데 강점이 있으나, 재현의 내용이 특정한 규범만 반복할 때 생기는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질적 표상 입장은 대표 방식의 정치성을 잘 포착하지만,과도기적·부분적 가시화의 의미를 평가절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성소수자에 대한 ‘암시적 표상’ 또한 이렇게 논쟁이 첨예한 부분의 정면에 서 있기 때문에, 암시적 표상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또한 논쟁 중이다.
기존의 학자들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암시적 표상에 관련된 논쟁에 있어서, 표상의 양적 기준과 질적 기준 중 어떤 것이 더 중요시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우선 Schiappa et al.(2005)는 “접촉 가설”을 바탕으로 비이성애자 캐릭터와의 준사회적 접촉(parasocial contact)이 비이성애 집단에 대한 편견 감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비이성애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더라도 여러 매체를 통하여 간접적인 접촉만을 하는 일방향적 관계 경험만을 통해서도 소수자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변화할 수 있으며, 이는 곧 그 집단에 대한 편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Tsai(2011, 2012)는 성소수자를 타겟으로 한, gay window 광고를 다수자에게는 무난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성소수자에게는 암호화된 인정으로 읽히는 목적적 폴리세미(purposeful polysemy)로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광고가 성소수자 소비자에게는 인정받는다는 자부심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성애 다수자의 반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시성을 암호화된 수준에 묶어 두면서 동화주의적·시장친화적 정체성 규범을 재생산하는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본고는 Tsai(2011, 2012)의 논증을 바탕으로 성소수자 집단의 정체성이 상업 미디어, 특히 광고와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며, 결과적으로 성소수자 재현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양적 가시화’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내부 다양성과 비규범성을 포괄하는 질적 표상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본고의 핵심 목표는 gay window 광고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암시적 재현이 목적적 폴리세미임을 드러내고, 양적 가시화가 아니라 질적 표상이 성소수자 재현에서 중요함을 밝히는 것이다. [1] 먼저 Tsai(2011)와 Woods & Hardman(2022)를 바탕으로, 성소수자들이 광고·퀴어 미디어를 자기 이해와 정체성 형성의 자원으로 사용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성소수자 정체성과 상업 미디어가 긴밀히 얽혀 있음을 보일 것이다. [2] 다음으로 Tsai(2012)와 Woods & Hardman(2022)를 중심으로, gay window advertising과 퀴어베이팅을 목적적 폴리세미로 정의하고, 이 전략이 ‘보일 듯 말 듯한 가시화’를 통해 동화주의적·시장친화적 성소수자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논증할 것이다. [3] 이어서 Jones et al.(2023), Williams(2021) 등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다른 소수자 집단 표상의 연구를 검토함으로써, 소수자 재현에서 핵심은 등장 빈도가 아니라 정체성을 구성하는 이미지·서사(=표상의 질)임을 보일 것이다. [4] 한편, 이러한 주장에 대해 Fiske(1986)의 폴리세미 논의와 Schiappa et al. (2005)의 접촉 가설을 바탕으로, “암시적·동화주의적 재현 역시 저항적 읽기와 편견 감소에 기여하며, 현재 조건에서는 최선의 전략”이라는 예상 반론을 검토할 것이다. [5] 이에 대해 목적적 폴리세미와 구조적 폴리세미를 구분하고, 양적 가시화 중심의 판단이 소수자 내부 위계와 자기검열의 문제를 간과한다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gay window/퀴어베이팅식 재현을 비판·변혁의 대상으로 규정할 정당성을 옹호할 것이다.
본론
성소수자 정체성과 광고/미디어의 관계
소수자 타게팅 광고의 의미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는 단순히 특정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홍보물이 아니라, 소수자들이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사회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해석하는 데 활용하는 상징 자원이다. 광고 속에 어떤 몸, 어떤 관계, 어떤 생활양식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되는지는 곧 “이 사회가 어떤 존재를 허락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로 읽힌다. Tsai(2011, 2012)는 게이·레즈비언 소비자가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와 gay window 광고2를 어떻게 읽는지를 분석하면서, 광고가 이들에게 정체성 구성의 매개이자 주류 사회와의 관계를 협상하는 장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시장이 소수자를 분절된 타깃 집단으로 인식하고 이들에게 별도의 메시지를 보낼 때, 그 메시지는 단순한 상업적 정보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신호로 수용된다고 본다.
광고가 정체성 자원으로 기능하는 방식
먼저 Tsai(2011)의 How Minority Consumers Use Targeted Advertising as Pathways to Self-Empowerment은 25명의 게이·레즈비언을 인터뷰하여, 이들이 ‘커밍아웃한’ 광고를 해석하는 방식을 추적한다. 그는 이들이 시장에서의 상업적 인정과 정치 영역에서의 차별 사이의 긴장을 경험하면서도, 성소수자를 노골적으로 등장시키는 광고를 자기존중감과 집단적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한 자기역량화(self-empowerment)의 경로로 활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컨대 응답자들은 “게이도 제대로 된 고객으로 취급받는다”는 인상을 받을 때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가 아닌, 당당한 시민·소비자로 상상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동시에 Tsai는 낙인과 주변화의 경험을 겪어 온 소수자 소비자가 주류 소비문화의 상징에 각별히 민감하며, 자신들을 겨냥한 광고를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회가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관한 신호로 읽어낸다고 지적한다. 이때 광고는 정치적·제도적 차별을 단번에 해소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인정받고 있다”는 감각을 제공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작동한다.
이어지는 Tsai(2012)의 연구는 gay window 광고에 초점을 맞춰, 이성애자에게는 평범한 친구·가족의 이미지로 읽히면서 성소수자에게는 ‘우리’의 존재를 암시하는 광고 전략을 ‘목적적 폴리세미(purposeful polysemy)’로 개념화한다. 여기서 광고는 의도적으로 다의적으로 설계되어, 이성애 다수자는 불편함 없이 소비할 수 있고, 성소수자 소비자는 특정 장면·제스처·구도를 하위문화적 코드로 인식하며 자신들에 대한 암호화된 인정을 포착한다. Tsai는 인터뷰 참가자들이 이러한 gay window 광고를 자신들의 하위문화적 감수성과 ‘장 안/장 밖’ 경험, 주변화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는 텍스트로 해석한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응답자는 “표면적으로는 그냥 친구들 모임 같지만, 우리는 저게 게이 커플이라는 걸 눈치챈다”는 식으로 말하며, 이 암시적 코드 속에서 소속감과 즐거움을 느낀다고 진술한다. 동시에 이들은 광고가 어디까지나 주류 시장 안에서 허용 가능한 수준의 퀴어성만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인정과 동화 사이의 정치적 긴장을 경험한다.
Tsai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광고가 소비자들이 정체성의 긴장을 조율하는 데 사용하는 강력한 재현 체계이며, 특히 정치적 열패감을 경험해 온 소수자에게는 자신의 공동체가 주류 광고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정체성 구성과 유지 과정에 선행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나와 같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자신이 완전히 배제된 타자가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 언급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광고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의 모습은 대개 특정한 젠더 표현, 계급, 인종, 관계 형태에 편향되어 있으며, 그 기준에 맞지 않는 퀴어성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영역에 남는다. 즉, 타게팅 광고와 gay window 광고는 배제의 기억을 부분적으로 상쇄하는 인정과 소속감의 근거가 되지만, 인정받기 위해 요구되는 동화의 조건을 제시하는 장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기존의 젠더·이성애 규범이 재강화될 위험 역시 내포한다.
퀴어 미디어와 정체성 형성
이러한 관찰은 광고를 넘어 퀴어 미디어 전반에 대한 최근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Woods와 Hardman(2022)는 퀴어 미디어가 성소수자에게 정체성 발달과 자기 수용을 위한 핵심 자원으로 작용하는 한편, 퀴어베이팅과 같이 ‘보여줄 것처럼 하면서 끝내 보여주지 않는’ 재현 관행이 정체성 혼란과 배신감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성소수자들은 드라마, 예능, 아이돌 서사, 온라인 콘텐츠 등 다양한 상업 미디어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이 가능한지”에 대한 상상과 자기 이해를 구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접속할 수 있는 이미지의 스펙트럼이 제한될 때, 특정한 퀴어성만이 ‘정상적’으로 승인되는 위계를 체감하게 된다. 본 논문의 이후 논의는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gay window 광고와 퀴어베이팅이 만들어내는 정체성 효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성소수자 재현에서 어떤 형태의 가시화와 표상이 요구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목적적 폴리세미와 동화주의적 정체성
목적적 폴리세미의 정의
광고·드라마·아이돌 콘텐츠에서 성소수자를 둘러싼 “애매한” 코드는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두 집단을 동시에 겨냥하도록 설계된 경우가 많다. ‘purposeful polysemy’는 바로 이런 전략을 가리키는데, 하나의 메시지가 다수자에게는 무해한 일반 광고로 읽히면서도, 소수자에게는 자신들을 겨냥한 신호로 해석되도록 의도적으로 다의성을 설계하는 방식이다(Tsai. 2012, p.43). Tsai(2012)가 분석한 gay window 광고 역시, 표면적으로는 이성애 핵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친밀감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 무지개 깃발, 특정 슬로건, 시선 처리 등을 배치해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 소비자에게만 ‘나를 향한 메시지’로 읽히도록 한 “전략적 다의성(strategically polysemic)”의 대표적 사례이다.
소수자 수용자들은 이런 광고를 해석할 때, 자신의 커밍아웃 경험, 주변의 동성애 혐오, ‘티 내지 말라’는 사회적 압력 같은 맥락을 함께 떠올리며, 광고를 단순한 상품 정보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눈치 보며 인정하는 신호’로 읽는다. 동시에 이들은 광고가 자신들을 환영하면서도 노골적인 퀴어 이미지를 피하고, ‘너무 튀지 않는’ 중산층·백인·젠더규범적인 커플 이미지를 반복 재현한다는 점을 인식한다(Tsai 2012, pp.58–59). Tsai는 이를, 소수자들이 하위문화적 인정 욕구와 주류에 동화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과정으로 설명하며, 목적적 폴리세미가 바로 이 긴장을 상품화하는 정치적 장치라고 본다. 즉, 광고는 성소수자를 전혀 보이지 않게 지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급진적·비규범적 퀴어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지도 않은 채, ‘괜찮아 보이는’ 일부만 선별적으로 앞에 내세운다.
동화주의적 정체성의 형성
이 지점에서 목적적 폴리세미는 단순히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텍스트”라는 Fiske식 폴리세미 개념과 구분된다. Fiske(1986)는 텔레비전 텍스트가 여러 하위문화가 각자 다른 의미를 뽑아 쓸 수 있을 만큼 다의적이어야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고 보지만, 동시에 그 다의성이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범위 안에서 구조화된 구조적 폴리세미(structured polysemy)임을 강조한다. Tsai가 다루는 gay window 광고는 이 구조적 폴리세미를 한층 더 노골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밀어붙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즉, 광고 제작자는 애초부터 “이성애 독자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되, 성소수자 독자에게는 나름의 인정과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두 층위의 의미를 계산적으로 설계하고, 그 범위 밖의 급진적인 해석은 차단한다. 이렇게 볼 때 목적적 폴리세미는 수용자의 자율적 해석 가능성을 넓히기보다는, 어떤 해석은 ‘가능하게’, 다른 해석은 ‘불가능하게’ 만드는 권력 작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략은 퀴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그 소비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동화주의적·호모노머티브(homonormative)3 정치를 뒷받침한다. Williams(2021)는 영국 잡지 광고를 분석하면서, LGBTQ+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광고들조차도 대개 백인·중산층·전형적 젠더표현을 한 커플, 결혼·모성·안정적 소비생활 같은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퀴어가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조건이 결국 ‘좋은 소비자, 책임감 있는 시민, 가족을 꾸리는 안정된 주체’라는 동화주의적 기준에 맞춘다는 전제를 강화한다. 목적적 폴리세미 아래에서 gay window 광고는 바로 이런 ‘정상적인 퀴어’ 이미지를 시장에 유통시키면서, 보다 급진적인 퀴어 실천(비혼, 비단일배우자 관계, 비백인·비중산층 퀴어 등)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퀴어베이팅과의 구조적 유사성
한편, 이런 애매한 코드가 오히려 “다양한 독해의 여지”를 남겨 비규범적인 퀴어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실제로 fan studies의 맥락에서는 시청자들이 부여하는 퀴어 독해, 팬픽과 2차 창작을 통해 텍스트를 전유하는 실천들이 강조되어 왔다. Ng(2017)은 퀴어베이팅 논의를 정리하면서, 퀴어 독해가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인터뷰·홍보 자료 같은 패러텍스트, 그리고 당시 LGBT 재현의 역사적 맥락을 교차해 읽는 과정에서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즉, 시청자들은 제작자의 의도를 넘어 자신만의 퀴어 의미를 생산·공유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목적적 폴리세미는 “정치적으로도 양가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Woods & Hardman(2022)의 질적 연구는, 퀴어베이팅과 목적적 폴리세미가 실제 퀴어 시청자들에게는 자주 기만적이고 착취적인 실천으로 경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퀴어 미디어가 큰 지지를 제공했다고 말하면서도, 동일한 미디어가 ‘끝내는 실현되지 않는 관계’, ‘절반만 나오는 퀴어 암시’를 반복함으로써 혼란·자기 의심·배신감을 낳는다고 증언한다. 이들은 기업과 미디어가 퀴어 코드를 통해 팬덤과 소비를 끌어모으면서도, 위험을 감수해 노골적인 퀴어 재현을 수행하거나, 퀴어 커뮤니티를 실질적으로 지지하는 데에는 매우 인색하다고 느낀다. 이런 경험 속에서 목적적 폴리세미는, 겉으로는 포용과 가시화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퀴어 가시성에 대한 충실한 연대(allegiance)를 가장만 하고 끝내 제공하지 않는 동화주의적 전략으로 인식된다.
접촉 가설과 암시적 표상
그러나 Schiappa et al.(2005)의 준사회적 접촉 연구를 고려하면, 이러한 암시적·동화주의적 재현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예상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이들은 비이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TV 프로그램 시청자를 대상으로, 해당 인물들과의 준사회적 접촉 수준이 높을수록 게이 남성과 남성 트랜스베스타이트 집단에 대한 편견이 낮아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대면 접촉이 없더라도, 방송 텍스트를 통해 반복적으로 ‘알고 지내는 것 같은’ 친밀감이 형성되면 기존의 고정관념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gay window 광고나 퀴어베이팅처럼 비교적 “무난한” 퀴어 캐릭터라도 다수자 시청자에게는 소수자에 대한 간접 접촉의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혐오와 편견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목적적 폴리세미는 현실적으로 허용 가능한 선 안에서라도 접촉의 장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성소수자 재현의 과도기적 전략으로 옹호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촉 가설 기반의 옹호는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보지 못한다. 무엇보다 Schiappa et al.(2005)의 연구는 비이성애 집단에 대한 다수자 시청자의 태도 변화를 주요 지표로 삼을 뿐, 어떤 유형의 퀴어성이 대표로 선택되는지, 그 과정에서 소수자 내부에 어떤 위계와 자기검열이 형성되는지는 묻지 않는다. gay window 광고 속 성소수자들은 대개 젠더 규범에 잘 맞고, 중산층적이며, 시장이 선호하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인물들로 그려지며, Williams(2021)가 분석한 광고 속 LGBTQ+ 표상 역시 비백인·비중산층·비규범적 관계 형태를 거의 포착하지 못한다. 접촉 가설은 이러한 표상의 선택과 배제의 정치적 효과를 설명해 주지 못한 채, 편견 감소라는 하나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동화주의적·시장친화적 정체성 규범을 비판 없이 통과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준사회적 접촉 연구는 암시적 재현의 부분적인 효용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gay window/퀴어베이팅식 재현을 장기적인 표상 모델로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가시성이 소수자의 정체성 형성과 집단 간 관계 모두에 더 바람직한지를 질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읽어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목적적 폴리세미는 성소수자 가시화를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시성이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안전한” 범위 안에 머물도록 관리하는 메커니즘이다. 접촉 가설에 기대면 gay window 광고와 퀴어베이팅 같은 암시적 재현도 다수자 집단의 편견 감소라는 제한적인 효용을 지닐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이는 어떤 퀴어성이 대표로 선택되고 어떤 퀴어성은 배제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규범과 위계가 형성되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재현은 성소수자 가시화의 “차선책”으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할 전략이라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동화주의적·호모노머티브한 정체성 모델을 강화하는지 분석하고 변형해야 할 비판의 대상으로 읽어야 한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자폐 스펙트럼과 인종·계급 소수자 표상 연구로 확장하여, 소수자 재현에서 양적 가시화와 질적 표상 사이의 긴장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보고, 성소수자 재현 역시 어떤 질적 기준 위에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다른 소수자 표상 연구와 ‘질적 표상’
자폐 스펙트럼 표상
앞의 논의가 성소수자 광고와 퀴어 미디어 내부에서 목적적 폴리세미가 어떤 동화주의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본 것이라면, 이제는 시야를 넓혀 다른 소수자 집단의 미디어·광고 표상 연구를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인종·계급 소수자에 대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같은 양적 가시화 지표만으로는 재현의 효과를 설명할 수 없으며, 어떤 코드와 서사로, 누구를 ‘전형적 당사자’로 그리는가라는 질적 표상의 문제가 훨씬 더 결정적이라고 지적한다.
먼저 Jones et al.(2023)은 자폐 스펙트럼을 다룬 TV 드라마·영화 등의 허구 텍스트를 체계적으로 검토하면서, 자폐 캐릭터들이 ‘천재적인 특수 능력을 가진 남성’이나 ‘타인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성 결핍자’와 같은 한정된 클리셰로 반복해서 묘사된다고 지적한다. 이런 표상은 자폐를 가진 인물을 일상적인 관계와 사회적 맥락 속의 한 사람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특이한 능력이나 장애 특성만으로 정의되는 인물로 축소시키며, 시청자들이 자폐를 매우 좁은 이미지로 이해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Jones 등은 일부 연구에서 긍정적인 캐릭터가 등장할 때 태도 변화가 관찰되기도 하지만, 협소한 클리셰에 기댄 재현은 지식 향상과 편견 완화 효과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당사자의 다양한 경험과 자기 이해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자폐 캐릭터가 ‘숫자’ 차원에서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캐릭터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어떤 욕망과 능력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양적 가시화’에서 ‘질적 표상’으로
Tsai(2011)는 이 논점을 소비자 시장에서의 소수자 타게팅 광고로 확장한다. 그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히스패닉 등 인종·계급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타게팅 광고를 분석하면서, 이러한 광고가 단지 ‘존재한다/안 한다’는 여부를 넘어서, 어떤 이미지로 소수자를 불러내는가가 정체성 형성과 자기 이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Tsai에 따르면, 시장 표상은 하나의 담론 공간(discursive space) 으로 기능하며, 여기서 기업·소비자·운동 주체들이 “존중받을 만한” 소수자의 상을 부과하고, 도전하고, 재확인한다. 예컨대 광고는 중산층적이고 성공한 소수자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보다 가난하거나 비규범적인 삶을 사는 소수자를 주변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자폐 스펙트럼이든 성소수자든 “타게팅된 상태로 어떤 얼굴을 부여받는가”는 단순한 묘사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체성만이 시장에서 승인되는가를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Williams(2021)는 지난 20여 년간의 LGBTQ+ 광고 연구를 비판적으로 정리하면서, 지금까지의 연구가 주로 “이 광고가 이성애자 소비자에게 얼마나 호감을 주는가, 편견을 줄이는가” 같은 양적 효과 지표에 치우쳐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2,214개의 인쇄 광고를 분석하면서, 광고 속 LGBTQ+ 표상이 대체로 백인, 젊고, 신체적으로 비장애이며, 중산층적이고 매력적인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동성애자들조차 결혼·핵가족·소비 능력을 갖춘 ‘좋은 시민’으로 그려지는 경향, 즉 헤테로노머티브/호모노머티브 규범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이때 연구의 초점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에만 맞추어져 있으면, 이러한 규범성이 문제화되지 못한 채 오히려 “가시화의 진전”으로 포장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Williams는 앞으로의 연구는 어떤 매체에서, 어떤 맥락으로, 어느 정체성이 중심에 놓이는가를 묻는 질적 분석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논의들을 종합하면, 다른 소수자 표상 연구가 이미 보여주듯, 소수자가 미디어·광고에 “더 많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코드와 서사 속에서 누구만이 대표 당사자로 그려지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집단 내부의 어느 정체성이 계속 보이지 않는 자리로 밀려나는가이다.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클리셰적 재현이나 인종·계급 소수자를 동화주의적 “모범 소비자”로만 그리는 광고가 문제시되는 것처럼, 성소수자 재현에서도 gay window advertising과 퀴어베이팅식 암시 전략은 가시화의 양적 증가라는 명분만으로 옹호되기 어렵다. 이 글이 요구하는 것은, 다른 소수자 연구에서 제시된 통찰을 가져와, 성소수자 재현에서도 gay window/퀴어베이팅과 같은 애매한 코드에 의존하는 대신, 명시적이고 다양하며 교차적 정체성을 포착하는 ‘질적 표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론
본고는 성소수자를 둘러싼 암시적 표상이 단순한 가시화의 과도기가 아니라, 상업 미디어가 설계한 목적적 폴리세미의 한 형식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gay window 광고와 퀴어베이팅이 만들어내는 정체성 효과를 검토하였다. 먼저 Tsai(2011, 2012)와 Woods & Hardman(2022)의 논의를 바탕으로, 성소수자들이 광고·드라마·온라인 콘텐츠를 단순한 오락이나 정보가 아니라 자기 이해와 정체성 형성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gay window advertising과 퀴어베이팅은 성소수자 소비자에게는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소속감과 자긍심을 제공하면서도, 이성애 다수자의 반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퀴어성을 암호화된 수준에 묶어 두는 전략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어 자폐 스펙트럼과 인종·계급 소수자의 표상을 다룬 Jones et al.(2023), Tsai(2011), Williams(2021) 등의 연구를 함께 검토한 결과, 소수자 재현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등장 횟수의 증대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와 서사로 집단의 ‘전형적인 얼굴’을 구성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어떤 정체성이 반복적으로 배제되는가라는 질적 표상의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Fiske(1986)와 Schiappa et al.(2005)의 폴리세미·접촉 가설 논의를 검토하면서, 암시적·동화주의적 재현이 저항적 읽기와 편견 감소의 가능성을 전혀 갖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그 가능성이 목적적 폴리세미라는 권력 작용 속에서 어떻게 제한되고 관리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물을 필요가 있음을 논증하였다.
이 논의를 통해 gay window 광고와 퀴어베이팅을 포함한 성소수자 암시적 표상은, 성소수자 가시화를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안전한” 범위 안에 가시성을 가두는 메커니즘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목적적 폴리세미는 이성애 다수자에게는 무난하고 비정치적인 콘텐츠로 소비되도록 만들면서, 성소수자에게는 최소한의 인정과 소속감을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백인·중산층·젠더 규범을 잘 수행하는 ‘정상적인 퀴어’를 대표 이미지로 내세우고, 비규범적이고 교차적인 정체성은 주변으로 밀어낸다. 이러한 전략은 Schiappa et al.(2005)가 말하는 준사회적 접촉을 통해 다수자의 편견을 일정 부분 낮출 수 있고, 일부 성소수자에게 정체성의 자원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무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본고가 보기에, 이러한 효과는 ‘어떤 퀴어만이 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둘러싼 내부 위계와 자기검열의 문제, 그리고 호모노머티브한 정체성 규범의 재생산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부정적 효과를 가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쉽다. 따라서 성소수자 재현에서 ‘양적 가시화’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며, 성소수자의 내부 다양성과 비규범성을 포괄하는 ‘질적 표상’을 요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정당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본고의 논의는 성소수자 재현을 둘러싼 실천적 과제에 대해서도 몇 가지 시사를 던진다. 첫째, 미디어 제작자와 광고주는 gay window/퀴어베이팅을 리스크 관리의 수단으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어떤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어떤 정체성을 배제하는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곧 성소수자를 단일한 소비자 군으로 상정하기보다, 인종·계급·장애·젠더 표현·관계 형태가 교차하는 복수의 주체로서 상상하고 표상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성소수자 운동과 비평 역시 ‘등장 여부’만을 기준으로 미디어를 평가하는 데서 나아가, 목적적 폴리세미가 생산하는 동화주의적 규범을 어떻게 교란·확장할 수 있을지, 당사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을 전유하고 재배치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과학적 연구는 양적 가시화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질적 표상의 관점에서 성소수자 재현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어떤 가시성이 성소수자의 정체성 형성과 비소수자 집단의 태도 변화 모두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 gay window 광고와 퀴어베이팅을 넘어서는 새로운 재현의 가능성이 구체적인 실천 과제로 제시될 수 있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임수연. 2024. 「지금까지 미디어가 퀴어를 재현하는 방식 점검하기, 굳건한 벽장의 문을 누가, 어떻게, 열 것인가」. 『씨네21』 1479호, 2024년 10월 31일.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6269
외국 문헌
Fiske, J. (1986). Television: Polysemy and popularity. Critical Studies in Mass Communication, 3(4), 391–408. https://doi.org/10.1080/15295038609366672
Jones, S. C., Gordon, C. S., & Mizzi, S. (2023). Representation of autism in fictional media: A systematic review of media content and its impact on viewer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autism. Autism, 27(8), 2205–2217. https://doi.org/10.1177/13623613231155770
Ng, E. (2017). Between Text, Paratext, and Context: Queerbaiting and the Contemporary Media Landscape. Transformative Works and Cultures 24. https://doi.org/10.3983/twc.2017.0917
Schiappa, E., Gregg, P. B., & Hewes, D. E. (2005). The parasocial contact hypothesis. Communication Monographs, 72(1), 92–115. https://doi.org/10.1080/0363775052000342544
Tsai, W.-H. S. (2011). How minority consumers use targeted advertising as pathways to self-empowerment. Journal of Advertising, 40(3), 85–98. https://doi.org/10.2753/JOA0091-3367400307
Tsai, W.-H. S. (2012). Political issues in advertising polysemy: The case of gay window advertising. Consumption Markets & Culture, 15(1), 41–62. https://doi.org/10.1080/10253866.2011.637752
Williams, L. (2021). QUEER(Y)ING LGBTQ+ advertisements (Doctoral dissertation). Oxford Brookes University.
Woods, N., & Hardman, D. (2022). ‘It’s just absolutely everywhere’: Understanding LGBTQ experiences of queerbaiting. Psychology & Sexuality, 13(3), 583–594. https://doi.org/10.1080/19419899.2021.1892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