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15-22 류혜림


제목: 국친권 정당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친밀성의 제공’이라는 가정 기능의 누락과 사회적 책임의 전가


I. 서론

현대 복지국가에서 아동 보호는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인식되며, 국가는 ‘국친권(parens patriae)’이라는 법적 원리를 통해 부모가 자녀를 적절히 보호하지 못할 때 가정에 개입할 권한을 갖는다. 이는 위험에 처한 아동을 보호하려는 선의를 표방하지만, 가정의 분리와 재구성이라는 생애주기적 변화를 초래하기에 그 개입의 정당성과 효과성을 신중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두고 학계의 논쟁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에서는 국가 개입이 낳는 파괴적 결과에 주목한다. David Pimentel(2019)은 “모호한 아동 방임법이 가난과 방임을 혼동하여(vague child neglect laws conflate poverty and neglect)”(p. 887) 가난한 가족이 부당하게 해체되는 현실을 배경으로, 국친권이 빈곤 계층을 처벌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며 가족의 자율성이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반면, Esther K. Hong(2021)은 국친권의 복잡한 역사와 그 이상을 배경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그녀는 국친권의 “선의의 목표가 종종 학대를 감추고 미성년자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했음(benevolent aims often masked abuse and limited minors’ constitutional rights)”(p. 278)을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슈퍼 부모(super-parent)’로서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근본 정신은 포기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그녀는 실행 방식의 ‘현대화’를 통해 국친권의 정당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학술적 긴장 속에서, 본 논문은 국친권이 아동 보호에 있어 가정의 역할을 과소화하고 있으며, 아동의 안녕상태를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를 흐림으로써 오히려 아동 권익 보호에 효과적이지 못함을 주장한다. 나의 논증은 국가 개입이 가정의 역할인 ‘친밀성의 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과, 기존의 관계를 ‘범죄적인 것’으로 몰아감으로써 아동에게 트라우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존 사회 체계를 고착화하는 데 까지 나아간다는 논의에 기반해 이 주장을 전개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본론에서는 먼저 국친권의 근본적 결함들을 유기적으로 논증하고, 국친권이라는 국가의 권한을 유지하면서도 보호의 기능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반박을 넘어 ‘권한’과 ‘권한 이행의 주체’ 자체를 비판해 위 논지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II. 본론

1. 가정의 본질: 대체 불가능한 ‘친밀성의 관계’

국친권 논의의 핵심은 가정을 단지 물리적 보호의 공간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본질을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가정은 의식주를 제공하는 기능을 넘어, 아동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형성되는 최초의 관계적 공간이다. 그 핵심에는 국가나 제도가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친밀성의 관계’가 존재한다. 이 관계는 혈연이나 법적 정의를 초월하여, 무조건적인 소속감과 정서적 유대를 통해 아동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한다. 아동은 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실수를 용납받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며,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는 법을 배운다. 따라서 아동에게서 가정을 분리하는 행위는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물리적 조치가 아니라, 아동의 존재론적 뿌리를 뒤흔드는 행위이다. 국친권의 정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국가의 개입이 바로 이 대체 불가능한 ‘친밀성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직시해야 한다.


2. 보호의 역설: ‘친밀성’의 파괴와 빈곤의 범죄화

국가의 개입은 보호의 선의를 내세운 개입이지만, 결코 가정의 ‘친밀성의 관계’를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친권이라는 국가 주도의 사적 영역의 개입을 통해,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가난한 가정을 파괴하고 빈곤을 범죄화하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Pimentel(2019)의 통렬한 지적에서도 파악할 수 있듯, 국가의 개입은 가난한 부모의 어깨에 ‘방임’이라는 낙인을 찍는 과정이기도 하다. 더욱 근본적으로, 현대 국가가가 정상 가족으로서 제시하는 가족의 형태에는 자녀에 대한 경제적, 시간적 안정을 제공할 것을 포함한다. 이는 경제 논리에서 탈락한 ‘부모’로 하여금 경제 논리에서의 탈락의 원인, 귀책을 지게 하며 그들을 보호할 사회 구조적 문제인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즉, 국가가 가족을 보호할 의무, 가족의 안녕을 위해 경제사회적 기반을 제공할 의무를 흐리며 그 귀책을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방임을 학대로 치환해 가난한 가정을 지원의 대상이 아닌 처벌과 교화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경제사회적 원인을 지게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의 ‘처벌’은 아동에게는 친밀성의 파괴로 그 파장, 충격이 극대화된다. Pimentel이 인용에 따르면, 마약에 노출된 신생아조차 친모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더 심각한 발달 장애를 보였다고 보고하는데, 이는 부모와의 분리가 아동에게 미치는 트라우마가 얼마나 근원적인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3. 실패한 대안: 빈곤의 대물림을 공고히 하는 시스템

이어 국가 개입은 기존의 가정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아동을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하지도 못한다는 점 또한 지적할 필요가 있다. 국친권에 의해 부모와 분리된 아동이 마주하는 현실은 ‘슈퍼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이 아니라, 위탁 가정과 시설이라는 또 다른 불안정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Pimentel(2019)은 위탁 시스템의 실패를 지적하며, 아동들이 그곳에서 또 다른 학대를 경험하거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정서적 유목민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이는 국가의 개입이 아동을 빈곤의 굴레에서 구출하기는커녕, 오히려 교육 기회의 박탈과 사회적 낙인을 통해 빈곤의 대물림을 더욱 공고히 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한 제도가 실제로는 가난한 아동의 미래를 박탈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기능하는 것이다. 또한 아동 청소년기 가정의 부재는 이후 성인기에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대 사회에서 원가족의 지원은 청소년기 이후에도 이어지는 학업, 취업, 결혼 및 인생 설계 과정의 기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립준비청년, 보호종료청년이 겪는 문제 또한 가족이라는 체계의 보호가 비단 아동기 뿐만 아닌, 인간의 전반적 생애과정에 뻗쳐 있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3. 반박 및 재반박: ‘국친권의 현대화’는 권한과 권한 행사 주체를 정당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가

이때, 국친권의 권한은 유지하되 실행 방식의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Esther K. Hong(2021)의 주장처럼, 개입의 필요성을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현대화’를 통해 ‘가난의 범죄화’와 같은 오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친권의 본질을 외면한 기술만능주의적 환상에 불과하다. 데이터는 현실의 편견을 그대로 반영한다. Pimentel(2019)이 지적했듯, 가난한 가정은 공적 시스템과의 접점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위험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편향된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개입은 결국 기존의 낙인을 더욱 정교하고 집요하게 만들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개입의 ‘정확성’이 아니라 개입이라는 ‘방식’ 그 자체 대한 문제제기에 있다.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위험한 부모인지 가려내는 정밀한 감시 시스템이 아니라, ‘친밀성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유지하는 것에 관한 고민, 혹은 가정 밖으로 아동이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적 사회적 체계의 형성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따라서 국친권의 현상 유지를 이야기하는 ‘현대화’란, 또 다른 정당화의 기제일 뿐인 것이다.


III. 결론

본 글은 국친권이 아동 보호라는 선의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아동의 1차적 보호 체계이자 가정 중심 사회에서 대체 불가능한 보호 체계인 가정을 해채하는 역할을 하여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하며, 국가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하여 비례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점을 논증했다. Pimentel(2019)의 연구에서 보듯, 국친권은 가난을 방임으로 오인하여 사회적 약자를 처벌하는 기제로 작동해왔다. 이에 대해 Hong(2021)이 제시한 과학적 데이터를 통한 ‘현대화’라는 대안은, 국친권이 내포한 구조적 편견과 개입주의적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적 미봉책에 불과함을 재반박을 통해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국친권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폐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본 논문의 주장이 가지는 함축은 아동 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의 이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있다. 기존의 논의가 국친권의 ‘개선’에 머물렀다면, 본 연구는 그 ‘폐지’를 주장함으로써 논쟁의 지평을 전환하고자 한다. 이는 국가의 역할을 사후 개입과 처벌에서 사전 예방과 지원으로 옮겨야 함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하면, 현재의 글은 현재 국친권이 행사하던 강력한 권한을 매꿀 수 있는 방법론 혹은 대안적 권리와 주체를 명기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한 본 글은 그 공백을 매워놓고 있지 않을 뿐 명백한 아동 학대 상황에 대한 국가의 개입까지 막아야 한다는 의미로 오인되어서는 안 된다. 대안적 권리와 권리 행사 주체 및 이를 보장하는 법적 체계에 관한 논의는 불가피하며, 본 논문이 비판하는 것은 빈곤과 위기를 ‘방임’으로 규정하고 가정을 해체하는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권한이다. 본 글 이후에 진행되어야 할 논의는, 현재 아동의 가장 유력한 보호 체계인 가족이 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방안 및, 가족의 부재를 매꿀 수 있는 사회적 체계에 관한 고민이다.


참고문헌 (APA 7판 스타일)

Pimentel, D. (2019). Punishing families for being poor: How child protection interventions threaten the right to parent while impoverished. Oklahoma Law Review, 71(3), 885–921.

Hong, E. K. (2021). A reexamination of the parens patriae power. Tennessee Law Review, 88(2), 277–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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