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05 고유경

제목: 사법심사의 민주적 정당성 논의: 고정적 다수와 알고리즘의 결합을 중심으로

서론

현대 민주주의는 전례 없는 대표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통적인 민주주의 이론은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서 다수가 새롭게 규정되는 유동적인 다수를 전제로 작동해왔다. 다수와 소수가 고정적이지 않을 때, 다수결주의 절차가 합리성과 정의를 보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영구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고착화된 다수가 출현하였다. 인종이나 종교, 이념의 심각한 분열과 극단적인 양극화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기술적인 발전은 양극화와 확증 편향을 촉진했다. 디지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공론장이 파편화되고 토크빌이 경고한 다수의 사회적 폭정이 부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부와 관련한 고전적인 문제제기인 반다수결의 난점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판사가 선출된 다수의 결정을 뒤집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에서, 애초에 다수결의 결정이 민주적 숙의의 결과가 아닌 집단적 혐오나 알고리즘의 산물일 수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분열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사법심사의 역할을 재조명할 실천적인 필요성이 있다. 사법심사에 대한 기존의 학술적 논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심사의 정당성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 먼저 사법심사 비판론자들은 사법심사가 민주주의를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왈드런에 따르면, 사법심사는 의견 불일치를 해결할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다. 임명직인 사법 엘리트가 중대한 사회의 결정을 대신 수행할 권리가 없으며, 최악의 경우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 권리를 박탈하여 사법 통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Waldron 1999, p.10-15). 투시넷은 더욱 급진적인 차원에서 헌법을 법원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Tushnet 1999, p.4-6). 그의 사법적 과잉 이론에 따르면, 강력한 사법심사는 입법부와 시민이 직접 헌법을 해석하고 실현할 기회를 박탈하여 사회의 민주적인 역량을 위축한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는 헌법 해석의 권한이 사법부가 아닌 민중에게 주어지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법심사 옹호론자들은 사법심사가 수행하는 민주주의 유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수적 다수에 의한 통제가 아닌 모든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 존중이라는 헌법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사법심사는 원칙의 포럼으로, 다수의 집합적인 이익이나 사회적 효용을 계산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에 집중한다 (Dworkin 1985, p.33). 따라서 사법부는 원칙에 기반해 다수결의 오류를 시정하여 민주주의의 내용적 측면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행 연구들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법심사 비판론자들이 기대하는 시민과 입법부의 자정 능력은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왜곡과 구조적인 균열로 인해 사실상 마비되었다. 반면, 사법심사 옹호론자들은 법관 개개인의 윤리 의식 및 정의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법부 역시 정치적 편향성을 지닐 수 있다는 법현실주의적 비판에 대해 충분히 방어하지 못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본고는 사법심사를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력 투쟁 혹은 민주주의적 정당성에 대한 투쟁으로 보는 이분법을 거부한다. 대신 현대 사회의 기술적인 속성 및 변화로 인해 다수결 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을 포착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법심사의 역할이 구조적으로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한다.

본고는 심각하게 분열되고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된 현대 사회에서 사법심사는 반민주적 예외가 아닌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는 필수적인 구조적 기제임을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총 세가지 전제를 중심으로 논증을 전개한다. (1) 첫째, 분열된 사회에서 ‘고정된 다수’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다수결주의는 내재적인 위험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2) 해당 전제에서 일반 시민들의 선호는 중도적이라는 피오리나의 반론을 재반박하며 정치적 다수는 고정되어 있음을 명확히 한다. 따라서 다수결주의의 위험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절연성과 헌법적인 공적 이성이 필요할 것이다. (3) 둘째, 사법부는 재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제도적 절연성을 지닌 유일한 기관으로 다수결 정치 과정에서 배제된 소수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행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4) 또한 사법부는 여론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로버트 달의 반론을 재반박하며,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이 소수자를 보호함을 주장한다. (5) 마지막으로, 선출직이 아닌 사법부는 헌법적 공적 이성에 의존해야 하며 이는 사법부를 원칙의 수호자로 기능하게 만듦을 입증한다. 이러한 세가지 논증에 기반해 본고는 사법심사가 다수의 힘을 헌법적 이성으로 제어하여 건강한 민주주의를 완성함을 논증한다.

본론

­­분열된 사회와 다수결주의의 내재적 위험성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을 채택하는 정당성은 다수의 유동성에 기반한다. 오늘의 소수에 해당하더라도 내일의 다수가 될 수 있기에 패자는 선거의 결과에 승복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분열로 인해 이러한 전제가 붕괴되었다. 레이파트의 논의에 따르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다수는 고정적으로 고착화되었다 (Liphart 2012, p.30-45). 사회의 균열 양상이 교차 균열에서 중첩된 균열로 전환되며, 다수결주의는 민주주의의 합리적인 도구가 아닌 구조적 소수자를 억압하는 합법적인 폭력의 기제로 전락하였다.

중첩된 균열과 유동적 다수의 소멸

다원주의 이론은 사회 갈등의 구조를 교차 균열과 중첩된 균열의 두가지 양상으로 분류한다. 립셋과 로칸의 전통적 다원주의 이론은 유권자의 정체성이 서로 교차한다고 가정했다 (Lipset&Rokkan 1967, p.32-34). 교차 균열이란 사회 구성원을 나누는 여러 갈등의 기준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엇갈려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특정한 개인이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A집단에 속하지만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A집단에 반하는 B 집단에 속할 수 있다. 교차 균열은 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한다. 특정 시기의 주요한 사회적인 의제에 따라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수적인 노동자나 진보적인 기독교인이 존재할 때, 이슈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유동적 투표가 시행되며 특정 정당이 유권자를 완전히 포섭할 수 없어 다수는 선거 때마다 변동한다.

그러나 레이파트는 깊게 분열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유동성이 작동하지 않고, 균열 구조가 중첩된 균열로 재편되었음을 경고한다 (Liphart 2012, p.30-45). 오늘날의 정치 지형은 지역, 계급, 이념이 하나로 일치하는 중첩된 균열의 양상을 보인다. 균열이 중첩될 때 정치는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닌 정체성 전쟁으로 비화한다. 현대의 정당들은 상대 정당을 정치적인 경쟁자를 넘어서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이나 도덕적인 악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정치 환경 아래 유권자가 지지 정당을 바꾸는 행위는 자기 정체성의 배반이 되기 때문에 선거 결과는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따라 경직된다. 이러한 양상은 비숍의 ‘거대한 분류’를 통해 실증되었다. 비숍에 의하면, 미국에서 한 후보가 20%p 이상의 차이로 우위를 점하는 압승 선거구의 비율이 1976년 26%에서 2000년대 이후 50~60% 이상으로 급증하였다 (Bishop 2008, p.5-16). 지역의 고정적인 투표 행태는 다수가 더 이상 유동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실증 자료이다. 다수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단순 다수결은 구조적 소수자가 영원히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강력한 지배의 수단이 된다. 따라서 정치적 결과는 더 이상 내용이나 정책이 아닌 고정된 다수의 투표행태에 따라 결정된다.

알고리즘에 의한 조작된 다수와 사회적 폭정의 심화

21세기에 이르러 중첩된 다수의 구조적 위험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더욱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미국 제헌 시기 토크빌은 다수가 법률적 강제를 넘어 소수의 사상과 발언권마저 억압하는 사회적 폭정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토크빌에 의하면, 세가지 조건 하에 사회적 폭정이 작동한다: 다수의 결정이라는 양적 우위가 정의에 기반한 질적 우위를 압도할 때, 일정한 사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 그리고 상이한 의견을 가진 이를 외부인으로 규정할 때이다 (Tocqueville 2000, p.239-242). 토크빌의 제시한 상황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으며, ‘알고리즘에 의해 조작된 다수’가 탄생한다. 쥬보프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형성된 여론은 실재하는 민심의 총합이 아닌 알고리즘의 상업적 목표와 구조적 왜곡을 반영한 조작된 결과물이다. Facebook Papers의 내부 문건은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화나요’ 반응에 ‘좋아요’ 반응 대비 5배 가중치를 부여하여 분노를 유발한 게시물을 5배 더 빈번히 노출함을 고발하였다 (Merrill&Oremus 2021). 이런 예시에서 알고리즘은 중립성을 잃은 편파적인 렌즈임을 알 수 있다.

알고리즘은 두 가지 차원에서 조작된 다수를 구성하고 사회적 폭정을 불러온다. 첫째 알고리즘은 내용적 정의에 기반해 판단하지 않고 수치화된 양적 데이터에 기반해 노출할 콘텐츠를 결정하여, 질적 우위보다 양적 우위를 우선한다. 인간의 생리적 반응 기제에 비추어 보아 댓글이나 공유의 수가 많은 콘텐츠는 대체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만족감과 같은 저각성 감정은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하여 단순히 스크롤을 넘기는 이완 반응을 일으키는 반면, 분노나 흥분과 같은 고각성 감정은 교감 신경을 촉진하여 공유나 ‘좋아요’를 누르는 능동적 행동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콘텐츠는 이용자들이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을 증가시키기에 빅테크 기업의 이윤을 창출한다 (Berger&Milkman 2012, p.192-205). 한편, 이러한 알고리즘 설계는 양극화를 초래하며 건강한 민주주의 작동을 위협한다. 알고리즘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신과 동질적인 의견 중 점차 극단적인 내용에 노출되도록 하고, 반대 의견을 접할 기회를 기술적으로 차단한다. 반향실 효과에 의해 다수의 의견은 점차 극단화되고, 소수자들의 발언권이나 노출 기회는 위축된다.

둘째, 소수의견을 가진 사용자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공포로 점차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용기를 잃는다. 쥬보프에 의하면, 알고리즘은 도구적 권력을 통해 소수를 침묵시키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Zuboff 2019, p.8-10). 도구적 권력이란 사용자가 다수의 선호에 부합하는 내용을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그들의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알고리즘은 정량적인 보상 체계와 타인들의 즉각적인 반응에 사용자를 노출시켜 도구적 권력을 행사한다. 소수자나 이견을 가진 개인은 자신의 발언이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되지 않거나, 다수에게 실시간으로 비난 받을 수 있음을 학습한다. 즉,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은 소수자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스스로 검열하고 침묵하는 길을 택하도록 유도한다.

조작된 고정적인 다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입법부나 행정부는 구조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선출직 권력은 재선을 위해 가장 목소리가 큰 집단, 혹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조작된 다수의 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표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여론에 맞서 헌법적 가치를 설득할 유인이 없다 (Ely 1980, p.101-104). 따라서 알고리즘에 의해 자체적 자정 능력을 상실한 다수결 민주주의를 구제하기 위해 선거라는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제도적으로 절연된 외부의 중재자, 즉 사법부의 개입이 논리적으로 요청된다.

다수의 고착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재반론

본 글은 현대 사회의 중첩된 균열로 인해 다수와 소수의 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고착화된 다수를 전제로 논의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피오리나는 대중이 고정된 다수와 소수로 양극화되었다는 주장 자체가 과장된 신화라고 반박한다 (Fiorina et al. 2011, p.6-18). 피오리나는 실증적인 연구 데이터를 통해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은 여전히 이념적으로 중도에 위치하며 극단적인 정파성을 띄지 않음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갈등이 격화된 것은 일부 정치 엘리트들의 정당 분류 및 정당 이념 색채가 심화되어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다. 대중들은 여전히 사회적인 이슈나 정책에 따라 유연하게 투표한다. 다수결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한다는 이러한 반론에 따르면 사법부라는 비선출 권력이 개입하여 고정된 소수를 구제해야 한다는 명분은 설득력을 잃는다. 유권자들이 기존 지지 정당의 극단주의나 무능력에 피로감을 느끼면 반대 정당에 투표함으로써 권력을 교체하고, 새로운 다수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오리나의 전제 하에서 사법부의 개입은 대중의 민주주의적 자정능력을 성급하게 불신한 엘리트의 월권일 것이다.

중도 성향의 정치적 반영 통로 봉쇄

그러나 통계적으로 다수가 중도 성향이라는 사실이 다수결 민주주의 위기를 부정하지 못한다. 본 연구는 설령 피오리나의 지적대로 대중의 선호 분포 자체는 중도적이더라도, 중도 성향이 정치적 현실에 반영되는 통로가 구조적으로 봉쇄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도나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두 가지 기제에 따라 정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정치 지형의 다수는 고착화 된다.

첫째, 중도층들의 선택지 실종과 정치제도의 포획이다. 피오리나가 인정하듯 정당 시스템과 정치 엘리트는 이미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었다. 일반 유권자들의 선택은 선거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양극단으로 치달은 두 개의 정당 중 하나로 제한된다. 따라서 민심과 정치적 선택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이에 더하여 정치제도는 정치적 결과에서 중도가 소거되는 결과를 심화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중도층이나 소수자들의 선호가 정치적 결과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거인단 제도는 주별로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해당 주 선거인단 표 전부를 독식하는 승자독식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이로 인해 전통적으로 고정적인 선호를 가지는 주들에 거주하는 소수 정당 지지자들이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는 선거 결과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이들은 자신의 선호와 무관하게 거주 지역의 고착화된 다수결에 종속된다. 실제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경쟁한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는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제도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어주었다. 이는 피오리나가 주장하는 대중의 유동성이 제도적 장벽 앞에서 무력함을 실증한다.

둘째, 알고리즘이 도입된 현 시점에 일반 시민들의 정치선호가 중도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타당한 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피오리나의 연구는 2011년에 수행되어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여론을 지배하기 이전의 상황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10여년 사이 영향력이 증대된 알고리즘은 무의식적인 유권자들의 선호 형성과 의사 표현 방식을 변화시켰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내용을 담은 컨텐츠를 부각하여 중도적이고 이성적인 다수의 목소리를 온라인 공론장에서 배제한다. 논란의 소지가 적은 온건한 중도 의견은 내용이 아닌 ‘좋아요’나 댓글 수를 기반으로 컨텐츠를 선별하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알고리즘은 극단적인 의견의 과대대표와 온건 중도의 과소대표를 초래한다.

결국 정치 구조와 알고리즘은 합리적 중도층과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정치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피오리나의 반론과 달리 현대 민주주의에서 다수와 소수는 고정적이다. 이것이 사법부가 민주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이유이다. 이후 본 글은 고정적 다수가 존재한다는 확고한 전제를 기반으로, 사법부가 제도적 절연성과 이유 제시의 기능을 통해 소수자를 구제함을 논증한다.

제도적 절연성과 대표 보강

현대 사회의 중첩된 균열 구조와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된 여론은 입법부나 행정부와 같은 선출직 권력이 고정된 소수자를 보호하기 어렵도록 한다. 다수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선거는 고착화된 다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선거로부터 구조적으로 분리된 사법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해당 전제는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결함을 치유하고 대표 보강 기능을 수행하는 지 논증한다.

제도적 절연성의 정의

국민의 최종 결정권을 보장하던 선출직 공직자의 반응성과 책임성은 디지털 포퓰리즘 시대에 치명적인 민주주의의 약점이 되었다. 빅테크 알고리즘에 의해 분노와 혐오가 조직화되는 환경에서 반응성과 책임성은 극단적인 소수 정치 팬덤의 요구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였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병리적 다수의 압력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절연성을 가진 비선출직 권력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먼저 제도적 절연성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페레존에 의하면, 제도적 절연성이란 정치적 책임성으로부터의 의도적인 단절이다 (Ferejohn 1999, p.355-360). 사법부는 종신 혹은 장기 임기를 통해 신분이 보장되고, 선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절연된 기관이다. 사법심사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절연성을 사법부의 결함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사법부가 헌법 수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속성이다. 유권자의 표심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헌법 기관이기에 당장의 지지율이 아닌 장기적인 헌법적 가치에 복무할 수 있는 구조적인 역량을 가진다. 따라서 선거를 앞두고도 여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양심의 자유에 따라 판단할 자율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사법부가 비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여론에 휘둘리는 대의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안전장치임을 방증한다.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재반박

로버트 달은 역사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이 다수 여론과 일치하는 경향이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달은 판사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과 의회가 임명하기에 임명 절차에 간접적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이 반영되고, 덜 중요한 사안에서 여론과 보조를 맞추어 전략적 생존을 모색한다고 주장한다 (Dahl 1957, p.293). 이에 따라 대법원도 결국 지배적인 정치 연합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판결이 여론과 결과적으로 일치한다고 하여 사법부가 여론에 종속된 것은 아니다. 과정의 차원에서 사법부와 입법부가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종속성이 부정된다. 입법부는 표를 세어서 수적 기준으로 여론을 따르지만, 사법부는 헌법을 해석해서 결론을 짓는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판결이 여론과 일치하더라도 이는 헌법적 원칙에 따른 결과이다. 이에 더하여, 사법심사가 평시에는 여론에 일치하는 판단을 내리더라도 소수자의 권리가 절대적으로 침해된 결정적인 순간에 여론을 뒤집고 정의의 관점에서 판결할 수 있기에 사법심사가 필요하다. 가령 소수자의 생명을 침해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한 결정적인 판결에서 사법부가 제도적 절연을 바탕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강력한 보루가 된다.

민주 절차를 수리하는 법원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이 민주주의 내에서 어떻게 기여하는 지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일리의 대표성 보강 이론에 따르면, 사법부는 고장난 정치 시장에 개입하여 소수자의 목소리가 다시 정치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돕는다 (Ely 1980, p.101-104). 즉 사법부는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내용적 판단을 독단적으로 내릴 수 없지만, 민주주의 절차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치과정은 시장과 같이 작동한다.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정치 시장에서는 다양한 집단이 이익을 교환하고 타협한다. 그러나 고착화된 다수가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소수자 집단이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배제된다. 고립된 소수의 지지 없이도 안정적인 이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는 이들과 연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더 나아가 소수를 차별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얻는다. 예를 들어, 입법부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수의 차별을 묵인하거나 법제화하여 건강한 정치적 프로세스가 회복되지 못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작동이 병리적인 상황에서 사법부의 민주주의 절차 개선은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정치적 참여에 대한 실질적인 기회 평등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특정 정당이나 다수에게 유리하게 구획된 선거 구역을 바로잡는다. 선거 절차상 소수자의 동등한 대표권을 보장하여 정치 지형에 변화가 가능하도록 한다 (Ely 1980, p.74-91). 둘째,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대응한다. 소수자가 정치적 절차로부터 발생하는 서비스에서 근거 없이 배제되지 않도록 다수와 소수의 이해관심을 연동한다. 사법부가 수행하는 대표성 보강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수가 설계한 불합리한 진입장벽을 허물고 모든 시민들의 의견이 평등하게 대표되는 정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사법심사는 진정한 민주적 대표성을 잃은 소수를 보강하여 선거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응하고, 모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호하는 민주적 이상을 보호하는 장치이다.

21세기 알고리즘 환경에서 일리의 이론은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알고리즘은 대표성의 문제를 심화시켜, 현대 사회의 고립된 소수는 인구통계학적인 소수를 넘어선다. 알고리즘은 소수의 의견을 묵인하여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차단한다.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 수와 공유 기능에 의해 주류 의견은 과대 대표되지만, 자극적이지 않거나 소수 의견을 다루는 콘텐츠는 노출 알고리즘에서 배제되고 과소 대표 된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온라인 여론을 통해서 민심을 파악하고, 일부 선출직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하여 다수를 더욱 공고히 조직하고 동원한다. 이들은 다수의 정서에 편승하는 포퓰리즘 법안을 양산한다. 반면 사법부는 알고리즘과 다수결의 결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선거라는 정치적 압력과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적 압력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수결이 짓밟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복원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다.

헌법적 공적 이성과 설명의 의무

사법부의 제도적 절연성이 정치적 외압을 차단하는 방어적 조건이었다면, 해당 전제에서는 사법부가 어떻게 헌법적인 가치를 능동적으로 실현하는지 살피고자 한다. 사법부는 항구적인 헌법에 기반하여 권리 침해적인 정치적 타협을 교정한다. 공적 이성의 담지자인 사법부는 이성적 숙의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지탱한다.

정당성의 유일한 원천: 헌법적 가치를 통한 설득

사법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사법 신뢰와 결정의 구속력이 필요하다. 물리적 강제력이 없는 사법부가 시민들과 다른 권력 기관의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설득이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시민들을 공통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근거는 과거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아온 헌법의 정의관 뿐이다. 구성원들이 합의한 헌법의 영역 안에서 판결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때 패소한 재판 당사자도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따라서 법관은 사법부의 결정이 헌법적 가치에 부합함을 논리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정당성을 얻는다. 즉, 사법부의 정당성의 원천은 법원이 사적 신념을 배제하고 공적 이성에 호소하도록 하는 근거가 된다. 반면 입법부는 공적 이성의 제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이질적인 집단들의 정치적 흥정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입법부에서는 개별 정당이 대변하는 유권자 집단의 이념 색체에 부합하는 법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특징에 따라, 해밀턴은 연방주의자 논고에서 사법부를 가장 덜 위험한 부서로 규정했다. 행정부는 물리적 강제력을, 입법부는 법 제정권과 재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반면 사법부는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한 채 오직 이성적 판단만을 소유한다. 이러한 물리적 무력함은 역설적으로 사법부가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Hamilton 2003, p.465). 서로 다른 권력의 원천에 미루어 보았을 때 사법심사는 이성이 권력을 지닌 일반 의지를 통제하는 민주적 절차이다. 따라서 법원은 민주주의의 핵심 윤리인 호혜성에 기반하여 분열된 사회를 헌법 아래 묶어두는 통합 기제이다.

법원의 설명 의무

사법부가 헌법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적극적 기제는 사법부의 독특한 절차적 의무를 통해서 구체화된다. 사법심사 과정은 시민에게 개방되며, 시민들의 참여가 절차적으로 보장된다.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소수자가 자신의 의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 위해서는 정치적 자본을 동원하거나 다수의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소 대표된 소수자들은 아무리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입법 영역이나 행정 영역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사법부는 원고 적격을 가진 모든 개인의 청구권을 보장한다. 법원에서는 단 한명의 시민이더라도 국가 권력 전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법원은 이를 반드시 판결해야 할 의무를 진다.

사법부는 재판의 과정 및 결과를 판결문 작성을 통해서 설명할 의무를 가진다. 입법 과정에서는 지지층의 선호에 따라 법안 통과가 가능하지만, 사법 과정에서는 이러한 명분이 허용되지 않는다. 판사는 판결문에 반드시 헌법 조항과 법리에 기반한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드워킨은 판사가 판결과정에서 가지는 의무를 적합성과 정당성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적합성 차원에서 판결은 과거의 선례나 헌법 텍스트, 입법 역사를 비롯한 과거의 법적 자료와 논리적으로 부합해야 한다. 따라서 판사는 기존 법 체계와 괴리된 자의적인 판결을 내릴 수 없다. 정당성 차원에서 판사는 법을 도덕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만들 의무가 있다. 단순히 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헌법이 지향하는 근본 원칙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하는 최선의 해석을 선택할 의무가 있다. 적합성과 정당성을 갖춘 사법부의 설명 의무와 공개 논증 의무는 다수의 편견과 알고리즘에 의해 증폭된 분노를 여과하는 장치가 된다 (Dworkin 1986, p.228-238).

헌법에 근거하여 작성된 판결문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민사회에 확산된다. 전문가 집단이나 특정 판결과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이익집단, 언론 매체는 시민들에게 해당 판결을 발신한다.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에서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난 소수자의 새로운 권리 논의가 사법부의 판결문에 기반하여 촉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오버게펠 대 호지스(Obergefell v. Hodges) 판결은 동성커플이 지닌 권리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숙의를 촉발하였다. 기존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논의가 ‘생식 능력’이나 ‘결혼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쟁점으로 삼았다면,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판결문은 이를 ‘인간 존엄성’과 ‘친밀한 결합’으로 전환하였다.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은 미국 사회에 동성결혼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투입하여 논의를 환기하였다. 해당 판결의 사례처럼 사법부는 입법부가 외면한 헌법적 가치들을 존중하여 알고리즘의 시대에 상실된 공동체의 이성적인 숙의가 회복된다. 헌법적 명령에 근거해 설명하는 사법부의 역할에 따라 민주주의의 적극성이 담보된다.

결론

본고는 분열된 사회의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된 공론장이라는 현대적 조건 하에서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본고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전통적인 반다수결의 난점이 전제하고 있는 합리적이고 유동적인 다수가 현대사회에서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세가지 전제를 통하여 사법심사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비민주적 예외가 아니라 다수결 민주주의의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는 필수적 기제임을 입증하였다. 첫째, 현대 사회의 중첩된 균열과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 편향이 결합하여 다수결 원칙이 구조적 소수자를 영구히 배제하는 사회적 폭증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밝혔다. 선거는 더 이상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며, 고착화된 정체성 대결의 장으로 변모하였다. 둘째, 이러한 정치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제도적 절연성이 필수임을 논증하였다. 재선 압력에 종속된 입법부는 조작된 여론이나 포퓰리즘에 저항할 유인이 없지만, 선거로부터 절연된 사법부는 고립된 소수를 위한 대표성을 보강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삼권분립 원칙에 의한 제도적 속성이다. 셋째, 사법부는 절차적 측면 뿐만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 이유 제시 기능을 통하여 이성적 숙의를 촉진한다. 물리적 강제력이 없는 사법부는 생존을 위해 오직 헌법적 정당성에 의존해야 하며, 판결문 작성이라는 절차적 의무를 통해 이를 다수 국민에게 공개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사법부는 헌법적 공적 의성과 원칙의 포럼으로 기능한다.

본고는 기존 사법심사 논쟁에 더하여 사회 균열 심화와 알고리즘에 의해 고착화된 다수가 부상한 최근의 정치사회학적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기여한다. 기존 사법심사에 대한 비판론은 입법부가 충분한 숙의 기관이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사법심사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는 레이파트의 중첩된 균열과 쥬보프의 감시 자본주의 이론을 결합하여 현대 입법부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실증적으로 진단했다. 사법심사의 필연성은 외생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구조적인 대안이다. 최근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사법부는 고립된 소수자에게 동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확인시켜주며, 다수가 헌법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공간이다. 결론적으로, 사법심사는 소수자의 권리가 박탈되는 민주주의의 자기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면역 체계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가정하고 있는 상황은 중첩된 균열이 발생하고,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성이 심화되어 소수자의 의견 반영 통로가 봉쇄된 정치 환경임을 강조한다. 본고의 논의는 양극화된 사회에서 사법심사가 소수자의 대표성을 보강하고 이유 제시를 통해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고가 주장하는 사법심사의 정당성은 입법부나 행정부의 정치과정에 소수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는 사회나 소수자의 권리와 무관한 쟁점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회에 대해서는 본고의 사법심사에 대한 논의가 함축하는 바가 없으며, 본고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사법심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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