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11-04 김세준
제목: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거시적 요인에서 찾아야 하는가?
I. 서론
민주적 시민 혁명의 원인을 밝히는 문제는 늘 정치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민 혁명 중에서도 프랑스 혁명은 제3계급이 성직자 및 귀족으로 구성된 제1,2계급을 상대로 투쟁하여 봉건적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성공적 시민 혁명의 전형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에도 연구의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이러한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가를 둘러싸고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었지만, 크게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말하자면, 계급, 제도, 국제 관계와 같은 사회 구조 차원의 요인과 당시 사람들의 이념, 문화, 우연적 사건과 같은 행위자 차원의 요인 중 어느 것이 프랑스 혁명에 있어 더 핵심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느냐는 것이다. 결국 시민 혁명의 핵심적 원인을 거시적 요인에서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미시적 요인에서 찾아야 하는지가 프랑스 혁명에 대한 논쟁에서의 핵심적인 이론적 딜레마라고 하겠다. 이와 관련해 Skocpol(1973)은 프랑스는 유럽 대륙 국가 간의 안보 경쟁 탓에 재정 확보가 절실하였음에도, 효율적 관료제가 조직되어 있지 않아 세금 개혁이 어려웠고, 이에 따라 귀족 및 성직자의 면세와 자신들을 향한 가혹한 과세에 부농 중심의 부르주아 계급이 분노하면서 혁명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Sewell(1985)은 Skocpol과 같은 거시적 관점의 이론가들을 “계층론”자라고 칭하며 그들이 행위자의 이념 및 당대의 우연적 사건과 같은 “서사론”적 요인들을 경시했음을 비판하면서, 거시적 요인보다도 그런 미시적 요인들이 시민 혁명의 핵심적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나의 논변은 역사적인 문헌 분석을 통한 서사론적 방법론을 택해 미시적 요인들을 분석하면, 시민 혁명의 인과관계가 보다 명확하게 규명됨으로써 시민 혁명이 촉발될 수 있었던 근본적 배경을 재구성하는 게 가능해지고, 고로 그것으로부터 혁명 발발의 흐름을 마치 줄거리(storyline)처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이를 보이기 위해 다음 본론에서는, Sewell의 논의를 참고하여 프랑스 혁명의 미시적 원인들을 규명하고, 거시적 관점의 구조론자들이 제기하는 반론을 고찰한 후, 이를 재반박함으로써 위 논제를 정당화할 것이다.
II. 본론
1.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우연적 사건들에 의한 새로운 이념과 문화의 확산에 있다
프랑스 혁명은 당대 프랑스 내의 각종 정파들과 그 정파에 속한 지식인들이 서로 학문적 교류를 이어나가며 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다졌기에 가능했다. 즉, 지식인 간의 친목에 의한 교류라는 우연적 사건들을 통해, 당대 프랑스의 이념과 문화가 변화를 맞게 되면서 혁명이 발발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프랑스는 유구한 카톨릭 국가로서, 신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존재인 왕은 그 정당성을 종교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러던 중 계몽주의 사상이 상퀼로트나 몽테뉴 등의 정파들에 속한 지식인들의 교류를 통해 퍼져 나가게 되었고, 이로써 왕의 절대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과 권위의 실추가 야기되어 왕으로 대표되는 구체제의 위계적 질서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 프랑스 혁명의 핵심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시민 혁명의 핵심적 원인이 미시적 요인으로부터 기초함을 알 수 있다.
2. 반론: 이념과 문화와 같은 미시적 요인들조차도 사회의 구조적인 거시적 요인에 의한 결과물이다
일각에서는 인간의 사고는 계급이나 제도와 같은 사회적 요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따라서 미시적 요인은 거시적 요인이라는 독립변수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당대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왕의 절대적 권위에 비판적인 계몽주의를 수용하여 퍼뜨렸던 이유도 사회 구조 차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유럽 대륙의 안보 불안이라는 국제관계적 요인과, 프랑스의 미숙한 조세 관리 체계라는 제도적 요인에 따라 착취 수준의 가혹한 과세가 지속되어 대중의 불만을 야기했기에 왕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고 통치의 정당성이 훼손되었다는 점에서 계몽주의가 퍼져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미시적 요인도 인과관계를 분석하면 거시적 요인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이념 및 문화 역시 사회의 산물로서, 현상의 보다 명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미시적 관점이 아니라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함이 옳다는 주장이다.
3. 재반박: 유사한 거시적 조건하에서도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 러시아의 사례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유사한 조건하에서도 늘 상이한 사회 현상이 도출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즉, 인간 행위자의 행위능력, 혹은 행위자성을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축소시켜 실제 현실이 갖는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환원시켜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실제 사례를 통해서도 구조론자들의 반론을 비판해 볼 수 있겠다. 러시아의 경우 시기적으로는 프랑스 혁명보다 약 1세기 이후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유럽 대륙의 안보 불안과 미숙한 조세 체계, 그리고 그로 인한 착취와 가혹한 과세라는 측면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배경과 매우 유사한 구조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은 2월 혁명을 거쳐 10월 혁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거시적 관점의 학자와 미시적 관점의 학자를 막론하고 시민 혁명에 실패했다고 결론짓는다. 이는 프랑스와 달리 러시아에서는 계몽주의적인 공화주의 이념보다 사회주의 이념이 더 유행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인간 행위자로 구성된 우리 사회는 유사한 구조적 조건 아래에서도 그 이념과 문화, 그리고 우연성의 개입으로 인해 상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III. 결론
이 논문은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계급, 제도, 국제 관계 등의 거시적 요인보다는 이념, 문화, 우연적 사건 등의 미시적 요인에 기초한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거시적 조건이 비슷하더라도 미시적 상황이 상이하다면 시민 혁명의 성패가 달라질 수 있음을 논증하였다. 이는 시민 혁명으로부터 더 나아가 우리가 사회과학 전반에서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그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할 때 단순히 양적인 통계에 의해 규명되는 구조적 조건에만 천착할 것이 아니라 인터뷰나 문헌 연구 등의 방법론도 병행함으로써 더 풍부한 행위자적 요인에 대한 서사론적 이해를 시도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이와 같은 주장이 거시적 원인의 영향력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거시적 원인의 중요성에 의해 지나치게 가려졌던 미시적 원인의 중요성을 재고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