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13 유성보

제목: 사법심사의 정당성 논의: 시민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적 역량을 중심으로

서론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헌법 체계는 민주주의와 입헌주의라는 두 축을 근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고에서 논하는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 원칙을 넘어 권리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실질적인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칭한다. 민주주의는 시민 다수의 의사에 따른 자기 지배를 통치의 원칙으로 삼아 통치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입헌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 두 원칙은 각각 엘리트 과두정의 출현을 억제하고, 다수에 의한 폭정을 예방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다수의 의사결정이 항상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호하는 방향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 두 가치는 대립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법심사는 이러한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간의 대립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사법심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해당하는 소수의 법관이 선출된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무효화하는 제도로 보인다. 이는 다수결에 위배되는 것 처럼 보이는 ‘반다수결적 난점’을 제기하고, 사법심사에 대한 정당성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바탕으로 사법심사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사법심사가 다수의 의사에 위배되며, 민주주의의 자기 교정 능력을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입법부의 선거나 협상을 통해서 위헌적 법률이나 정책을 교정하는 경로는 긴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시민의 권리 침해가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사법심사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Ely는 사법심사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보지 않고 정치적 참여의 통로가 왜곡될 때 이를 교정하는 과정 중심의 교정장치로서 이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Ely, 1980). 다른 한편 사법심사를 둘러싼 또다른 논쟁은 사법부 결정의 구속력과 입법부의 응답 가능성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까지 확장되어 왔다 (Tushnet, 2003). 그러나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에서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권리 보호 실패가 어떤 제도적 원인에서 비롯되며, 이를 줄이기 위해 사법심사가 어떤 조건에서 정당화 될 수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본고는 이러한 지점에서 오류 비용과 제도적 역량의 관점에서 사법심사의 정당화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본고는 사법심사가 입법 관성과 쟁점 묶음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권리의 과소보호 오류를 예방하고 실질적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본고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1]Fallon의 오류 비용 분석을 통해 권리 보호에 있어 과소 보호의 오류가 과잉 보호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민주주의 제도가 과소보호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설립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한다. [2]입법부가 구조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경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음을 Kysar (2019)의 입법관성 논의를 통해 입증하고 이를 선거를 통해 교정하기 어려워 권리 보호가 지연되므로 별개의 보완 장치가 필요함을 논증한다. [3]사법부가 권리 문제에 대해 더 나은 판단이 가능함을 전통적으로 논의된 사법부의 도덕적 판단 우위에서 벗어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접근 차원에서 재정의하고 논증할 것이다. [4]최종적으로 Hogg and Bushell (1997)의 헌법적 대화론을 통해 사법심사가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숙의를 촉진하는 기제임을 논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법심사 비판론의 거두인 Waldron (2006)의 ‘권리의 모호성 문제’를 검토하고, 입법 관성을 근거로 ‘권리의 모호성’이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을 부적절하다는 점을 밝혀 나의 논증을 방어할 것이다.

본론

­민주주의 제도의 설계 원칙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다수결 제도의 절차적 정당성에만 있는 것이 아닌, 모든 시민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우하며 그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권리 보호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존립 근거가 훼손된 상태이며, 이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 제도는 시민의 권리 보호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 설계되어야 한다. Fallon은 권리 심사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오류 비용을 비교 분석했다. 하나는 과잉 보호의 오류로, 헌법적 권리가 아님에도 권리로 보호해 입법 목적을 제약하는 경우이다. 이는 다수의 편익을 일부 제한하거나, 행정적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다른 하나는 과소보호의 오류로, 헌법적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침해받은 권리를 제대로 구제하거나 보호하지 못하는 오류이다. 이는 개인의 인간 존엄성, 기본권을 훼손하며, 종종 불가역적인 피해를 남긴다. 기본권 침해 상황에서 정치적 교정이 지연될 경우 피해는 누적되며 회복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Fallon은 오류는 심각한 손해를 남길 수 있다고 분석한다. 반면, 과잉보호 오류는 입법부의 재입법 과정을 통해 언제든 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Fallon, 2008).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데 있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과잉 보호를 우려하여 규제를 포기할 경우, 소수자 집단의 정치적, 사회적 입지는 축소되고 그들의 인격권은 침해되며 민주적 공론장은 왜곡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과잉보호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 과소보호를 방치하는 것은 도덕적 비용 측면에서 훨씬 큰 해악을 초래한다. Fallon은 이를 형사 재판의 구조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형사 재판에서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라는 매우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는 피의자가 범죄자임에도 풀어주는 과잉 보호의 오류보다 무고한 피의자를 처벌하는 과소 보호의 비용이 뚜렷하게 작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희생하는 것보다, 공익이 훼손되더라도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헌법적으로 더 우월한 가치이다. 헌법 제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도덕적 비용이 더 큰 과소 보호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성립된다. 입법부의 다수결만으로 권리 침해를 예방하기에 불충분하므로 사법부라는 추가적인 안전 장치를 설치해 권리 침해의 과소 보호를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입법 관성의 존재와 신속한 권리 구제의 어려움

Kysar에 따르면, 입법 과정에는 수많은 거부권 행사자가 존재하며,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낡은 법을 고치는 데 드는 거래 비용이 매우 높다 (Kysar, 2019, pp. 812-813). 이로 인해 입법부는 사회적 필요에도 불구하고 현상 유지 편향을 보이고 교착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입법 관성은 권리침해를 교정하지 못한 채 이를 장기화되도록 작동한다. 본고는 입법 관성을 다음의 두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먼저 입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입법자들이 선의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도 발생하는 구조적 입법 관성이 있다. 이는 입법부는 다수의 지지에 기반해 작동하고, 한정된 시간과 예산이라는 제약 조건하에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로부터 기원한다. 이로 인해 입법부는 경제, 안보, 복지와 같은 다수 유권자의 이익과 밀접한 거시 담론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수적으로 열세이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소수자, 미성년자의 권리 문제 등은 의제 설정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거나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러한 현상이 구조적 입법 관성에 해당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입법부가 정치적 비용을 우려해 고의적인 태만을 저지르는 병리적 입법 관성이다. 이는 입법자들이 권리 침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비용을 우려하거나 이해득실을 고려해 고의적 태업을 저지르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입법 관성은 정치 현실을 고려했을 때 선거를 통해 해결되기 어렵다. 이는 유권자들이 다양한 쟁점 개별에 대해 투표하지 못하고 쟁점을 묶음으로 투표하는 현행 정치 제도에서 기인한다. 유권자는 선거에서 경제, 안보, 복지, 인권과 같은 다양한 의제를 동시에 고려하여 투표를 하지만, 투표 행위 자체는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단일한 투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입법부의 입법 관성과 권리 보호의 부작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더라도, 유권자 대다수 삶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나 안보 의제가 자신의 입장에 더 부합하는 후보자/정당에게 투표를 하게 된다. 이처럼 유권자의 선호가 여러 의제에 대해서 복잡하게 얽혀 투표로 표출될 때 입법 관성으로 인한 소수자의 권리 침해 문제는 선거를 통해 해결되기 어렵다. 그리고 권리 침해의 지속은 피해자에게 비가역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다수결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된 사법부의 개입은 선거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특정 권리 문제에 대한 정치적 실패를 교정하는 대안으로서 요청된다.

입법관성에 대한 사례 연구

이러한 입법 관성의 존재와 양상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과 호주제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살펴보자. 한국은 휴전상태라는 안보적 특수성으로 인해 징병제를 채택했고,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가치 아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국회는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으나, 시민들의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2004년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검토할 것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14년간 입법부작위 상태를 유지했다. 이는 입법자들이 권리 문제의 심각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에게 표가 되지 않는 소수자의 양심을 위해 다수의 불만을 자극하는 정치적 자살행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매년 수십명의 청년들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한 채 수감되는 상황이 제도적으로 방치되었다 (헌법재판소, 2018). 한국의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사례는 병리적 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호주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과 같은 헌법적 가치에 위배된다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합의는 호주제 헌법불합치 판결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 호주제가 존립 기반을 둔 전통적인 가족 관념은 더이상 현실과 조화되기 어려워 호주제의 존속 필요성이 부재한 상태였다 (헌법재판소, 2005). 그러나, 입법부는 유림을 비롯한 보수적 단체의 표 이탈과 강력한 반대를 우려해 민법을 수십년 동안 개정하지 않았다. 이는 유권자 다수와 입법부가 권리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정치적 비용을 우려해 입법부가 태만을 저지른 병리적 입법 관성의 사례이다. 이처럼 정상적 상황에서의 구조적 관성이 소수자의 권리가 보호받는 것을 지연시킨다면, 비정상적 상황에서의 정치적 관성은 권리 구제 절차를 봉쇄하는 역할을 한다.

관성으로부터 더 자유로운 사법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입법부는 정치적 부담이나 거래 비용을 이유로 권리에 대한 논의를 의제 설정 단계에서 뒤로 미루거나 배제할 수 있으며, 이는 선거를 통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독립된 사법부의 개입은 어떤 측면에서 요청되는가? 먼저 사법부는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입법부와 차이를 갖는다. 입법부는 부담이 있는 문제를 뒤로 미루거나 폐기할 수 있지만, 법원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제기된 소송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는 반드시 판결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처럼 사법부에게는 소수자의 권리 청구를 외면하거나 권리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차단할 제도적 권한이 없다. 또한 사법부는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입법 관성으로부터 자유롭다. 선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사법부는 정치적 비용을 의사결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지 않으므로 병리적 관성으로부터 덜 민감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입법부가 겪는 입법 관성과 같은 현상으로 권리 구제가 지연되는 현상이 사법부에게 나타날 가능성은 입법부에 비해 낮다.

사법부의 현실적 맥락 포착의 우위

사법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접근성

전통적으로 사법심사를 옹호하는 입장은 법관들이 입법자 또는 일반 시민보다 우월한 도덕적 판단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법 심사가 입법부보다 권리를 더 잘 보호한다는 가정에 의존했다. 그러나, Waldron은 판사들이 입법자나 일반 시민보다 도덕적 추론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며 사법부 역시 5대 4의 다수결로 판결하기 때문에 사법부에도 입법부와 유사하게 합리적인 의견 불일치가 존재하며 입법부보다 우월한 이성적 절차를 갖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Waldron, 2006, p. 1391). Waldron이 주장한 바와 같이 사법부 구성원 각각이 입법부나 일반 시민에 비해 뚜렷하게 도덕적 판단 능력이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법부의 권리 보호 역량의 핵심적인 부분은 사법심사가 입법과정과 달리 구체적인 사건을 전제로 작동한다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입법 과정에서 개별 시민은 투표나 이익집단의 형태로 대표되어 다수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며 추상화된다. 이처럼 입법부는 다수에게 적용될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칙을 만들기 때문에 개인의 특수한 사정은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사법부는 구체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작동하며 사회 일반에 공유된 목표와 지침이 실현되기 위해 무엇을 요구하는 지 발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Fuller, 1978, p. 392). 따라서 사법부는 추상적인 법률이 현실의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할 수 있는 구조적 우위를 점한다. 또, 사법부의 다수결은 입법부의 다수결과 형식은 같을지라도,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심리한다는 점에서 입법부의 추상적인 토론에서 예측, 파악할 수 없는 권리 침해의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입법부는 미래의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제정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던 법률도 상황의 변화나 특정한 맥락 하에서는 권리 침해가 될 수 있다. 이때 사법심사는 법률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더라도, 해당 법률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구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위헌성을 사후적으로 포착해 교정할 수 있다. 이처럼, 사법부의 개입은 입법부가 놓친 권리의 사각지대를 구체적 사건을 통해 발견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헌법적 대화론과 사법심사의 민주적 성격

사법부가 권리 보호에 더 적합한 제도적 역량을 갖추었다고 해도, 여전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를 통제하는 것이 민주적인가?’라는 반다수결적 난제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어떻게 사법심사가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헌법적 대화론(Constitutional Dialogue)은 사법심사를 단순히 반민주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헌법적 대화론에 따르면, 사법부의 위헌 결정은 입법 과정의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입법부와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이다 (Hogg & Bushell, 1997, pp. 79-80). 이러한 대화는 단순히 사법심사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사법심사가 입법 관성을 깨뜨리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말했듯 입법부는 입법 관성하에서 정치적 비용이나 다수의 낮은 관심을 이유로 소수자의 권리 침해 문제를 방치하는 경향을 보이고, 다수의 시민들 역시 생계나 다른 중요한 이슈에 집중하느라 소수자의 권리 침해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때 권위있는 사법부의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 결정은 시민들로 하여금 해당 사안이 중대한 권리의 문제임을 인식하도록 하며, 여론을 환기한다. 이 과정에서 입법 관성과 무관심으로 인해 막힌 공적인 의사소통이 다시 복원되고, 후순위로 밀린 소수자의 권리 침해 문제는 중요한 의제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사법부의 판결로 인해 입법부는 더 이상 권리 침해를 방기할 유인이 사라지게 되며, 해당 권리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재심의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사법 심사는 입법부를 직접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입법을 입법부로 되돌려보내 헌법적 가치에 더 부합하는 대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재심의 요청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사법심사는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 속에 방치된 권리를 민주적 숙의의 장으로 복귀하게끔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의 현실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헌법적 대화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국회에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병역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라는 대안을 마련하라’라는 지침을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양심의 자유와 병역 의무 부과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을 환기했다. 그리고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대체복무법을 제정함으로써 민주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사법부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사법부와 입법부가 상호 작용하며 헌법적 가치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구현해나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반론 검토와 재반박

Waldron의 반론

이상의 논증에도 불구하고, 사법심사 옹호론은 Waldron의 강력한 반론에 직면한다. 그는 사법심사 옹호론자들이 전제하는 권리의 명확성이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며,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는 ‘무엇이 권리인가?’에 대한 합리적 의견 불일치라고 지적한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어느정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전제했을때, 무엇이 권리인지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명확한 일이기 때문에 그는 결과의 올바름보다 의사결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고 보며, 모든 시민의 의견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입법부의 다수결이야말로 정치적 평등과 참여의 권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사법심사는 이러한 민주적 정당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제도이므로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제도로 간주된다 (Waldron, 2006, pp.1360-1391). Waldron의 반론대로라면 권리에 대한 규정 자체가 모호하며, 이에 대한 규정 작업은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입법부가 수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입법 관성조차도 민주적 합의가 도달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옹호될 수 있다.

재반박

Waldron이 주장한 것과 같이, 무엇이 권리인지 규정하고 어떤 권리를 보호해야 할 지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의견 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에 대해서 다음의 두가지 측면에서 반박할 수 있다. 먼저, 현실에서 의견일치가 존재하는 권리조차 침해가 방기되는 병리적 입법 관성이 빈번하다. 선거 제도의 한계로 명백한 합의가 이루어진 권리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민주적 합의 과정의 일부라고 정당화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더 나아가, Waldron의 주장대로 권리의 내용과 그 보호 범위가 모호하더라도 사법심사의 필요성은 여전히 정당화된다. 이는 오류 비용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제도는 오류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더 치명적인 오류를 예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앞서 밝힌 것 처럼 입법부가 소수자의 권리를 과소보호했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며 그 피해는 비가역적인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사법부가 권리를 지나치게 보호해 발생하는 오류는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지언정 민주적 절차에 따라서 다시 복원 가능한 가역적인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비가역적이고 치명적인 과소보호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법심사를 안전장치로 존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결론

본고는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역량 측면에서 논증하였다. Fallon의 오류비용 분석을 통해 권리의 과소보호의 오류비용이 비대칭적이므로 민주주의 제도는 과소보호의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어야 함을 도출했다. 그리고 입법부는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입법 관성과 쟁점 묶음 현상으로 인해 권리보호의 실패를 교정하기 어려워 이에 대한 보완장치가 요구된다. 사법부는 구체적 사건을 바탕으로 작동해 권리 침해가 현실에서 어떻게 발생하는 지 포착하는데 우위를 갖고, 정치적 비용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 입법부에 비해 시민의 권리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다. 또한 헌법적 대화론이 밝히듯 사법심사는 의제 설정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권리에 대한 민주적 숙의를 촉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권리의 명확성에 대한 Waldron의 반론을 검토했으며, 이와 같은 반론은 입법관성과 권리 과소보호의 오류 비용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상당 부분 약화된다. 이에 따라 사법심사는 시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 제도의 일부이며,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로서 정당화 될 수 있다. 본고는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도덕적 우월성에서 찾는 대신 오류비용의 비대칭성과 제도적 역량 측면에서 논증하여 학술적으로 기여한다. 다만 본고의 논증은 자유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정착된 사회에서 입법 관성이 존재할 때 사법심사가 갖는 정당성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본고에서 주장한 범위를 넘어서서 일반화되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법심사는 우리 사회가 절차적 다수결을 넘어 헌법이 약속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실질적 가치를 구현하도록 이끄는 제도적 장치이다. 따라서 사법심사 제도는 민주주의의 꽃인 입법부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하며, 그럴때 정당화된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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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2005). 2001헌가9ㆍ10 등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부분, 제778조 위헌제청. https://www.ccourt.go.kr/site/kor/ex/bbs/View.do?cbIdx=1106&bcIdx=941408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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