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11 김태헌

제목: 생명 가치 산정 기준의 윤리적 정당성 확보 방안: 효율성 중심의 QALY 비판과 역량(Capability) 접근의 통합

서론

현대 의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류에게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해주었으나, 동시에 한정된 보건 의료 자원을 누구에게,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 하는 심각한 분배적 정의의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1회 투여에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유전자 치료제의 등장이나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상황에서의 중환자실 병상 부족 사태는 의료 자원의 희소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를 살릴 것인가’라는 선택은 단순한 의학적 임상 판단을 넘어 우리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고도의 윤리적 결단을 필요로 한다. 공공 정책의 목표는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하는 데 있지만, 인간의 존엄 및 생명과 직결된 의료 자원의 배분은 단순한 경제적 효율성(efficiency)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공정성(fairness)의 가치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영역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건 의료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주된 도구는 비용-효과 분석(Cost-Effectiveness Analysis)이며, 그 핵심에는 QALY(Quality-Adjusted Life Years, 질 보정 수명)라는 지표가 자리잡고 있다. QALY는 치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명 연장의 길이에 삶의 질 가중치를 곱하여 산출된 총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이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이상을 수치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복잡한 가치 판단의 문제를 단일한 숫자로 환원하여 정책 결정자들에게 객관적이고 비교 가능한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QALY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순간, 사회 전체의 효용 극대화라는 미명 하에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QALY는 선천적 장애나 만성 질환등으로 인해 이미 삶의 질(Quality of Life, QOL) 수치가 낮은 사람들의 생명 가치를 구조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건강한 사람이나 치료 효과가 뚜렷한 경증 환자에게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이 사회 전체의 수치적 이익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 집단의 치료 우선순위를 밀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보다 가치있다는 차별적 배분을 정당화할 위험을 내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본고는 공공 의료 자원 배분의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행의 배타적인 효율성 중심 기조에서 벗어나, 롤스(Rawls)와 센(Sen)의 정의론에 기반한 ‘역량(Capability)’ 중심의 공정성 지표를 통합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본고의 논증은 다음의 세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센의 역량 접근법을 검토하여, 진정한 공정성의 기준은 개인의 이질성을 간과하는 ‘자원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역량 평등’이어야 함을 논증한다. 둘째, 현재의 주류 지표인 QALY가 자원 평등의 논리적 결함을 그대로 답습하여 사회적 약자의 역량을 구조적으로 박탈함을 노드(Nord)의 논의를 빌려 규명한다. 셋째, 역량 기반 지표의 도입이 측정의 난해함으로 인해 비현실적이라는 반론에 대해, 다니엘스(Daniels)의 ‘공정한 절차(Fair Process)’ 이론을 통해 그 실효성과 윤리적 필연성을 입증함으로써 본 논지의 정당성을 확립한다.

본론

공정성의 기준: 자원 평등의 한계와 역량 평등의 당위성

자원 평등의 윤리적 맹점

공공 정책의 윤리적 목표가 사회 내의 실질적인 공정성 확보에 있다면, 그 배분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가장 직관적인 대답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동일한 양의 자원(Resource)을 제공하는 ‘자원 평등(Resource Equality)’일 것이다. 예컨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금액의 의료비 바우처를 지급하거나 동일한 횟수의 진료 기회를 보장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마르티아 센(Sen, 1999)은 이러한 자원 평등이 인간의 근본적인 다양성, 즉 ‘개인의 이질성(Personal Heterogeneity)’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윤리적 맹점을 지닌다고 비판한다. 인간은 신체적 조건, 유전적 소인, 성별, 나이, 환경적 요인 등에 따라 서로 다르며, 이로 인해 동일한 자원을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능(Functionings)’으로 전환하는 능력, 즉 ‘전환율(conversion rate)’에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롤스는 ‘기본적 가치(primary goods)’의 분배를 정의의 핵심으로 보았지만, 센은 자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자원을 활용하여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doings and beings)’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를 의료의 맥락으로 가져와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만성 신부전증 환자 A와 건강한 일반인 B에게 동일하게 100만 원의 의료 자원을 지원한다고 가정해보자. 자원 평등의 관점에서 이 배분은 공정하다. 그러나 B는 이 자원을 예방 접종이나 영양 보충 등 자신의 미래 활동성을 높이는 데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반면, A는 생명 유지를 위한 투석 비용으로 이 자원을 즉각 소진해야 한다. A에게 투입된 자원은 단지 ‘생존’이라는 기본적 기능을 유지하는 데 쓰일 뿐, 노동, 교육, 여가와 같은 사회적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로 전환되는 효율이 극히 낮다. 결국 기계적인 자원 평등은 개인의 필요와 전환율의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A와 B 사이에 심각한 ‘실질적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거나 방치하게 된다. 이는 형식적 평등이 오히려 실질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설을 보여준다.

역량 평등으로의 전환

따라서 롤스(Rawls, 1971)가 주창한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 즉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배분의 기준이 자원의 양적 평등을 넘어 ‘역량 평등(Capability Equality)’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여기서 역량(Capability)이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substantial freedom)의 집합을 의미한다.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는 상태(functioning)가 아니라, 다양한 기능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capability) 자체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 자원 배분에서의 공정성은 단순히 의료비를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훼손된 개인의 역량 집합을 회복시켜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는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함을 정당화하며,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손실일지 모르나 공정성의 관점에서는 필수적인 보정 조치다.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이질적인 개인들이 동등한 수준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즉, 공정성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 자원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본고가 지지하는 역량 중심 접근의 핵심 전제이다.

효율성 지표의 역설: QALY에 의한 역량의 구조적 박탈

QALY의 산정 방식과 효율성 논리

앞서 자원 평등 논리가 개인의 이질성을 무시하여 실질적 불평등을 야기함을 확인하였다. 문제는 현재 전 세계 보건 의료 정책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QALY(Quality-Adjusted Life Years)가 바로 이 실패한 자원 평등의 논리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QALY는 특정 의료 개입의 결과를 평가할 때, 연장된 수명의 양(Quantity)에 그 기간 동안의 삶의 질(Quality) 가중치를 곱하여 산출한다. 삶의 질은 완전한 건강 상태를 1, 죽음을 0으로 하여 그 사이의 값으로 측정된다.

QALY의 목표는 한정된 예산으로 전체 QALY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1 QALY를 획득하는 데 드는 비용(Cost per QALY)이 낮을수록 그 의료 기술은 ‘비용 효과적’이라고 평가받으며 급여 우선순위를 점한다. 이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며, 제한된 자원을 낭비 없이 사용한다는 행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특히 정책 결정자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가치 판단을 피하고 ‘비용 대비 효과’라는 명확한 숫자로 의사 결정을 방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효율성의 이면에는 ‘이중의 불이익(Double Jeopardy)’이라는 심각한 윤리적 함정이 존재한다.

구조적 역량 박탈의 메커니즘

노드(Nord, 1999)는 QALY가 이미 건강 상태가 나빠 삶의 질 점수가 낮은 사람들의 생명 가치를 체계적으로 저평가한다고 비판한다. QALY 산식에 따르면, 치료 후 삶의 질이 1.0으로 회복되는 건강한 사람 1년을 연장하는 것은 1 QALY의 가치를 갖지만, 선천적 장애나 만성 질환으로 인해 치료 후에도 삶의 질이 0.5에 머무르는 사람의 1년 연장은 0.5 QALY의 가치밖에 갖지 못한다. 이는 동일한 생명 연장의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생명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척수성 근위축증(SMA)과 같은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생각해 보자. 이 환자들은 고가의 치료를 받더라도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거나 지속적인 간병이 필요하여 삶의 질 점수가 일반인보다 낮게 측정될 수 있다. QALY 논리에 따르면, 동일한 비용을 들여 이 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것보다(예: 0.5 QALY 획득), 가벼운 질환을 가진 일반인 여러 명을 치료하여 그들의 삶의 질을 조금씩 높이는 것(예: 0.1 QALY × 10명 = 1.0 QALY 획득)이 사회적으로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이는 결국 ‘쉬운 사례(easy cases)’에 자원을 집중하고, 치료가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어려운 사례(hard cases)’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계산 방식은 앞서 비판한 자원 평등의 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QALY는 투입된 자원 대비 산출되는 효용만을 기계적으로 계산함으로써, 장애인이나 만성질환자가 동일한 효용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는 ‘전환율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오히려 이를 비효율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배제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당신을 치료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므로 후순위로 밀려나야 한다”고 선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QALY에 대한 독점적 의존은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역량 회복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한다. 공공 정책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자생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의료적 개입 없이는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취약 계층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QALY는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명분 아래 역량 평등이라는 공정성의 대전제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으며, 따라서 단독적인 배분 기준으로서의 윤리적 정당성을 상실한다.

대안의 모색과 정당화: 역량 기반 지표의 도입과 실현 가능성

실현 가능성(Feasibility) 반론의 검토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효율성 지표의 윤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량 기반의 지표 도입이 필수적임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정책 입안자들과 보건 경제학자들로부터 가장 강력하게 제기되는 반론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역량(Capability)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다차원적이어서 객관적인 수치로 측정하기 불가능하다. 반면 QALY는 명확한 숫자를 제공한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정책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러한 반론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모두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측정의 기술적 난이도가 윤리적 부정의를 용인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본고는 역량 접근의 실현 가능성이 두 가지 차원에서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기존 지표의 활용과 역량의 측정 가능성

첫째, 역량의 지표화는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실증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 개발 지수(HDI)이다. HDI는 한 국가의 발전 수준을 평가할 때 단순한 경제적 부(GDP)를 넘어, 교육 수준과 기대 수명이라는 ‘기능적 역량’을 종합적으로 지수화했다. 비록 HDI가 거시적 지표라는 한계는 있지만, 이는 추상적인 역량 개념이 합의된 대리 변수(proxy)를 통해 충분히 객관적인 지표로 변환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례다.

미시적 의료 영역에서도 이미 기능적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도구들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일상생활 수행능력(ADL)이나 도구적 일상생활 수행능력(IADL)은 환자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역량을 점수화하여 장기요양보험 등의 등급 판정 기준으로 사용된다. 이 지표들은 환자가 스스로 식사를 하거나 이동할 수 있는지 등의 구체적인 기능 수행 여부를 묻는다. 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역량의 개념이 불가능한 이상(ideal)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책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QALY를 전면 폐기하지 않더라도, QALY 산출식에 질병의 중증도나 환자의 초기 역량 상태를 반영하는 가중치를 부여하는 ‘형평성 가중 QALY(Equity-weighted QALY)’ 등의 변형 모델을 도입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기술적 대안이다.

절차적 정의: 다니엘스의 ‘공정한 과정’

둘째,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완벽한 지표의 부재가 역량 접근의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먼 다니엘스(Daniels, 2008)는 보건 의료 자원 배분에서 발생하는 합의 불가능한 도덕적 이견을 해결하기 위해 ‘결과의 정답’보다는 ‘절차의 공정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합당성에 대한 책무(Accountability for Reasonableness)’라는 개념을 통해, 자원 배분의 정당성은 완벽한 수치적 객관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에서 온다고 역설한다.

역량 지표가 다소 복잡하고 주관적일 수 있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그러나 다니엘스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완벽한 공식을 찾는 대신 다음의 4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심의 민주주의적 절차를 구축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첫째, 배분 결정의 근거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Publicity). 둘째, 그 근거는 공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Relevance). 단순히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왜 이 가치가 우선시되었는지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Revision and Appeals). 넷째, 이 조건들이 지켜지는지 규제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Enforcement).

다니엘스는 이러한 절차적 조건들이 충족될 때, 비로소 자원 배분의 결정이 단순한 권력의 행사나 다수결의 횡포가 아니라,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본다. 완벽한 정답이 부재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구성원들이 상대방을 ‘합리적인 주체’로 존중하며 납득할 수 있는 이유(Reasonableness)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비록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을지라도, 그 결정이 공정하고 투명한 숙의 과정을 통해 도출되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적 틀 안에서 어떤 환자군에게 가중치를 줄 것인지, 어떤 역량을 우선시할 것인지를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공정한 공론장에서 결정한다면, 지표의 기술적 불완전성은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보완될 수 있다. 결국, 측정의 어려움을 이유로 역량 접근을 거부하고 기계적인 효율성 지표인 QALY에 안주하는 것은 ‘가로등 효과(Streetlight Effect)’의 오류와 같다. 열쇠를 잃어버린 곳(윤리적 정당성)은 어두운 곳(역량)인데, 단지 빛이 밝다는 이유로 엉뚱한 가로등 밑(효율성/QALY)에서 열쇠를 찾는 격이다. 다니엘스의 절차적 정의론은 우리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는 등불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역량 기반 접근은 단순한 철학적 구호를 넘어 실현 가능한 정책 프레임워크로 진화할 수 있다.

결론

본고는 공공 의료 자원 배분의 기준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절대적 효용 지표(QALY)에 독점적으로 의존할 때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역량(Capability) 중심의 접근법을 정책에 통합해야 함을 논증하였다. 본론에서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롤스와 센의 정의론을 통해 확인했듯이, 개인의 이질성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진정한 공정성은 자원의 기계적 분배가 아닌, 개인이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평등, 즉 역량 평등에 기초해야 한다. 둘째, 현재의 주류 지표인 QALY는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취약 계층의 낮은 자원-역량 전환율을 페널티로 작용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치료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하는 윤리적 실패를 범하고 있다. 셋째, 역량 기반 지표의 도입은 기존의 기능 평가 도구들의 활용과 다니엘스가 제시한 공정한 의사 결정 절차를 통해 실현 가능성(feasibility)의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본 연구가 QALY의 전면적인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예산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효율성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효율성이 공정성을 압도해서는 안 되며, 두 가치는 상호 견제와 균형 속에 존재해야 한다. 본고의 핵심 주장은 효율성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되며, QALY가 놓치고 있는 형평성과 역량의 가치를 보정하는 상호보완적 지표가 정책 결정의 핵심 변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NICE(국립보건임상연구원)가 생애 말기 치료제나 희귀 질환 치료제에 대해 일반적인 QALY 임계값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이미 이러한 역량 중심적 고려가 현실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공공 의료 정책의 패러다임은 ‘비용 대비 효과’라는 1차원적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가치 기반 의료(Value-Based Healthcare)’로 나아가야 하며, 그 가치의 중심에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실질적 삶의 가능성(Capability)을 보장하는 윤리적 책무가 놓여야 한다. 향후의 과제는 이러한 역량 지표를 한국의 의료 현실과 건강보험 체계에 맞게 구체화하고, 이를 사회적 합의 과정(Fair Process)에 안착시키는 정교한 거버넌스를 설계하는 데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개선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생명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에 대한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외국 문헌

Nord, E. (1999). Cost-value analysis in health care : Making sense out of QALYs. Cambridge University Press.

Rawls, J. (1971). A theory of justic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Sen, A. (1999). Development as freedom. Oxford University Press.

Daniels, N. (2008). Just health: Meeting health needs fairly.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