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1-26 박고은

복지의 인칭적 성격과 귀속 장치로서의 욕구: 성공 이론을 중심으로

I. 서론

인간의 삶을 무엇이 가치 있게 만드는가라는 ‘복지(well-being)’의 문제는 단순한 형이상학적 유희를 넘어, 현대 사회의 법적·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실천적 배경이 된다. 복지는 한 개인의 삶이 그 당사자에게 얼마나 잘 가고 있는가(how well a person’s life goes for them)에 관한 물음이며, 이는 현대 국가의 복지 정책 수립이나 의료 현장에서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자산의 사후적 처분을 결정하는 유산 상속, 그리고 고인의 명예 보호와 관련된 분쟁 등 주체가 더 이상 자신의 의사를 실시간으로 표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욱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한다. 욕구 충족 이론의 해석에 따라 복지를 주체의 실시간적 인식 범위 내로 한정할 경우, 주체의 사망 이후 발생하는 목적의 달성이나 서사적 완성은 그의 복지적 이익과 결속될 수 없다. 반대로 복지가 주체의 주관적 의사와 무관한 객관적 가치의 실현에만 달린 것이라면, 주체의 생전 의사와 반하는 결정조차 ‘그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복지가 주체의 ‘선호’에 뿌리를 두는지, 혹은 주체와 무관한 ‘객관적 가치’에 기반하는지에 대한 선행적인 규명은 현대 사회의 규범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Crisp 2021).

이러한 난제에 대하여 선행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대립해 왔다. 첫째는 개인의 욕구가 충족되는 상태를 복지의 본질로 간주하는 욕구 충족 이론(Desire-fulfillment Theory)이다. 이 관점은 주체가 원하는 바가 실현되는 것 자체가 그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강력한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욕구 충족 이론이 복지의 범위를 엄밀히 규정하지 않을 경우, 주체의 삶과 내용적·인과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외부적 사건까지 주체의 복지로 산입하는 불합리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완쾌를 바랐고 이후 그와 영원히 연락이 두절되었을 때, 그의 실제 완쾌가 나의 인지나 삶의 경로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복지’를 증진시킨다고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Parfit 1984, p. 494). 이는 복지가 마땅히 지녀야 할 ‘인칭적 귀속성’을 상실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는 스캔런(T. M. Scanlon)과 같은 객관적 가치 이론가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복지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가 주체의 주관적 욕구가 아닌, 지식, 우정, 성취와 같은 객관적 목록들에 있다고 본다. 특히 스캔런은 욕구란 단지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는 심리적 표지에 불과하며, 복지의 설명적 근거는 오직 가치 실현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치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Scanlon 1998, p. 113). 그러나 이러한 가치 우선주의는 주체의 승인이나 헌신이 결여된 가치를 외부에서 강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지의 소외’ 문제를 야기한다. 즉, 기존 논의들은 복지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하여 개념적 엄밀성을 잃거나, 혹은 욕구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복지의 인칭적 성격을 훼손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본고의 핵심 목표는 복지가 단순히 모든 욕구의 충족이나 비인칭적 가치의 실현일 수 없으며, 반드시 주체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성공의 기준’으로서 설정한 욕구의 충족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데릭 파핏(Derek Parfit)의 ‘성공 이론(Success Theory)’을 핵심적인 논변 전략으로 사용할 것이다. 파핏은 복지의 범위를 ‘주체의 삶에 관한 욕구(desires about one’s own life)’로 한정함으로써 무제한적 욕구 이론의 오류를 극복하는 동시에, 욕구가 가치를 개인의 삶에 결속시키는 ‘필수적 귀속 장치’임을 증명하여 스캔런의 반론을 무력화한다 (Parfit 1984, p. 494). 본고는 이러한 파핏의 논변을 정교화하여, 욕구가 배제된 가치 실현은 비인칭적인 업적 평가에 불과하며, 욕구가 가치를 특정 개인의 삶에 뿌리내리게 하는 논리적 근거임을 입증할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한 본론의 전개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1] 무제한적 욕구 충족 이론이 주체의 삶과 무관한 사건을 복지로 오인함으로써 발생하는 논리적 불합리를 파핏의 ‘기차 안의 낯선 사람’ 사고실험을 통해 상세히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 복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주체의 삶이라는 경계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이어야 한다는 ‘인칭적 제한’의 필요성을 전제할 것이다. 다음으로, [2] 복지의 본질을 주체의 생애 전체에 걸친 목적이나 정체성과 결부된 ‘성공’의 실현으로 규정하는 성공 이론의 구조를 구체화할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복지가 왜 주체의 가치 기준에 엄격히 귀속되어야 하는지를 논증하며, 주체가 스스로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파악하고 그 안에서 설정한 지향점들이 달성될 때 비로소 복지가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또한, [3] 성공 이론에 대한 유력한 반론으로서, ‘선택적 가치’ 개념을 통해 욕구의 설명적 필요성을 부정하려는 스캔런의 시도를 고찰할 것이다. 스캔런은 우리가 성취를 추구하는 이유가 성취 그 자체의 가치 때문이지 욕구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복지 담론에서 욕구의 위치를 축소시킨다 (Scanlon 1998, p. 126). 여기서 독자는 욕구를 가치를 가리키는 부수적 지표로 간주하는 모델이 지닌 강력한 설득력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4] 객관적 가치 실현만으로는 복지의 본질적 속성인 ‘인칭성(person-affecting character)’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스캔런에 대한 최종적인 재반박을 전개할 것이다. 특히 사후 욕구 사례를 통해, 예술적 성취나 명예 같은 객관적 가치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그 주체에게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생전에 가졌던 욕구가 가치를 그의 삶에 결속시키는 유일한 기제로 작동해야 함을 증명함으로써 논의를 갈무리할 것이다.

본론

무제한적 욕구 충족 이론의 한계: ‘기차 안의 낯선 사람’을 통한 귀류

학술적으로 복지(well-being)는 쾌락주의, 욕구 충족설, 객관적 목록설이라는 주요 세 이론의 대립 속에서도, 그것이 반드시 ‘해당 주체에게 고유하게 귀속되는 이익(good-for-someone)’이어야 한다는 인칭적 성격(person-affecting character)에는 보편적으로 합의한다. 이는 복지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미론적 조건이다. 복지에 관한 가장 직관적인 정의는 주체가 원하는 바가 실현되는 상태, 즉 욕구 충족이다. 그리핀(James Griffin) 등을 중심으로 한 이 주관주의적 접근은 개인의 선호 실현을 복지의 핵심으로 간주해 왔으며, 특히 경제학적 효용 개념과 자유주의적 정책 논의에서 암묵적인 전제로 기능해 왔다 (Griffin 1986). 이 접근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면, 주체의 선호에 어떠한 외부적·객관적 가치 판단도 개입시키지 않는 무제한적 욕구 충족 이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 충족 이론이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선호의 실현을 복지로 승인할 때, 이론은 개념적 자기모순에 직면한다.

어떤 사건이 복지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주체의 삶의 질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사례를 상정해 보자. 나는 우연히 만난 타인이 질병에서 회복되기를 바랐고, 이후 그와 영원히 연락이 두절되었다. 만약 그가 실제로 완쾌되었다면 나의 욕구는 충족된 것이지만, 나는 이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하며 나의 삶에는 어떠한 인과적 변화도 발생하지 않는다. 무제한적 욕구 충족 이론은 이 상황에서 나의 복지가 증진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나 주체의 삶과 어떠한 내용적·인과적 연결고리도 갖지 않는 외부의 사실이 주체의 복지를 구성한다는 주장은 복지의 인칭적 귀속성이라는 개념적 정의와 충돌한다 (Parfit 1984, p. 494). 따라서 욕구 충족을 복지와 동일시하려는 시도는 도리어 복지의 개념적 토대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 지점에서 선호의 범위를 주체의 삶 내부로 한정하려는 논리적 요청이 발생한다.

복지의 범위 획정과 성공 이론으로의 이행

위 사고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복지가 주체의 인격적 경계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인격적 경계 내부’란 단순히 주체가 경험하거나 인지할 수 있는 시공간적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주체가 자신의 정체성과 생애의 지향점으로 수용하고 승인한 영역, 즉 주체의 삶을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파악할 때 그 서사 안에서 의미를 갖는 목적물의 범위를 뜻한다. 파핏은 이러한 맥락에서 무제한적 이론의 대안으로 성공 이론(Success Theory)을 제시한다.

성공 이론은 쾌락주의이론과 단순 욕구 충족 이론과 달리, 복지를 주체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적 성취로 파악한다. 파핏에 따르면, 인간의 복지는 순간적인 만족의 나열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가졌던 근본적인 목적들이 실현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Parfit 1984, p. 494). 예를 들어 자녀의 행복이나 학문적 성과에 대한 욕구는 ‘기차 안의 낯선 사람’에 대한 일시적 선호와 달리, 주체의 인격적 경계 내부에 깊이 통합된 서사적 목적물이다. 따라서 주체가 그 결과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사망하더라도, 그의 생애 전체가 지향했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그의 삶은 더 성공적인 것이 된다. 이처럼 성공 이론은 복지를 ‘주체의 삶에 관한(about one’s life)’ 욕구로 한정함으로써 복지의 주체 귀속성을 회복하고, 인간의 삶을 파편화된 경험의 집합이 아닌 통합된 목적의 실현 과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스캔런의 설명적 경제성과 가치 우선주의

성공 이론이 복지의 범위를 생애의 목적 달성으로 한정하는 순간, 토마스 스캔런(T. M. Scanlon)은 설명의 경제성을 근거로 욕구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스캔런은 복지의 원인을 주관적 욕구가 아닌 객관적 가치에서 찾는 ‘가치 우선주의’를 제안한다. 여기서 그는 선택적 가치(Choice-dependence)라는 정교한 개념을 도입하여 주관주의의 통찰을 자신의 이론으로 흡수한다.

스캔런에 따르면, 우정이나 학문적 성취 같은 요소가 특정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유는 그것이 욕구의 대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활동 자체가 객관적으로 가치 있기 때문이다 (Scanlon 1998, p. 113). 다만 그 가치가 특정 개인의 삶에서 특별히 중요해지는 이유는, 주체가 그 가치를 자신의 삶의 양식으로 선택하고 헌신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욕구는 복지를 구성하거나 결정하는 원인이 아니라, 주체가 어떤 객관적 가치에 헌신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심리적 표지(sign)에 불과하다. 즉, 스캔런은 “무엇이 내게 중요한가”는 주체의 선택에 달려 있을지라도, “그것이 왜 내게 좋은가”는 결국 객관적 가치의 실현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한다 (Scanlon 1998, p. 126). 이 반론은 성공 이론을 가치 이론의 불필요한 우회로로 간주하며, 욕구라는 개념 없이도 복지의 개별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재반박: 복지의 인칭적 성격과 귀속 장치로서의 욕구

스캔런의 반론은 논리적 간결함을 제공하나, 복지의 필연적 속성인 인칭적 귀속을 설명하지 못한다. 복지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비인칭적인 좋은 상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격체에게 귀속되는 이익이어야 한다. 객관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이 귀속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사후 욕구(posthumous desire) 사례를 통해 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 평생 무명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이 사후에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열망했던 예술가 A를 가정해 보자. 그가 사망한 지 수십 년 후에 비로소 그의 작품이 세계적인 예술적 성취로 인정받아 객관적 가치가 실현되었다면, 이 사건은 ‘누구의 복지’를 증진시킨 것인가? 스캔런의 모델에 따르면, 예술적 성취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기에 세계의 일반적 상태가 좋아진 것일 뿐, 죽은 예술가 A의 복지와는 무관한 비인칭적 업적 평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귀속의 문제는 현생의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를 상정해 보자. 만약 그가 음악적 성취 자체를 증오하며 오직 부모의 강요에 의해 연주하고 있다면, 그의 뛰어난 공연이라는 객관적 가치의 실현이 과연 ‘그의 복지’를 증진시킨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가치 우선주의자들은 그가 그 가치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겠지만, 결국 그 선택의 실질적 내용은 주체의 주관적 욕구와 승인이다.

파핏의 관점에서 예술가 A나 피아니스트의 사례는 명확한 결론에 도달한다. 가치의 객관적 수준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성취가 무관심하거나 거부하는 타인이 아닌 ‘해당 주체의 복지’가 되는 이유는 그가 가졌던 욕구가 해당 가치를 그의 삶으로 연결하고 귀속시키는 필수적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Darwall 2002, p. 24). 즉, 주체가 설정한 서사적 목적이 달성될 때에만 그 가치는 비인칭적 영역을 넘어 주체의 생애를 더 나은 상태로 변화시킨다.

결론적으로 욕구는 가치의 부수적 표식이 아니라, 비인칭적 가치를 특정 개인의 구체적인 성공으로 전환하는 필수적인 기제다. 주체의 욕구가 배제된 스캔런의 모델은 복지를 개인의 삶과 유리된 비인칭적 업적 평가로 전락시킨다. 따라서 복지는 주체의 생애 성공과 관련된 욕구의 충족에 달려 있으며, 욕구는 가치가 개인의 삶에 뿌리내리게 하는 귀속의 근거로서 그 설명적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

결론

본고는 복지의 인칭적 귀속성을 근거로, 복지가 주체의 생애 성공에 관한 욕구 충족에 달려 있음을 논증하였다. 본론에서 전개한 논의를 재구성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1] 무제한적 욕구 충족 이론이 주체의 삶과 인과적·내용적 관련성이 없는 외부적 사건을 복지에 산입함으로써 발생하는 개념적 자기모순을 지적하였다. 이를 통해 복지란 반드시 주체에게 고유하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인칭적 성격(person-affecting character)이 복지의 최소 의미론적 전제임을 확립하였다.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2] 복지의 범위를 주체의 정체성 및 생애 지향점과 결부된 서사적 목적으로 한정하는 파핏의 성공 이론을 옹호하였다. 특히 성공 이론에 대한 유력한 반론으로서 욕구를 가치의 부수적 표지로 간주하는 [3] 스캔런의 가치 우선주의를 검토하였으나, 사후 욕구 사례를 통해 객관적 가치 실현이라는 비인칭적 사실만으로는 그것이 ‘누구의 복지’인지를 규정할 수 없음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4] 욕구가 가치를 개인의 삶에 결속시키는 필수적 귀속 장치임을 입증함으로써, 성공 이론이 복지 담론의 난제를 해결할 최선의 대안임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 윤리학의 복지 담론 내에서 중요한 학술적 함의를 갖는다. 기존의 연구들이 복지를 단순히 심리적 만족으로 환원하는 주관주의적 접근이나, 주체를 배제한 채 가치 목록만을 나열하는 객관주의적 접근 사이에서 평행선을 달렸다면, 본고의 결론은 양자의 통찰을 정교하게 결합한다. 즉, 객관적 가치라는 ‘재료’가 주체의 욕구라는 ‘장치’를 통과할 때 비로소 특정 개인의 복지로 성립한다는 혼합적 정당화(Hybrid Justification)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Darwall 2002, p. 28). 이는 복지가 비인칭적 가치 실현으로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주체를 자신의 복지 판단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 본고는 복지를 단순히 ‘좋은 일들의 집합’이 아닌 ‘주체의 생애 서사 내에서의 성공’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복지의 인칭적 성격을 논리적으로 엄밀하게 복원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MacIntyre 2007, p. 215).

본 논증의 결과는 학문적 영역을 넘어 실천적 영역에서도 기여를 할 수 있다. 특히 주체의 생전 의사와 목적이 사후에도 복지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논거를 마련해 준다. 이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윤리적 쟁점들, 예를 들어 의료 현장에서의 연명의료 결정이나 유산의 처분, 혹은 사후 명예훼손에 관한 법적 판단에서 주체의 과거 욕구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왜 현재적 복지로서 존중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된다. 주체가 설정한 생애의 성공 기준은 그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그의 삶을 평가하는 유효한 척도가 되며, 우리는 성공 이론을 통해 ‘그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인칭적 가치 판단이 아닌 주체의 서사적 일관성에 기반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Parfit 1984, p. 495).

마지막으로 본고의 결론이 적용되는 영역을 명확히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하고자 한다. 본 논증은 복지의 ‘개념적 성립 요건’과 ‘귀속 기제’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이를 구체적인 정책 현장에서 어떤 가치가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실질적 가치 목록의 우선순위’ 문제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본고는 복지가 욕구 충족을 통해 귀속된다는 형식을 논증한 것이지, 개별 가치들의 구체적 위계를 정립한 것이 아니다. 결국 복지란 주체가 자신의 삶이라는 서사의 저자로서 설정한 목적지에 가닿는 성공의 과정이다. 본고가 파편화된 경험과 비인칭적 가치들 사이에서 소외된 ‘주체의 자리’를 되찾고, 인간의 복지를 그의 삶 전체에 걸친 성취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Crisp, Roger. “Well-Being.” I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all 2021 Edition), edited by Edward N. Zalta. Stanford University, 2021.

Darwall, Stephen. Welfare and Rational Car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Griffin, James. Well-Being: Its Meaning, Measurement, and Moral Importance. Oxford: Clarendon Press, 1986.

Korsgaard, Christine M. The Sources of Normativ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MacIntyre, Alasdair. After Virtue: A Study in Moral Theory. 3rd ed.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7.

Parfit, Derek. Reasons and Persons. Oxford: Clarendon Press, 1984.

Scanlon, Thomas M. What We Owe to Each Othe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