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1-26 박고은
제목: 선호 충족의 한계와 복지의 규범적 재정립
서론
오랫동안 경제학과 사회철학에서 복지는 개인의 선호 충족으로 정의되어 왔다. 사람들의 욕구와 선택은 그들의 삶을 가장 잘 반영하며, 개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곧 개인에게 “좋은 것”을 파악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인지심리학의 발전은 이러한 믿음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하고 있다. 실제 인간의 선호는 안정적이지 않으며, 정보 부족·편향·조작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호 충족을 복지의 기준으로 삼아도 되는가? 더 근본적으로, “원한다”는 심리 상태가 “개인에게 좋다”는 규범적 판단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복지와 선호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핵심 쟁점은 다음의 물음이다. 복지란 단순히 개인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인가, 아니면 정당한 이유를 통해 가치 있다고 판단될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것인가? 만약 후자가 타당하다면, 모든 선호가 복지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선호의 질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곧바로 서든(Sugden)과 같은 선호주의자들로부터 반론을 유발한다. 그들은 선호가 형성과정에 결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주관적 현실이자 자율성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외부에서 “문제적 선호”를 배제하는 것은 온정주의적 침해라고 비판한다 (Sugden 2004, p. 102; Sugden 2018, pp. 29–31).
본고는 이러한 반론들을 검토하면서도, 복지는 단순한 선호 충족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정당한 이유(reason)에 기반한 가치 실현이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복지가 이유 기반(value-based) 개념임을 개념적으로 논증한다. 둘째, 인간의 실제 선호가 왜곡·편향·조작·무지에 의해 구성된다는 광범위한 실증적 증거를 검토하여 선호가 복지의 신뢰 가능한 지표가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셋째,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선호”는 복지 판단의 중요한 간접적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논증한다. 넷째, 모든 선호를 존중해야 한다는 서든의 반론을 분석하고, 자율성과 선호를 구별해야 한다는 규범적 논거**를 통해 반박한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함으로써 본고는 복지 판단은 선호가 아니라 이유에 의해 정당화된 가치 실현을 중심에 두어야 하며, 정책적·규범적 판단에서는 선호의 질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본론
복지의 규범적 기준: 정당한 이유(reason)에 기반한 가치 실현
복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점은, 복지가 단순히 “무엇을 원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것이 한 개인에게 좋다(good for a person)”는 진술은 단순히 그 사람이 그것을 원한다(wants)는 심리 상태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상태나 행위가 정당한 이유(reason)에 의해 가치 있다고 판단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포함한다 (Scanlon 1998, p. 95; Raz 1999, pp. 3–5).
일상적인 욕구와 선호는 충동적·우연적·비숙고적으로 형성될 수 있으며, 이런 욕구의 충족이 곧바로 복지의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간적으로 강렬한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가 장기적으로 그 사람의 삶을 해치거나, 정보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내린 선택이 오히려 손해를 가져오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복지는 이러한 우발적 욕구의 만족과는 구별되는, 이유에 의해 정당화 가능한 가치의 실현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따라서 복지를 단순한 선호 충족과 동일시하는 입장은 개념적으로도, 규범적으로도 불충분하다.
실제 선호의 왜곡과 비합리성
그러나 복지를 이유 기반 가치 실현으로 정의한다고 해서 실제 정책 차원에서 바로 그 “가치 실현”을 관찰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경제학과 인지심리학의 광범위한 실증 연구들은 인간의 실제 선호가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이유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 심리적 편향·외부 조작·정보 부족에 의해 쉽게 왜곡된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Tversky & Kahneman(1981)은 동일한 선택도 제시 방식에 따라 선호가 달라지는 프레이밍 효과를 입증하여, 선호가 가치 판단의 안정적 지표가 될 수 없음을 드러냈다 (Tversky & Kahneman 1981, p. 453). Susser, Roessler & Nissenbaum(2019)은 소셜미디어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선택 구조를 조작하며 선호 형성 자체를 유도·변형할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실제 선호가 자율적 이유에 기반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Susser, Roessler & Nissenbaum 2019, pp. 8–12). 또한 Thaler & Sunstein(2008), Loewenstein et al.(2012)의 연구는 건강·식습관·재정 등 핵심 영역에서 정보 부족과 오정보가 “무지 기반 선호”를 형성하여 장기 복지를 심각하게 해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aler & Sunstein 2008, pp. 19–44; Loewenstein et al. 2012, pp. 25–31). 이러한 무지 기반·조작 기반·편향 기반 선호는 충족되더라도 개인에게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Hausman & McPherson(2006)이 지적하듯 복지 개념이 요구하는 ‘정당한 이유(reason)에 기반한 가치 실현’을 반영하지 못한다 (Hausman & McPherson 2006, pp. 71–74).
이러한 실증 연구들을 종합하면, 인간의 실제 선호는 항상 정당한 이유에 기반하지 않으며, 종종 왜곡·편향·조작·비정보적으로 형성된다는 전제는 충분한 경험적 뒷받침을 가진다. 따라서 “모든 선호의 충족이 곧 복지 향상이다”라는 명제는 경험적으로도, 규범적으로도 유지될 수 없다.
선호의 규범적 지표화 필요성
그렇다면 복지를 이유 기반 가치 실현으로 정의하고, 실제 선호의 결함을 인정한다면, 복지 이론에서 선호 개념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복지 이론과 복지 정책은 이유 기반 가치 실현이라는 규범적 기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실제 정책 설계와 집행 과정에서 어떤 지표를 통해 그 기준에 접근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복지는 본질적으로 개인에게 “좋은 것”에 대한 개념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가치인지, 그리고 그 가치가 실현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필연적으로 주체의 관점을 필요로 한다. 정부나 외부 전문가가 개인의 내적 가치, 목표, 삶의 계획을 완전히 파악해 “이것이 네게 좋은 것이다”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강압적 온정주의의 위험을 내포한다. 이때 자율적이고 충분히 숙고된 선호는 개인이 스스로 설정한 가치 실현의 기준을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고려할 때, 개인의 선호는 그 사람의 가치·목표·정보가 응축된 결과로서 기능한다. 정부는 개인의 사적인 정보에 완전히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외부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는 대신, 질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선호를 복지 판단의 간접적 지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때 핵심은 선호를 그대로 복지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호가 복지 판단에 적합한가를 선별하는 규범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질적 선호와 복지 판단
이유에 기반한 가치 실현 여부는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복지 판단은 비교적 가시적인 지표인 선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진다. 다만 여기서 사용되는 것은 모든 선호가 아니라, 정보 충분성, 숙고, 외부조작 부재, 시간적 일관성 등의 질적 요건을 충족한 선호이다 (Hausman 2012, pp. 46–49). 다시 말해, 복지 정책은 “선호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호가 정당한 이유에 의해 지지될 수 있는지를 묻고, 그에 따라 ‘질적 선호’와 ‘문제적 선호’를 구별해야 한다.
정리하면, 복지는 모든 선호의 충족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에 의해 정당화 가능한 질적 선호의 충족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실제 선호가 왜곡·조작·무지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은, 선호 개념을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선호를 복지 지표로 사용할 때 선호의 질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선호의 지위 존중 전제와 복지 판단에 대한 반론
복지를 선호의 충족으로 환원할 수 없고, 선호의 질에 대한 규범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곧바로 선호의 지위 존중(preference-respecting view)이라는 강력한 반론을 유발한다. 특히 서든(Sugden)을 중심으로 한 선호주의자들은 개인이 어떤 선호를 가지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하며, 그 선호의 충족이 복지의 궁극적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이 반론의 핵심 전제는 다음과 같다. 개인의 선호는 그 형성과정의 결함과 무관하게 모두 자율성의 표현이며, 따라서 외부에서 특정 선호를 ‘문제적 선호’로 규정하고 복지 판단에서 배제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온정주의적 개입이라는 것이다 (Sugden 2004, p. 102; Sugden 2018, pp. 29–31).
서든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직관에서 출발한다. 선호가 조작·중독·무지 등의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이 실제로 경험하는 주관적 현실이며, 그 개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Sugden 2004, p. 102; Sugden 2018, pp. 29–31). 그렇다면 외부 전문가나 정책입안자가 “그 선호는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며 배제하는 것은 개인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권을 침해하는 권위주의적 행위처럼 보일 수 있다.
자율성과 선호의 분리 필요성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중요한 개념적 혼동을 포함한다. 존중해야 하는 자율성이라는 가치와, 자율성의 산출물로 나타나는 선호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자율성은 개인이 아무 제약 없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아니라, 충분한 정보, 숙고, 비강압, 시간적 일관성 등에 기반하여 스스로의 삶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 선호는 이러한 자율성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형성될 수 있으며, 중독이나 강압, 프레이밍, 무지에 의해 쉽게 왜곡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 보면, 조작된 선호나 중독적 선호는 자율성의 발현이 아니라 자율성의 결핍이다. 이런 선호를 복지 판단에서 무조건적으로 존중하는 것은 자율성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율성의 훼손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대로, 선호의 질을 평가하고 문제적 선호를 복지 판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온정주의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고 정당한 이유에 기반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할 수 있도록 자율성의 조건을 회복시키는 조치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모든 선호는 존중받아야 하며, 선호의 질을 평가하는 것은 온정주의적 침해”라는 서든의 반론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선호의 질을 전혀 평가하지 않는 것이 자율성 상실과 복지 판단의 왜곡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복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선호의 질적 요건에 대한 규범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결론
본고는 복지를 단순한 선호 충족으로 이해하는 전통적 관점을 검토하고, 복지는 정당한 이유(reason)에 기반한 가치 실현이라는 점을 논증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개인에게 좋은 것”이라는 복지 개념이 단순한 욕구 충족과 구별되는 규범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보였다. 이어 행동경제학·인지심리학의 실증 연구들을 분석함으로써 실제 선호는 프레이밍, 참조점 의존성, 선호 역전, 중독, 광고·사회적 규범에 의한 조작, 무지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선호의 불안정성과 비합리성은 선호 충족을 복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복지 판단에서 선호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치는 외부자가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개인의 관점과 삶의 설계에 접근하기 위해 선호는 중요한 간접 지표로 남는다. 다만 여기서 사용되는 것은 모든 선호가 아니라, 정보 충분성·숙고·비강압·일관성 등의 질적 요건을 충족한 “정당화 가능한 선호”이다. 복지 판단의 핵심은 선호의 존재가 아니라 선호의 정당성, 즉 그 선호가 이유 기반(value-based) 가치 실현을 반영하는가라는 규범적 기준이다.
마지막으로, 선호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모든 선호는 자율성의 표현이므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반론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반론은 자율성이라는 규범적 가치와 선호라는 심리적 산출물을 혼동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자율성은 비편향적·숙고적 선택 능력인데 반해, 조작되거나 비합리적으로 형성된 선호는 자율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자율성의 결핍이다. 따라서 문제적 선호를 복지 판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온정주의가 아니라 자율성의 보호이며,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재구성하고 정당한 이유에 기반한 가치를 추구하도록 돕는 비온정주의적 조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종합하면, 본고는 복지는 선호 충족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에 기반한 가치 실현이며, 실제 정책적 복지 판단은 선호의 질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필수적으로 수반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는 복지 정책이 개인의 자율성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함의를 갖는다. 정책은 단순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유에 따라 삶의 가치를 구성할 능력을 보호·강화하는 형태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향후 복지 경제학, 행동정책학, 자율성 이론 전반에서 보다 정교한 정책 설계와 규범적 분석의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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