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3-17 백지성
제목: 낭만적 사랑은 사회적 구성물인가 - 정동의 발생 수준과 사회적 인식 수준을 구분하는 단계적 논증
서론
“낭만적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관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직결된 문제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특정 사람에게만 주의가 쏠리고, 함께 있고 싶어지며, 관계가 위협받는 순간 불안·질투가 솟고, 이별 뒤에는 신체적 통증에 가까운 고통이 뒤따르는 경험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개인의 삶을 조직하는 감정이면서, 영화·SNS·데이트 앱 같은 문화 산업을 통해 상징 자본과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핵심 장치이기도 하다. 사랑은 한편으로는 매우 사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랄 만큼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사회가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무엇을 말하든 인간 내부에서 먼저 발생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다루기 위해 이 글은 두 개념을 먼저 분명히 한다. 여기서 ‘낭만적 사랑’은 결혼 제도나 로맨스 서사 자체를 뜻하기보다, 관계의 핵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정서적 패턴 (특정 대상에 대한 결속과 헌신, 배제 신호에 대한 민감성(질투), 상실 시의 고통)을 가리킨다. 또한 ‘정동’은 일상적 의미의 ‘감정 표현(말, 의례, 규범에 따라 달라지는 방식)’과 구별되는, 내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정서적 발생(끌림·불안·고통 같은 경험 그 자체)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기존 논의는 크게 두 흐름으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낭만적 사랑을 근대의 제도·자본주의·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구성물로 이해한다. 이 관점은 ‘첫눈에 반함’, ‘운명적 사랑’, ‘영혼의 단짝’ 같은 서사가 어떻게 규범이 되고, 개인이 그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Illouz는 사랑이 현대 사회에서 문화·소비의 장치와 강하게 결합해 특정한 기대와 감정 규범을 생산한다고 분석한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사랑의 핵심 경험이 인간의 진화사 속에서 발달한 애착·보상 메커니즘의 산물이며, 사회적 언어와 규범은 그 경험을 해석·조율할 뿐이라고 본다. Fisher는 사랑을 단순한 문화적 환상이 아니라, 결속과 동기화를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시스템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흐름을 대표한다.
문제는 두 입장이 종종 서로 다른 층위를 같은 자리에서 다룬다는 데서 생긴다. 사회구성론은 감정의 표현 방식이 문화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매우 잘 설명한다. 그러나 그 설명이 그대로 정동의 발생 자체도 사회가 만든다는 주장으로 넘어가면, ‘표현’과 ‘발생’이 섞일 위험이 있다. 반대로 생물학적 설명도 사회가 감정 경험을 분류하고 서사화하는 방식, 예컨대 어떤 관계를 ‘사랑’으로 인정하고 어떤 감정을 정당한 것으로 승인하는지를 충분히 다루지 않으면, 사랑이 실제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지는지 놓칠 수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경계면을 겨냥한다. 즉, 사회적 요소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곧바로 정동의 발생 기원을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따져본다.
따라서 이 글은 다음 논제를 옹호한다.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결속, 헌신, 질투, 상실의 고통)은 사회적 구성물이 아니라, 인간의 애착·보상 시스템이 특정 대상을 향해 활성화될 때 나타나는 내면적 정서이다.
이 주장은 “사회가 사랑을 어떻게 말하는가”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사랑의 의미와 표현을 강하게 조직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 조직이 정동의 발생 조건 자체를 창조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위 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글은 서로 다른 층위의 근거를 순차적으로 검토한다. 첫째, 비교 민족지 연구를 통해 사랑의 핵심 정동이 상징체계와 제도가 상이한 사회들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된다는 점을 확인하여, 최소 수준의 보편성(보편성의 하한)을 제시한다. 둘째, 애착 이론을 통해 성인기의 결속·헌신·질투·이별 고통이 영아기 애착 시스템의 확장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 논의함으로써, 그 정동이 사회적 언어 이전의 발달적·기능적 토대를 가진다는 점을 밝힌다. 셋째, 뇌영상 연구를 바탕으로 사랑의 몰입과 상실 고통이 보상 회로 및 관련 신경 기제의 선택적 활성으로 표지된다는 점을 분석하며, 사랑의 핵심 정동이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 메커니즘을 가진 발생 사건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사회구성론이 제기할 수 있는 “정동은 있어도 ‘사랑’이라는 통합은 사회가 만든다”는 반론을 검토하고, 그것이 인식 수준과 발생 수준을 혼동하는 방식으로 논제를 약화시키는지 재반박한다.
이 글은 정동의 발생과 사회적 의미화를 구분한 뒤 각 층위가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지 정밀하게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할 때 낭만적 사랑이 사회적 장치로 기능한다는 사실과 그 핵심 정동이 인간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설명은 서로를 배제하기보다 더 정확한 방식으로 함께 놓일 수 있다.
본론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복된다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인 결속 헌신 질투 상실의 고통이 사회적 구성물인지 판단하려면, 먼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판단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 기준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구성론의 강한 형태는 사랑이 단지 문화적으로 해석되는 감정이 아니라, 언어 제도 규범과 같은 상징체계가 개입해야만 발생 가능한 정서라고 본다(Illouz, 1997). 이 정의를 따른다면 한 가지 귀결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특정 사회에서 사랑을 설명하는 언어가 부재하거나 연애가 제도적으로 억압된다면, 그 사회에서는 사랑의 핵심 정동 자체도 약화되거나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감정의 발생 조건을 만든다면, 사회적 조건이 사라진 곳에서는 감정 역시 함께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의 발생이 생물학적 기원을 갖는지 검토할 때 요구되는 보편성은 모든 사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강한 의미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상징체계와 규범이 크게 다른 사회들에서도 특정 정동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는 최소 수준의 보편성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변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정동의 발생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해당 정동을 사회가 발명했다는 주장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이 글에서 말하는 보편성은 바로 이러한 하한선을 가리킨다.
사회구성론이 설득력을 갖는 지점은 사랑의 표현 방식이 사회마다 극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사랑이 개인의 선택과 열정으로 강조되는 반면, 다른 사회에서는 가족 질서나 공동체의 안정 속에 배치된다. 사랑을 승인하거나 금지하는 규범 역시 크게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감정이 어떻게 말해지고 해석되는지를 설명할 뿐, 감정이 왜 발생하는지까지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표현의 다양성이 곧 발생 메커니즘의 사회적 구성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회는 사람들이 사랑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지를 조직할 수는 있지만, 그 조직력이 정동의 발생 자체를 창조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이 점은 연애가 제도적으로 억압되거나 사랑을 둘러싼 서사가 빈약한 사회에서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만약 사랑의 핵심 정동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면, 사랑이 금기시되는 환경에서는 해당 정동 역시 희미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관찰은 그렇지 않다. 비교민족지 연구는 상징체계가 서로 다른 사회들에서도 특정 대상에게 강하게 끌리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결속, 배제 가능성에 대한 민감한 반응, 상실 앞에서의 심리적 고통이 반복적으로 보고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찰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연구가 Jankowiak과 Fischer의 비교민족지 분석이다. 이 연구는 다양한 사회를 검토한 결과, 낭만적 사랑에 해당하는 정동이 다수의 문화권에서 확인된다는 점을 제시한다(Jankowiak and Fischer, 1992). 이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많은 사회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결정적인 지점은 사랑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연애가 금기시되는 사회에서도 개인들이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관계의 상실 앞에서 강한 고통을 경험한다는 보고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규범이 감정의 표현을 억압할 수는 있어도, 감정의 발생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사랑을 가리키는 언어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도 유사한 정동 패턴이 관찰된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사고가 편향되고, 관계 유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상실 시 심리적 신체적 고통이 나타나는 현상은 사랑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도 보고된다. 이는 감정이 이름 붙여진 이후에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 붙임 이전의 층위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는 이러한 정동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틀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 발생 조건을 새롭게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문화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언어와 서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동을 이해하고 정당화하며 조절하는 방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같은 결속과 상실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회에서는 그것이 운명이나 헌신으로 해석되고, 다른 사회에서는 책임이나 실패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감정의 발생 이후에 개입하는 문제다. 감정이 이미 발생한 뒤 그것을 어떤 이야기로 묶을 것인가는 사회의 몫이지만, 그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지 여부까지 사회가 결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지점에서 정동이라는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이라는 표현이 이미 언어화되고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경험을 포함하는 데 비해, 정동은 보다 원초적인 층위의 반응을 포착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주의 집중, 강한 접근 욕구, 배제 가능성에 대한 불안, 상실 시의 신체적 붕괴 반응은 사회적 명명 이전에도 발생할 수 있는 정서적 사건이다. 비교민족지 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동의 묶음이 상징체계의 차이를 넘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Jankowiak and Fischer, 1992).
이러한 관찰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정동의 표현과 의미화는 사회적으로 조직될 수 있지만, 정동의 발생은 사회가 마음대로 발명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을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하려는 주장은, 최소한 민족지적 관찰이 제시하는 이 보편성의 하한 앞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사랑의 서사와 규범은 사회적 산물일 수 있으나, 결속과 상실의 고통이라는 정동 자체는 사회적 차이를 넘어 지속된다.
이제 남는 질문은 분명해진다. 사회적 변이 아래에서도 유지되는 이 정동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정동이 단지 문화적 서사에 의해 묶인 것이 아니라, 보다 안정적인 내부 메커니즘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 논의에서는 성인기의 결속과 헌신, 질투와 이별 고통이 영아기의 애착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검토함으로써, 낭만적 사랑의 정동이 사회 이전의 층위에서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결속과 상실 정동은 발달 과정에서 형성된 정서 체계의 연장이다
성인기의 낭만적 사랑에서 관찰되는 결속 헌신 질투 상실의 고통은 사회적 서사 속에서 새롭게 조립된 감정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애착 시스템이 특정 상황에 맞게 작동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관점은 사랑의 정동을 사회 이전의 정서 구조로 파악하려는 논의를 한 단계 더 구체화한다. 특히 애착 이론은 성인기 연애 관계에서 나타나는 정동 패턴이 영아기의 애착 반응과 구조적으로 연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애착 시스템은 원래 영아가 생존을 위해 주 양육자에게 접근하고 결속을 유지하도록 진화한 정서 조절 장치다(Bowlby, 1969). 이 시스템은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접근 행동 회피 반응 분리 불안 재결합 시 안정 회복 등 일련의 정동과 행동을 하나의 묶음으로 조직한다. 중요한 점은 이 시스템이 언어 능력이나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기 이전부터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즉 애착은 사회적 의미화 이전의 수준에서 이미 정동을 구조화한다.
이러한 애착 시스템은 아동기에서 종료되지 않는다. Hazan과 Shaver는 성인기의 연애 관계가 영아기의 애착 관계와 기능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제시했다(Hazan and Shaver, 1987). 성인 역시 특정 대상을 안전기지로 삼고, 그 대상과의 분리 가능성에 정서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관계가 위협받을 때 불안이나 질투를 경험한다. 이러한 반응은 연애라는 제도나 사랑이라는 언어를 학습했기 때문에 새롭게 생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애착 시스템이 성인기의 짝 결속 상황으로 전이된 결과로 이해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성인기의 결속과 헌신은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선택 이전의 문제다. 특정 파트너에게 정서적 자원이 집중되고 관계 유지를 위해 행동이 조직되는 과정은, 협동 양육과 장기적 관계 유지라는 진화적 압력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헌신은 단지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한 결과가 아니라, 애착 대상과의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서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작동이다. 따라서 헌신을 전적으로 문화적 가치나 규범의 산물로 환원하는 설명은, 그 발생 동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질투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구성론에서는 질투를 소유 개념이나 배타적 관계 규범이 만들어낸 감정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애착 이론의 관점에서 질투는 애착 대상 상실 가능성에 대한 경보 반응에 가깝다. 경쟁자의 출현이나 관계 위협 신호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회적 서사에 의해 학습된 감정이라기보다, 애착 시스템이 결속 붕괴 위험을 감지할 때 활성화되는 정동이다. 이 점은 질투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매우 유사한 신체적 정서적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과도 부합한다.
이별이나 상실에서 나타나는 고통 역시 사회적 의미 부여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애착 대상과의 분리는 영아기부터 강한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며, 이는 성인기에도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된다. 수면 장애 식욕 저하 강박적 재접촉 욕구 신체적 통증 감각은 상징적 의미를 학습하지 않아도 발생한다(Panksepp, 1998). 이러한 반응은 사랑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정당화되었는지와 무관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정동의 발생이 사회적 승인이나 담론에 선행함을 시사한다.
경험적 연구 역시 이러한 구조적 연속성을 뒷받침한다. 애착 유형과 연애 관계에서 나타나는 정동 반응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반복적으로 보고되어 왔다. 안정 애착을 가진 성인은 관계 위협 상황에서도 상대적 정서 안정성을 유지하는 반면, 불안 애착 성인은 강한 결속 욕구와 질투 상실 불안을 경험한다. 회피 애착 성인은 친밀성 회피와 정서 억제 경향을 보인다(Hazan and Shaver, 1987; Mikulincer and Shaver, 2007). 이러한 패턴은 문화적 서사나 연애 규범의 차이보다 애착 유형에 의해 더 잘 예측된다.
이 점은 낭만적 사랑의 정동이 사회가 제공한 이야기 구조에 의해 생성된 것이 아니라, 개인 내부의 정서 시스템에 의해 조율된다는 주장을 강화한다. 사회마다 연애의 의미와 규범은 다르지만, 애착 불안이나 회피가 높은 개인이 관계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은 거의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이는 정동의 발생이 사회적 담론보다는 발달 과정에서 형성된 정서 메커니즘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성인기의 낭만적 사랑에서 관찰되는 결속 헌신 질투 상실의 고통은, 사회가 감정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 애착 시스템이라는 단일한 정서 장치가 특정 대상에게 선택적으로 작동하면서 나타나는 정동의 묶음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사회는 이 정동에 이름을 붙이고 서사를 제공하며 규범적으로 조율할 수 있지만, 그 정동이 발생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애착 기반의 설명은 앞서 살펴본 민족지적 보편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회적 상징체계가 크게 다른 환경에서도 유사한 정동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 발생 메커니즘이 사회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이 신경학적 차원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살펴볼 때, 낭만적 사랑의 정동이 보다 구체적인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다는 점이 한층 분명해진다. 다음 논의에서는 이러한 애착 기반 정동이 뇌의 보상 회로에서 어떻게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몰입과 상실 고통은 특정 대상을 향한 보상 회로의 선택적 활성에서 발생한다
낭만적 사랑이 단순한 사회적 서사가 아니라 내면적 정서로 경험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이 감정이 인간의 보상 시스템을 깊이 관여시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집중이 쏠리고, 사고가 편향되며, 관계 유지에 과도한 정서적 에너지가 투입되는 현상은 사회가 부여한 의미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한 정동의 강도와 지속성은 뇌의 동기 및 보상 회로가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활성화될 때 나타나는 특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보상 회로는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자극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강화하도록 설계된 신경 시스템이다. 복측피개영역과 측좌핵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회로는 도파민 분비를 통해 특정 대상에 대한 주의 집중과 행동 강화를 유도한다. 중요한 점은 이 시스템이 단순한 쾌락 반응을 넘어, 무엇이 중요한 대상인지를 신경학적으로 구분하고 그 대상에 자원을 집중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능은 음식이나 위험 회피뿐 아니라 짝 결속 상황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낭만적 사랑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몰입은 바로 이 선택적 동기화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 사고가 반복적으로 그 대상에 수렴하고, 일상적 판단보다 관계 유지가 우선시되며, 감정 기복이 커지는 현상은 보상 회로의 지속적 활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는 사회적 규범을 학습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반응이라기보다, 뇌가 해당 대상을 생존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분류했을 때 나타나는 자동적 반응에 가깝다.
이러한 해석은 신경영상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Aron 등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거나 그 사람을 떠올리는 상황에서 복측피개영역과 측좌핵이 강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Aron et al., 2005). 이 활성 패턴은 금전적 보상이나 약물 자극에서 나타나는 반응과 유사하며, 강한 동기 부여와 행동 강화를 동반한다. 다시 말해 낭만적 사랑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보상 시스템이 재조직된 상태로 나타난다.
상실의 고통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계의 단절이나 거절을 상정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고통은 단순한 사회적 실패 감정과 다르다. 여러 연구에서 실연이나 거절을 떠올릴 때 전측 대상피질과 섬엽이 활성화되며, 이는 신체적 통증을 처리하는 회로와 중첩된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Xu et al., 2011). 이러한 반응은 문화적 서사나 의미 부여가 없어도 발생하는 신경 반응이며, 보상 회로가 더 이상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결손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투와 배제 민감성 또한 보상 회로의 선택적 작동과 연결된다.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경쟁자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신호는, 단순한 사회적 모욕이 아니라 보상 자원의 상실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때 편도체와 측좌핵이 함께 반응하며, 위협 신호에 대한 정서적 각성이 증가한다. 이러한 반응은 사회가 질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무관하게 나타나며, 특정 대상에게 결속된 보상 시스템이 위협받을 때 발생하는 정동으로 이해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신경 활성 패턴이 모든 사람이나 모든 대상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상 회로의 강한 활성은 짝 결속이 형성된 특정 대상에게서만 관찰된다. 이는 낭만적 사랑의 정동이 사회적으로 부여된 지위나 역할 때문이 아니라, 뇌가 선택한 대상에 대해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동기 시스템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사회는 이 경험을 설명하는 언어와 서사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어떤 대상이 보상 회로의 중심이 될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신경생물학적 근거는 앞선 민족지적 관찰과 애착 이론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다양한 사회에서 반복되는 사랑의 정동은, 사회적 규범이 동일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뇌 구조가 유사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애착 시스템이 특정 대상을 안전기지로 설정하고, 보상 회로가 그 대상을 중심으로 동기를 조직할 때,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은 사회적 의미화 이전의 수준에서 이미 발생한다.
결국 낭만적 사랑의 몰입 집착 상실 고통은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의 집합이 아니라, 보상 회로와 애착 시스템이 특정 대상을 향해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나타나는 정서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이 관점은 사랑을 순수한 본능으로 환원하지도, 전적으로 사회적 구성물로 치환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랑의 정동이 발생하는 최소 조건이 사회 바깥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구분이야말로, 다음 논의에서 사회구성론이 범하는 수준 혼동의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핵심 전제가 된다.
사회구성론적 반론과 수준 혼동의 문제
앞선 논의에 대해 사회구성론은 비교적 일관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낭만적 사랑에서 관찰되는 결속 질투 상실의 고통 같은 정동이 존재한다는 점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정동들이 하나의 통합된 감정으로 인식되고 조직되는 방식은 사회적 상징체계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개별 정서 반응들은 생물학적으로 가능할지라도 그것이 낭만적 사랑이라는 하나의 감정 구조로 묶이는 과정은 언어와 규범 문화적 서사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이 반론은 일정 부분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사회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특정한 방식으로 호출하고 의미화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사랑이 개인의 선택으로 강조되고, 어떤 사회에서는 가족이나 공동체 질서 속에 배치된다. 연애의 정당성 결속의 조건 상실의 의미는 문화마다 다르며, 이러한 차이는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해석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구성론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러나 이 반론이 설득력을 유지하려면, 감정의 인식과 감정의 발생이라는 두 수준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문제는 사회구성론이 이 두 수준을 구분하지 않은 채, 감정이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해석된다는 사실로부터 감정의 발생 자체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결론으로 도약한다는 점이다. 이는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부담이 큰 가정이다.
정동이 사회적으로 이름 붙여지고 해석된다는 사실은, 그 정동이 사회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아기의 애착 반응이 그 대표적 사례다. 영아는 사랑이라는 개념이나 사회적 규범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특정 대상에게 강하게 결속되고 분리 상황에서 고통을 경험한다(Bowlby, 1969). 이때 나타나는 정동은 사회적 범주화 이전의 수준에서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사회는 이러한 정동에 언어를 부여하지만, 정동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성인기의 낭만적 사랑에서도 반복된다. 앞서 살펴본 애착 시스템과 보상 회로의 작동은, 결속 질투 상실 고통이 하나의 묶음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발생 수준에서 설명한다. 특정 대상이 애착 대상이자 보상 대상이 될 때, 접근 유지 배제 민감성 상실 고통은 분리된 감정으로 흩어지지 않고 함께 발현된다. 이는 사회가 여러 정동을 사후적으로 조합해 만든 결과라기보다, 하나의 정서 시스템이 특정 대상에게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나타나는 패턴에 가깝다.
사회구성론적 반론은 흔히 다음과 같은 가정을 전제한다. 개별 정동은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이 사랑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묶이는 것은 사회적 범주 덕분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정동들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함께 발생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통합이 전적으로 사회적 범주에 의존한다면, 사랑이라는 개념이 부재하거나 연애가 금기인 사회에서는 정동의 결합 역시 불안정해야 한다. 하지만 민족지 연구는 이러한 예측을 지지하지 않는다. 사랑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특정 대상 중심의 결속 질투 상실 고통은 함께 나타난다(Jankowiak and Fischer, 1992).
이러한 관찰은 통합의 방향을 거꾸로 제시한다. 사회가 정동을 묶어 사랑이라는 범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함께 발생하는 정동의 묶음을 사회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규범화한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즉 통합은 발생 단계에서 이루어지고, 사회는 그 결과를 해석한다. 이때 사회적 담론은 감정의 표현과 정당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만,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수준 혼동의 문제는 여기서 분명해진다. 사회구성론은 감정의 해석 수준에서 유효한 설명력을 가지지만, 그 설명을 정동의 발생 수준까지 확장하는 순간 경험적 근거와 충돌한다. 감정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말해지는지와 감정이 왜 발생하는지는 동일한 질문이 아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을 경우, 사회는 감정을 해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동시에 감정을 창조하는 원천으로 과도하게 확대된다.
결국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을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하는 주장은, 감정의 사회적 의미화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감정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애착 시스템과 보상 회로에 근거한 논의는, 사랑의 정동이 사회적 규범 이전의 수준에서 이미 구조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는 이 정동을 조직하고 이야기하며 규율할 수 있지만, 그 발생 조건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사회구성론적 반론은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공하면서도, 정동 발생 수준을 설명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결론
본고는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은 사회적 구성물이 아니라, 인간의 애착·보상 시스템이 특정 대상을 향해 활성화될 때 발생하는 내면적 정서”라는 논제를 옹호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세 층위의 근거를 검토했다. 먼저 민족지 연구를 통해 결속·헌신·질투·상실의 고통과 같은 사랑의 핵심 정동이 다양한 상징체계와 연애 제도를 가진 사회들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된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사랑 정동이 갖는 최소한의 보편성, 즉 ‘보편성의 하한’을 제시했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분명하지 않거나 연애가 공식적으로 금기시된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특정 대상에게 선택적으로 끌리고, 결속을 유지하려 하며, 상실 앞에서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사회가 감정의 표현과 해석을 조직할 수는 있어도, 정동의 발생 자체를 발명하지는 못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둘째, 애착 이론을 통해 영아기의 애착 시스템과 성인기의 낭만적 사랑에서 나타나는 정동 구조가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살펴보았다. 애착 시스템은 원래 양육자에게 접근하고 결속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생존 장치이지만, 성인기의 짝 결속 맥락으로 전이되면서 결속·헌신·질투·상실 고통과 같은 정동을 하나의 패턴으로 조직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이러한 정동들이 사회가 임의로 조립해 넣은 문화적 산물이라기보다, 애착 시스템이라는 단일한 메커니즘이 상황에 맞게 재작동한 결과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은 사회적 서사 이전의 층위에서 이미 구조화되어 있으며, 사회는 이 구조에 사후적으로 이름과 의미를 부여한다.
셋째, fMRI를 비롯한 뇌영상 연구를 통해 낭만적 사랑이 뇌의 보상 회로에서 어떻게 표지되는지를 검토했다. 사랑하는 대상을 떠올릴 때 VTA와 측좌핵이 선택적으로 활성화되어 몰입과 유지 행동을 강화하고, 상실이나 거절을 상정할 때 anterior insula와 ACC가 신체적 고통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은, 사랑의 집착과 상실 고통이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경 메커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러한 활성 패턴이 모든 대상이 아니라 짝 결속이 형성된 특정 대상에게만 나타난다는 점은, 낭만적 사랑의 정동이 사회가 부여한 지위나 상징적 장치의 산물이 아니라, 뇌의 동기·애착 시스템이 선택한 대상에 대한 반응이라는 해석을 지지한다.
물론 사회구성론이 지적하듯,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언어로 호출되고 어떤 서사와 제도 속에서 인정되는지는 분명 사회적 문제이다. 본고는 이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구성론이 정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감정의 ‘표현과 의미화’이지, 감정의 ‘발생 메커니즘’ 전체는 아니다. 정동이 이미 애착·보상 시스템의 수준에서 구조화되어 있음에도, 사회가 그것을 특정 방식으로 분류하고 규범화한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정동 자체를 사회적 산물로 간주하는 것은 인식 수준과 발생 수준을 혼동하는 논리적 비약이다. 본론에서 검토한 민족지·발달심리·신경생물학적 논의는 바로 이 수준 혼동이 감당하지 못하는 실증적 부담을 드러낸다.
이러한 구분은 낭만적 사랑을 둘러싼 사회적 판단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사랑의 고통을 전적으로 사회적 담론의 오류로 환원할 경우, 집착·질투·상실의 고통은 제거되어야 할 비합리적 잔여로 취급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사랑을 순수한 본능으로만 이해할 경우,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 구조나 규범의 문제는 간과된 채 모든 부담이 개인의 정서적 운명으로 귀속될 수 있다. 본고의 논의는 이 두 극단을 피하면서, 사랑의 핵심 정동은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발생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로 살아지고 평가되는가는 여전히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라는 중층적 이해를 제안한다.
결국 “낭만적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은 사회와 개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낭만적 사랑의 핵심 정동은 인간 내면의 애착과 보상 시스템에서 발생하고, 사회는 그 정동이 해석되고 조직되는 장으로 작동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낭만적 사랑은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도, 순수한 본능도 아닌, 내면의 정동과 사회적 의미화가 교차하는 경계에서 성립하는 감정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해당없음)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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