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13-18 나윤영


제목: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예술 작품은 허용되어야 하는가?


I. 서론

2021년, 유벅 작가가 살아있는 금붕어를 링거 안에 넣은 설치작품 ‘Fish’를 전시하여 동물학대 논란이 있었다. 이는 물론 표현의 자유로서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한 갤러리 대표가 “예술이라고 금붕어를 죽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등 윤리적이지 못한 작품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생명윤리적으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행위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두고, 예술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 중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II. 본론

1. 생명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있다.

예술과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은 예술계에서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데이미언 허스트 작가의 작품들이다. 허스트의 작품 중 수천마리의 나비를 방에 가두고 나비의 생과 사를 보여주는 ‘사랑의 안과 밖’이라는 작품이나 앞서 언급한 유벅 작가의 ‘Fish’의 경우, 생명을 단순한 도구로 보는 인간 중심주의로 볼 수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하는 관점에서는 예술을 이유로 동물을 학대하거나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생명을 수단화하는 예술은 생명 그 자체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예술은 메시지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이는 예술보단 폭력에 가깝다.


2. 관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생명존중의 결여는 관객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마르코의 금붕어 작품. 관객에게 충격. 관객이 이런 작품에 노출되다보면 생명의 가치에 무감각해지겠지? 하면 안되겠지?

생명을 파괴하거나 고통을 가하는 과정을 포함한 예술작품은 관객에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둔화시키는 위험이 있다. 반복적으로 그러한 작품을 접하다 보면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생명을 수단화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학습하게 된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자연 등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 약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생명존중이라는 윤리적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불어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작품은 관객에게 불쾌감, 죄책감, 정서적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마르코 에바레스티의 ‘헬레네’ 같은 경우 살아있는 금붕어가 들어있는 믹서기의 버튼을 관객이 누르면 믹서기가 작동하는 형태로 많은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 또는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에게는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다. 예술이 대중에게 충격을 전달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충격이 생명의 고통을 이용한 것이라면, 이는 감동이나 사유를 넘어 정서적 학대에 가까운 부정적 체험이 되어버릴 수 있다.


3. 반론: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작품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아야 한다.

살아있는 금붕어를 활용한 작품은 충격을 주는 동시에, 관람객으로 하여금 ‘생명에 대한 무감각’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런 방식의 예술은 단순히 생명을 파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이중성과 도덕적 둔감함을 드러내려는 예술적 장치일 수 있다. 예술가에게 윤리적 기준을 강제하는 것은 검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예술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윤리라는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정된 윤리를 기준 삼아 예술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일부 학자는 예술작품의 윤리적 결함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때로는 미학적 경험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4. 재반박: 예술조차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침해해선 안된다.

모든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 예술이 충격적일 수 있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표현 방식이 타자의 고통이나 생명의 희생을 기반으로 할 경우, 그 정당성은 크게 약화된다. 예술의 자유 역시 기본적인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충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굳이 생명을 희생시키는 방식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충분히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도발 대신 공감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이 오히려 더 강력할 수 있다. 결국, 예술과 윤리 사이에는 긴장 관계가 존재하지만,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만큼은 예술로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윤리적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다.


III. 결론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예술작품은 예술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생명을 해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은 관객에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둔화시키고, 정서적 불안과 도덕적 무감각을 초래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사람들에게 감동과 통찰을 주는 매개체인 만큼, 윤리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적 가치도 윤리적 가치를 우선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문헌 (APA 7판 스타일)

김서진. (2022). 링거 속 죽어간 금붕어, 예술가들이 상기해야 할 예술과 윤리. 핸드메이커. https://www.handmk.com/news/articleView.html?idxno=12911 안진국. (2023). 생명윤리 넘어선 작업으로 충격 주려는 예술가.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418500159 Johnson, L. M. (2021). Art, ethics and the human‑animal relationship. Springer Nature Switzerland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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