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3-07 백가현
제목: 판단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에서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어디까지 대신 선택할 수 있는가
서론
임상 의료현장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다양한 윤리적 가치와 이익이 충돌하는 복잡한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환자의 치료적 이익(beneficience)과 환자의 자율성(autonomy)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성을 행사하는 주체와 치료적 이익의 귀속 대상은 모두 환자 본인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주로 환자의 결정권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로 환원된다. 그러나 미성년자, 특히 판단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 상황은 선택의 주체와 그 선택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익의 대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앞선 상황과는 윤리적 차이가 있다.
영유아에게는 의료 행위의 의미나, 그로 인해 초래될 장단기적 결과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 능력 및 판단력이 부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으로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은 부모의 판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부모는 아이의 복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책임지는 대리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부모의 판단이 언제나 자녀의 이익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부모 역시 불완전한 정보와 개인적 신념, 경제적 제약, 돌봄 부담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특히 영유아의 경우 아직 신체적·정신적 발달이 불완전한 상태에기에 부모의 의료적 결정이 아이의 생에 전반에 장기적이고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생식능력, 정체성, 인지능력 등에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료결정의 경우, 부모가 어디까지 대신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부모의 자율성을 보다 존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Diekema(2004)는 ‘해악 기준(Harm Principle)’을 제시하며 아이에게 ‘심각하고 즉각적인 해악’이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의 결정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준은 의료 권위주의를 방지하고 부모의 양육 책임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반면 아동의 치료적 이익을 보다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최선의 이익 기준(Best Interests Standart; BIS)’를 제시하며 아동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모든 의료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은 부모의 판단이 아동의 이익과 반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며 아동을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실제 영유아 의료 의사결정의 상황에서 이 두 기준은 서로 충돌하며 난제를 낳는다. 해악 기준은 개입의 문턱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함으로써, 즉각적인 해악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아동의 삶의 여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결정을 허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반대로 최선의 이익 기준(BIS)은 최선이라는 명목으로 의료진 개인의 가치 판단과 이상적 삶의 기준을 개입시킬 위험을 내포하며, 실제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현실적 문제와 다양한 가치 선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부모의 자유로운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본고는 Feingberg(1980, 1986)가 제시한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right to an open future)1와 C-권리 개념의 관점을 소아 의료 결정 맥락에 적용하여, 부모의 대리결정 권한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Buchanan&Brock의 대리결정 이론(Buchanan & Brock, 1989), Ross의 제한된 부모 자율성(Constrained Parental Autonomy; CPA) 모델(Ross, 2018), 그리고 Diekema의 해악 원칙(Harm Principle) 논의(Diekema, 2004)를 함께 검토하면서 부모 권환의 허용 범위를 점차 좁혀나가려 한다.
본고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판단 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에서 부모는 아동의 생명과 기본적 신체·정신 기능을 보존하기 위한 치료에 한해서만 정당한 대리결정 권한을 가지며, 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삶의 선택지(정체성, 생식능력, 인지능력)를 비가역적으로 폐쇄하는 의료 결정은 정당하게 대신 선택할 수 없다.
이를 보이기 위해, (1) 장차 자율적 주체가 될 존재로서 아동이 ‘열린 미래’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보이고, (2) 일부 영유아 의료결정이 실제로 이 열린 미래를 비가역적2으로 폐쇄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3) 이어서 부모가 이러한 권리를 예외적으로 박탈할 특수한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점을 Buchanon & Brock과 Feinberg의 구도를 통해 밝힌 뒤, (4) 정당한 대리결정의 범위가 미래 자율성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생명·기본 기능 보존)으로 제한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5) 마지막으로 Ross, Diekema가 논의하는 부모 재량과 양육 부담의 고려가 이 원칙을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6) “부모는 아이의 삶을 적극적으로 형성할 권리가 있다는 예상 반론에 답하면서 논의를 마무리할 것이다.
본론
1. 아동의 ‘열린 미래’ 권리와 C-권리
먼저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아동이 미래에 성인, 즉 자율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영유아는 현재로서는 스스로 의료 관련 의사결정을 내릴 판단능력과 이성이 부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삶의 계획을 세우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로 성장 가능하다. Feingberg는 이러한 점을 반영해 아동의 권리 중 일부를 C-권리(claim-rights in trust)로 규정한다. C-권리란 아동이 지금 당장 행사할 능력은 없으나 성인이 되었을 때 행사할 수 있도록 신탁(in trust)의 형태로 보존되어야 하는 권리이다(Feinberg, 1980, 1986).
이때 중요한 점은 어떤 선택의 경우 성인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동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생식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수술, 특정 신체기관의 비필수적 제거, 정체성을 강하게 규정하는 비가역적 의료 개입 등, 그 결과가 매우 장기적이고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 본인이 스스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때 결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일 이런 선택을 타인이 미리 대신하여 내린다면, 아동은 아직 행사해 보지도 못하고 미래의 자율적 선택 가능성을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right to an open future)- 장차 자율적 주체가 될 아동은 자신이 선택해야 할 중대한 삶의 선택지가 미리 닫히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Feingberg, 1980 & 1986). 요컨대 장차 자율적 주체가 될 존재로서 아동은 자신의 중대한 미래 선택지가 지금 비가역적으로 폐쇄되지 않을 ‘열린 미래’ 권리를 가진다.
2. 영유아 의료결정 중 일부는 ‘열린 미래’를 비가역적으로 폐쇄한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유아 의료결정 중 일부는 이러한 열린 미래를 직접적으로 제한한다. 단순히 감염을 치료하거나 생명을 유지하는 처치와 달리, 어떤 의료행위는 아동의 정체성, 생식능력, 인지능력, 장기적인 신체 기능에 비가역적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컨대, 의학적으로 필수적이지 않은 생식기 제거 수술, 전적으로 미용적인 목적의 영구적 신체 변형, 특정 정체성 경로를 사실상 고정하는 치료, 특정 능력의 발달 가능성을 차단하는 치료 등은 일단 시행되면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의료 개입은 아동이 미래에 어떤 몸을 가지게 될지, 어떤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관한 선택지를 사전에 제거한다. 이 시점의 개입이 단지 현재의 고통을 중리거나 편의를 증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차 가능한 인생 계획을 비틀거나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유아 의료결정 중 일부는, 아동의 ‘열린 미래’ 권리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는 단순히 현재 아동의 복지 수준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미래 자율성의 발휘 가능성을 외부에서 건드리는 개입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부모에게는 ‘열린 미래’의 가능성을 박탈할 수 있는 특수한 권한이 없다.
부모에게 이러한 중대한 미래 선택지를 대신 폐쇄할 특수한 정당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Buchanon & Brock에 따르면 대리결정자(이 상황에서는 의료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부모)의 정당성이 단순히 ‘지금 가까운 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가 자율적 주체였더라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어떻게 주장했을지를 존중하려는 점에서 온다(Buchanon & Brock, 1989). 곧, 대리인은 자신의 가치관을 대신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사자의 가상적 자율성(substituted judgment)을 최대한 구현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를 Feingberg의 C-권리 개념과 결합해보면, 부모는 아동을 소유하여 본인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존재가 아닌, 장차 아동이 행사할 권리를 보존하고 보호하도록 맡겨진 수탁자(trustee)에 가깝다(Feinberg, 1980, 1986). 아동의 보호자(또는 청지기)로서 부모의 법적·도덕적 지위는 아동의 권리를 대체하거나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책임적 역할, 혹은 예비해야 할 준비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래 자율성에 관한 권리는 부모 자신의 종교·문화·생활방식과 분리된 아동의 고유한 권리이다. Buchanon & Brock의 주장에 따르면 대리인은 자신의 가치 체계가 아니라 피대상자의 가상적 자율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Buchanon & Brock, 1989), 만약 부모가 ‘나는 이 아이가 나중에 어떠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구상만으로 아동의 중대한 미래 선택지를 비가역적으로 폐쇄한다면 이는 곧 수탁자의 역할을 넘어선 월권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부모에게는 수탁자로서 아동의 ‘열린 미래’ 권리를 예외적으로 빼앗을 정당성이 없으며 부모의 대리결정 권한은 어디까지나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4. 대리결정의 정당화 조건: ‘미래의 자율성을 위한 최소한’으로 한정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부모의 대리결정이 정당화되는가? Feinberg(1986)와 Buchanon & Brock(1989)의 논의를 참조하면, 대리결정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권리와 이익을 최소한으로 침해하면서도 최대한으로 보호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최소 침해의 원칙을 도입할 수 있다.
영유아가 장차 자율성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기본적 신체·정신의 기능의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Ross의 “기본적 필요와 주요 재화(basic needs and primary goods)”가 아동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oss, 2018). 생명이 유지되고 최소한의 기능이 보존되어야만, 이후 스스로 삶의 계획을 세우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Diekema(2004)의 경우 심각하고 예방 가능한 해악의 유의미한 위험(immediate severe harm)이 있을 때에만 개입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며 해악의 원칙(Harm Principle)을 설정하고 전통적인 최선의 이익 기준(Best Interest Standard; BIS)을 비판한다. 즉 개입의 문턱을 설정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면, 본고의 관심사는 ‘부모의 대리결정 자체가 정당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있다.
따라서 부모가 정당하게 대신 결정할 수 있는 의료 행위는, 아동의 미래 자율성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영역으로 제한된다. 그 너머, 즉 아동이 스스로 선택해야 할 중대한 삶의 선택지를 비가역적으로 폐쇄하는 결정은 정당한 대리결정의 범위를 넘어선다.
5. 부모의 양육부담, 제한된 부모 자율성, ‘열린 미래’ 권리의 한계선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모의 정서적·경제적·사회적 부담이 의료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Ross의 제한된 부모 자율성(Constrained Parental Autonomy; CPA) 모델에서도 만일 아동의 기본적 필요와 주요 재화가 보장된다면 그 밖의 영역에서는 부모가 가족의 가치와 여건을 고려해 ‘충분히 좋은(good enough)’ 결정을 내릴 재량권을 인정한다(Ross 2018).
이러한 논의는 실제 임상 상황에서 부모의 복지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문제는, 이 재량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이다. 만일 부모가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아동의 중대한 미래 선택지를 비가역적으로 폐쇄하는 결정까지 허용하게 된다면, 아동의 권리는 부모의 편의에 따라 조건부로 인정되는 권리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는 ‘해악이 아닌 범위에서의 재량’을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까지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Feingberg에 따르면 C-권리는 ‘나중에 행사될 권리’이기에 단기적 양육 부담을 이유로 지금 박탈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Feingberg, 1980, 1986). 아동의 권리는 타인의 부담 정도에 따라 소멸되거나 축소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의 양육 부담과 가족의 사정은 어떤 치료를 언제, 어느 강도로 시행할지와 같은 구체적 뱡식에 관여하는 요소일 수는 있으나 아동의 열린 미래 권리를 침해하는 수준의의료결정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CPA가 허용하는 재량의 범위도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결정까지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
6. 예상 반론: “부모는 아이의 삶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형성할 권리를 가진다”에 대한 답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부모는 단지 아이를 ‘살려 두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문화·가치관에 따라 아이의 삶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형성할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미래의 중대한 선택지를 일부 폐쇄하는 것도 부모의 양육권 범위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이 반론은 Ross의 CPA, 그리고 “해악의 원칙” 논의에 기대어 나올 수 있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이의 기본적 필요와 주요 재화가 충족되고, 심각한 해악의 위험이 없으며, 의료 개입이 최소한 “완전히 부당한 선택”은 아니라면, 부모에게 넓은 선택의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차이를 하나 짚어야 한다. 바로 “형성(formation)”과 “폐쇄(closure)”의 차이이다.
형성은, 다양한 길이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에서 부모가 특정 방향을 장려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 공동체에서 자라게 한다든지, 어떤 교육 스타일을 선택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나중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이 길에서 벗어날 기회가 현실적으로 남아 있다.
반면 폐쇄는, 어떤 길을 사실상 처음부터 없애 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잘 돌아갈 수 없는 수준의 영구적 수술을 통해 특정 정체성이나 능력을 결정해 버리는 경우, 나중에 아이가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말해도 실제로 가능한 선택지가 매우 제한된다.
Feinberg의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는 바로 이 차이를 포착한다(Feinberg 1980, 1986). 부모가 아이를 “형성”하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지만, 열린 미래를 불필요하게 폐쇄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CPA 역시 엄밀히 보면, 원래는 대안 가능성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상황을 전제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이론들만으로, 중대한 미래 선택지의 비가역적 폐쇄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부모의 양육권은 “아이를 형성할 권리”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열린 미래를 불필요하게 닫아버리는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처럼 넓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본고가 강조하는 열린 미래 권리가 걸려 있는 영역에서는, ‘해악 원칙’과 CPA 허용하는 재량보다 더 엄격한 제한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
본고는 Feinberg의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와 C-권리(Feinberg 1980, 1986), Buchanan & Brock의 대리결정 이론(Buchanan & Brock 1989), Ross의 제한된 부모 자율성(Ross 2018), 그리고 Diekema의 해악 원칙(Diekema 2004)의 관점을 바탕으로, 영유아 의료결정에서 부모의 대리결정 권한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논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유아는 장차 자율적 주체가 될 예정 보유자로서, 자신의 중대한 삶의 선택지가 미리 비가역적으로 닫히지 않을 ‘열린 미래’ 권리를 가진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일부 의료결정은, 생식능력·정체성·인지능력 등과 관련해서 이 열린 미래를 직접적으로 제한·폐쇄하는 성격을 가진다. Buchanan & Brock과 Feinberg에 따르면, 부모는 아동 권리의 수탁자(trustee)이지, 그 권리를 예외적으로 박탈할 수 있는 특수한 권한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정당한 대리결정의 범위는, 아동의 미래 자율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 조건(생명·기본 신체·정신 기능)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료 결정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부모의 양육 부담이나 CPA가 인정하는 재량은, 열린 미래 권리를 직접 침해하는 수준의 비가역적 의료결정까지 정당화할 수 없으며, 그 범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판단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에서 부모는, 아동의 생명과 기본적 신체·정신 기능을 보존하기 위한 치료에 대해서만 정당한 대리결정 권한을 가지며, 아동이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삶의 선택지(정체성, 생식능력, 인지능력 등)를 비가역적으로 폐쇄하는 의료 결정은 정당하게 대신 선택할 수 없다.
이 결론은 실제 소아 의료 현장에서, 어떤 치료를 부모가 정당하게 대신 결정할 수 있는지, 어떤 치료를 “아이가 나중에 직접 결정해야 할 문제”인지 구분하는 데 하나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해당 없음)
외국 문헌
Buchanan, A., & Brock, D. W. (1986). Deciding for Others. The Milbank Quarterly, 64(Suppl. 2), 17–94. https://doi.org/10.2307/3349960
Diekema, D. (2004). Parental refusals of medical treatment: the harm principle as threshold for state intervention. Theoretical Medicine and Bioethics, 25(4), 243–264. https://doi.org/10.1007/s11017-004-3146-6
Feinberg, J. (1980). The child’s right to an open future. In W. Aiken & H. LaFollette (Eds.), Whose child? Children’s rights, parental authority, and state power (pp. 124–153). Totowa, NJ: Rowman & Littlefield.
Feinberg, J. (1986). Harm to self.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Ross, L. F. (2018). Children, families, and health care decision-making (2nd ed.).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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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번역되는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는 Feinberg가 말하는 the child’s right to an open future를 옮긴 표현으로, 특정한 삶의 내용이나 행복 상태를 보장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장차 아이가 자율적 주체가 되었을 때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진로·관계·정체성 등이 불필요하게 사전 봉쇄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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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비가역적(irreversible)”이라는 표현은 순수하게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하다는 뜻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치료 시기를 놓쳤을 때 생물학적 기능 회복은 가능하더라도, 언어 발달·사회적 참여·교육 기회 등과 같이 미래 자율성의 실질적 행사를 뒷받침하는 능력과 기회가 구조적으로 회복되기 어렵다면, 이 역시 규범적 의미에서의 ‘비가역적 손해’로 보는 것이 본고의 전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