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3-06 김기연
능력주의의 부정의: 원리적 차원의 자기부정을 중심으로
서론
오늘날 한국에서 능력주의는 입시, 채용, 승진 등 거의 모든 공적 절차에서 공정성을 보증하는 언어로 사용된다. ‘능력대로 뽑는 것이 곧 공정하다’는 말은 제도적 판단을 정당화하는 가장 즉각적인 표현이 되었고, 불투명한 특혜나 혈연·지연을 비판할 때조차 “능력주의가 무너졌다”는 말이 쉽게 동원된다. 이런 점에서 능력주의는 단순한 분배 방식이 아니라, 무엇이 정당한 대우인지 판단하는 일상적인 직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능력주의가 논쟁적인 분배 원리임에도 여전히 사회 내 직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능력주의가 일상적 직관 판단에서 일정한 효용과 설득력을 지닌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만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자, 이 글이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이러한 능력주의 전체가 아니라, 정의로운 분배 원리로서의 능력주의가 정당한가라는 더 좁은 물음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이론적 평가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한편에서는 능력주의가 신분과 연줄 대신 개인의 성취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적어도 형식적 차원에서는 평등한 기회를 확장했다고 본다(Loury 1981, pp. 854–855). 다른 한편에서는 능력주의가 표면적으로는 자격에만 주목해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주어진 재능과 자원의 차이를 은폐한 채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Sachs‑Cobbe 2023, p.182). 그러나 이 상반된 평가는 주로 능력주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뿐, “능력에 따라 보상하는 것 자체가 정의로운가”라는 규범적 물음에 대해 충분한 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 글이 겨냥하는 빈칸은 바로 이 지점이다.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입장과 비판하는 입장 모두, 암묵적으로 능력과 공로, 책임의 관계에 대한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데 능력주의가 정의로운 분배 원리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능력과 노력이 정당한 보상 자격을 형성하는지, 그리고 그 기준이 정의의 더 일반적인 원칙과 양립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이 글은 능력주의를 “공로와 책임에 따른 분배”라는 자기 정의에 따라 평가하면서, 그 원리가 스스로 세운 기준을 충족하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글은 세 단계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능력주의가 공로를 정당한 분배 기준으로 삼기 위해 어떤 규범적 조건을 전제하는지, 곧 보상의 자격을 형성하는 능력과 노력이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지 분석한다. 둘째, 실제 사회에서 우리가 ‘능력’이라고 부르는 특성이 선천적 재능과 출생 환경 같은 비선택적 요인에 깊이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 주어, 능력주의가 요구하는 공로의 조건이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셋째, 정의로운 분배는 선택에는 민감하고 운에는 둔감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뒤, 이 기준에 비추어 능력주의가 선택과 운을 구분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스스로 위반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진다는 점을 논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정성을 말하는 유력한 언어로서의 능력주의가 정의로운 분배 원리로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결론을 제시할 것이다.
본론
능력주의의 규범적 전제: 선택과 책임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기회와 보상을 분배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본다. 이 규범적 직관은 능력이 교육적·사회경제적 성과의 주된 결정 요인이라는 이른바 meritocracy thesis에 의존한다(Marks 2010, pp. 1–3). 여기서 ‘능력’은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공부에 들인 시간이나 직무에 투입한 추가 노동처럼 행위자가 통제 가능한 선택적 행위의 축적, 곧 ‘공로’로 이해된다. Young은 능력(merit)을 “intelligence plus effort”의 결합으로 정의하면서, 전자를 타고난 능력(inborn endowment), 후자를 행위자의 통제 가능한 선택(controllable effort)으로 구분한다(Young 1958, pp. 18–20). 이러한 점은 능력주의가 “선택에 기반한 노력”을 도덕적 자격의 핵심 요소로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능력주의는 “능력은 주로 개인의 선택적 노력에서 기원하며, 그러한 능력 격차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보상의 근거가 된다”는 두 가지 전제를 동시에 요구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능력주의의 논리적 취약성이 발생한다. 실제 사회에서 ‘능력’이 형성되는 사실적 조건이 이러한 규범적 전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이 규범적 전제가 현실의 능력 형성 구조, 그리고 정의의 더 일반적인 원칙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능력 형성에 개입하는 운의 구조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바와 달리, 실제 사회에서 우리가 ‘능력’이라고 부르는 특성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선천적 인지능력·신체조건, 부모의 소득·학력, 가정의 문화 자본, 영유아기 교육 자원 등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비선택적’ 요인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선택적 요인의 누적이 학업 성취와 노동시장 성과를 강하게 예측한다는 점은 경제학·발달심리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Heckman 2006, p. 1–4). 이러한 사실은 능력 격차가 단지 “얼마나 노력했는가”의 함수가 아니라, 타고난 자질과 사회적 배경이라는 운(luck)의 분포와 구조적 개입에 깊이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롤즈는 자연적 재능과 사회적 배경의 분포를 도덕적으로 임의적임을 지적하고, 정의는 제도가 이 임의성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Rawls 1999, pp. 54–63). 이 관점에서 보면, 능력주의가 전제로 삼는 “능력은 주로 개인의 선택적 노력에서 기원한다”는 가설은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는 능력주의의 규범적 전제가 현실의 능력 형성 메커니즘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 주며, 다음 단락에서 제시할 규범적 기준(선택–운 구분)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선택–운 구분과 정의의 원칙
이제 문제는 “능력 형성이 사실상 선택적 요인과 비선택적 요인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고려했을때의 정의로운 분배 원리는 과연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이다. 일반적으로 책임론적 정의관은,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된 차이에 대해서는 민감해야 하지만,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운에서 기원한 차이를 보상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따른다. 즉 정의로운 분배는 선택에는 민감하고, 운에는 둔감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통제 불가능한 요소”란, 선천적 재능, 장애, 출생 가구의 계층·문화 자본 등과 같이 행위자가 합리적으로 예견·회피할 수 없으며, 대안적 선택을 통해 달리 할 수 없었던 요소를 가리킨다. 요컨대, 이 정의관은 사람들은 ‘자신이 한 선택’에는 책임을 질 수 있지만 ‘어떻게 태어났는가’에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널리 공유된 도덕 감각을 이론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자연적 ‘추첨’(social lottery)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도덕적 자격으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는 정의론적 전통과도 맞닿는다(Rawls 1999, pp. 72–75; Sachs-Cobbe 2023, pp. 5–7). 만약 이 원칙을 수용한다면, 정당한 보상은 오직 선택적 행위에서 기원한 차이에 기반해야 하며, 선택 불가능한 운에서 비롯된 격차는 분배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 규범적 기준은 곧 능력주의가 스스로 제시한 정당화 구조가 유지되기 위해 충족해야 할 핵심 조건을 형성한다. 즉, 선택–운 구분은 단순한 심리적 직관이 아니라, 책임 귀속과 사회적 추첨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정당화되어온 규범 원리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능력주의가 이 원리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분석하는 작업이 된다.
능력주의의 자기모순: 내세운 보상 기준과 운영된 보상 결과의 괴리
앞서 살펴본 내용을 결합하면, 능력주의의 구조적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개념적으로 능력주의는 공로와 책임을 강조하며, 시험 준비나 업무 성실성처럼 행위자의 통제 하에 있는 선택적 노력을 보상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실제 사회에서 평가·보상되는 능력은 선천적 재능과 가정환경 등 비선택적 요인의 영향 아래 형성되며, 개인의 통제 가능성은 제한적이다(Heckman 2006, p. 1–4). 그 결과 능력주의는 “선택된 노력”을 보상하겠다는 규범적 약속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운에 의해 형성된 능력 격차를, 능력주의라는 미명 하 ‘정당하고 마땅한 불평등’으로 승인하는 제도로서 기능하게 된다.
다만 이 지점에서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은, 본고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이 “능력주의 원리 자체는 성립 가능할 수 있지만, 그 원리가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만’ 모순이 발견된다”는 점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단지 현실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지 못한 이상이 아니라, 자신의 정당화 구조와 사실 조건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원리적’ 수준의 모순을 안고 있다. 다시 말해,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선택’의 결과만 보상한다는 규범적 약속을 표방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선택 불가능한 운의 결과를 보상의 근거로 승인하는 체계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능력주의가 불완전하다는 지적이 아니라, 그 정당화 논리가 자기 자신이 제시한 규범적 전제와 충돌해 붕괴한다는 점에서 원리 정립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능력주의는 선택의 자격을 보상하겠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운의 분포를 도덕적 자격으로 변환하는 제도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조망할 만하다.
예상반론: 외부 정의관의 부당한 강제적 개입이다
그러나 혹자는 본고의 이러한 비판이 “외부 정의관의 강제”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즉, 능력주의 옹호자는 본고의 논증이 능력주의 내부 구조 분석이 아니라, 롤즈적 정의관을 외부에서 들여와 능력주의에 부당하게 적용한 결과라고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선택 가능한 요소만을 도덕적 자격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선택–운 구분은 능력주의 자체의 규범적 전제가 아니라, 특정 정의 이론이 설정한 별도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능력주의는 공로를 평가할 때 선천적 재능이나 사회적 배경이 도덕적으로 ‘임의적’인지 여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주의는 능력, 즉 선천적 재능을 포함한 생산성 관련 요인들 전체가 분배에서 정당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Young(1958)이 ‘능력’을 “intelligence plus effort”로 정의한 사실도, 오히려 능력주의가 타고난 재능이라는 우연성을 내포한 채 그것을 분배 기준으로 수용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처럼 해석할 수 있다(Young 1958, pp. 18–20). 그렇다면 선택–운 구분을 전제하지 않는 능력주의를 두고, 선택–운 원리를 들이대며 “자기모순”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질문을 던지는 셈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요컨대, 능력주의 비판이 성립하려면 먼저 능력주의가 선택–운 구분을 규범적 원리로 수용해야 하는 이유를 독립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재반박: 우연성을 문제 삼지 않는 능력주의는 왜 정의가 될 수 없는가
본고의 비판이 외부 정의관을 불필요하게 끌어오기 때문에 유효하지 않다는 반론은 물론 중요한 지점을 짚지만, 능력주의가 정의로운 분배 ‘원리’로 주장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평가 기준을 간과한다. 능력주의는, 오히려 정교하게 정의로운 분배 원리로 인정되기 위해서 선택–운 구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정의론에서 서로 다른 원리들(롤즈, 능력주의, 공리주의 등)은 상호비판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시험하며, 그렇기에 평가적 차원에서 외부 개념의 상호 적용은 불가피하다. 능력주의가 단순한 기술적 배분 규칙이 아니라 “정의로운 분배는 능력에 비례해야 한다”는 일종의 도덕 원리로 제시되는 한, 그의 정당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책임 귀속에 관한 다른 규범과 충돌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요컨대, 선택–운 구분을 적용하는 것이 능력주의에 대한 부당한 외부 간섭이 아니라, 정의 이론들 사이의 정당한 상호 비판의 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앞선 논의를 감안할 때, 보다 설득력 있는 방향은 “능력주의가 우연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능력주의가 정의로운 분배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능력주의가 선천적 재능과 사회적 배경을 포함한 능력 전체를 분배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는 곧 통제 불가능한 운에서 비롯된 격차를 도덕적 자격으로 승인한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관점이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질 경우, 우생학이나 인종우월주의처럼 ‘타고난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이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경계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극단적 디스토피아의 가능성과 별개로, 책임론적 정의관과 롤즈의 social lottery 논의가 보여 주듯, 정의로운 분배는 그러한 운의 차이를 출발점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Rawls 1999, pp. 72–75; Sachs-Cobbe 2023, pp. 5–7). 능력주의가 이 원칙을 부정한다면, 그 순간부터 능력주의는 “누가 얼마나 유리한 조건을 타고났는가”를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원리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능력주의가 이러한 우려와는 반대로, 오히려 신분제 완화나 계층 이동의 확대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재반론도 함께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능력주의가 “이전 체제보다 나은 측면이 있었다”는 역사사회학적 평가일 뿐,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이 그 자체로 도덕적으로 옳다는 결론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신분제보다 나은 체계가 모두 정의로운 것은 아니듯, 능력주의가 신분제 대비 개선된 점을 갖고 있다고 해서, 운의 분포를 그대로 도덕적 자격으로 승인하는 원리가 정의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이로써 본고는 능력주의가 우연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오히려 바로 그 점을 이유로 능력주의가 책임론적·롤즈적 정의 원칙과 양립할 수 없음을 드러내며 논증 사슬을 마무리한다.
결론
이 글은 능력주의가, 첫째 분배 기준이 행위자의 선택 가능한 공로에 대한 책임 귀속에 의존한다는 규범적 전제를 요구하며(Marks 2010, pp. 1–3; Young 1958, pp. 18–20), 둘째 실제 능력 형성이 개인의 비선택적 요인에 깊이 의존한다는 경험적 사실과 충돌하고(Heckman 2006, p. 1–4), 셋째 정의로운 분배는 선택에는 민감하고 운에는 둔감해야 한다는 원칙을 구조적으로 위배한다는 점을 보였다(Rawls 1999, pp. 54–63; Rawls 1999, pp. 72–75; Sachs‑Cobbe 2023, pp. 5–7). 그 결과 능력주의는 “선택된 공로만을 보상한다”는 자기 정의를 유지하려 할수록, 현실에서 평가되는 능력이 운의 산물이라는 사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적 모순에 빠진다. 본고가 지지하는 결론은,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 일반을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능력주의를 정의로운 분배 원리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규범적·사실적 전제의 불일치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는 보다 제한된 명제다.
능력주의에 대한 기존 비판은 주로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능력주의가 현실에서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경험적 한계를 지적해 왔다(Loury 1981, pp. 854–855; Sachs‑Cobbe 2023, p. 182). 이에 비해 본고의 기여는, 능력주의를 외부 이론의 단순 비교 대상으로 두는 대신, 능력주의가 스스로 내세운 공로·책임의 원리와 능력 형성의 사실 조건, 그리고 선택–운 구분이라는 일반적 정의 원리를 하나의 논증 사슬 안에서 연결해 “내적 모순”으로 분석했다는 데 있다. 또한 Young의 고전적 정의를 “능력주의가 우연성을 내포한 채 분배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을 드러내는 자료로 재해석함으로써, 능력주의가 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순수한 선택 이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 때문에 책임론적 정의 기준과의 충돌이 더 심화된다는 지점을 부각했다(Young 1958, pp. 18–20).
이러한 결론은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공정성의 기본 언어로 사용되는 교육·채용·승진 제도에도 규범적 시사점을 던진다. 입시 제도에서 “시험 성적에 따른 선발”이 정의로운가를 묻는다면, 성적이 얼마나 학생의 선택 가능한 노력에 기인하는지, 그리고 부모의 소득·학력·문화 자본이라는 비선택적 요인의 영향을 어느 정도까지 정의의 관점에서 허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Heckman 2006, p. 1–4; Rawls 1999, pp. 72–75). 채용과 승진에서도 마찬가지로, 생산성 지표로 사용되는 ‘능력’이 실제로는 어떤 운의 구조에 의해 형성·배분되는지를 분석하지 않은 채 “능력에 따른 합리적 보상”을 정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후속 논의로는, 첫째 능력주의의 내적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수정·보완하려는 ‘완화된 능력주의’ 모델이 과연 선택–운 원칙과 양립 가능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선택–운 구분을 수용하는 다른 분배 원리(예를 들어 롤즈의 차등 원칙이나 능력 중심 복지 국가 구상)가 현실 제도 설계에서 어떤 형태를 취할 수 있는지, 특히 한국의 교육·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보다 다변적이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능력주의를 단순히 폐기하거나 수호하는 이분법에 머물러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이러한 후속 연구를 통해, 실질적으로 운영 가능한 정의로운 분배의 기준을 재구성하려는 더 넓은 이론적·실천적 논의가 가능해지길 바란다.
참고문헌
Heckman, J. J. (2006). Skill formation and the economics of investing in disadvantaged children. Science, 312(5782), 1900–1902.
Loury, G. C. (1981). Intergenerational transfers and the distribution of earnings. Econometrica, 49(4), 843–867.
Marks, G. N. (2010). Meritocracy, modernization and students’ occupational expectations. Research in Social Stratification and Mobility, 28(4), 431–443.
Rawls, J. (1999). A theory of justice (rev. ed.). Harvard University Press.
Sachs-Cobbe, A. (2023). Meritocracy in the political and economic spheres. Philosophy Compass, 18(10), e12947.
Young, M. (1958). The rise of the meritocracy. Thames & Hud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