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3-07 백가현
제목: 부모의 영유아 의료결정권과 개입의 정당화 기준: 신임권한 이론에 기초하여
서론
임상 의료현장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다양한 윤리적 가치와 이익이 충돌하는 복잡한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환자의 치료적 이익(beneficience)과 환자의 자율성(autonomy)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성을 행사하는 주체와 치료적 이익의 귀속 대상은 모두 환자 본인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주로 환자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로 환원된다. 그러나 미성년자, 특히 판단 능력이 없는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 상황은 선택의 주체(대리자)와 그 선택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상자(아동)이 다르다는 점에서 앞선 상황과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영유아에게는 의료 행위의 의미나, 그로 인해 초래될 장단기적 결과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 능력 및 판단력이 부재한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으로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은 부모의 판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부모는 아이의 복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책임지는 대리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부모의 판단이 언제나 자녀의 이익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부모 역시 불완전한 정보와 개인적 신념, 경제적 제약, 돌봄 부담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특히 영유아의 경우 아직 신체적·정신적 발달이 불완전한 상태에기에 부모의 의료적 결정이 아이의 생에 전반에 장기적이고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생식능력, 정체성, 인지능력 등에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료결정의 경우, 부모가 어디까지 대신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고는 영유아의 의료 의사결정에 대한 논의를 두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Guidance(G)로, 의료진이 권고나 설명·설득을 통해 부모가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Intervention(I)으로, 의료진 또는 국가가 부모의 결정을 무효화하거나 강제력을 동원하여 치료를 시행·금지하는 단계이다. 전통적으로 (G)의 단계를 판가름할 기준으로는 ‘아동의 전반적 복지/권리에 있어서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의료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최선의 이익 기준(Best Intersts Standarts; BIS)가 제시되어 왔으며 이 기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Beauchamp & Childress, 2019, pp. 102-103). 그러나 (I)의 단계, 즉 부모의 결정에 의료진·국가가 언제 개입해야 하는가?에서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어 왔다. 아동의 치료적 이익을 보다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BIS가 (I)의 상황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영유아의 복지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 한편, Diekema(2004)와 같이 의료 권위주의를 방지하고 부모의 양육 책임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축에서는 ‘해악 기준(Harm Principle; HP)을 제시하며 ‘부모의 결정이 아이에게 명백하고 중대한 해악(특히 즉각적이고 임박한 해악)을 초래하는 한에서만 개입이 필요하며, 이러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부모의 결정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등장한 Ross등은 절충안으로서 ‘제한된 부모 자율성(Constrained Parental Autonomy; CPA)’과 같은 접근을 제시하였으나 본질적으로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은 BIS와 HP를 큰 축으로 전개되어왔다.
실제 의료 결정 상황에서 이 두 기준은 서로 충돌하며 난제를 낳는다. 해악기준(HP)은 개입의 문턱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함으로써, 즉각적인 해악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아동의 삶의 여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결정을 허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반대로 최선의 이익 기준(BIS)은 ‘최선’이라는 명목으로 의료진·국가의 가치 판단이 과도하게 개입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현실적 제약과 가치 선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부모의 대리결정 상황에서 의료진·국가는 언제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딜레마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본고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 기준을 단순히 “문턱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로 다루기보다 부모의 대리결정권이 무엇으로 정당화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재구성한다. 즉, 영유아 의료에서 부모에게 부여되는 의료결정권은 부모의 고유한 권한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와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조건부로 위임된 신탁적 권한(신임권한)’이라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때 신임권한은 수익자(아동)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하는 한에서만 정당화되며, 그 “정당한 추구”를 판정하는 규범적 기준은 정의상 BIS 외에 달리 설정될 수 없다. 따라서 부모의 결정이 BIS를 중대하게 이탈하는 경우, 그 결정은 더 이상 ‘정당한 권한 행사’로 간주될 수 없고, 의료진·국가의 개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당화된다. 반대로 HP는 “명백하고 중대한(특히 즉각적) 해악”이라는 문턱을 통해 BIS 위반의 상당 부분을 원칙적으로 개입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부모권을 ‘위임된 신임권한’으로 이해하는 정당화 구조와 논리적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본고의 최종 논제는 다음과 같다. 영유아 의료 ‘개입(intervention)’의 정당화 기준은 HP가 아니라 BIS여야 한다. 이 결론은 Ross등이 제시하는 절충이 아닌, 부모권의 성격을 신임권한으로 정식화할 때 개입 정당화의 최종 기준이 BIS로 필연적으로 귀결된다는 주장이다2. 이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본고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증을 구성한다. 먼저 영유아가 독립적 권리 주체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대리결정권의 성격을 ‘수익자 이익을 위한 위임’으로 규정하고, 그 결과 부모의 영유아 의료결정권이 신임의무를 수반하는 신임권한임을 연역적으로 도출한다. 이어서 신임권한의 유효조건이 곧 BIS 충족임을 보인 뒤, BIS가 위반된다면 최종책임자로서의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해악의 시간성(미래 해악과 비가역성) 및 ‘BIS의 주관성’ 반론을 검토하여, HP가 아동 권리 보호라는 요청을 구조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하며, BIS가 가지는 모호성은 기준의 변경이 아닌, 엄격한 의사결정 및 절차적 통제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결론에서는 이상의 논증을 요약하고, 영유아 의료 개입의 정당화 기준을 BIS로 정립하는 것이 갖는 이론적 함의와 실천적 의미를 정리한다.
본론
1. 영유아의 독립적 권리주체성과 부모 의료결정권의 신임권한적 성격
현대 아동 권리 이론은 영유아를 단순히 부모의 소유물이나 미성숙한 객체가 아니라, 고유한 이익과 권리를 가진 독립적 권리 주체로 이해한다(Archard, 2004, pp. 57). 영유아는 비록 현재 시점에서 자율적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고통을 느끼고 신체적·정신적 발달의 과정에 있으며, 무엇보다 미래에 자율적 주체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영유아는 현재의 복지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율성을 보호받을 권리, 즉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right to an open future)’를 갖는다(Feinberg, 1980, pp. 77). 이러한 권리들은 영유아가 스스로 주장하거나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들의 취약성이야말로 더 강력한 보호의 근거가 된다.
영유아가 독립적 권리 주체라면, 그들에 대한 의료결정권은 누구에게 어떤 근거로 부여되는가? 전통적으로 이 권한은 부모에게 귀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 권한의 정당화 근거를 면밀히 검토하면, 부모의 의료결정권이 부모 자신의 고유한 권리가 아니라 아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조건부로 위임된 권한임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자녀의 의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부모가 자녀를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통상적으로 자녀의 이익을 가장 잘 이해하고 보호할 동기와 능력을 가진 자로 추정되며, 가족의 자율성과 친밀성을 보호하는 것이 아동 양육에 유리하다는 도구적 이유에서이다(Ross, 1998, pp. 32-45). 즉, 부모의 의료결정권은 아동의 복지 실현이라는 목적을 위해 부모에게 위임된 권한이며 이는 법률적 개념인 신탁관계(fiduciary relationship)의 구조와 유사하다(Buchanan & Brock, 1989, pp. 82-83).
신탁관계에서 수탁자(fiduciary)는 수익자(beneficiary)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위임받으며, 이 권한 행사는 오로지 수익자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해야 한다는 신임의무(fiduciary duty)에 구속된다(Frankel, 2011, pp. 79-80). 수탁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제3자의 이익을 우선하거나, 수익자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신임의무 위반이며 권한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영유아 의료 의사결정에서 부모는 수탁자의 지위에, 영유아는 수익자의 지위에 대응한다. 부모는 영유아의 의료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의료결정권을 위임받은 것이며, 따라서 부모의 결정은 영유아의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임의무에 종속된다(Kopelman, 1997, pp. 278-279).
이러한 신임권한의 구조로부터 중요한 결론이 도출된다. 부모의 의료결정권은 무제한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아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에서만 정당화되는 조건부 권한이라는 것이다. 만약 부모의 결정이 아동의 이익에 명백히 반한다면, 그 결정은 더 이상 정당한 권한 행사로 인정될 수 없다. 신탁법의 원리에서 수탁자가 신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할 경우 법원이나 제3자가 개입하여 수탁자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있듯이, 부모가 신임의무를 위반하는 의료 결정을 내릴 경우 의료진이나 국가가 개입할 정당성이 발생한다. 결국 부모 의료결정권의 신임권한적 성격은 개입의 정당화 기준이 부모의 자율성이나 가족의 사적 영역 보호가 아니라 아동의 이익 실현 여부에 있음을 함축한다.
신임권한의 유효조건으로서 BIS와 개입의 정당화
신임권한의 핵심은 수익자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해야 한다는 의무에 있다. 이를 영유아 의료 결정 맥락에 적용하면 부모가 아동의 의료적 복지와 권리를 최대한 실현하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동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한다”는 것을 판정하는 규범적 기준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의상 BIS, 즉 ‘아동의 전반적 복지와 권리에 있어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는 방향’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다음과 같이 연역적으로 도출된다. 신임권한은 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행사할 것을 요구한다. “이익을 위한 행사”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당연히 “얼마나 이익에 부합하는가”이다. 이때 가능한 선택지들 중 아동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BIS가 지시하는 선택지이다. 만약 부모가 BIS가 지시하는 선택지보다 아동의 이익에 덜 부합하는 선택지를 선택한다면, 이는 정의상 아동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하지 않은 것이 된다. 따라서 BIS를 충족하는 것이야말로 신임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BIS에서 이탈하는 것은 신임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큰 이익”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의료 결정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여러 선택지가 비슷한 수준의 이익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 점은 이후 더 다루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칙적 구조이다. 부모의 결정이 정당한 권한 행사로 인정되려면, 그 결정이 아동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부모의 결정이 아동의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면, 그것은 신임의무 위반이며 권한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그렇다면 부모가 BIS를 위반했을 때 개입해야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때 개입의 최종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모든 시민, 특히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취약한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의료결정권은 국가가 아동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 의해 부모에게 1차적으로 위임한 권한이라고 볼 수 있으며, 부모가 이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국가는 최종 보장자로서 개입할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따라서 다음의 논리가 성립한다. 부모의 의료결정이 BIS를 중대하게 이탈한다면, 그 결정은 신임의무에 대한 위반이며 정당한 권한 행사를 넘어선다. 이 경우 아동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는 최종 보장자로서 개입하여 아동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즉, BIS 위반은 개입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 된다.
HP의 구조적 한계와 BIS의 우선성
그렇다면 HP는 왜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없는가? HP는 “부모의 결정이 아동에게 명백하고 중대한 해악, 특히 즉각적이고 임박한 해악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개입한다”는 기준이다. 이 기준은 개입의 문턱을 높게 설정함으로써 부모의 자율성과 가족의 사적 영역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다음의 구조적 문제를 갖는다.
먼저, HP는 해악의 시간을 현재로 한정함으로써 미래의 해악을 간과한다. HP가 강조하는 “즉각적이고 임박한 해악”은 단기적으로 생명이나 건강에 급박한 위협이 있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다(Diekema, 2004, pp. 250-252). 그러나 영유아의 의료 결정 중 상당수는 즉각적인 해악보다는 장기적이고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언어발달 가능성을 제한하는 치료3, 특정 예방접종의 거부, 또는 성적 특징에 영향을 미치는 조기 수술 등은 당장의 생명 위협을 초래하지 않지만, 아동의 미래 건강, 생식능력, 정체성 형성 등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HP의 시간적 제약은 이러한 장기적 해악을 개입 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아동의 ‘열린 미래에 대한 권리’를 구조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
또한, HP는 “해악의 부재”와 “이익의 실현”을 혼동한다. 신임권한의 핵심은 단순히 수익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수익자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동에게 즉각적 해악을 가하지 않더라도, 명백히 더 나은 의료적 선택지가 있는데도 그것을 거부한다면, 이는 신임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효과적인 치료법이 존재하는 질병에 대해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치료 거부가 즉각적 사망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HP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명백히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반한다. HP는 “명백한 해악”이라는 소극적 기준만을 사용함으로써, 신임권한이 요구하는 적극적 이익 추구 의무를 포착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HP는 HP는 실천적으로 일관성 있는 기준선을 제공하지 못한다. “명백하고 중대한 해악”이 무엇인지, 특히 “즉각성”을 어느 시간 범위로 설정할지는 HP 내에서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1개월 후의 해악은 즉각적인가? 1년 후는? 사춘기 이후는? 성인이 된 후는? 이러한 모호성은 HP가 임의적으로 적용될 위험을 낳으며, 결국 아동 보호에 있어 일관된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
반면 BIS는 시간적 제약 없이 아동의 전반적 복지를 고려하며, 장기적·비가역적 해악을 포함한다. BIS는 해악의 부재가 아니라 이익의 최대화를 기준으로 삼으며, 신임권한의 논리와 완전히 일치한다. 따라서 개입의 정당화 기준은 HP가 아니라 BIS여야 한다.
BIS의 주관성 반론과 재반박
BIS를 개입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BIS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모호하여, 의료진이나 국가의 자의적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엇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인지는 가치 판단과 불확실성을 수반하며, 의료진과 부모 사이에 합리적 견해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이 반론은 HP가 보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 즉 “명백한 해악”이라는 식별 가능한 문턱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반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첫째, BIS의 모호성은 기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적용의 문제이다. 둘째, HP 역시 동등하거나 더 큰 모호성을 갖는다.
먼저, BIS가 적용 과정에서 불확실성과 가치 판단을 수반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BIS를 폐기하고 HP를 채택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BIS의 적용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절차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이유가 된다. 신임권한 이론은 본래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며, 수탁자의 권한 행사를 감독하고 통제하는 절차를 강조한다(Frankel, 2011, pp. 200-206). 영유아 의료 맥락에서도 마찬가지로, BIS를 적용할 때 절차를 통해 BIS의 주관성은 상당 부분 통제되며 이를 통해 의료진 혹은 국가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예컨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윤리위원회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다학제적 팀의 검토를 거치고, 부모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소통의 기회를 보장하며, 최종 개입 결정은 사법적 심사를 거치는 등 독립적인 제3자의 판단을 받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개입은 최소 침해 원칙에 따라 수행하며, 가능한 한 부모와의 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준수하는 등의 절차를 적용할 수 있다.
둘째, HP가 BIS보다 더 객관적이라는 주장은 착시에 가깝다. ‘명백하고 중대한 해악’이 무엇인지, ‘즉각성’의 시간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HP 내에서도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의 결정을 생각해보자. 즉각적인 감염이 발생하지 않는 한 HP는 개입을 정당화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방 가능한 질병에 대한 노출 위험은 명백히 아동의 이익에 반한다. 이 경우 ‘해악’의 명백성과 중대성, 즉각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HP 역시 상당한 해석적 여지를 남기며, 단지 그 여지가 ‘해악’ 개념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더 근본적으로, BIS의 모호성을 이유로 HP를 채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주객이 전도된 접근이다.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방법론적 난관’ 때문에,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도덕적 본질’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앞서 논증했듯이 부모의 의료결정권은 신임권한이며, 그 유효조건은 논리적으로 BIS일 수밖에 없다. BIS가 적용하기 어렵다고 해서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기준을 포기하고 다른 기준을 채택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정의로운 분배는 어렵다”는 이유로 정의의 기준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올바른 접근은 기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준의 적용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BIS의 모호성은 절차적 통제를 통해 관리되어야 할 실천적 과제이지, BIS를 폐기해야 할 이론적 근거가 아니다. HP는 BIS보다 더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신임권한의 논리 구조와 양립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입의 정당화 기준은 여전히 BIS여야 한다.
결론
본고는 영유아 의료 의사결정에서 의료진 및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해악 기준(HP)이 아니라 최선의 이익 기준(BIS)이어야 함을 논증하였다. 이 결론은 단순히 두 기준 사이의 선호나 절충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의료결정권의 본질적 성격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귀결이다.
본고의 논증 구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유아는 독립적 권리 주체이며, 부모의 의료결정권은 영유아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조건부로 위임된 신임권한이다. 신임권한은 수익자의 이익을 충실히 추구해야 한다는 신임의무를 수반하며, 이 의무를 위반할 경우 권한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둘째, 신임의무의 충족 여부를 판정하는 규범적 기준은 정의상 BIS, 즉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가이다. 부모의 결정이 BIS를 중대하게 이탈한다면, 이는 신임의무 위반이며 정당한 권한 행사가 아니다. 이 경우 아동의 권리를 최종적으로 보장할 책임을 지닌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된다. 셋째, HP는 해악의 시간성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해악의 부재와 이익의 실현을 혼동하며, 일관성있는 기준선을 제공하지 못한다. 즉 HP는 장기적·비가역적 해악을 포착하지 못하고, 부모권을 마치 고유한 권리인 양 취급함으로써 아동 권리 보호라는 핵심 목표를 유기한다. 넷째, BIS의 모호성 문제는 기준을 변경할 이유가 아니라 엄격한 절차적 통제를 통해 관리해야 할 실천적 과제이다. 다학제적 검토, 충분한 의사소통, 사법적 심사, 최소 침해 원칙 등의 절차적 장치를 통해 BIS의 적용은 신중하게 통제될 수 있다.
이상의 논증이 갖는 이론적 함의는 명확하다. 영유아 의료 의사결정에서 부모의 권한은 절대적이거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와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조건부적 권한이다. 이러한 이해는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중심에 두며, 부모의 역할을 아동의 이익을 실현하는 신탁적 책임으로 재정의한다. 개입의 정당화는 부모 권한과 국가 권력 사이의 영역 다툼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가 실제로 보호되고 있는가라는 실질적 질문으로 재구성된다.
따라서 의료진과 국가는 부모의 결정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경우, 즉각적이고 명백한 해악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개입은 신중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가능한 한 부모와의 협력과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 BIS의 채택은 부모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진정으로 아동의 이익을 위해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동을 보호하는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유아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가장 취약한 구성원이다. 그들의 현재 복지와 미래의 열린 가능성은 우리 사회가 어떤 기준과 절차로 그들을 보호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고가 제시한 BIS 중심의 개입 정당화 논리가, 영유아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의료 윤리 및 정책 수립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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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champ, T. L., & Childress, J. F. (2019). Principles of biomedical ethics (8th ed.). Oxford University Press.
Buchanan, A. E., & Brock, D. W. (1989). Deciding for others: The ethics of surrogate decision mak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Diekema, D. S. (2004). Parental refusals of medical treatment: The harm principle as threshold for state intervention. Theoretical Medicine and Bioethics, 25(4), 243–264. https://doi.org/10.1007/s11017-004-3146-6
Feinberg, J. (1980). The child’s right to an open future. In W. Aiken & H. LaFollette (Eds.), Whose child? Children’s rights, parental authority, and state power (pp. 124–153). Rowman & Littlefield.
Frankel, T. (2011). Fiduciary law. Oxford University Press.
Kopelman, L. M. (1997). The best-interests standard as threshold, ideal, and standard of reasonableness. The Journal of Medicine and Philosophy, 22(3), 271–289. https://doi.org/10.1093/jmp/22.3.271
Ross, L. F. (1998). Children, families, and health care decision making.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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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BIS가 아동의 복지를 위하여 실현불가능한 이상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BIS는 실현가능한 대안적 집합, 즉 가능한 선택지 중 가능한 최선(feasible best)을 요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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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BIS를 개입의 최종 기준으로 둘 때 국가나 의료진 권한이 과도하게 팽창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준의 절충안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입증책임, 절차적 심사, 비례성 및 최소침해 원칙과 같은 실행 단계의 제약을 통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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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거설증(macroglossia)을 가진 아동의 경우에서, 부모가 장기간의 지속적인 의료·돌봄 부담, 이에 수반되는 경제적·정서적 비용을 이유로 아동의 정상적인 언어발달 가능성을 사실상 포기하고 의료진에게 아동의 혀를 절제하는 외과적 수술을 요청하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은 당장의 양육 부담을 경감시키고 관리의 용이성을 높일 수는 있으나, 동시에 아동의 향후 언어능력, 사회적 의사소통, 정체성 형성에 장기적이고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아동의 미래 삶의 가능성 자체를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의료적 결정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윤리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HP를 적용하면 부모의 선택이 아동에게 ‘명백하고 즉각적인 해악’은 아니라는 점에서 개입 불가능한 선택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