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과제-08 기말과제 초고 작성하기 013-10 김준이

제목: 정의로운 분배 원리로서 능력의 정당화 가능성: 선택-민감성 원칙과 ‘브루트 럭’을 중심으로

서론

정의로운 분배 원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오랫동안 정치철학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는 단지 희소한 자원을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나눌지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분배가 어떤 기준에 의해 이루어질 때 그것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범적인 논의의 성격을 지닌다. 이때 분배의 기준이 정의롭다는 것은 해당 기준에 따라 자원을 배분했을 때 개인에게 응당한 보상과 책임이 귀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원이란 물질적 가치를 넘어선 사회적 인정, 문화적 자본 등을 포괄한다. 현대사회에서는 각자의 선택과 노력을 통해 함양한 ‘능력’에 따른 분배가 정당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실제 사회에서 개인의 출발점은 가정환경, 타고난 재능 등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상당부분 구성된다.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던 삶의 궤적이 사실은 통제 불가능한 구조적 요인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로부터 정의로운 분배 원리를 정초할 수 있을까? 나아가 능력에 따른 분배는 개인에게 응당한 보상과 책임을 귀속시키는 정의로운 분배 원리일까?

정의로운 분배 원리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공정한 분배의 요건으로서 선택과 우연을 구분하고, 후자는 정당한 분배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관점이다. 로널드 드워킨은 분배 정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선택과 우연을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선호와 능력으로 인해 불평등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그 이유를 운의 성격에서 찾는다. 그는 운을 ‘옵션 럭(option luck)’과 ‘브루트 럭(brute luck)’으로 구분하고, 후자에 대해 개인의 책임을 귀속시키기 어렵다고 주장한다(Dworkin 2000, p. 73).1 이러한 관점에서 우연성에 따른 분배는 정당화될 수 없기에 우연성의 교정과 그로 인한 기회의 평등은 정의로운 분배의 핵심적인 조건이 된다. 한편, 정의의 기준을 기여에 비례하는 응당한 보상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우연성은 주요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재능, 생산성 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한 맥락이나 배경이 아니라 각 개인이 그 능력을 통해 사회에 얼마나 공헌했는가이다. 사회에 기여한 만큼의 응당한 보상과 책임을 강조하는 능력주의적 관점은 “능력과 노력에 비례한 보상”이라는 공정성의 원리를 주창한다(Young, 1958, p. 90). 이러한 분배 원리는 표면적으로는 합리성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능력의 함양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유용성을 갖추었지만, 우연성에 대한 보상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즉, 두 입장 사이에는 다음의 명확한 긴장이 대두된다. 한쪽은 분배의 기준을 선택과 책임에 두며 우연을 배제하려 한다면, 다른 한쪽은 분배의 기준을 기여에 두며 우연성 여부는 문제 삼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드워킨의 논의를 바탕으로 능력에 따른 분배가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이고자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구조로 논증을 진행한다. 첫째로, 정의로운 분배 원리는 개인의 책임 있는 선택에는 민감하게(sensitive), 통제 불가능한 우연에는 둔감하게(insensitive) 반응해야 한다는 점을 보인다. 선택-민감성(choice-sensitivity) 원칙의 철학적 의미를 분석하고, 정의로운 분배 원리를 논함에 있어 우연성의 교정이 필수적임을 논증한다. 둘째, ‘브루트 럭’을 제도적으로 방치하면 분배는 선택에 둔감하고 우연에 민감하게 됨을 검토한다. ‘브루트 럭’은 선택의 책임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하기에, 그에 따른 분배는 앞서 논증한 선택-민감성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셋째, 능력에 따른 분배는 ‘브루트 럭’을 방치해 분배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인다. 능력에 따른 보상이 우연성에 대한 분배를 자연화하는 기제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초래되는 분배 원리의 필연적인 왜곡을 분석한다. 이러한 세 가지 전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능력에 따른 분배는 정의로운 분배 원리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따라서 본 논증문은 선택-민감성 원칙, ‘브루트 럭’의 해악, 그리고 능력이라는 기준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능력에 따른 분배 원리를 극복하고 ‘브루트 럭’의 영향을 제도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사회로의 이행을 주장하고자 한다.

본론

­­정의로운 분배 원리의 조건으로서 선택-민감성(choice-sensitivity) 원칙

정의로운 분배 원리는 개인의 책임 있는 선택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통제 불가능한 우연에는 둔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직관적인 원칙을 전제로 한다.2 드워킨은 공정한 자원의 배분을 위해서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행위와 결과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Dworkin 2000, pp. 287–290). 자신의 선택에 따른 행위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로 부당하게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도덕원리를 자원의 분배에 적용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분배 원리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요소가 우연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해당 원칙이 만족되는지 검토하기 위해서는 우연성 내지는 운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드워킨은 자원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원인을 운(luck)으로 보고, 이를 ‘옵션 럭(option luck)’과 ‘브루트 럭(brute luck)’으로 구분한다.

옵션 럭(option luck)은 숙고적이고 계산된 모험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의 문제,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이 예측했고 그 결과 피했을 수도 있는 하나의 위험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익을 보는지 아니면 손실을 보는지에 관한 문제다. 브루트 럭(brute luck)은 그런 의미에서 숙고적인 모험이 아닌 다른 위험들이 어떤 결과를 갖는지의 문제다. (Dworkin, 2000)

‘옵션 럭’은 개인의 선택을 통해 초래된 운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브루트 럭’은 개인이 통제 가능한 영역 밖에서 우연히 촉발된 결과라는 점에서 응당한 책임의 귀속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의 가정환경, 건강 상태, 타고난 재능 등은 개인의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닌 우연성에 의해 구성되는 일련의 ‘브루트 럭’은 선택-민감성 원칙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 만약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 요소에 따른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선택에 민감한 구조가 아니라 우연에 민감한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도박에 중독되어 전재산을 잃은 경우, 그는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로 전재산을 잃었다는 점에서 그의 금전적 손실은 선택-민감성 원칙에 부합하는 분배의 결과이다. 이때 사회는 한 개인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망조차 갖추지 못하였다면 그에 대한 보호 수단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의 선택에 따른 불운을 제도적으로 복구하거나 보상할 의무를 갖지는 않는다. 반면, 한 개인이 자연재해로 인해 전재산을 잃은 경우, 그는 자신의 선택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자연적 불운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제도적 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연재해의 책임을 그에게 물을 수 없으며, 그러한 우연성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사회의 제도와 연대를 통해 보상되어야 한다.

예상반론: ‘옵션 럭’과 ‘브루트 럭’의 불가분성

이에 대해 다음의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선택과 우연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순수하게 ‘옵션 럭’으로만 구성된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도박 사례에서 해당 개인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불가피하게 도박에 참여하게 된 상황을 가정하자. 마땅한 생계 유지 수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도박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면, 그에게 도박이 진정한 선택의 결과였다고 하기 어렵다. 반면, 도박에 참여하지 않는 부자가 있다면 그 부자는 앞의 도박자보다 도덕적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도박을 고려할 상황 자체가 조성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한 개인이 도박에 참여하여 전재산을 잃는 과정 내에서도 가난하게 태어났다는 ‘브루트 럭’과 살기 위해 도박을 선택했다는 ‘옵션 럭’이 뒤섞여 있으며 둘을 완벽히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둘의 불가분성을 고려한다면 ‘브루트 럭’을 완벽히 통제하고 ‘옵션 럭’에 대한 보상을 해야 분배 원리가 정당화될 수 있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반론은 선택-민감성 원칙의 함의를 오해한 주장이다. 선택-민감성 원칙은 ‘옵션 럭’과 ‘브루트 럭’을 완벽히 객관적으로 구분하고, 오로지 ‘옵션 럭’이라고 판단되는 요소에 의해서만 정교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 아니다. 이는 다만 ‘브루트 럭’에 의해 각종 자원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특히 우연성에 의한 격차나 불균등한 해악을 완화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가진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오히려 선택과 우연이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모든 분배에는 우연성에 대한 교정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개인이 행하는 모든 결정은 결국 가정환경, 개인이 타고난 능력, 유전적인 요소 등 우연적으로 형성된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상당수의 선택과 결과에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아 있고, 이를 명확히 인지함으로써 제도적 교정의 필요성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옵션 럭’과 ‘브루트 럭’의 복잡한 관계를 지적하는 반론의 논리로부터, 오히려 통제 가능한 요소들이 분배 기준에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적 교정이 필요하다는 본래의 논리를 강화할 수 있다.

따라서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브루트 럭’의 존재를 인지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교정하려는 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택은 결과의 원인으로서 설명력을 잃고 책임의 귀속이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로운 분배 원리는 선택에 민감하게, 우연에 둔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원칙은 타당하다는 전제를 수립할 수 있다.

제도적 차원의 ‘브루트 럭’ 방치로 인한 선택-둔감 구조(choice-insensitivity)의 심화

브루트 럭은 개인의 능력 수준을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애초에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선택의 후보군 자체를 규정한다. 능력의 객관적인 정도를 구성할 뿐 아니라 애초에 어떤 능력을 선택하고 훈련할 수 있는지, 보다 근원적인 개인의 잠재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브루트 럭’은 선택 이후의 결과 차원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이전의 실질적인 선택 가능성과 후보군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의 소득수준, 부모의 학력과 직장, 거주 지역의 인프라 등은 모두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 어떤 교육을 받을지, 이를 통해 어떤 직업 선택을 하고 어떤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잠재가능성 접근(capability approach)은 이를 이론적으로 정식화한다. 센은 단지 개인의 물질적 부에 초점을 두기보다, 개인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의 형태를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집중한다(Sen 1992, pp.31-34). 동일한 소득을 가지더라도 건강, 교육환경, 사회적 구조 등이 다르다면 여전이 개인이 실제로 선택 가능한 생활양식의 형태와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 영역이 되는 ‘브루트 럭’은 단지 물질적 가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지평을 구성하는 근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개인의 능력은 수많은 통제 불가능한 우연성이 중첩되어 형성되고, 이러한 경우 형식적으로는 선택의 결과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질적으로는 선택 이전의 역량 격차, 즉 ‘브루트 럭’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듯 견고한 우연성의 중첩 경로를 생각할 때, 교육, 노동시장, 거주 환경 등을 관통하는 제도적 경로는 ‘브루트 럭’의 해악에 취약할 뿐 아니라 그것의 해악을 증폭시키기 쉽다. 예를 들어 청년층의 초기 일자리가 이후의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공민정(2023)의 연구에 따르면, 초기 일자리의 품질 –정규직 여부, 기업규모, 직무 적합도-가 이후 임금 상승 폭과 고용 안정성에 장기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품질의 초기 일자리를 경험한 청년은 이후에도 정규직 전환 확률이 낮고 임금 상승이 제한되는 경로를 통해 생애 전체 성과에 제약을 받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우연성이 다른 우연성을 심화시키고, 다른 우연성은 또다른 격차를 촉발한다면 그러한 우연성의 연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개인의 삶 전반을 제약하게 된다. 이처럼 제도적 차원에서 ‘브루트 럭’의 방치가 이어진다면, 실제 사회에서의 분배는 개인의 통제 가능한 선택이 아닌 출발선의 우연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결국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우연성이 보정되려는 노력 없이 무한히 그 영향력을 발산한다면, 앞서 살펴본 선택-민감성 원칙은 파괴되고 결국 우연에 민감하고 선택에 둔감한 구조가 심화되는 것이다. 그 최후에는 결국 한 개인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는, 실질적으로는 우연에 의해 모든 잠재성이 결정되는 선택-둔감 구조의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브루트 럭’이 만연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각자의 몫은 각자의 책임이라는 주장은 구조적 차이와 우연성의 영향력을 은폐하는 억압적인 구호가 된다. ‘브루트 럭’이 교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것도 마치 자신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간주되는 극단적 자기책임에 내몰리게 되고, 사회 전체는 선택보다 우연에 더 민감한 부정의한 구조로 수렴하게 된다.

능력에 따른 보상으로 인한 ‘브루트 럭’의 방치

‘브루트 럭’을 제도적으로 방치하게 되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오늘날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라고 할 수 있다. 계급사회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등장한 능력사회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언뜻 보면 희망적인, 그러나 그렇기에 매우 위험한 믿음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만 있다면”이라는 조건은 또다른 우연성에 의한 격차를 발산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자연화된 분배 기준인 ‘능력(ability)’은 표면적으로는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선택과 노력의 산물인 ‘옵션 럭’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통제불가능한 우연의 중첩을 통해 구성된 전형적인 ‘브루트 럭’에 해당한다. 실제로 ‘능력’은 개인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적·사회적 우연성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awls, 1971, pp. 72-75). 개인의 재능, 가정환경, 교육 기회 등은 스스로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조건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능력에 따른 보상은 결국 우연성의 산물을 보상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능력주의 사회는 교육자본, 고용, 임금, 사회적 인정과 같은 각종 자원을 능력 있는 자에 중점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믿음에 휩싸여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때 사용되는 ‘능력’ 개념은 우연성이라는 타고난 특성을 효과적으로 은폐한 채, 이를 마치 정당한 노력의 산물로 포장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먼저, 능력의 기반이 되는 타고난 유전적 기질은 대표적인 ‘브루트 럭’이다. 개인은 출생함에 있어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선택할 수 없고, 이는 인지적 능력, 신체적 능력, 정서적 안정성 등 장기적 성취와 밀접한 요소들을 결정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 꾸준한 노력을 하는 것 역시도 개인의 유전적 기질과 불가분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생물학적 우연이 생산한 차이마저 결국 개인의 탁월함으로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성장과 교육의 환경 역시 능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브루트 럭’ 요소이다.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는지, 부모의 교육수준과 지성은 어느 수준인지, 유아기의 환경과 주변 관계는 어떻게 조성됐는지 등 수많은 우연성은 개인의 삶을 구체화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 일반 가정에서 우연히 태어나 하루종일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천재소년과 선진국 자본가 가문에서 태어나 하루종일 공부하는 천재소년의 능력은 다르게 발현될 수밖에 없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우연성이 개인의 장기적인 잠재력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능력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자연화된 ‘브루트 럭’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능력이라는 개념 자체의 허구성에 주목해야 한다. 즉, 능력은 결국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인위적이고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축구선수 손흥민이 오늘날과 같이 글로벌 스포츠 산업이 발달한 사회가 아니라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의 신체적 재능은 어떤 경제적, 사회적 가치도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축구라는 주류 스포츠가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비주류 스포츠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모두가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능력’ 개념 역시 하나의 객관적인 속성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상대적 속성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능력에 대한 현대사회의 맹신은 이러한 사회적 우연성을 비가시화하고, 현재의 사회구조가 보상하는 능력이라는 구성물을 자연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결국 능력에 따른 보상은 ‘브루트 럭’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부를 정당한 선택과 노력의 차이로 승인하는 제도적 왜곡을 초래한다. 따라서 능력에 따른 보상은 ‘브루트 럭’의 해악을 심화시킴으로써, 정의로운 분배 원리의 조건인 선택-민감성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결론

본고에서는 첫째, 정의로운 분배 원리가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으로서 선택-민감성(choice-sensitivity) 원칙을 분석하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브루트 럭’은 분배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Dworkin 2000, pp. 147–148). 선택과 우연은 현실에서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는 반론을 검토하였으나, 오히려 그러한 불가분성으로 인해 우연성의 체계적 교정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였다. 이어서 ‘브루트 럭’이 개인의 실질적 선택 가능성 자체를 규율한다는 점을 센의 잠재가능성 접근을 바탕으로 논증했다(Sen 1992, pp. 31–34). ‘브루트 럭’의 제도적 방치는 선택-민감성 원칙의 정상적인 작동을 가로막는다는 문제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가장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분배 기준인 능력 개념이 실질적으로는 우연의 중첩된 산물이라는 점을 보임으로써(Rawls 1971, pp.72-75), ‘브루트 럭’을 제도적으로 승인하는 기제임을 보였다. 능력은 유전적 기질, 성장 환경, 교육 기화와 같은 우연적 조건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시대와 사회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받는 사회적 구성물에 해당한다. 이러한 능력을 분배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는 우연을 보상하는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브루트 럭’의 해악을 방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본고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확고히 한다. 능력에 따른 분배는 정의로운 분배 원리가 될 수 없다. 이는 능력은 본질적으로 ‘브루트 럭’의 산물임에도, 능력에 따른 분배는 그러한 우연성을 교정하거나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제도적으로 승인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분배 원리는 능력주의가 은폐하는 자연화된 우연성의 존재를 폭로하고, 선택과 책임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우연성을 교정하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해당 논의가 능력 개념을 전면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보상 체계를 구성함에 있어서 능력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은 유용하지 않을 뿐더러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는 능력에 따른 분배가 정의롭다는 통념을 의심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능력의 허구성과 분배 기준으로서의 부정의를 직시하고, 우연성을 교정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능력에 따른 분배가 당연시되는 오늘날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본고의 논증이 분배 원리의 정의로움을 철학적으로 재검토하고, 우연성의 교정이라는 정의로운 분배 원리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공민정. 2023. 「청년층 초기 일자리의 질이 장기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 『한국노동연구원 연구보고서』.

외국 문헌

Dworkin, Ronald. Sovereign Virtue: The Theory and Practice of Equalit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Rawls, John. A Theory of Justic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Sen, Amartya. Inequality Reexamined. Oxford: Clarendon Press, 1992.

Sen, Amartya. The Idea of Justic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Young, Michael.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870–2010: An Essay on Education and Equality. London: Thames & Hudson, 1958.

  1. 국내에서는 option luck을 선택 운, brute luck을 비선택 운, 눈먼 운 등으로 번역하지만, 본고에서는 원문 그대로 ‘옵션 럭’과 ‘브루트 럭’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기로 한다. 

  2. 이하에서는 이를 선택-민감성(choice-sensitivity) 원칙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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