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본) 과제-09 기말과제 013-12 강지운

제목: 교육에서 능력주의의 한계 극복가능성: 표준화된 평가를 통한 교육 개선

서론

현대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 이동의 기제로 작동한다. 이중에서 계층 상승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교육 기회의 평등과 성과에 따른 보상제도는 정의의 핵심 문제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수십년간 한국의 교육 정책은 점차 평가를 없애고 결과에 따른 차등적 배분을 없애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초등학교는 정기고사를 2015년부터 점진적으로 폐지했으며, 중학교에서는 전과목 절대평가화와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내신 등급과 수능의 영향을 축소하는 정책들을 도입했다.[^1]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평가 도구가 능력주의적 배분의 핵심 기제로 작동해왔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애초에 평가가 표준화된 평가의 취지를 간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심 운영원칙이 능력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니 교육을 진단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책적 시도는 평가 자체를 문제화시키고 폐기하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해당 논의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교육에서 평가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평가체계가 사라진다면 다양한 요인에 따른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능력주의의 문제점인 ‘출발선 불평등’을 가시화할 표준화된 평가체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OECD의 PISA 데이터들은 표준화된 평가는 국가 간, 지역 간, 계층 간 교육 격차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증명한다.[^2] 반면에, 평가는 상대적 우열을 가리게 됨으로써 이런 우열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현재의 제도에 따라 능력주의의 폐해가 드러난다.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부추기고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이 보상을 독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능력주의의 층위와 평가제도의 층위로 나누어 기존 학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타나고 있다. 능력주의는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에 지능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재화가 분배되어 귀족 중심의 대물림 체제를 끊어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는 학자들이 있다. Thomas Mulligan은 현대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능력주의의 한계가 아닌 능력주의가 온전히 실행되지 못했다고 보는 입장으로 이어진다. 한편, 샌들과 같은 학자들의 입장은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귀속시키면서 불평등과 사회적 연대 훼손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롤즈를 계승한 운 평등주의자들 역시 개인의 재능은 운과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에 공정한 것이 아니라 주장한다. 평가제도도 존치 여부를 둔 학계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Benjamin Bloom의 마스터리 러닝(Mastery Learning)이론에 의하면 평가가 학습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교육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한편 존 듀이(John Dewey)는 평가가 학생의 다양한 요소를 무시한 채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낳기에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본고는 해당 딜레마를 해소하고자 능력주의의 한계를 설명하되, 표준화된 평가를 통해 교육을 개선할 수 있는가를 핵심 쟁점으로 설정했다. 구체적으로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표준화된 평가를 통한 ‘평가’ 자체가 양립 가능함을 보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된 평가와 능력주의를 분리했으며 (a)능력주의가 교육에 있어 정당성을 갖지 못함을 밝히고, (b)표준화된 평가는 교육을 진단하고 발전하는데 유의하다는 점, (c)능력주의와 표준화된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 정당함을 연역적으로 논증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1) 먼저 롤즈의 정의론을 바탕으로 능력주의의 도덕적 한계를 규명할 것이다. ‘운’의 영역이 개입된 학생의 지능이나 가정 배경이 보상까지 이어지는 것은 정의롭지 못함을 논증한다. (2) 다음으로, 표준화된 평가가 교육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전체적인 학업 성취도를 상향평준화를 이뤄낼 수 있음을 입증한다. 다른 분야와 달리 경험적 자료가 부족한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요소이자 공정한 교육 제도 설계를 위한 밑거름임을 논증한다. (3) 마지막으로 평가의 용도를 명확히 제한하여 능력주의와 일부 성과주의에 따른 한계를 극복하는 논증을 할 것이다. (4) 또한 롤즈의 공정한 기회균등(Fair equality of opportunity)을 차용하여 학생들의 상태를 네 가지로 나누어 분류에 따라 어떤 정책 방향성이 정의로운지 입증할 것이다. (5) 나아가 표준화된 평가가 필연적으로 능력주의적 위계화를 수반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평가를 선별의 기제가 아닌 결핍의 진단과 자원 배분의 근거로 재정립함으로써 평가의 도구적 가치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분리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6) 이를 종합하여 능력주의는 정당화될 수 없으나 표준화된 평가는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최종적으로 결론짓고 논의의 함의와 더불어 한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본론

­능력주의의 도덕적 한계: 롤즈의 정의론과 현대 사회연구 입장에서

능력주의의 정의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 재능, 노력, 잠재력 등의 개인의 우수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사회, 경제, 정치적 보상이 배분되는 이념이다. 여기서 우수성이란 현실 사회에서 타인보다 잘 한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척도 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타인보다 우월하면 더 상위의 보상을 받는 체계를 하나의 이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최초로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었으며, 그는 능력(Merit)를 지능(IQ)와 노력(Effort)의 합으로 정의했다. 능력주의는 실체가 없는 이념인데다 번역의 오류가 있어 국내에서 엇갈리는 해석이 이루어졌다. 흔히 ‘성과주의(Performancism)’과 혼동되고는 하는데, 성과주의는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 실무적으로 쓰이는 보상원칙을 의미한다. 재능이나 잠재력같은 요소들 대신 개인이 이끌어낸 성과에 기반해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물론 직무 윤리가 강조되면서 INPUT에 관한 논의도 늘어났지만 OUTPUT만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Meritocracy는 Merit(능력) + Cracy(‘지배’)[^3]로 능력을 가진 계층이 지배하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문으로 능력주의라는 점때문에 능력을 우선시하는 긍정적인 이념으로 오역되고는 한다. 본고에서는 포괄적 능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우수성’에 기반해서 보상 체계가 갈리는 측면으로 해석한다.

롤즈의 정의론에 입각한 능력주의의 도덕적 한계

롤즈의 정의론은 재능, 가정환경과 같은 능력의 요소들이 도적적 관점에서 자의적(arbitrary from a moral point of view)라는 핵심 주장을 펼친다. 롤즈가 말하는 자의적인 것은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난 우연에 의해 결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예컨대 개인이 태어난 환경이나 타고난 재능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운’이자 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이런 요소들이 능력인 것은 맞지만, 이 능력들에 의해 개인의 삶의 기회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Rawls, J. (1971), Sections 12-17) 이는 근본적으로 능력주의의 논의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며, 능력을 개인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사회 전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비추고 있다. 그렇다면 능력은 어떤 과정에서 자의적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근거로 역사적 자의성이 있다. 롤즈는 이를 자연적 추첨(natural lottery)로 설명하는데, 개인의 자연적 재능과 타고난 사회적 계층은 전적으로 운에 의해 통제된다. 두번째 근거는 도덕적으로 능력은 개인에게 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적 추첨의 연장선으로서, 개인이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도덕적 응분(moral desert)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능력에 따라 받은 보상에 대해서 개인의 능력을 근거로 드는 것은 제도적 자격(legitimate expectations)으로는 정당할 수 있어도 도덕적 정당성을 충족시킬 근거가 부족하다. 능력 자체는 개인이 들인 선택과 비용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번째 근거는 기본재(primary goods)를 분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재란 자연적 기본재와 사회적 기본재로 구성되는데, 이미 통제 범위 밖에 있는 자연적 기본재를 기반으로 해서 제도적 자격으로 분배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본재까지 모두 독점되기 때문이다. 특히 능력주의가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엘리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자연적 기본재에 따라 사회적 기본재까지 특정 집단에 의해 독점된다. 교육의 관점에서도, 고등 교육기관의 입시가 철저한 성적 순으로 결정되는 만큼 교육 시스템에서 우수한 능력을 갖춘 인재가 계속해서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에는 학생의 지능, 가정적 배경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모든 과정이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롤즈는 능력이 개인의 온전한 소유물이 아님을 밝힘으로써, 능력주의가 교육에서 적용될 때 정당화될 수 있는 “성적이 높은 학생은 더 좋은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논리는 자격(desert)의 근거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롤즈의 핵심 비판이다. 롤즈는 분배적 몫이 개인의 도덕적 응분에 기반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정의로운 사회 구조 내에서 규칙에 따라 행동한 결과에 대한 제도적 자격(legitimate expectations)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제도적 자격을 충족하기 위해 전제되는 정당화는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다. 능력이 결정 될 때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가장 적은 수혜를 입는 최소 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정책이 설계되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배분의 관점에서도 능력주의를 전면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현대 사회연구에 입각한 능력주의의 경험적 실험적 한계

현대 사회학 연구들은 능력주의가 실제로 구조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심화시킨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입증했다. Castilla & Benard(2010)는 세 개의 실험을 통해, 조직이 능력주의를 강조할수록 무의식적 편향이 더 강해진다는 모순을 발견했다. 동일한 성과를 낸 직원이 있을 때, 능력주의 문화가 강한 조직의 관리자들은 남성 직원에게 여성 직원보다 유의하게 높은 보너스를 주었다. 특히 투명성이 낮은 의사결정에서 이 편향은 극대화되었다.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능력주의적 조직 문화가 관리자들과 제도 설계자들에게 왜곡된 정당화에 대한 안정감을 주면서 심리적 확신을 갖게 했고 이는 무의식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능력주의 이념이 강하게 자리잡은 조직일수록 의사결정자들은 자신의 편향된 판단을 능력 차이라고 일률적인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일련의 현상을 공정성의 환상(illusion of meritocracy)이라고 명명했으며, 심리적으로 능력주의가 격차를 정당화하는 문제를 지적했다.(Castilla & Benard(2010), 543~572). 요약하자면, 실험 결과는 능력주의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는커녕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본고의 첫 번째 전제인 교육에서의 능력주의가 정당하지 못함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Khan & Jerolmack(2013)의 연구는 비슷한 문제를 교육계에서 탐구했다. 연구진은 미국의 엘리트 학교에서 학생들을 연구했으나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는 괴리가 존재했다. 상위권 성적을 기록한 학생들은 자신의 결과에 대한 정당성을 노력에서 찾았다. 한편, 실제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처리할 수 있는 집단은 특유의 너드 편견이 씌워지면서 배제를 받았다. 이와 달리 여유를 부리며 자신의 능력을 믿는 집단들이 성공의 기준으로 여겨졌다. 즉, 능력주의의 ‘우수성’에서 노력을 하나의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은채 실질적으로는 개인 특유의 능력에 기대어 보상을 누리고 있던 것이다. 능력주의 이념이 사회연구를 받게 됨으로써 받은 비판들을 노력이라는 후천적인 특성만으로 모면하려했으나 이는 결국 능력주의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 것이다.(Khan, S., & Jerolmack, C. (2013), 10~15)

이런 논의를 종합한다면 능력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 의해 정의롭지 못하다. 도덕적 측면에서, 성적 차이의 근본적 원인을 제어할 수 없으므로, 성적에 기반한 응분은 도덕적 근거를 갖지 못한다. 또한 실질적인 사회적 측면에서 능력주의는 기득권을 능력의 차이로 정당화함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고착화한다. 따라서 능력주의에 기반한 교육 체계는 교육의 온전한 역할을 하기보다는 입시와 성적 가르기에 따라서 계층 구조를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한 불평등에 대해 개인들이 단순히 노력의 차이라고만 생각하도록 편향을 제공한다. 따라서 교육에서는 능력주의가 정당화될 수 없다.

표준화된 평가의 진단적 필요성: 불평등을 측정하는 도구

불평등을 측정, 가시화하기 위한 평가의 정당성

능력주의를 교육에서 제거한다 해서 능력주의에 활용된 시험이나 평가와 같은 평가도구들을 제거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세계적 추세를 비롯해 한국에서는 평가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성적을 내지 않고, 중학교에서는 절대평가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부모와 교사의 불만이 증가했고 자녀의 학습 수준을 알 수 없어 부모들은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취약계층은 입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온전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다. (박세미(2021))심지어 능력주의 관점에서 수혜자에 위치한 고지능자와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가정 형편이 어렵다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나 현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할 수가 없어진다. 즉, 능력주의의 폐해보다 못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평가가 사라지면 공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표가 사라진다. 기존에 계층과 지역별로 통계량을 구해 개인 맞춤형 교육의 방향성이 무너지게 된다. 이는 상대적인 격차를 심화시키는 문제점이다.또한 공정성의 관점에서 교육 격차가 은폐되면 누가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했는지 알 수 없어,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지원할 방법이 없어졌다. 즉, 평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평등이 은폐됨은 물론이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들을 기획할 수 없게된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입법안이나 지원정책은 명확한 데이터 없이는 민주적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프로파간다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평가에 기반해서 현재의 교육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존에 실시하던 비평준화된 평가를 비롯하여 비평준화된 학군은 롤즈적 관점에서 정당하지 못함기 때문에 추가적인 평가 조건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표준화된 평가는 정당성을 갖춘다. 표준화된 평가는 일관성을 갖추고 공정성을 전제조건으로 해서 큰 모집단에 대해 상대적 비교가 가능하도록 평가하는 방법이다. 방점이 상대적 비교보다는 일관성에 있어서 다양한 집단의 배경들을 고려하는데에 의의가 있다. 따라서 표준화된 평가는 교육격차를 가장 효과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방안이며, 개인에게도 제도적 자격에 기반해 교육 기회를 분배할 수 있다. OECD의 PISA는 세계 수십 개 국가의 학생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표준화된 수학, 읽기, 과학 평가를 실시한다.(OECD (2023),15-45) 이를 통해 각 국가의 전체 교육 수준을 추적하고,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성취도 격차를 측정하여 이런 자연적 추첨에 해당하는 요소들이 교육 기회 격차에 기용하는 정도를 가시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2 PISA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은 높은 평균 성취도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성취도 격차가 OECD 평균보다 크다.(OECD (2023),15-45) 즉, 한국의 교육의 방향성은 절대적 관점에서 상향평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약계층의 학업 수준이 뒤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둘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도 표준화된 평가는 정당성을 갖추는데 미국에서 표준화된 평가(NAEP, 주 성취도 평가)의 데이터가 없었다면, 학군에 따른 교육 격차를 정량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표준화된 평가를 통해 이 격차가 측정되자,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저소득층 지역 학교에 추가 자금을 배분하고 공교육의 질적인 수준 개선을 위해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고 Head Start와 무상 급식 등 기초학력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었다.(Brown, P., & Tannock, S. (2009), 377-392)

평가와 능력주의의 분리: 용도의 명확화

능력주의와 표준화된 평가체계의 공존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핵심은 능력주의는 문제가 있지만, 표준화된 평가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둘이 양립할 수 있는 근거는 평가와 능력주의가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는 이 지점에서 논리적 전환을 시도하여 두 명제는 모순되지 않다는 것을 논증할 것이다. 표준화된 평가는 객관적 기준으로 학생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기술적 도구이며, 능력주의는 평가 결과에 기반하여 사람들을 계층화하고 기회를 차등 배분하며 이를 정의롭다고 해석하는 이념이다. 즉, 각각 다루는 논의의 층위도 다를 뿐더러 표준화된 평가를 제시한 것은 능력주의가 가진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평가가 있으면서도 기본재가 보장되고 능력주의가 비판될 수 있다. 반대로 평가가 있으면서도 평가에 기반해서 배분이 일어나고 사회격차가 가속화되더라도 능력주의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현재 한국 교육의 문제는 평가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평가 결과가 모든 기회 배분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표준화된 평가를 사용하되, 그 용도를 명확히 제한해야 한다. 첫째, 불평등 진단을 위해 존재하는 평가는 정당하다. 누가, 어디가 취약한지 파악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둘째, 효과성 평가도 정당하다. 정책이 작동하는지 검증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초학력 미달 학생 식별 후 추가 지원도 정당하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돕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반면 부정당한 용도들이 있다. 첫째, 개인의 도덕적 응분 판정은 부정당하다. 성적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 가치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평가 지표를 바탕으로 개인적 자기계발과 사회적 제도 변화가 아닌 보상체계로 이어진다면 능력주의의 한계에 부딪히기에 정당화 될 수 없다. 다음으로 성적 우수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대학 선발에는 가능하지만, 그것이 생활 기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평가는 진단을 하고 개선의 목적으로는 정당화되지만, 개인의 응분을 판정하거나 기본재 배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두 가지 요인으로 학생들을 분류했을 때 네 가지 집단이 나온다. (1) 잠재력 O / 배경 O(가정형편 등의 유리점을 이용해 고득점), (2) 잠재력 O / 배경X, (3) 잠재력 X / 배경O, (4) 잠재력 X / 배경X로 분류된 집단에서 능력주의의 관점에서는 (1)과 (2) 집단이 보상을 받는게 정당화된다. 하지만 앞선 능력주의의 한계를 기반으로 해서 표준화된 평가체계를 적용하면,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자신의 학업 성취도를 진단하는 것에 있다. 다만, 롤즈의 동일한 재능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한다는 점에서 (1)과 (2)를 같은 고등 교육기관으로 보내는 것과 (4) 집단을 위해 특수 기관이나 사회적 제도망을 설계하는 것은 정당하다. 비록 (3)집단은 가정 배경 덕에 좋은 성취를 냈으나, 이에 대해 (4)와 동일한 선상으로 보내는 것은 사회 비용이 많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현행을 유지하는 것이 적합하다. 따라서 현실적인 사정을 고려해서 표준화된 평가로 교육체계를 보완한다면, 최소 수혜자인 (4) 집단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음과 동시에 해당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1), (2) 집단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롤즈의 입장에서도 사회적 효용 입장에서도 정당하다.

국내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초등·중학교는 평가를 너무 제한하여 진단 기능을 상실한 반면 고등학교는 평가가 모든 배분의 기준이 되어 능력주의를 심화시켰다. 이 극단적인 치우침 현상은 제도의 복잡함의 결과이고 정의롭지 못하다. 롤즈의 기본재(primary goods) 개념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이다. 롤즈의 핵심 주장은 기본재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하며, 이는 개인의 성적이나 응분과 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능력주의를 배제하면서도 표준화된 평가체계를 통해서 롤즈의 정의론에 부합하는 교육 환경을 완성하는 것은 가능하며 이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예상 반론 및 재반박

예상반론

본고가 주장하는 “표준화된 평가는 기술적 도구일 뿐 능력주의는 이데올로기”라는 분리는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평가 항목의 선택, 가중치 결정, 통과 기준 설정 자체가 이미 도덕적 가치판단이므로, 평가도 능력주의적 가치관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평가 결과가 공개되고 수치화되는 순간, 학교, 부모, 교사, 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자동으로 위계화되고 선별 도구로 변환된다. 특히 본고의 네 집단 분류에서 (1)과 (2) 집단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특정 학생의 고득점이 실제 잠재력인가, 사교육의 효과인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는 평가 점수에 포함되지 않는 메타적 해석이므로 다시 주관성과 편향이 개입된다. 결국 표준화된 평가를 통해서도 능력주의의 한계를 온전히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반박

그러나 이 반론은 ‘평가 결과의 오용 가능성’을 ‘평가 자체의 필연적 속성’으로 혼동하고 있다. 평가가 위계화되고 선별 도구가 되는 것은 평가 도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 결과를 모든 기회 배분의 기준으로 삼는 제도 설계의 문제이다. 본고가 본론에 명시했듯이, 현재 한국 교육의 문제는 평가의 존재가 아니라 평가 결과가 모든 기회 배분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례는 이를 증명한다. 미국은 표준화된 평가(NAEP)를 통해 교육 격차를 진단하면서도, 그 결과를 입시 선발 기준이 아닌 저소득층 학생 지원(Head Start, 무상 급식, 기초학력 프로그램)이라는 다른 분배 원칙에 따라 기본재 배분에 활용했다. 이는 평가와 능력주의의 분리가 제도적으로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준다. 네 집단 구분의 메타적 해석 문제도 평가 폐지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경제적 배경 정보의 병렬 수집, 과정 중심 평가의 보완, 종단적 데이터 추적 등을 통해 평가 설계를 더욱 정교하게 개선함으로써 해결 가능하다. 평가를 폐지하면 불평등을 단순히 은폐할 뿐이지만, 표준화된 평가를 통해 불평등을 가시화하고 롤즈의 차등 원칙에 따라 최소 수혜자를 위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교육 정의를 실현하는 더욱 타당한 방안이다.

결론

본고는 한국 교육에서 제기된 핵심 쟁점인 능력주의는 정의롭지 못하지만, 표준화된 평가는 필요한가에 대한 논증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주장은 세가지 단계를 거쳐서 진행했으며, 첫째로 능력주의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롤즈의 정의론에 의하면 타고난 재능의 도덕적 자의성 때문에 성적에 기반한 기회 배분은 도덕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이에 더해 현대 사회학 연구들은 능력주의가 실제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입증했다. Castilla & Benard의 ‘공정성의 환상’ 이론, Khan & Jerolmack의 연구는 능력주의가 기득권을 정당화하고 개인들의 무의식적 편향을 불러일으켜 불평등의 핵심이 아닌 ‘노력’의 문제로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화된 평가는 필수적인데 평가 없이는 불평등을 측정할 수 없으며, 정책 개입을 할 수 없다. PISA, NAEP 등의 국제 데이터는 표준화된 평가가 불평등 진단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한국의 양극화된 교육체제는 개선의 여지가 있으며, 집단의 특성에 맞춰서 표준화된 평가를 제공한다면 능력주의의 영향 없이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정당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둘을 양립시키는 방법은 평가와 능력주의를 분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평가는 ‘진단 및 개선’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개인의 응분 판정’이나 ‘기본재 배분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본고의 논의는 한국 교육 정책에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갖는다. 첫째, 평가 폐지와 절대평가는 능력주의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은폐하고 사교육 시장을 확대시킨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능력주의 비판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평가 자체의 폐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셋째, 진정한 정의로운 교육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평가 체계의 개혁뿐 아니라, 평가 결과가 기회 배분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수적이다. 넷째, 이를 위해 롤즈의 정의론, 특히 기본재와 차등의 원칙이라는 개념을 한국 교육 정책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본 논문이 제시한 방안에는 제한점이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법적·제도적 개선과 사회적 인식 변화 사이의 간극이 존재할 수 있고, 평가 결과가 사회적으로 여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능력주의 자체도 동등한 출발선을 가정하지만, 현실적으로 시행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과 맥락을 같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두가지 논의를 양립 시키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제거하고 실질적으로 정책에 옮기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향후 연구는 논문이 제시한 제도 설계가 실제로 한국 교육에서 시행될 수 있는 현실적 경로를 모색하는 연구나 평가 결과의 사회적 영향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법적·제도적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이다. 궁극적으로 온전히 롤즈의 정의론을 교육에 접목시키기 위한 교육 분배 제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한다. 결론적으로, 능력주의는 비판받아야 하고 표준화된 평가는 필요하다. 이 두 가지는 양립 가능하며, 평가의 용도를 명확히 제한하고 기본재를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장하면서도 정의로운 교육 체계를 구축할 때 성립한다. 이것이 본고가 제시하는 정의로운 교육의 길이다.

[^1] 참고문헌에 더해 실제 정책적 변화로 교육과 입시에서 평가를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주로 여러 항목을 통합해서 각 항목에 따른 온전한 평가가 과거에 비해 어려워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2] OECD (2023), PISA 2022 Results (Volume I): The State of Learning and Equity in Education, PISA,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53f23881-en. [^3] Merit은 지능이나 극히 제한된 재능만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포괄적인 ‘능력’ 전부를 의미하며, Cracy 역시 ‘주의’가 아니라 ‘지배체계’로 해석해야 의미의 차이가 좁혀진다. 예로 democracy는 민주주의이지만 민주적 절차와 국민에 의한 ‘통치’의 개념이 강한 것처럼 Cracy의 의미를 잘 담을 수 있도록 해석해야한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박세미, (2021). 학교에서 시험을 안보니…사설 학력평가 난립. 조선일보.

외국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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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illa, E. J., & Benard, S. (2010). The paradox of meritocracy in organization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55(4), 543–576. https://doi.org/10.2189/asqu.2010.55.4.543

Khan, S. R., & Jerolmack, C. (2013). Saying meritocracy and doing privilege. The Sociological Quarterly, 54(1), 9–19. https://doi.org/10.1111/tsq.12006

Mulligan, T. (2018). Justice and the meritocratic state.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1315714806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2023). PISA 2022 results (Volume I): The state of learning and equity in education. OECD Publishing. https://doi.org/10.1787/2f9d1d3a-en

Rawls, J. (1971). A theory of justice. Harva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