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13-06 김기연


제목: 혐오는 미적 경험을 파괴하는가, 가능하게 하는가?


I. 서론

근대 미학의 전통은 오랫동안 예술을 ‘무관심적 쾌(disinterested pleasure)’와 직관적 아름다움의 영역에 묶어두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예술계에는 혐오, 추함, 불쾌와 같은 경험을 예술의 전면으로 끌어오는 경향이 등장했다. 그 대표적 예시가 바로 abject art이다. 오물, 신체의 파편, 비이상화된 나체, 종교적 금기를 소재로 삼는 abject art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미적 경험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의 핵심 쟁점은 혐오가 미적 경험을 전적으로 파괴하는가, 아니면 특수한 형태의 미적 쾌를 가능하게 하는가라는 점이다. 나는 후자의 입장을 옹호한다. 즉, 혐오 경험도 예술 속에서 반추와 의미화를 거쳐 미적 쾌를 가능케하는 새로운 형태의 만족으로 전환될 수 있고, 미학적으로 논할만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먼저 혐오가 미적 경험의 자원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밝히고, 구체적 사례로 abject art와 그가 지닌 예술적 기능을 검토한다. 이어서 칸트의 전통 미학을 근거로 혐오감을 주는 것은 미적 쾌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반론을 검토하고, 이 반론이 이미 뒤집어졌고, 더이상 효과적인 예술 해석론이 아님을 밝힘으로써 내 주장을 정당화하고 강화할 것이다.


II. 본론

1. 혐오는 미적 경험의 범위를 넓히는 새로운 열쇠다

혐오는 단순히 쾌감의 반대점에 있는 감정이 아니라, 내적 반추의 촉매제로써 기능할 수 있다. 사진의 발명 이후 미술은 재현의 임무로부터 해방되었고, 이 흐름은 문학, 음악을 비롯한 예술계 전반으로 확장되었다. 이 흐름 속에서 예술은 더이상 얼마나 세계를 잘 모방하는지에 근거해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소쉬르가 언어를 기호로 보았듯, 예술도 내부의 구조에 근거해 의미를 가지는 하나의 기호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자체의 직관적인 시각적 조형요소의 조화 자체보다는, 기표로서의 예술 작품이 감상자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기의가 무엇인지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술 속 혐오라는 감정은 관람자의 기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흔히 고전주의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즉각적인 심미적 쾌보다, 현대 미술의 혐오스러운 주제를 보고 느껴지는 불쾌감은 관람자가 그 불쾌를 무의식적으로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그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작품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즉, 불쾌가 단순히 ‘기분 나쁜’ 납작한 감정에 머물지 않고 지적 환기 및 ‘아하 모먼트’를 유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혐오는 예술에서 배제되어야 할 요소가 아니라, 예술이 다룰 수 있는 미적 경험의 범위를 확장하는 열쇠이다.


2. 혐오를 소재로 하는 예술, Abject art의 사례와 기능

혐오가 미적 경험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abject art라는 현대 미술의 한 종류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안드레스 세라노의 ‘Piss Christ’(1987)은 그리스도 십자가상을 소변과 황소의 피 속에 담아 촬영한 작품으로, 즉각적인 불쾌감과 종교적 모독의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관객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충격, 경악과 같은 혐오류 감정을 계기로 종래의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신성성과 신의 권위라는 개념을 인지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든다. 또다른 abject art의 예시로 키키 스미스의 ‘Tale’(1992)은 기어가는 여성 형상 조각의 엉덩이에서 길게 늘어진 오물을 포함한 작품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한눈에 봤을 때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되려 그 작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의 근원이 ‘여성의 몸은 깨끗하고 이상화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규범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지적 환기를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감상자는 본능적 혐오 반응 속에서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내재화한, 그래서 새삼 마주했을 때 불편할 수밖에 없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올바른 세계’의 경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왔는지를 성찰하게 된다. 결국 혐오는 단순한 파괴적 정서가 아니라, 감상자를 의도적인 사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예술적 장치로서 기능하며, 바로 이 점에서 abject art는 미적 경험의 범위를 넓히는 힘을 가진다.


3. 반론: 혐오는 미적 만족을 파괴한다

그러나 전통 미학은 혐오가 미적 경험과 양립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표적으로 칸트(1790)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은 감상 당사자에게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즐거움을 느끼는 경험, 즉 ‘무관심적 쾌’에 근거한다고 보았으며, 혐오는 이 무관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혐오란 감각적으로 즉각적인 거부 반응을 일으켜, 관객이 작품에 대해 무관심적(disinterested)으로 사유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심미적 경험을 형성하기보다는 본능적 회피 반응만 남기고, 따라서 예술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입장은 abject art를 비롯해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예술은 단순히 사회적 충격과 논란을 낳는 자극물에 불과하며, 미적 가치의 논의 대상, 즉 예술로 포함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4. 재반박: 혐오는 예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입장은 예술의 기능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한 것이다. 현대에 들어 예술의 목적은 단순히 실재 세계를 재현하고 즉각적으로 시각적인 쾌를 주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예술은 하나의 ‘기호’로서 기능하며, 인간 주체와 개인 내면에 고착화된 사회 규범에 대한 심화된 성찰을 이끌어냄을 목표로 하는 지점까지 확장되었다. Carolyn Korsmeyer(2011)는 이를 ‘미적 혐오(aesthetic disgust)’라 개념화하며, 불쾌가 작품의 맥락 속에서 의미화될 때 관객은 오히려 새로운 만족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Julia Kristeva(1982) 역시 abjection(내다 버려지는 것)을 주체 형성 과정의 핵심으로 보면서, 예술이 이를 표면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혐오는 단순히 불쾌한 평면적인 감정이 아니라, 터부시되던 것들을 작품 앞단에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감상자로 하여금 내재화된 규범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방아쇠가 되며, 이 점에서 오히려 예술의 범주에 당당히 포함되며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는 도화선이라 할 수 있다.


III. 결론

이 논문은 혐오가 단순히 미적 쾌를 파괴하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성찰과 의미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미적 경험을 가능하게 함을 논증하였다. 이는 혐오가 예술의 외부적 장애물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와 기능을 구성하는 핵심적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혐오는 전통적 미적 경험의 규정을 넘어, 무의식적으로든 의도적으로든 외면하고 있던 의미들을 마주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감상자로 하여금 새로운 미적 쾌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이 예술이 반드시 혐오를 통해서만 의미를 확보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혐오의 심미적 전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예술이 인간 경험의 전체 스펙트럼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을 밝히며, 미적 경험의 범주를 보다 풍부하게 확장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APA 7판 스타일)

  • Kant, I. (2000). Critique of the Power of Judgment. (P. Guyer & E. Matthews, Tr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790).
  • Korsmeyer, C. (2011). Savoring Disgust: The Foul and the Fair in Aesthetics. Oxford University Press.
  • Kristeva, J. (1982). 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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