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13-18 나윤영

제목: 생명 윤리에 어긋나는 작품도 예술로서 허용되어야 하는가?

I. 서론

2021년, 유벅 작가가 살아있는 금붕어를 링거 안에 넣은 설치작품 ‘Fish’를 전시하여 한 갤러리 대표가 “예술이라고 금붕어를 죽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예술 작품에서는 예술적 가치와 윤리적 가치 중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할까? 예술과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은 예술계에서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다. 대표적으로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이 이 논란에 많이 올랐는데, Apollo Magazine(2019)의 Giovanni Aloi 같은 경우 허스트의 작품에 포함됨 동물의 생명 희생이 인간이 동물과 자연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와 예술의 성취 간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진다. 반면 Tsung-huei Huang(2015)은 작품이 관객에게 삶과 윤리 문제를 성찰하게 하기도 하지만 동물학대와 윤리적 문제를 은폐하거나 악화시킬 위험도 있다고 비판한다. 본 논증문은 Tsung-huei Huang의 입장을 옹호하며, 생명윤리적으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행위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본론에서는 먼저 생명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근거하여 생명 윤리에 어긋나는 예술 작품의 부당함을 논하고 이러한 작품이 관객, 더 나아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을 들며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예술이 허용되지 말아야 함을 논증할 것이다. 이후 비윤리적 예술 또한 표현의 자유로 보는 반론에 대해 재반박을 이루며 논제를 정당화할 것이다.

II. 본론

1. 생명 윤리에 어긋나는 예술작품은 생명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다.

레건(Regan)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삶의 주체는 존중받을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라고 주장하며 이들이 자원인 것처럼 대우받는 것이 정당하지 못함을 강조한다. 정연재(2017)는 생명 존엄성을 도덕적 책무와 연결시키며, 인간뿐 아니라 자연종 전체에도 적용 가능한 보편적 가치임을 논증한다. 이와 같이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성을 가짐을 알 수 있다. 허스트의 작품 중 수천마리의 나비를 방에 가두고 나비의 생과 사를 보여주는 ‘사랑의 안과 밖’이라는 작품이나 앞서 언급한 유벅 작가의 ‘Fish’의 경우, 생명을 단순한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 생명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볼 수 있다. L.M. Johnson은 이와 같이 동물의 생명을 예술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에 대해 인간중심적이라고 비판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는 예술을 이유로 생물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생명을 수단화하는 예술은 생명 그 자체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예술은 메시지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이는 예술보단 폭력에 가깝다.

2. 대중의 생명 가치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작품은 관객의 정서나 사고에도 영향을 끼친다. 마르코 에바레스티의 ‘헬레네’ 같은 경우 살아있는 금붕어가 들어있는 믹서기의 버튼을 관객이 누르면 믹서기가 작동하는 형태로 많은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이 느끼는 불쾌감이나 죄책감 등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이지만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작품이 끼칠 대중의 생명 가치관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다. 생명을 파괴하거나 고통을 가하는 과정을 포함한 예술작품은 관객에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둔화시킬 위험이 있다. 반복적으로 그러한 작품을 접하다 보면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생명을 수단화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자연 등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 약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생명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관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례로 카텔란의 설치미술 ‘목매단 아이들’은 소년 형상의 인형이 교수되어 마치 어린아이가 자살을 한 것 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생명윤리적으로 무감각한 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로부터 당장 생명을 훼손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관객의 의식에 영향을 주며 대중의 생명존중에 대한 가치관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3. 반론: 생명을 수단으로 쓰는 작품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이를 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금붕어를 활용한 작품은 충격을 주는 동시에, 관람객으로 하여금 ‘생명에 대한 무감각’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런 방식의 예술은 단순히 생명을 파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이중성과 도덕적 둔감함을 드러내려는 예술적 장치일 수 있다. 예술가에게 윤리적 기준을 강제하는 것은 검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예술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윤리라는 기준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정된 윤리를 기준 삼아 예술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일부 학자는 예술작품의 윤리적 결함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때로는 미학적 경험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4. 재반박: 표현의 자유나 예술적 메시지보다 생명의 존엄성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 가치다.

모든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한다. 예술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표현 방식이 타자의 고통이나 생명의 희생을 기반으로 할 경우 그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예술의 자유 역시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충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굳이 생명을 희생시키는 방식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충분히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도발 대신 공감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이 오히려 더 강력할 수 있다. 예술과 윤리 사이에는 긴장 관계가 존재하지만,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만큼은 예술로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윤리적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다.

III. 결론

본 논증문은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따라 이를 훼손하는 작품은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서도 자유롭지 못함을, 또한 생명을 해치는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은 관객에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둔화시키고 도덕적 무감각을 초래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예술작품은 허용되지 말아야 함을 논증한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통찰을 주는 매개체인 만큼 윤리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적 가치도 윤리적 가치에 우선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논증은 생명을 소재로 사용하는 예술의 자유와 생명윤리 사이의 딜레마에서 생명이 수단화되지 않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강조하여 보편적 윤리관의 유지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 때, 단지 생명을 소재로 사용한 예술작품에 대한 규제가 아닌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거나 관객에게 생명에 대한 무감각을 줄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제한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