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13-10 김준이
제목: 인간은 죽을 권리(right to die)를 보장받아야 하는가?
I. 서론
인간의 생명은 오랫동안 불가침의 가치로 간주되어 왔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이는 결코 선택이나 양도,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였다. 그러나 생명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라는 관념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생명의 연장 가능성을 전례없이 확장시켰고, 연명치료와 존엄사에 관한 논의는 생명을 단지 보존해야 할 절대적 가치로 이해하는 관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음은 “인간은 죽을 권리(right to die)를 보장받아야 하는가?”의 핵심적인 딜레마로 귀결된다. 생명이 불가침의 가치라면 인간은 그것을 언제나 보존할 의무를 지니는가, 아니면 생명의 무한한 연장을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의 모습을 선택할 권리를 갖는가? 이에 대해 Jonathan Treem(2023)은 조력사망이 윤리적으로 수용 가능한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죽을 권리의 개념이 인정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반면, Ilaria Bertini(2025)는 자율성만으로 죽을 권리를 도출할 수 없으며, 관계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타당성이 엄격히 검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긴장 속에서 Jonathan Treem 등의 입장을 옹호하며, 인간은 죽을 권리(right to die)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당 논변은 모든 인간이 최우선적 권리이자 본능으로서 자기보존을 지향한다는 점과, 그러한 자기보존은 단지 생명의 무조건적 연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대표적인 두 가지 논증에 토대하고 있다. 이를 보이기 위해 본론에서는, 먼저 자기보존의 규범적 근거와 당위성을 논증하고, 다음으로 자기보존은 존엄한 삶을 향유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다. 이어서 자기보존의 의무를 지니는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나 인신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는 반론을 고찰하고 이를 재반박함으로써 위 논제를 정당화할 것이다.
II. 본론
1. 모든 인간은 본능으로서 자기보존을 추구하며, 이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자기보존은 모든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으로, 생명을 보존할 권리는 권리 체계 전체의 토대를 이루는 근본적 권리이다. 홉스가 자연상태에서의 자연권을 인간의 자기보존 욕구에서 도출했듯, 자기보존의 본능은 인간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향유하려는 모든 노력의 원형으로 작동한다. 로크 역시 사회계약 이전부터 인간이 타고난 자연권으로서 생명권을 강조하며, 자기보존의 권리는 양도불가능한 불가침의 권리라고 규정하였다. 생명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자유, 평등, 재산권과 같은 다른 기본권이 무의미해지며, 다시 말해 자기보존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전제조건과도 같다. 따라서 공동체의 사명은 인간의 안정적인 자기보존을 실현하는 것이고, 사회와 법제도는 생명권의 보장,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각종 권리체계의 보장을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2. 자기보존은 단지 생명의 무조건적 연장이 아니라, 존엄한 삶을 설계하고 향유하는 것을 포함한다.
자기보존은 단순히 생명을 물리적으로 연장하는 행위에 그 본질이 있지 않다. 인간이 자기보존을 지향한다는 것은 단지 시간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장기적 차원에서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존엄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근원적 지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한 연명만이 자기보존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생명의 질과 존엄이 확보되어야만 자기보존의 권리가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의학기술의 발달로 무한히 연명치료가 가능하더라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인간이 존엄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이를 진정한 자기보존의 실현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존엄을 상실한 강제적 수명의 연장은 자기보존의 목적을 배반할 수 있고, 이때 인간은 자기보존의 욕구가 좌절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보존은 단순히 생명 그 자체의 지속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인간다운 방식으로 구성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3. 반론: 자기보존의 의무를 지니는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나 인신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자기보존의 의무를 지니는 존재라는 점을 들어, 자신의 생명이나 인신을 포기할 권리는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Bertini(2025)는 생명의 결정이 단독의 개인에게 귀속된 문제가 아니며, 개인의 자유 의지 표명만으로 죽을 권리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생명권은 절대적 권리로서 인류 전체의 도덕적 질서를 구성하고, 따라서 죽을 권리는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의 체계에 쉽게 포섭될 수 없다고 본다. 즉,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이를 포기하지 않을 의무를 지니며,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4. 재반박: 판단은 구성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며, 조건 설계는 규범적 정당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자기보존을 오직 생명 연장의 의무로 환원함으로써, 그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하는 오류를 범한다. 인간의 자기보존은 고립된 생물학적 충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조건과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의 조건과 맥락이란 현재와 미래의 고통, 회복가능성, 잠재력, 삶에 대한 통제력 등 인간다운 삶을 구성하는 질적 요소들을 포괄한다. 즉, 자기보존은 그저 살아있음이 아니라 인갑다게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자기보존의 권리와 의무는 생명의 양적 지속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로서의 질적 보존과 함께 지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죽을 권리의 보장은 자기보존 의무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무를 존엄한 방식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죽을 권리는 자기보존의 부정이 아니라, 극악의 상황 속에서 마지막까지 자기보존의 의무에 충실하기 위한 최후의 방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III. 결론
이 논문은 자기보존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이자 모든 권리의 토대라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 의미가 단순한 생명 연장에 국한되지 않고 존엄한 삶의 질적 보존을 포함한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이는 특히 극한의 고통이 부과되는 상황 속에서 죽을 권리가 오히려 자기보존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죽을 권리의 보장은 생명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 내용을 보장하기 위한 최후의 장치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죽을 권리에 대한 제도적 논의가 자기보존의 권리와 의무를 조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의 실질적 보장을 완성하기 위한 과제로 자리매김함을 시사한다.
참고문헌 (APA 7판 스타일)
Treem J. (2023). Medical Aid in Dying: Ethical and Practical Issues. Journal of the advanced practitioner in oncology, 14(3), 207–211.
Bertini, I. (2025). The Right to Die: Autonomy at the Limits. Voices in Bioethics,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