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 과제-04 5-6단락 논증에세이 013-17 백지성

제목: PAS와 MAID,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I. 서론

이 글은 의료적 조력을 통한 죽음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 PAS(Physician-Assisted Suicide, 의사조력자살)인가, MAID(Medical Aid in Dying, 의료조력죽음/존엄사)인가 - 라는 명명의 문제를 다룬다. 언어는 지칭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닐, 제도의 현실을 구성하는 도구이다. 즉, 무엇을 ‘죽음’이라고 부르는지는 철학적 언어 선택이자 제도의 설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선행 논쟁에서 Fox & Braswell(2024)은 MAID가 논의를 완곡화하여 핵심을 흐린다고 비판하며 PAS의 투명성을 옹호하였으며, Sams & Jaggard(2024)는 진실 말하기의 윤리를 이유로 PAD-P/PAD-A(처방/투여 구분)의 표준화를 제안했다. 반면, Death with Dignity Foundation(2025)는 MAID가 말기 환자에게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실천적인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각기 언어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본 글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MAID라는 완곡어는 민주적 토론과 제도 설계에 필요한 언어적, 통계적, 책임적 투명성을 약화시키므로 학문적/윤리적 논의 단계에서는 PAS, 제도 운영 단계에서는 PAD-P/PAD-A의 구체적 명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논증은 1. 명확한 명명이 공적 기록과 책임 귀속의 전제임을 보이고, 2. MAID가 통계, 문서, 규제 설계에서 발생시키는 구조적 혼동을 제시한 뒤, 3. ‘선택권과 평온’을 근거로 한 MAID 옹호 논변을 가치적, 윤리적 차원에서 검토 및 재반박하는 순서로 전개한다.

II. 본론

1. 명확한 명명은 공적 기록과 책임 귀속의 전제이다

PAS는 행위의 인과를 직시하게 한다. 의료인의 처방 혹은 투여가 환자의 사망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언어로 드러내야만, 사망 원인 분류, 사망진단서 기재, 보험/의료감사/사법 판단에서 책임의 범주가 명료해진다. 반면, MAID는 ‘죽음에 대한 도움’이라는 비유적인 틀로 호스피스와 같은 정서적 프레임을 호출하며 행위의 구조를 흐린다. 민주적 제도는 합의된 사실 기술에서 그 신뢰가 비롯된다. 즉, 불편한 단어를 바꾸는 것은 낙인을 줄이는 소통 전략일 수는 있겠으나 공적 기록과 책임 분배의 기초를 약화시키는 규범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PAS, 혹은 더 구체적으로 PAD-P/PAD-A는 행위 유형을 식별 가능케 하여 자료 축적과 사후 평가를 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정확한 명명은 제도 신뢰의 조건이다.

2. MAID는 통계/문서/규제 설계에서 구조적 혼동을 낳는다

용어의 모호함은 곧 제도의 모호함이다. 예컨대, MAID라는 범주 아래에서는 ‘의사가 약을 처방하고 환자가 스스로 복용하는 경우(PAD-P)’와 ‘의사가 직접 약을 투여하는 경우(PAD-A)’가 구분 없이 기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장 목격 등의 안전장치 설계와 사후 감시의 정밀도가 떨어진다. 또한, 통계상으로는 사망 원인의 인과 사슬이 불투명해져 특정 진단군의 가속화나 기관별 승인률 편차 등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기 어렵다. 반면, PAD-P/PAD-A의 구분은 서로 다른 위험 프로파일을 전제로 하는 규제 설계를 가능케 한다. 명명의 불명확성은 데이터의불명확성으로, 나아가 규제의 불명확성으로 이어진다. 이는 제도의 정당성과 환자 보호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이다.

3. 반론: MAID는 선택권과 평온을 보장한다

MAID 옹호론은 제도의 존재가 다수 환자에게 심리적인 안도감을 제공하고, 실제 이용률이 낮더라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적인 낙인을 완화하고 가족에게 평온한 작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MAID라는 용어의 정서적 완화 효과를 긍정한다. 나아가 이용률의 격차 혹은 정보 부족은 용어 문제가 아니라 접근성 불균형의 문제로 본다. 즉, 선택권은 환자의 자율성과 고통 완화와 같이 윤리적 가치에 뿌리를 둔 권리라는 것이다.

4. 재반박: 정확한 명명만의 선택권의 윤리적 정당성을 지킨다

그러나, 자율성과 평온의 가치가 진실한 책임 인식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 자율성은 사실 인식 위에서만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환자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어떠한 행위가 누구에의해 이루어지는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선택은 ‘자율적’이라 부를 수 없다. 즉, 언어의 완곡화는 선택권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또한, 심리적 안도는 ‘PAS는 말기 환자에서 엄격한 절차 하에 가능하며, 당신은 요건을 충족할 경우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식의 정직한 설명으로도 제공할 수 있다. 접근성 격차 역시 용어 미화가 아니라, 호스피스 강화, 정보 제공의 평등화, 절차적 보호 장치의 공정한 집행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완곡어는 낙인을 즉시 덜어줄 수는 있지만 그 비용은 데이터의 불투명성과 책임의 희석으로 되돌아온다.

III. 결론

본 글은 다음을 보였다. 첫째, PAS 또는 PAD-P/PAD-A와 같은 정확한 명명은 공적 기록과 책임 귀속의 전제이다. 둘째, MAID는 동일 범주 안에 이질적 행위를 포괄하여 통계, 문서, 규제 설계에서 구조적 혼동을 낳는다. 셋째, MAID 옹호의 핵심 근거(선택권 및 평온)는 부정할 수 없는 실천적 가치이지만, 그 가치는 사실을 감추는 언어가 아니라 정직한 언어와 충분한 설명 위에서 더 안전하게 달성될 수 있다.

이 논의의 함의는 명확하다. 학문적, 윤리적 논의에서는 PAS의 분석적 투명성을 유지하며 제도 운영에서는 PAD-P/PAD-A로 세분화하여 감시와 책임을 정밀화해야 한다. 결국 사회적 기록과 제도 설계의 신뢰는 언어의 명확성에서 출발한다. 이 글은 의료적 조력을 통한 죽음의 논쟁에서 언어의 투명성이 제도 신뢰의 근간임을 보여준다. 향후 연구에서는 실제 제도 설계 단계에서 PAD-P, PAD-A 구분이 어떻게 규제 효율성, 책임성, 환자 보호를 향상시키는지 사례 분석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